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돌아왔다. 정부에서 아무리 모이지 말라고 해도 고속도로가 막히는 걸 보면 오래된 관습은 쉽게 변하지 않나 싶다. 누군가는 지구가 멸망해도 고향에 가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곳이 시댁일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친척 중에 올해 대학입시를 본 자식을 둔 부모가 있다. 세 군데 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모두 떨어졌다. 내가 다 황망할 정도니 엄마 아빠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오히려 당사자는 무덤덤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물론 속으로야 열불이 나겠지만 그 나이 때는 실감이 나지 않게 마련이다. 도리어 부모님과 친구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어른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직 만나진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한다. 자칫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지 않고 진심어린 충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아이가 처한 상황과 대입 정보를 알아보니 냉정하게 말해 암담하다. 그렇게 경쟁이 심하고 바늘구멍인줄 몰랐다. 참고로 지원전공이 예체능계다. 대학은 완전히 양극화되어 있으며 합격 후 졸업을 한다고 해도 취업도 여의치 않다. 완전히 프로로 가거나 교직을 이수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나는 전자를 택했다. 힘들었다. 그 모든 과정이. 다시 한 번 그 길을 걸으려고 한다면 단호하게 노를 외칠 것이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 그러나 과연 나는 편하게 쉬엄쉬엄 너하고 싶은 거나 하며 살라고, 대학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없다. 그런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그 곳에는 최선을 다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허망함이 없다. 별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산을 넘어야 한다. 오로지 피땀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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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이스 피싱에 당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비슷한 전화를 받아본 적은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막상 닥치면 어어하다 끝까지 듣게 된다. 이게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든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게 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도 이런 사기는 있었다. 문제는 집전화가 개인휴대폰으로 바뀌면서 속는 빈도가 늘어난다. 게다가 요즘 전화는 단순히 통화만 하는 게 아니라 입출금까지 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휴대전화의 기능을 단순화시키는 거다. 통화와 문자, 검색 앱 정도만 설치하고 돈이 거래되는 창구는 완전히 막는다. 예를 들어 돈을 보내야 할 경우도 무통장 입금을 이용하는 식이다. 물론 답답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이 되나? 그러나 폰 해킹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시라. 어는 것이 실보다 득이 크겠는가? 여하튼 이런 구닥다리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글을 쓴 건 아니다. 사람들은 왜 거짓인 줄 알면서 보이스 피싱에 당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독소 소설> 중 <유괴 전화 네트워크>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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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바리세인들이 물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세금을 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는 그들의 위선을 알고 말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신의 것은 신께 돌려드려라”_<마르코, 12:13-17>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장 크게 욕을 먹는 집단은 기독교단체들이다. 구체적으로 소규모 종교조직들이 온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대유행의 진원지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지만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참고로 나는 무신론자다. 종교의 자유는 그들에게는 목숨과 같으며 예배를 거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나 같은 일이 거듭되면서 나 또한 분노하게 되었다. 대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종교가 있을 수 있는가?


사도 바울도 이 문제로 고민했다. 유대인인 그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예수를 체포하러 가기까지 했다. 결국 예수를 만나고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그의 행적은 성경 로마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 신자는 그의 개종에 더 관심을 갖고 귀감으로 삼지만 사실 로마서의 핵심내용은 올바른 신자에 대한 것이다. 곧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섬길 수 있느냐이다. 그는 신도 잘 받들어야 하지만 국가의 권위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면 매우 이상해보이지만 이 주장은 당대의 기존 종교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사회와 담쌓고 교주를 따르면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려는 헛된 망상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국가의 권위가 신이 정해준 것만큼 합법적이어야 한다. 요컨대 타당한 이유라면 신께는 물론 국가에도 충성해야 한다. 신종 바이러스는 이 기준에 적확하다.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애정을 쌓지 못하면서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주류 혹은 이단을 불문하고 기독교 관련 기관에서 나온 확진자들은 이 원칙을 위배했다. 반성하고 거듭나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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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이어트 


넌 뭐가 되고 싶니? 라는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났다. 아무리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는 다 때가 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긴다면 바로 뉴스감이다. 예를 들어 90살 노인이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혹은 자동차 면허를 처음 딴다든지. 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상황에 맞춰 살아가고 그렇게 맡은 일을 천직처럼 여긴다.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낳은 헛소리다. 


그러나 설령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기 싫은 건 귀신같이 찾아내는 게 사람의 속성이다. 단지 게을러서가 아니다. 누구나 뭔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신호는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도 그렇다. 남들이 원하는 대로 무난히 성장한 편이지만 대학에 다닐 때부터 왠지 내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오래 세월이 흘렀다. 생계를 위해, 가족의 눈치로, 남의 눈 때문에, 사회적 처신을 위해 참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너무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자책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견디는데 너만 왜? 유독.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들었고, 그들 또한 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말자. 쉬웠다. 문제는 실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먼 길을 처음부터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는 막상 하고 싶은 일은 거의 없다. 순간순간 떠오를 뿐이다. 하기 싫은 건 여전히 많다. 다행이라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었고 계속 진행 중이다. 언젠가 마음의 다이어트가 완성될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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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죽음은 늘 일 순위를 차지한다. 오죽하면 스티븐 킹은 아예 소설 제목을 <시체The Body>로 지었겠는가? 열두 살 아이들이 발견한 사체는 평생 그들의 삶을 지배할 것 같았다.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많은 일들이 무뎌지게 마련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세월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남는 건 후회와 회환뿐이다. 그 결과 젊었을 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생각도 떠올린다. 죽고 나서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사실 죽으면 그만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해는 또다시 떠오르고 길은 막히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악플보다 무플이 두려운 것처럼. 그럼에도 망상에 젖는 이유는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매순간 잘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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