전출처 : 이누아 > 정태춘, 박은옥-저 들에 불을 놓아


정태춘, 박은옥 - 저 들에 불을 놓아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 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 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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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5-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펌~ 감사합니다, 늘~

달팽이 2006-05-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께 돌립니다. 감사..
그리고 늘 고맙습니다.
 

초록숲속 부는바람

선율되어 가슴가득

까마귀의 긴긴울음

봄날더욱 쓸쓸한데

흐린구름 세찬바람

깊어지고 굵어지고

두두두둑 쏟아지는

예상불허 봄의눈물

바람더욱 거세지고

시린가슴 옷여미네

가슴속에 가득담긴

봄의산빛 변해가네

잿빛으로 회색으로

밝은봄빛 퇴색되네

차를돌려 벗의집에

술한잔과 안주한점

풍경소리 그윽하고

머얼리서 들려오는

관음보살 봄의설법

마음속의 없는한점

소리없이 불밝히네

속절없던 인생의꿈

안개처럼 흩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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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10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숲속을 걸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숲속에
바람이 불자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우선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뒤이어 나무는 팔을 뻗어 손을 흔들어대고..
땅 위에 구르는 돌들은 나의 발등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몰래 숨어있던 까마귀 울어 나를 깜짝 놀래킨다.
아니 숲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다.
온갖 표정과 소리로 우리들의 발걸음을 맞아왔다.
숲을 벗어나자 이젠 구름이 눈짓한다.
오랫동안 구름 뒤에서 숨어있었던 빗방울도 봄나들이에 기뻐한다.
바람은 신이나서 더욱 흥겹게 춤을추고
만물은 그 웅성거림을 더해간다.
왜 나는 쓸쓸해야만 하는가?
마음을 열자..
세상에 즐겁지 않은 것은 없지 않은가?

비자림 2006-05-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천사 가서 원성 스님 엽서랑 방석동자 사 왔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들 방석동자 갖고 한 10여 분 자동차처럼 놀고 있네요. 벌써 얼굴이 시커매진 방석동자..
근데 우리 아들들에게 시달린 방석동자가 더 즐거워 보였어요.

비자림 2006-05-1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것 같아 댓글을 다시 써요.)
3,4월에 제 방 다락방에도 자주 청승맞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저는 음악으로 달랬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주도의 비자림, 그 안의 부드럽고 맑은 공기를 보내 드리고 싶네요.

달팽이 2006-05-1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의 비자림의 스산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 속을 거닐던 기억이 납니다.
천년된 비자나무이던가요? 거기서 돌아나오면서 돌담길에 수북히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올 때 마음 속의 서늘함과 고요함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클릭하면 꽃이 피네..

 



까만 바탕을 마우스로 클릭해보세요
클릭하는 데로 꽃이 마구 생겨납니다.
기분 좋아짐 ^^

클릭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아니었던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모두 꽃이었던거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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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0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을 주는 화면이군요. _()_

달팽이 2006-05-0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아침 혜덕화님으로부터 행복이란 말을 들어서 좋군요.. _()_

해콩 2006-05-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펌~

달팽이 2006-05-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께...예쁨을 돌립니다.
 

  한 해가 다가도록 방공지엔 배 한 척도 얼씬하지 않았다.

밤배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달밤을 젓는 배는 더구나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산정자에 와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 혼자만 거기다 작은 배를 띄우고 달이 뜨는 밤마다 달담을 놓치지 않았다.

성을 따라 북해판까지 오 리나 되는 물길을 나는 항상 오르락내리락했다.

산모퉁이 뒤로 올망졸망 집 몇 채, 사립을 닫고 높이 누웠는지 호롱불 하나도 뵈지 않는다.

정말 어두운 적막 속이라 자못 서글퍼진다.

나는 배 속에 대자리를 깔고 거기에 벌렁 누워 달을 보고, 동자는 뱃머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꿈과 취기가 한 데 섞여 몽롱한 기억처럼 소리는 시나브로 흩어지고 달빛도 시나브로 부옇게 깔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노래가 그치자 잠도 덩달아 깨었다.

아물아물한 몽롱함 속에서 나도 다시 몰래 코를 골았다.

동자 또한 갸우뚱 앉아서 하품을 하다간 두  사람은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배를 언덕에 대느라 툭툭 상앗대 찍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가슴이 후련했다.

한 점 티끌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나른해 초저녁이 되도록 늘어지게 낮잠을 즐겼다.

인간사를 모두 알랴마는 세상에 무얼 두고 '우수'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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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말 없는 그곳(남이 모르는 속마음)

듣고 보는 이 없어도

하느님이 그대를 살피니

게으름 피우지 말 것이며

사특한 생각을 하지 말지어다.

잔이 넘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 파도가 하늘까지 넘치리라.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밟고 서서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인가.

누구를 속일 것인가.

사람과 짐승의 분기점이자

길하고 흉함이 나뉘는 곳인

저 어두운 구석을

내 스승으로 삼으리라.

 

 

계곡 장유는 1587-1638년 사람으로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사람이다. 제자백가, 도가, 불가, 의술, 천문, 풍수리지 등에도 두루 통달했다. 평소 "중국에는 유학 뿐만 아니라 선학, 단학, 육상산도 배우는 등 학문이 다양한데, 우리나라는 편협하게 주자학만을 고집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장유는 주자를 반대하는 육왕학파로 지적받기도 했으며, 송시열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와 주자를 주로 하였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고도 하였다.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권세를 탐하지 않았고, 효종대왕의 장인이 된 후에도 항상 담박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여 존경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의 주화론을 설파하던 최명길과 죽마고우였고, 조익, 이시백과 친하였으며, 정두경은 어릴 저부터 장유를 따라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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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0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경에 나오는 "상재이실, 상불괴어옥루"가 생각난다.
"그대가 방에 있는 것을 보건대, 방구석에 대하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네"

물만두 2006-05-0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은 이지누의 집이야기에도 나오는 분이네요^^

혜덕화 2006-05-0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어도, 내 생각을 나만 알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 결국 내 삶의 심판자는 나이니까요._()_

달팽이 2006-05-0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런가요? 주파수가 맞았군요.
혜덕화님, 꾸준히 공부하시는 모습 속에 저를 둘러보게 됩니다.
방 모퉁이는 혜덕화님이기도 하고 또 내 스스로의 양심이기도 하고 또 내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파란여우 2006-05-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얘기구랴...달팽이님의 억수로 많은 사유 덕분에 호사를 누리는 건 접니다^^

달팽이 2006-05-0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후사가 두려워집니다 그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