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고백 박완서 산문집 1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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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님의 산문집! <쑥스러운 고백>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출간된 박완서 산문집은 그의 첫 산문집을 포함한 초기 산문집 일곱 권이다. 1977년 출간된 첫 산문집을 시작으로 1990년까지 박완서 작가가 펴낸 것으로서, 초판 당시의 원본을 바탕으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재편집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당시와 한글 맞춤법이 많이 바뀌어 현재의 맞춤법에 따라 수정을 하였지만, 박완서 작가 특유의 입말을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다양한 표현들은 그대로 살렸다. 그러나 수록된 산문에서도 드러나거니와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바른 말 쓰기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작가인지라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을뿐더러 그 시간의 차이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수필가가 일곱 권의 산문집이 새롭게 독자들 앞에 설 수 있도록 출간 과정을 함께했다.

- 네이버 책소개 에서 -



문학동네에서 박완서 산문집이 7권의 책으로 나온건 정말 반갑고 환영한다.

그 첫번째 책 <쑥스러운 고백>

약 40여년전의 산문인데... 4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 하고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게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첫 산문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오랫동안 기억의 저편에서 숨어있던 추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국어시간 처음으로 접한 박완서님의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그때 느꼈던 그 감동은 아니지만,

소리내어 읽고 서로 어땠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등등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다.

그때는 유독 국어시간이 싫었는데.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기억에 남는건 아마도 '꼴찌'라는 것에 많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비록 꼴지일지라도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고,

그 고독스런 표정이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라.


박완서님의 첫 수필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였을까? 지금은 알길이 없겠지만

그의 글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것이 너무 좋다.


<쑥스러운 고백> 속에 담겨있는 많은 수필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감동이다.

시간이 지나도 삶을 이야기 하는 그의 글의 생명력, 생각보다 벌게도 가깝게도 느껴지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같기도 한.

사회 문제이면서도,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아! 그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아니 그보다 한세대 위 할아버지들의 시대는 이랬구나 하는 공감,

그 때와 많은 부분이 바뀌기는 했어도, 사람 살아가는 것은 그대로 이구나 하는 한탄?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풍족해 졌는데

삶은, 사람들은 더욱더 삭막해져가는 이상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 같은...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쁜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녀의 한 문장 한 문장들이 응원이 되고, 힘이 된다.

잘했다 격려하기도 하고, 가끔은 따끔하게 정신차리게 하기도 하고,

삶이란 무엇인지, 여인이란 또 무엇인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것,

당시의 여자와, 지금의 여자는, 사회문제들과, 인권까지 깊은 문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개인적인 문제 까지도,

그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그녀의 문장을

2015년에 만나 읽고 있다보면, 괜히 낭만적이기도 하고, 괜히 부끄럽기도 하네.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들이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내가 살아온 날 보다 많은 시간이 변했지만 변함없이 그대로 인것들도 있다는게 경이롭다.

재벌의 자제가 곱지 않은 일을 저지르면 우리는 모두가 재벌이 아니라는 걸로 마음을 놓고, 너무 극빈한 층에서 일어난 청소년 문제에 부딪히면, 내 자식은 그렇게 까지 없게 기르진 않았으니까 하고 남의 일 보듯 하는 안일한 자세로 우리는 살아왔다. 그렇다고 보통으로 사는데 대한 긍지나 보통으로 사는데 가치를 부여할 만한 양심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어서도 아니다. 실은 부자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그게 잘 안돼서 보통으로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보통으로 살자 에서-

​이 문장을 읽고서는 또 괜히 뜨끔!.;;

보통으로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거야.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보통으로, 그래도 '보통'이 있어야 한다.

보통이 없다면 누가 부자와 이야기 하고, 보통이 없다면 누가 가난한 자와 이야기 할까?

보통이 있어서 부자도, 가난한 자도 서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보통이 중요하고, 보통으로 사는 자부심이라 하고 싶다.

(소설도.. 산문도... 리뷰는 어렵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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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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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그가 생전에 읽고 쓴 수많은 서평들을 추려서 모은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긴~~ 이책!

그저 헤르만 헤세의 서평은 어떨까? 호기심에 펼쳐들었다.

 

생전 작가로써 인정을 받고 이름을 알렸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서평을 써왔다니 그의 책에 대한 열정이 존경스럽다.

 

헤르만 헤세가 남긴 많은 책들 가운데 73편의 에세이와 서평들.

그가 읽은 책은 어떤 책들이였으며 무엇을 남겼을까?

 

하루에 한편씩 읽어도 73일이나 걸리는 서평들!

내가 읽은 책도 읽고,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읽으려 한 책도 있고,

아주 처음 들어보는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책들이 골고루 들어 있다.

아니 헤세의 서평을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읽어온 많은 책들이 하나 하나 깊이 읽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읽는 다는 행위에 겉으로만 잠시 느꼈을 뿐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헤세와 같은 서평을 쓸 수는 없지만.

깊은 울림과 감동, 또는 실망에 대해서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쓸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한다.

 

 

​p.26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부패하고 잔인한 악덕으로 넘치는 미국은 이 고등학생의 처음 모습이나 말투와 마찬가지로, 그냥 표면만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역겨운 가면 뒤에는 온갖 더러움에 거의 물들지 않은 고귀한 인생이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다.어쩌면 이 불량기 있는 사랑스런 소년도 언젠가는 문학 작품을 쓰고, 또 언젠가는 패배하여 할리우드에 자신을 팔아 벌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온갖 고약한 사내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일 뿐이다. 심하게 방황하는 매우 위태로운 아이, 아직 싱싱하게 남아 빛나는 영혼의 힘들, 선과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과 올바름과 선의로 가득찬 아이다.

-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서평 중 -​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서 이런 문장을 남길 수 있다니.

수 많은 독서와 많은 생각, 사색, 시대를 읽는 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겠지...


이제서야 독서의 맛을 아주 조금은 알것 같다.


p.278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 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이 문장을 읽고나니...

그동안 내가 읽어 온 도스토옙스키는 무엇이였을까?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난.. 아직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읽을 준비가 안되었구나.

아직은 많은 부분들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깊은 슬픔에 잠기려 억지 노력은 하지 말자.

언젠간 살아가며 많은 부분들이 괴롭고 슬퍼지려 할때 그때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한번 읽어 보리라.


찾아 보니 아직 국내에는 헤세 전집이 없다.

여기 저기 흩어저 나온 많은 책들...

문득 헤세의 모든걸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차근 차근 찾아서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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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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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BS다큐 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4부 '반쪽을 위한 전략, 짝짓기'편을 기초로하고 1부 '소리없는 지배, 식물'편도 일부 반영하며 그동안 새로운 내용을 보강하여 <짝짓기>란 제목으로 탄생했다.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

 

'짝짓기'란 무엇일까? 라는 단순한 질문 부터.

'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진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물은 모두 '성'을 가지고 있을까?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하는 것이 정답일까?

생물들은 '번식'이 최고의 과제 일까?

왜? 끊임없이 변화할까?

어째서 짝짓기를 하고 자손을 남기려 하는 걸까?

인간에게 성은 무엇일까?

다른 생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짝짓기는 본능일까?

본능은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찾는게 답일까?

 

책을 접하는 순간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지적 호기심의 충족! 책에서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을까?

 

책은 4가지 파트로 나뉘어 세세하면서도 쉽게 설명하고 있어 많은 질문들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파트 1. 성의 기원과 진화'에서는 생명의 시작부터 성이 탄생하기 까지 그리고 진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줄이면 약 40억년전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했고 시간이 흘러 우연히 '성'이 나타났고 퍼졌다. 

'진화'란 세포분열, 번식의 과정에서 나타난 우연이다. '성'또한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에는 의미가 없다. '진화'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진화'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진화'에 목적이 없기때문에 '진화'의 산물인 '성' 또한 목적이 없다.

단지 '성'이 나타났고 이 우연함이 살아남아 퍼졌다.

 '성'이란 감수분열이며 동시에 유전자재조합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에는 '성'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들은 '번식'이 최고의 과제 일까?

왜 끊임없이 '번식'하는 걸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번식'한 유전자가 살아 남았을 뿐이다.

모든 생명에는 '수명'이 있다.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양분을 모으고 세포를 분열한 즉 '번식'한 개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생물 DNA에는 '번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번식'이 운명이 되어 버린 것같다.

 

후손을 남기지 못한 생물은 사라졌고, '짝짓기'는  살아남음의 증거가 됐다.

 

파트 2. 암컷과 수컷 부분에서는 눈물겨운 살아남음의 경쟁을 본다.

 

파트 1에서 우연하지만 '성'이 등장했고 그로 인해 지구상의 생물종이 다양해 졌다는 것을 알았다.

파트 2에서는 '암컷 과 수컷'이라는 더 깊은 호기심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동물과 식물 곤충까지 암컷과 수컷이 있는 모든 생물들의 눈물겨운 생존경쟁.

 

암과 수는 어떻게 구분할까?

생식세포의 크기로 구분한다. 생식세포가 큰 쪽은 암컷, 작은쪽은 수컷,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결정될까?

인간의 경우에는 염색체로 결정된다. Y염색체가 있으면 남성, Y염색체가 없으면 여성,

포유류의경우 거의 대부분이 인간처럼 Y염색체로 암컷과 수컷이 결정된다.

파충류의 경우에는 주변 온도에 따라 결정되고, 개미의 경우에는 유성생식이냐 무성생식이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어떻게 결정되든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은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두가지로 구분되게 됐을까? 정립되진 않았지만 짝짓기하는 양쪽의 긴 타협의 결과라는 가설과 세포내 소기관들의 충돌이라는 가설, 그리고 또하나는 효율성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런 가설들이 다른 가설을 배척하지 않는다. 결국 성이 둘로 나뉜것은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고, 결국에는 성을 둘로 나눈것이 생존률이 높았고, 시간이 흘러 퍼졌을 것이다.

 

'성'이 나뉘면서 수컷들은 목숨건 경쟁을 해야만 됐다.

생존을 위한 목숨건 투쟁! 경쟁에서 지만 사라진다. 반대로 이기면 살아남는다.

 

암컷은 선택을 하고 수컷은 경쟁을 한다.

짝짓기를 위한 경쟁은 결국 생존을 위한 경쟁이고 종을 보존하기 위한 경쟁이다.

 

어떻게 암과 수로 나뉘고 경쟁을 하게 됐을까?

이역시 결국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목적없는 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다세포 생물로 진화를 했고 감수분열과 유전자재조합을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개체가 살아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양한 종들이 등장했고, 유전자재조합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또 나눠졌다.

서로 유전자재조합을 할 수 있는 짝을 찾은 생물이 살아 남았고 역시 퍼져갔다.

 

시간이 흘러 점점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났고 먹이경쟁이 심해졌다.

번식을 위해서는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다.

 

결국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생물이 생겼고 또 그 생물을 먹이로하는 생물들이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우연한 진화'의 결과이다.

 

살아남음, '번식'이라는 생명 최대의 과제를 위해 '암컷과 수컷'은 서로 경쟁을 한다.

경쟁의 대상은 같은 종의 암컷과 수컷이다. 경쟁에서 이긴쪽은 짝짓기를 하고 후손을 남긴다.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은 후손을...

 

파트 3. 성의 무지개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의 다양성과, 종의 다양성,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성으로 써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성'은 정말 다양하다. 생식의 방법에 따라서도 다양성이 나뉜다. 종족의 생활 모습, 생활 환경에 따라서도 다양해 진다. 땅속에서 사는 종, 심해에서 살아가는 종, 하늘에서, 섬에서, 나무에서 주변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살아남은 다양한 종만큼이나 성역시 다양하다.

 

'성'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관계'의 다양성 이기도 하다.

지구상에는 정말 여러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생물들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생활 모습도 다양하다.

현대 인간은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몇몇 지역에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곳도 있다.

 

시야를 넓혀 지구를 바라보면 어떨까?

지구상에 많은 생물들중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은 드물다. 인간과 같은 일부일처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처다부 처럼 종에 따라  짝짓기를 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암컷과 수컷. 서로가 서로만 평생을 책임지는 종도 있고, 암컷 하나다 여러 수컷을 거느린 경우 반대로 수컷하나가 암컷 여럿을 거느린 경우, 또는 암컷 수컷 모두가 가리지 않고 짝짓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암컷 혼자 생식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은 수시로 성을 바꾸기도 한다.

 

자연에서 바라보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인간의 경우가 예외에 속한다.

 

다양한 형태의 짝짓기 방법이 있는데 왜 인간은 일부일처제가 되었을까?

 

파트 4. 인간의 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인간이 가지는 진화적 특징, 특히 번식과 관련된 여러 특징들은 인류의 선조들이 몇 백만년의 시간을 통해 진화시켜온 것들이다.

 

둘째. 인간이 소위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고 발전시켜온 기간은 고작 1만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회적 문명적 변화가 진화적 결론으로 드러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셋째.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적응 과제는 여타 동물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세가지를 명심하고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가지게 된것을 이해하기 쉽다.

다양한 요인적 특성들로 인해 일부일처제가 됐지만 결국 일부일처제는 과거 수백만년전 인류의 선조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특성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역사는 대략 300만년이라고 한다. 그중 299만년동안 축적되어온 유전적 변화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게끔 진화됐다. 그리고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생활을 하고 문명과 사회를 발전시켜온 역사는 겨우 1만년에 불과하다. 필요로 인해 인류의 가족형태는 다양하게 변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를 택한것은 선조들부터 누적되어온 진화의 결과!! 문명의 영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다.

 

 

최근 뉴스에서 성기능촉진제, 일명 여성용 비아그라문제가 크게 다뤄 졌다.

'성'은 목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번식'이라는 목적과 '성'이 부합되어 '성'은 '번식'이라는 목적이 생겼다.

'오르가즘'이란것 역시 '성'과 '번식'으로 인해 생겨났다. 수컷에게 열심히 '번식'을 하도록 하는 보상 같은 것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흘러 현대에 와서는 관계, 교감의 영역으로 확장 되었다.

 

목적이 없던 '성'에서 '번식'이란 목적이 생겼고, 이젠 그 '목적'이 '오르가즘'으로 이동 하는 것 같다.

 

'번식'에 성공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한 '짝짓기'가 이젠 '오르가즘'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가기에 발기부전치료와 여성흥분제 같은 약품들이 등장했고 시장이 커진것은 아닐까?

 

'성'에는 목적이 없다. '오르가즘'또한 목적이 없다. 우연의 산물이며 결과일 뿐이다.

'삶'역시 목적이 없다. 태어나면서 부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저 '짝짓기'의 결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과'다.

'목적'을 만드는 것은 '결과'를 보고 유추하는 인간들의 잣대다.

 

보편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인간의 시선일 뿐이다.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

경쟁력을 가졌으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다.

 

지구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 했고 그에 맞춰 살아남는 종들도 끊임없이 변했을 뿐이다.

우연한 돌연변이가 살아남아 개체를 늘려 보편적인 것이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진화'라 부를 뿐이다.

 

양분을 모와 둘로 나눠지는 것. 목적 없는 이 행위가 최초의 생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DNA의 결과라면

살아가는 것의 이유는 '짝짓기'를 통한 새로운 DNA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성체가 될때 까지 긴~ 시간을 양분을 섭취하며 지내다 때가 되어 후손을 남긴다. 대부분의 물고기와 곤충들에게서 볼수 있는 현상을 동물로 옮겨본다면 어떨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체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들이 필요했다.

한번에 늘닐수있는 개체를 한정짓는 것. 그리고 시간을 더 쓰게 되는 것. 그렇게 여러번 반복하며 개체를 늘려간다. DNA속의 명령에 의해서.

 

인간으로 보면 어떨까?

과거에 비한다면 수명을 늘었고 일생동안 출산하는 수도 줄었다. 개체를 늘리기 위함이라면 불리한 선택일 텐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쩌면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 이젠 개체를 늘리지 않아도 될거라는 DNA의 예견일까?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간의 수명이 더욱 길어지고 어쩌면 영원히 살아가는 개체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더이상 살아남기 위해 '번식'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죽기전에 단 한번만 후손을 남기지는 않을까?  마치 원시 원핵생물이 둘로 분열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책을 다 읽고 원초적인 의문이 하나 생겼다.

최초에 DNA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해서 원시단세포생명이 생겨났을까? 하는.

생명의 기원. 그 시작은 우주의 시작 만큼이나 비밀스럽다. 언젠가는 이런 의문또한 해소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저자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 한다.

 

"어떤 한 가지가 성의 유일한 목적일 필요도, 절대 요소일 수도 없다. 그 선택은 1만년의 문명을 거친, 그리고 앞으로도 긴 시간을 진화론적인 삶과 더불어 문화적 삶을 살아나갈 인류 구성원 각자가 선택해나갈 일이다. 다만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만 않는 한에 있어서 모든 것은 성에 대한 인류의 이해와 활용을 더 넓고 깊게 해줄 것이다."-p.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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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망스 -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이동섭의 로망스시리즈
이동섭 글.사진 / 앨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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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이별여행을 떠난 이야기가 있다.

헤어짐에 그녀를 잊기 위해 떠난 남자의 파리여행기.

 

윤진서의 <파리 빌라>와는 다르게 여기선 주인공이 확실하다.

글쓴이 '이동섭'자신의 이야기!

 

잊기위함의 여행보다는 이별의 끝을 위한 여행...

 

남자의 이야기 이면서... <파리 빌라>만큼의 몰입은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연달아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미 마음속 상처가 치유됐기에 덤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리고 '이별'...

 

사랑으로 행복했고

이별로 성장했다는 남자의 고백...

 

남자의 이별과 여자의 이별...

 

이동섭의 글이 담담한건 아마도 남자의 이야기 이기에...

궁굼함도... 공감도 없었다...

 

새벽에 푹빠졌던 생각들은 이미 정리가 되었고.

'사랑'이란 역시 다시한번 그 감정을 느끼기 전까지는

새로움이란 없으며... '사랑'또한 관계속에 이어가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럼에도 <파리 빌라>는 '그녀'의 이야기 였기에

잠시나마 궁굼했고, 잠깐이나마 기억들을 돌아보며 추억으로 남겼지만...

 

'나'의 이별은 '이동섭'의 이별과는 다르기에 그의 문장들이 담담하게 지나 갔다.

 

파리 로망스는... '이동섭'자신을 위한 로망스...

스스로 이별했음을 확인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

아마도 그가 사랑 했던 그녀만이 이 글을 읽고선 조금이나마 생각했을 것 같다.

 

이별이란 함께 하지 못할 미래의 상실이란말이 남는다...

 

만남이란... 함께할 미래의 획득이려나?.ㅎㅎㅎ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지...

시간이 더 지나다 보면 죽는 순간까지 함께할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사랑'을 알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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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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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진서.

내가 아는 윤진서의 직업은 배우이다.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인터넷 뉴스로 종종 접할뿐 관심가지고 지켜보던 그런 배우는 아니다.

 

연예인이 또 책을 썼네.. 정도로 생각하던 윤진서의 '파리빌라'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서가를 정리하다가 보게된 한문장.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인생의 축제 같은 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 한문장에 끌려 읽게 됐다.

 

연인과의 이별... 그 충격에서 도망치듯 떠난 여행...

별것 아닌듯 했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파리 빌라>에 등장하는 두 여자, 주인공과 친구의 이야기.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아니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윤진서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 살면서 한번 쯤은.. 어쩌면 여러번 일수도 있는 일... 깊히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이란 감정에 사로 잡혀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무작정의 도망인지 치유의 여행인지... 떠나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것 같다.

당장의 아픔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말 그대로 '무작정'의 여행이였으니까.

뉴욕에서 파리로, 인도와 남프랑스 마르세유, 아비뇽으로, 아테네에 머물기도 하며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 남자'에... '자신'에... '사랑'이란 상념에 젖는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서 '자신'을 찾아 새로운 활력은 얻는다.

 

'무작정'에서 '치유'여행이 된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빰을 적시는 눈물을 느끼게 됐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그 시간...

오랜 기억속의 그 시간들이 떠오르며 <파리 빌라>속의 그녀와는 같으면서 다른 시간을 흘려보낸 '사랑'때문에...

치유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상처가 그녀의 이야기에 아문다...

 

늦은 새벽시간에 읽은 <파리 빌라>  시간이란 녀석에 흐릿해진 기억이

다시금 뚜렸해지면서 말라버린 것 같던 눈물이 흐르고 나서야 게운함을 느꼈다.

 

<파리 빌라>속의 그녀 처럼...

나에게 찾아온 인생의 축제같은 시간을 이제서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털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을...

 

한바탕 쏟고 나면 게운한 것을...

알게 모르게 참고 덮었던 것들...'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강함이라는 것이 정답처럼 살아 왔던 지난 날들을 털고 이제서야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의 만남과 '여자'의 만남

'남자'의 이별과 '여자'의 이별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

 

같으면서도 다름을... 또 다르면서도 같음을...

 

'나'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몰랐었다.

 

새벽 2시.. 라는 묘한 시간의 마력때문일 수도...

어쩌면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 '고독'과 '사색'이 필요하다고 말해줄 그 무엇을

윤진서의 소설 <파리 빌라>로 인해서 채워졌다...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가 있다면...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둔 '사랑'이 있다면...

<파리 빌라>속의 그녀의 여행을 따라갔다 오면 치유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이란 것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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