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스펙 - KBS 특집 다큐 <NCS 인재혁명> 국가직무능력표준을 말하다
정화영 지음 / 카멜북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접했다. 제로스펙!

2014년 KBS 특선 다큐 NCS인재혁명을 책으로 다시 정리 했다.

 

책은 NCS, 즉 국가직무능력표준에 대해서 소개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답이 된 것이 바로 NCS 국가직무능력표준!

 

취준생 생활을 하다보니 책에 소개된 학생들의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 같다.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다.

초,중,고 12년을 오로지 수능이라는 시험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오면서

대학이 꿈이고 목표가 된 우리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모든게 허무해지는 상황.

우리는 왜 대학에 왔을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건 무엇일까?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지성의 요람? 지금 대학이 그 기능을 하고 있을까?

연구는 커녕, 대학생활 역시 그전의 생활의 반복!

시험이 있고 무조건적인 암기위주!

 

캠퍼스의 낭만, 자유로운 토론의 장!

사고의 확장과 다양한 경험을 쌓는 기회!

그 모든건 단 3일이면 실망으로 변한다.

 

여전히 취업을 위해 다시 공부해야만 하며,

스펙이라는 이력서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하는 공부라고는 자격증과 영어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상향평준화라 할까? 남들과의 특별함을 찾아보기 힘든 다 비슷비슷하게 맞춰지게 된 세상.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는 우리 교육에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정형화된 국영수 암기를 잘하고 시험문제를 잘 맞추는 사람들이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대학을 가고

역시나 암기를 잘하는 그들이 사회에서 고위직업군을 차지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된 시스템일 뿐이다.

 

기업에서는 더이상 원하는 인재를 찾을 수가 없고

대한민국 청년들 역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 취업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소중한 시간을 소비해 가며 하루 하루 버티고 있을 뿐이다.

 

20살의 대학생

낭만의 단어가, 꿈과 희망, 열정, 도전 등 무수히 많은 긍정의 단어들이

어느세 절망과 부정의 단어 들로 채워져 버렸다.

 

20살의 독립 가능 하긴 할까?

형편과 여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in의 기획기사

"최저임금으로 생활하기"를 본다면 그 현실이 더욱 참담해 질 뿐이다.

최저 시급은 최소한의 급여가 아니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꼭 작성해야 되는 근로계약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법적으로 보장된 주 15시간이상 계속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주휴수당역시

없는게 당연하며, 받을수 있다면 정말 운이 좋은 쪽이 된다.

 

법정 최저임금 주휴수당 포함 하루 8시간을 일했을 때 한달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

1,116,000원!

최저임금법 1장 1조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한다는 것,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인데.

과연 생활이 될까? 친구들을 만나고 한번쯤은 영화도 보고, 책도 한두권 사서 읽고,

꾸미기 위해서 옷과 신발을 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휴대전화 요금을 내고, 생활에 들어가는 전기와 수도요금 가스요금, 가끔의 외식! 한달에 한번이 아니더라고 그걸 위한 조금의 흑자!

친구의 결혼식, 아니 작은 생일파티라도 참여하려 한다면 거기에 필요한 경비.

 

자! 이 생활을 위해서 하루 8시간 꼬박 힘든일을 하고, 생활 공간이 집으로 돌아온다.

보통은 원룸이나 고시원, 고시원에 비하면 원룸생활은 천국이겠지만. 보증금이 없다면 그 역시 꿈이다.

그렇다고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조금의 보증금이라도 모을 수 있을까? 알수 없는 일이다.

 

24시간중 기본적으로 취해야 하는 수면시간 6시간 그리고 일하는 시간 8시간을 빼고 나면 남는 시간을 10시간

학교나 일터 또는 약속 만남의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 최소 2시간 이 시간동안 씻고 밥먹고 해야 8시간이 남는다.

학교를 다닌다면 그 8시간의 생활이 모두 수업시간이되 겠지... 몸은 힘든데.. 이런 시간이 나올 수 있을까?

하루 꼬박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지쳐 쓰러지기 일수!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을 해야되는 시간들 속에서 보충 수업을 하고,

학과 수업을 따라가고 수업 준비를 하고,

 

이런 청년들에게 열심히 살라는 말이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연구에서는 이미 벌어져 버린 학벌의 빈부격차가 심각하다고 한다.

아니 그 격차 자체보다는 학벌에서 조차 소위 말하는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의 인식중 대다수가 자신들은 열심히 해서 학벌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비약하자면 게으름때문에 자신들과 비교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인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니...

출발 선부터 다른게 세상이라지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이 구조를 만들고 그동안 유지하며 변화하기를 꺼려하는 그 인식이 아닐까?

 

제로스펙 제작진 노트 말미에 이런 글이 있다.

"아이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어른들의 눈에 그들은 고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꿈을 꾸는 청년일까요. 우리가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그 답이 미래 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능력 중심의 세상이 되길, 꿈꾸는 자의 편에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상상과 다르지 않기를, 사회의 어떤 편견 속에서 좌절하는 순간이 없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대신합니다."

 

현재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서 능력위주의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

그게 바로 NCS이며, 그것은 인재혁명일 것이라는 희망! 미래라는 이름의 청년들이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

국가직무능력표준이 필요한 이유이며, 현 세대문제의 답이며, 미래라는 새로운 지표라고 말한다.

 

저자역시 우리 모두가 하는 고민에서 답을 찾아 보고자 했다.

 

"그들이 넘어야 하는 장벽은 '취업의 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구조의 문'이며 '스펙의 문'이라는 사실을." - 프롤로그중에서.

 

저자가 한 고민 역시 같다.

 

"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 12년의 교육을 끝냈지만 스무 살의 청년은 아직도 제자리에 있다. 여전히 꿈을 찾고 있고 진로를 고민하며 취업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공부하고 있고 또 공부해 왔지만 과연 꿈을 위한 것이었나, 묻는다면 답은 어려워 진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책을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되고 도전이 되길 바라지만 불안한 오늘을 서성이는 청춘들이 희망를 버.리.지.않.게.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제로스펙>에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 많은 인터뷰와 많은 자료 조사를 했고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21살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들의 문제를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같은 환경은 아니지만 역시 사람살아가는 세상

유럽의 예를 들어 우리 스스로의 답을 찾아 본다.

 

"스물한 살의 당신은 어떻게 찬란했고 또 어떻게 좌절했나요,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낼 것이다. 스물한 살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시절의 슬픔과 고통은 아름다운 추억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스물한 살의 찬란하지만 비통한 하루는 위로받을 이유를 갖느다. 하지만 지금 그 나이를 살아가는 그녀와 그들에게 슬프고도 절망적인 고통이 찾아와 있다면, 그래서 아루런 방어기제를 갖지 못한어린 청춘이 슬픔 그 자체에 갇혀버린다면, 너무 아플 것이다."

 

스물한 살의 나! 불과 7년 전의 이야기! 하지만 아직도 진행중인 이야기다.

스물한 살의 나는... 역시나 고민이 많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 어떻게든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은 암울한 현실을 볼 수 있었던 나이, 계획없이 입대를 했고 또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며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많이 생각 했던 나이. 다 같이 힘들었던 그때는 이젠 더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고, 그때를 뒤로 미뤄 학업에 열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 환경 속에서도 답을 찾고 미래를 준비 했지만,

그 험난함과 치열함 속에서 하루 하루 버티는것 하나 만으로도 다행이였던 나에겐 그 역시 사치였을 뿐이다.

스물한 살의 나. 아무런 경험도 무엇을 하고 싶은 목표도 없이 힘든 나날들 속에서 버티고자 '책'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빠졌을 뿐이다.

 

스물한 살에서 벗어나 세상에 돌아오니 스물 세살이 되어 있었고, 책속의 세상은 환상뿐이였으며

난 여전히 아무런 능력없는 지잡대의 한 학생일 뿐이였다.

 

"인재가 되고 싶었고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른들이 알려준 길을 따라 공부해 왔을 뿐이지만 사회는 왜 이들을 쓰지 않는 것일까. 더 큰 불행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우리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성장햇는지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린 청춘들에게 이제라도 '진짜 필요한 인재'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아주 잠시의 서울생활! 나에겐 처음 하는 유학생활과 다를바 없었던 생활들이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했지만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고 언제나 피곤했으며,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하고 싶어 일은 벌렸지만

무엇하나 재대로 마루리 지은 것은 없던 나이. 그 시간이 남겨준 것은 몇 안되는 '사람'과 무엇이라도 도전은 해봤다는 경험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전공분야 안에서 학문적 탐구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갖길 바라지만 현실 속 대학은 취업사관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은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등등 대한민국 이십대들의 이력서는 이미 포화상태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대학 입학정원이 늘어나고, 대학의 벽이 낮아지고, 여기 저기 대학들이 많이 설립되면서 시작한 변화들...

그땐 이렇게 될줄 정말 예상 하지 못했을까? 대학의 경쟁력을 오로지 취업률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

아니 대학과 취업률은 다르게 봐야 하는데 평가의 지표에 들어가 있다는 것 부터 문제 아닐까,,,

 

"우리 시대의 20대들은 답을 찾고 있다. 내가 진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이 '단순한 직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어 이위기의 순간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주변의 시선에 쫓겨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철저한 고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20대 뿐만이 아닐것이다. 10대 그들 역시도 바로 앞에 보이는 건 우선 대학 이라는 이름뿐.

1만여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아마 모르고 있겠지. 겨우 100개 남짓의 대표적인 직업들 속에서 그것이 정해진 길이 전부인 것 마냥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 그건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

 

"취업이 아닌 진로의 고민

아직 사회진출을 하지 못해 스스로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렸음에도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는 이유, 취업에 성공해 직업을 갖고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스스로 박차고 그곳을 뛰쳐나오는 이유, 그것은 진로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일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취업! 그리고 진로!

비슷하지만 정말 다른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이란 단어 역시도.

우리는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들의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살면서 행복하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이건 충족과 불충족의 문제가 아닐 거다. 방향의 문제!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무작정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라 왔지만 더이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안보이는 것,

힘들게 힘들게 걸어 왔는데 그 길이 끊어져 있다면... 우린 이젠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열심히 공부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노는건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여행하는 것. 취미생활? 그 모든 것을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말로 공부라는 것만 정말 열심히 해온 스무살.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진리처럼 따르고 있는 열살의 그들...

<행복하고 싶다>라는 그 마음이 사치 인 걸까...

 

"대학생들이 학교에 바라는 점은 학문적 탐구와 더불어 전공분야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진로를 발견하는 것, 단순히 취업이란 목적을 위한 시간이 아닌 스스로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경험, 때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도전해 보는 것, 그렇게 뜨거운 시간을 보내길 간절히 원한다고 했다."

 

간절히 발하는 것은 그렇게 특별한게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스스로일 수 있게 되는 그 시간들!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생각하고 "나"를 고민해 볼 수 있는 바로 그 시간들이다.

 

"인간관계가 행복을 결정짓는다는 사회의 통념은 사실일까. 그룹으로 함께 공부하고 어울려 취업 준비를 하려는 이들은 '고독한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와 분리되어 있다. 사회적연대와 소속감을 갖기 위해 취업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혼자 남겨졌다고 느껴지는 고독한 하루가 견딜 수 없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직장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에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루저 즉, 실패자가 되는 것일까."

 

학생때는 공부를 한다.

시험점수는 무조건 좋아야 하며,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간다.

대학생활 중에는 해외 연수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며 즐겁게 지낸다. 그리고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집과 차를 사고 결혼을 한다.

이 길은 누가 정한 걸까? 이 길을 걸을 수 없는 수많은 스무살 들은 모두 실패자 일까.

 

"한국하고 덴마트의 교육체계는 매우 다릅니다.

덴마트는 하고 싶어 하는 일로 바로 쫓아가지 않습니다.

학업을 시자가는 순간부터 끝날 때 까지 그 사이에는 아주 많은 자기개발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양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작업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아야 하죠.

각각의 학생들이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은 모두 다르고 학생들은 타인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협력을 배웁니다."

 

한국의 학생들도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배우는 것은 협력보다는 경쟁이다.

바로 옆의 친구도 미래에는 경쟁자일 뿐.. 함께 할 동료로 배우지는 않는다.

한국의 학생들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이 모두 같습니다.  아니 한국의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 모두 같습니다. 학생들은... 그저 따를 뿐이죠.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으로 돈을 벌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었다. 답을 얻으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는 쉽게 결정된다."

 

학교를 선택했던 기준은.. 따로 없었다.

그져 막연함 속에서 대학은 가야지... 골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점수에 따라서 갈 수 있는 대학을 알아봐야지.

그리고 학과는.. 넌 이런게 잘 맞을 것 같아... 그렇게 내 고민은 없이 이런 저런 말들에 휩쓸려 결정됐다.

그렇게 지방의 대학에 입학을 했고... 전공을 선택 했다. 아니 전공 선택은 몇가지 안되는 선택의 폭에서 나름의 고민이 있던 선택이였다. 그렇게 '사회복지사'의 길을 배웠고.. 지금은...'취업 준비생' 이다.

 

"덴마크 학교는 초등학교 교육 9년간 단 한 번도 성적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시험점수로 1,2등 줄을 세우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ㄸㅅ이다. '줄 세우기'식 평가가 옳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노래를 잘 부르거나 뜀박질을 잘 하는 것과 같은 특기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인재 평가의 기준은 아니라는 그들만의 이유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하나 둘 실험적으로 시행중이다.

교육과정으로 인정되는지 그 뒤 진로를 결정하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소수지만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 실천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겠지.

지금은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보면 특별함 이지만, 빠른 시간에 모두가 선택하는 당연함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잘하는가를 탐구하고 알아내는 것이 중요할 뿐 공부를 잘해야 좋은 것이라는 잣대는 없다. 학업 능력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고 서로를 인정하는 개성이 남게 된다. 그런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은 서로를 비교하거나 저울질하지 않는다."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경험이 차이겠지 잘하는게 뭘까? 아직도 모른다.

지금 당장을 생각해 보면 단하나 잘하는 것은 '독서' 꾸준히 읽기도 하지만 나름의 독서의 법칙을 가지고 읽는다.

직업과연계는 ... 글세 잘 모르겟다...

 

"진로 결정과 직업 선택은 서로 다른 말인데, 우리는 이것을 통틀어 '꿈'이라고 부른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말에서 단답형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인해 더욱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사회 어떤 분야에서 돈을 벌고 싶나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나의 길을 찾아서 한 발 걸어갈 때 결코 목적지가 대학이어서는 안 된다. 이 이론에 동의 한다면 당신은 이제 NCS에 대해 받아 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NCS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이야기. 정말 많은 내용들을 남기고 싶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답을 찾고 싶었다. 아니 세로운 세상을 만나고 꿈꾸고 상상해 보고 싶었다.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실현 가능한 현실의 이야기를...

 

" '이것이 나와 맞는 일인가'라는 질문은 성적순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청년 누구나 도전해 경험하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그 기회를 박탈당한체 공부만이 진리 처럼 살아 왔다.

그건 대학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렇게 25살쯤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20년이 넘게 배워오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들이 펼쳐저 있고, 그동안 배운 모든 것들은 헛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하나 없이 정해진 길대로만 가라해서 온 길들... 수많은 다양한 길들을 버려두고 단 하나의 길만 믿고 걸어왔으니 그 길의 끝에서서 무한히 갈라진 길을 바라본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잘하는 것이 없어서, 혹은 재능이 무엇인지 몰라 공부만 했다는 슬픈 이야기는 이제라도 '존재의 의미'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것으로 2막을 알렸다."

 

그래서 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와서 책에 푹 빠져 사는 것은.

많은 고전소설들과 현대 소설들, 다양한 인문학 서적, 역사서적들을 가리지 않고 시간되는데로 읽고 후기를 남긴다. 그와중에 내 생각을 많이 남기려 노력을 해본다. 아직 삶에 대한 어떤 기준도 명확하지 않지만. 스스로 고민하는 힘을 키우고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조금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위로 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말이었을까.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2004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어 자료집에 등록되어 있는 말, 이것의 정체는 스펙이다."

 

아! 2004년에 신어 자료집에 등록된 말이라니. 그렇다면 그 전부터 시작했겠지.

스펙으로 시작해서 스펙으로 끝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스펙이란 이름으로 이리 저리 흔들려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을...

 

"한국 학생들은 이력서에 무척 심혈을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력서 자체가 목표인 거죠. 하지만 우리는 이력서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채용합니다."

 

이력서 자체가 목표인 삶이였을까? 우린 그저 이런 이력서가 있어야만 채용된다고 알고 있어서

채용되기 위해 만들고 있는 이력서 인데. 이력서에 심혈을 기울여도 채용이 보장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텅텅빈 이력서로는 채용 될 수가 있을까... 이력서가 목표는 아니다.

 

"사회구조가 교육 시스템을 만드니 구조가 변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사회구조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니 사람이 지혜롭게 변해야 하겠습니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지만"

 

닭이냐 달걀이냐! 이 경우에는 동시에 변화가 불가능 할까.

아니 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화를 주면서 버틸수 있는 쪽이 먼저 변하는 것은 어떨까.

세상에는 변하고 싶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 정해진 틀속에 겨우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소수이면서도 큰 힘이 있는 그들이 먼저 나서서 변화를 주도한다면 나름의 포용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상상 역시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쓸데 없는 공상으로 치부되겠지.

 

"합리는 머리의 이치와 가슴의 이치가 합쳐져서 이성과 감성, 그리고 논리와 심리가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빚어내는 융합 상태를 뜻합니다. 이러한 자기조율 능력이 평가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마음 쓰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은 죽은 듯이 꼼짝 말고 앉아서 공부만 하라고 강요받죠. 다시 말해 머리는 쌩쌩 돌아가는데, 가슴은 메말라 있다는 거죠. 이제 학생들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극대화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생산적으로 표출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머리의 이치와 가슴의 이치의 합치! 그래서 합리!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걸까.

감정을 쓰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은 자연속에서 함께 뛰놀때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에서...

 

"우리 사회에 어른이 필요해요. 나이 많은 어르신을 통칭하는 발이 아니라 '어른십'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보여주는 최고의 리더십이죠."

 

아! 어른십이라는 말!! 여기에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과연 어른은 언제부터일까? 민증이 나오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수 있는 합법적인 나이가 되면?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아니 나이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전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란 정확히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 어른다워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렇게 어른이라는 것에 기대하느 것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다움. 경험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여유로우며, 포용력이 있는 그러면서 누군가의 길이 되어 줄 수 있고, 언제나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어주는 것. 생각해 보면... 어른십, 어른다움 이란, 지금의 교황님이나 이젠 볼 수 없는 법정스님, 김수환추기경님 같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그 분들을 말하는 것 같다.

 

"학교와 기업에, 사회와 정부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게 될 제도 NCS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학력 중심, 스펙 중심-문제들을 해결하게 도와준다면, 더 나아가 차별 없는 세상으로의 한 걸음이 된다면 어서 빨리 현실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한시라도 빨라 오기를 바란다.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펼쳐주는 사회"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수업시간에 많이 고민했던 사회이다. 그때가 벌써 4~5년전!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닌데 아직까지 고민에만 머물러 있다면... 너무 한심한 사회 겠지.

그렇게 고민하고 답을 찾고 연구하다 나온것이 바로 이것 NCS다. 국가직무능력표준! 이젠 재능을 표준으로 다양하게 비교할 수 있게 된 길이 열린것이다. 이 시스템이 자리잡는다면 최저임금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겠지.

서로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사회를 꿈꾼다. 학벌 위주의 사회가 아니라 모두 각각의 재능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무한하고 한번 실수 해서 다른 길로 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의 진정성은 이런 사회겠지. 그래도 자본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노동자가 바라는 것은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라는 것인데 그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생긴다면 실천 할 수 있겠지.

 

"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잘못된 진로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겨하는지 감추고 기다란 줄 안으로 들어와 함께 걷던 이들, 좋은 대학을 인생의 목표로 삼던 사람들"

 

여기엔 나역시 포함된다. 또래. 아니 우리 세대 모두가 그랬겠지. 절대적 다수가...

이젠 세로운 사회를 세로운 모습들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어쩌다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 되었고 응시자 수가 많아 져 경쟁률이 끝 없이 올라갔을까.

최고의 직업이란 기준은 별거 없다. 어떤 직업이 되든 안전하게 위험 없이 매달 일정금액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그러면서도 개인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직업. 그게 바로 공무원일 뿐이다.

 

"국가가 인정해 주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되거든요.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마다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능력, 그게 곧 NCS(국가직무능력표준)죠."

 

"우리 사회가 능력중심사회가 되려면 채용공고 자체도 더 이상 학력을 기준 삼기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능력들을 갖춰야 한다. 또는 무엇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를 제시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야 될 것입니다."

 

"NCS (국가직무능력표준)는 직업인이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로 하는 능력단위에 대한 기준입니다."

 

"우리 사회가 능력중심사회로 나아가야 국민 개개인으로서는 행복한 삶을, 국가적으로는 선진국으로 향하는 전환점이 될 텐데 그런 의미에서 NCS가 능력중심사회 구현의 출발점이다."

 

여러 쪽에 걸쳐 NCS의 능력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러번 말해도 다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능력! 학벌이 아니라 능력을 보자고 하는 것!

그것이  NCS의 탄생이고 세로운 사회모습의 기준이며, 출발이다.

 

"영국에서는 학교의 종류 또한 다양화시키고 교육과정 역시 세분화해 학생 개개인의 능력, 필요, 환경에 맞춰 적절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이 오늘을 사는 '현재'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청년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위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위한 교육! 우리도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그 시점은 많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변화하지 않는 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어떻게 변해 갈지 아무도 모른다.

참고 참고 또 참고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버리기 전에스스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런 모습에 동참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꾀 괜찮을 것 같다.

 

" 제가 나중에 해외 나가서도 '내가 이런 것을 정공한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잖아요."

 

NCS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것이다. 국가가 인증한 능력! 그리고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표준이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외국과의 교류가 가능해 지며 해외로 직업을 구할 때 비용과 시간을 절감 할 수 있고 중복된 교육을 피할 수 있고 또 모든것이 잘 맞아 들어간다면 일하는 것이 즐거워 생산성과 창의성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다.

 

"꿈꾸던 직업을 얻고 원하던 장소로 출근을 시작하지만 기쁨은 반갑게 찾아왔다가 순간의 슬픔을 주기도 한다. 완전한 아도는 찰나일 수 있다. 빛과 함께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내일 아침이면 빛이 내 방을 가득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으로 찾아오는 빛이 되어도 한번쯤 그 빛을 보고 싶다.

어둠이 함께 하는 빛이라도 우리는 또 다른 빛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둠이 생기면 환하게 밝혀주는 빛을 우리는 우리에게 비춰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잣대가 어떻고, 편견이 그래서라는 핑계보다는 그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보란 듯이 보여주는 당신이길 응원한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며 세상에 당당하게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하철에서 고개를 내리고 스마트폰의 세상속에 빠져 표정을 잃어 버린 모습들이 아니라 서로가 얼굴을 마주 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잘하는 능려을 펼쳐내면서 얼굴 가득 웃음 꽃이 피어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런 기준을 만들고 표준이 될 수 있다는 NCS! 지금껏 우리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번의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노력과 연구를 통해서 정착이 된다면 서로가 상생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보고 싶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취업 준비를 하는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이제 서문쓰기에 불과하므로, 이제라도 꿈을 향해 전진하는 본격적인 '당신의 직업과 일에 관한 자서전'이 쓰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주 오랫동안 당신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독자가 되고 싶다."

 

취업준비생으로 있는 지금 이 마지막 문장을 어려번 읽었다.

내 이야기는 아직 서문도 쓰지 못했다. NCS 인재혁명 다큐를 찾아 보고 싶었지만 공식적인 방법으로 찾아 볼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고용노동부에서 국가직무능력표준개발현황을 볼 수 있었다.

2014년 분류 체계를 정비해서 557개 NCS가 개발 보완 완료 되었다.

이력서에 한줄 채우기 하는 그 동안에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직 많은 부분이 개발 되어야 하겠지만 이미 개발된 내용들이라도 알고 적용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2015년? 2016년 채용부터는 공공기관 채용에 NCS를 적극 도입하고 어쩌면 모든 채용을 NCS의 기준에 의해서 이뤄 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의 채용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재 채용을 시도하는 공공기관의 모습을 환영한다.

 

책속의 세상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다니 이젠 이 변화의 흐름에 참여 할 수 있는지 시간을 들여 알아 봐야겠다.

 

다음에는 취준생의 신분이 아니라 꿈을 이뤄가는 사람의 신분으로 만나길 바란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 : http://www.ncs.go.kr/ 홈페이지도 이미 있고

능력중심의 채용공고를 볼 수 있다.

취업을 꿈꾸는 스무살의 그대 NCS의 꿈을 한번 펼쳐 보길 바란다.

 

책을 읽고 무엇이 남을까란 고민을 하며 독서를 해온지 시간이 조금 지났다.

이번 책은 정말 우연한 기회를 얻어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고 정말 많은 질문들과 답이 남아 버렸다.

 

세상과 꿈, 그리고 직업에 대해서.

 

아니 "미래"라는 한가지 질문이 남았다.

 

행복한 미래를 위한 꿈, 그리고 길...

 

멋진 독서를 하게 해준 카멜북스와 멋진 다큐를 만들고 책을 써주신 정화영님께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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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는 마음 - 아름다운 숲 나남수목원 나남신서 1810
조상호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남출판사 서평단활동으로

조상호님의 <나무심는마음>을 만났다.

 

책을 말하기 앞서 나남출판사와의 인연을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다.

 

나남출판사를 알게된건 2006년 대학교 입학과 함께였다.

사회복지학과 06학번으로 입학하고 사회복지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배우는 "사회복지개론"

나 역시 대학 교재로 정해진 "사회복지 개론"을 접했고 나남출판사에서 출판을 했으며 저자인 '표갑수'교수님이 사회복지학 개론을 강의하시는 그 교수님이란 것도 대학생활 3주차가 다 지나서야 알게 됐다.

 

사회복지의 길을 걷게되리란걸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지금도 정확히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모호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2006년 그때엔 직업이란 것의 막연함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도, 꿈도 없었다.

 

다만 지겨운 고등학생까지의 주입식의 입시 교육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이젠 당당하게 어른이야 라고 말 할 수 있겠다는 치기 어린 들뜸뿐이였다.

 

그후 9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사회복지의 '개론'이란게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이고

어디가서 어른이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없는 대다수의 또래와 같은 그저 그런 대한민국에서의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을 뿐이다... 그 시간 동안 발전이란 있었는지 지나온 과거의 무게와 다가올 미래의 무게가 현재에 겹쳐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짖누른다...

 

2006년 어떻게 선택하게 된 사회복지학을 통해서 만나게 된 출판사 나남.. 그후로 전공 수업의 많은 교재들이 '나남'출판사의 책들이였고 군대를 갔다와서 본격적으로 책과 공부에 빠져 들어 스스로 찾아본 책들도 '나남'출판사의 책들이 였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사회복지학은 언제나 '나남'출판사 덕분에 지금까지 발전한듯 싶다.

 

나남출판사의 눈으로 선별되어 출판된 그 책들이 없었다면 깊은 이론 수업의 자료를 힘겹게 번역에 매달려 구할 노력... 편집과 시기가 너무 늦는 바람에 매년 바뀌는 이론들을 담지 못하는 책들로 공부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사회복지학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남출판사와 가까워 진것은 작년 이맘때 부터 시작한 나남출판사 서평단 활동...

이젠 책좀 읽어 보자 마음 먹고 블로그에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조금 씩 남기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시작했다.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읽은 책이 꽤나 된걸 보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여전히 '서평'이랍 시고 남기는 글들은 평론의 글이 아니라 그저 20대 독자록써 짧고 두서 없는 이야기들 뿐...

 

그렇게 '나남 출판사'를 접했어도 오늘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출판사의 발행인이 '조상호'님이란 것을 몰랐고

나남출판사의 '나남'이란 이름에 '나와 남이 어울려 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줄도 몰랐다.

 

나남출판이 36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지훈상이 15주년 기념인 것도...

'나남'의 독사로서 너무 무관심 했었나보다...

 

'나남'에서 출판된 책은 모든 원고를 직접 읽고, 36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2천여 종이 넘는 책이 출간됐다는 것을 알고 나니 시간이 주는 힘과 오랜 시간 한길을 바라보며 꾸준함으로 쌓인 결과에 경외심이 들었다.

 

우연히 시작된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나무와 함께한 발행인이자 저자인 '조상호'님의 역사가 담겼다고 할까?

책 만드는 한 길을 걷다 책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된 이야기들...

 

나무 하나 하나 전부 사연이 있고 나무 하나 하나에 마음이 담겼다.

<나무 심는 마음>은 '책 만드는 마음'과 같음을 느꼈다. 하나 하나 정성 아닌 것이 없고

하나 하나 시간이 꼭 필요하며, 하나 하나 사람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결국 나무와 함께 하게 만들었다.

 

1부에서는 나남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함께한 나무들과 책 만들던 사람이 나무를 보게된 경위를 담고 있다.

소나무가 좋았다가 이제는 계절따라 색을 달리 하는 활엽수가 좋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을 들여다 보면 그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같은 시간 속에서 바라보는 곳이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읽는다.

 

2부에서는 시간을 뛰어 넘으며 나남출판의 시작부터 지훈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아직 진행 중인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력한 끌림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못했을 이야기들... 강렬함이 있었기에 지금에 이르기 까지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 인연이 되었을 이야기를 보면, 내 아버지와 다른 시대를 살았고 내 할아버지와도 다른 시대를 살아온... 그 중간 어딘 가쯤의 시간을 멀리서마나 짐작으로 상상해 본다.

 

88년생으로 서울에서의 올림픽은 역사속의 이야기 이며 같은 공간에 있었던 2002년의 서울광장은 학교라는 상자속에 10대의 치기에 어른들과는 다른 시간을 보냈다.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것은 2009년 5월의 노란 물결...

20대도 반을 넘어서면서 부터 조금씩 느꼈던 것을 저자는 먼저 살았던 어른으로써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위해 나아가리라 했던 듯 싶다.

 

당시에 나는 투표의 중요성만을 짐작 했을 뿐이고 곧 있을 시험과 내몰린 사회속에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멀리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는 눈앞의 현실에 이리 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흘러 시청앞 광장은 다시 촛불로, 또 노란 물결로 물들기를 반복 하며

많은 이야기들이 권력에 평화적으로 때론 억눌린 폭력으로 대화를 시도 했다. 그 많은 날들의 외침들은

노란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였고, 앞날의 시간 속에서도 매아리로 남아 맴돌겠지...

 

세월 속에 시대 정신을 잡고 언론과 출판의 힘으로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심는 출판... 그리고 나무...

 

3부에서는 여행하며 배운 것들로 균형을 생각해 보게 하고

어느 곳을 가나 우리 민족의 흔적을 발견하여 풀어내는 글들이 배움의 의욕을 불태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간접접으로 느끼면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내가 진정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잘 살아왔던가? 싶기도 하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 그 시간들이 있음을 위안 삼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리라 다짐을 한다.

 

그 바이칼 호수, 시베리아의 바람 속에 항일 투쟁과 나라잃은 민족의 아픔이 불어 오고

살아 숨쉬는 터키궁전에서 콘스탄티노풀의 함락이라기 보다는 이스탄불의 탄생을 바라보는

그 멀리 보고 넓게 보는 눈과 앎의 깊이가 이땅에 수백년을 살아온 거목같다.

 

4부 어울러 사는 사람들의 숲에서는 김서령, 이길우, 고혜련, 박은경이 함께한 "조상호"의 숲을 거닌다.

 

사람들에게 책을 심었고 그 책이 수백년은 거뜬히 갈 수 있는 단단한 뿌리를 심고 있는 책<나무 심는 마음>

아직이라 하겠지만 이미 커다란 숲이며, 숲속에 우뚝 쏟은 거목이된 "조상호"님의 글을 이렇게 접했고,

나남 출판사의 책들이 주는 질문들과 깊은 사색의 시간들을 가질수 있는 것은 뒤늦게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으로써 큰 행운이다.

 

 

[책 속의 문장 들]

 

62쪽

 "도시의 사냥꾼들이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격돌하는 콘크리트 숲에서 부딪치는 인간의 탐욕에 실망할 때마다 태고의 원시적인 바람과 향기가 넘실대는 거대한 나무의 숲을 만들어 그곳에 포근히 앉기고 싶은 야무진 희망을 꿈꾸었다."

 

64쪽

 "사람이 죽으면 그의 우주도 없어지겠지만, 한 지식인이 묻히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데,"

 

65쪽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대답보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가 더 자연을 읽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봄은 푸르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색깔로 온다."

 

71쪽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일 때도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손해보는 듯한 조금은 불편한 기을 택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후회가 적다."

 

86쪽

 "자연이 뿜어내는 색깔은 다양하다. 낙엽이 되어 땅으로 회귀하기 직전이어서 그 화려함은 절정일 수밖에 없다. 사라져가는 것에대한 아쉬움이 더해져서 그렇다."

 

89쪽

 "낙엽이 예비된 단풍은 처연한 아름다움이다. 선비의 가을앓이는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93쪽

 "이름은 권력이다. 형식의 반복이 실질이 된다면 이름을 자주 불러야 한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에 애면글면하지만, 꽃과 나무는 그 모양이나 속성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그것이 선조의 지혜가 담긴 정명법일 수 있다."

 

105쪽

  "쓸모없는 생명이 있겠는가. 생명은 그 스스로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120쪽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127쪽

"마침내 세상 가장 큰 책을 쓰고는

흙 묻은 등산화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그도

한그루 느티나무 되어

책속의 쉼표로 찍혔다

겨울에도 푸른 쉼표로."

 

158쪽

 "절벽이라는 과거의 관념에 구속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없다. 이제까지 '꿈은 이루어진다.'의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온 호시우행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보이지도 않는 적들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할 일은 아니다."

 

165쪽

 "권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이렇게 함께하는 것이라고 경복궁 너머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세속권력에게 더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169쪽

 "세월도 강물도 쉬지 않고 흐른다. 같은 흐름이면서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것은 세월이고, 말게 혹은 탁하게 그 흐름이 보이는 것은 강물이다."

 

206쪽

 "원래 권력은 건달과 깡패 기질이 승한 이가 얻는 것이지만, 집권 후에도 건달로 살면 생명은 길지 못하다."

 

255쪽

 "시베리아의 푸른 눈, 초승달 모양의 바이칼은 이제 만월로 두둥실 떠오를 일만 남아 잇는지도 모른다."

 

284쪽

 "제국의 경영은 무력의 위세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 인프라가 선행되어야 한다."

 

 

많은 문장들에 덕지 덕지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어도 지금으로써는 볼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건 시간이라는 마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4년후 나남의 40년쯤이 되어서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10년이 지난후 45년.. 아니 5년.. 10년이 지날때 마다

나무처럼 내 생각도 자라나고 보는 눈도 넓어 질까?

미래의 세상을 예상하고 예언하지는 못하지만 막연한 기대라도 한번 가져본다.

 

수백년 시간을 이땅에서 살아낸 거목들에 비한다면 아주 잠깐의 시간을 살면서 참 많은 일들을 많들어 내는 인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수백년의 시간을 흉내라도 내는 것은 "책"이라는 인간들 만의 나무가 끊임없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천천히 읽고 또 읽으며 도통 끝을 못보지만

서평단 활동이라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이렇게 짧은 시간안에 담아 봤다.

 

<나무 심는 마음> 내 마음속에 그 어떤 위협에도 꺽이지 않고 거목으로 성장할 나무 한그루 심었다.

 

[이 글은 나남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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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히구라시 타비토가 찾는 것 탐정 히구라시 시리즈 1
야마구치 코자부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일탈!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며 활력을 되찾는 것!

 

하루 2시간 이상! 매일하는 약속을 지키며 잠시 하는 일탈은 종종 판타지에 빠지는 것.

한가로운 봄날 이라고 해야 할까?

하늘은 파랗고, 종종 떠다니는 뭉게구름에 마음이 풀어지는 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 오고, 태양의 강렬함을 식혀줄 그늘이 있는 날.

일탈하기 딱 좋은 그런 날

 

내 일탈은 역시 책이다.

조금은 딱딱한 인문 서적과, 시험을 위한 수험서에서 잠시 벗어나

판타지에 빠져보는 일탈.

 

그런 일탈을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가 찾는 것>과 함께 했다.

 

도서관에 한권이 있어서 단편인줄 알고 선택했는데.

이런... 시리즈 였다니!!!

 

작년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에 빠졌었는데...

신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있지만 비블리아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분명 취향에 맞을 거라는 추천으로 선택하기도 했다.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다.

판타지는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이 좀 많이 특별하다.

 

이번 주인공은 시각이 비정상 적으로 발달한 경우로 설정하고 있다.

사람에게 있는 5감중에서 4개의 감각을 시각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에 시각으로 그 모든걸 본다.

 

눈에 보인다! 어! 어!!!

이 설정은 이번에 종영한 드라마 <냄새보는 소녀>와 비슷한 설정!!

이거 설마 일본으로 수출되면 표절 시비에 휩싸일려나?? 원작은 웹툰인가 그랬다는데..

 

드라마 속의 오초림(신세경)은 후각정보를 시각으로 본다.

드라마의 특수효과를 통해 만화처럼 그 모습을 재미있게 담았는데

 

냄새 정보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정보 촉각, 미각, 청각을 눈으로 본다면

바람이 분다는 공기의 흐름바저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미세한 차이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설정, 아주 정교한 어떤 것 까지 비교를 해낸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지러울까?

 

이미 그런 세상에서 살고 거기에 적응을 했다면 불편함을 없을까?

오감중 한개의 감각이라도 사라지면 정말 불편할 텐데... 물론 다른 감각들이 조금더 발달해서

사라진 감각을 어느 정도 대체한다고는 하지만 그 정교함 까지는 따라할 수 없겠지...

 

그런 만큼 없으면 없는 대로 세상에 대해서 다시 정의 하고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것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아는 것을, 굳이 설명없이 느낄 수 있는 것을.

혼자면 느끼지 못한다면, 그래서 반응이 느리다면... 너무 혼란 스럽고 외롭지 않을까?

 

어쩌면 극도로 폐쇄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스스로 괴물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속의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는 정말 대단한 남자로 그려졌다.

정신력도 대단 하다. 다만 사람이 너무 좋다는 것. 궁굼한것은 꼭 해결해야 하는 성격에

부탁은 거절하지도 못하는 사람! 여기에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탐정'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니

모성애를 자극하면서도 남성다움에 반하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책 뒤 표지에는

"당신이 잃어버린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빈자리를 따스하게 채워주는 감동 미스터리!

라는 문구와 별 5개로 기대감을 증폭 시켰는데!!

너무 기대했던 탔일까? 아니면 비블리아고서당의 그 소소함을 좋아해서 일까.

그도 아나면 '탐정'이라는 직업에 가지고 있는 동경 때문일까.

 

아직 시리즈의 1권이라서 그랬나 보다.

후기까지 읽고서도 아쉬움이 컷던 것은...

 

감동 까지는 모르겠지만

소소한 사랑이 있는 작은 미스터리인 것은 확실하다.

 

뭔가 인생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드레랄린이 마구 분비될 정도로 몰입해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것도 아닌...

그저 일상속에서 소소함을 찾아내는 능력!

어쩌면 그런 소소함을 발견하기에 '탐정'이라는 직업이 어울리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다음권에서는 뭔가 더 큰 사건에 휘말려 있다는 암시가 있긴 하지만...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는 그 특별한 눈을 통해서 물건을 찾는다.

탐정에게도 전공이 따로 있다면 타비토는 물건찾기가 전공일지도.

그가 탐정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특별한 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특별한 눈은

남들과는 다른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서 얻은 능력이란 것도 말해 주고 있다.

 

눈의 특별함이 없더라도 관찰을 통해서 추리해내는 능력의 탁월함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 주고 싶었지만 어쩔수 없이 한번에 직접적으로 알려준 그런 느낌.!

 

판타지의 장르 특성상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힌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를 좋아하지만 이런 류의 미스터리 또한 괜찮다.

역시 일본 소설 특유의 가벼움 이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특유의 가벼움 속에서 작지만 한가지 인물과 상황에 대해서

고민할 만한 질문을 한개씩 슬쩍 던져주는 반면 야마구치 코자부로의 가벼움은 말그래도의 가벼움이다.

 

그을 따라 가벼이 날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끝나 있는...

'책'이지만 '만화'를 보는 듯한.

어쩌면 참 이기적인 그런 책이다.

"넌 그냥 날 따라오기만 하면되 그러면서 내가 느끼라는 것을 느끼는 거야!"

라는 강압!!

 

그래서 즐거보는 류의 책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오늘 같이 일탈하고 싶은 날에는 딱인 그런 책이다.

잠시 생각하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과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마음이 빈자리를 따스하게 채워주는 감동 미스터리!" 라는 이 문장 으로 인해서 더 아쉽다.

 

아! 두번째 에피소드의 시작에서

'인간'과 '과거의 짊어짐'에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몇번이나 다시 읽어 봤다.

 

괜히 책을 읽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생각이 없다면 이건 독서도 아니야!! 라느 평소의 생각 때문에 억지로라도 찾아 생각해보려 했다.

 

인간이 삶과 과거시간의 짊어짐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시간...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과거를 뒤돌아 본적이 있을 것이다라면서

 

좋건 나쁘건 추억이란 일상의 작은 한 부분에서 고개를 내밀곤 한다.

 

즐거운 기억은 활력을, 슬픈 기억은 반성을 내일을 살아가는 양분으로 제공해 준다.

그것이 '과거를 짊어진다'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란 기억 속에 붙잡아두기가 힘들다.

'짊어진다'고 하면서도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은 분명 존재하고,

그런 잊힌 기억은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

'짋어진다'면 책임지고 전부 짊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니 인간은 기억을 붙잡아두려 한다.

'기념'을 만들고 싶어한다.

어딘가에 갔던 기념이나 무언가를 해냈던 기념,

혹은 좌절의 낙인. 그것들이 기억을 대변한다.

먼 과거를 현재에 되살려 낸다. ...... 아니. 현재에서 과거를 '표면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존재다

살아지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이 과거를 대변하는 상황에서 현재가 존재하는 셈이니

그야말로 인간은 '과거를 짊어지고'살아간다는 거다.

-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가 찾는 것 중에서-​

​그렇게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

글세 잘 모르겠다... 극단 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건

언제나 과거이니 어떤 감각이 뇌로 전해지면서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있으니

그것 역시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느낀다고 본다면...

현재를 살아가면서 지나간 과거를 부단히 붙잡고 있는 것이 인간아닐까?...

아니.. 지구상의 생명 모두가 그런 거겠지...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되다보니 과연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미래의 시간을 극복 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이라는 상상도 미래로 가기보다는 미래에서 현실 또는 과거로 왔다는 설정이 더 많다.

탐임슬립이라는 말로 해야될려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시점이 다를 것이다.

과거가 중요한 사람은 그 과거의 기억속에서,

현재라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이순간 이순간의 선택을...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나 미래에 있을 결과를.

아무도 알수 없는 선택에 대한 결과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지만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든

현재의 시간속에서 채워지는 것은 같은것 같다.

과거의 못다한 시간을 현재에서...

알수 없는 미래의 시간을 현재에서 채워서 완성해 나간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 역시나 ...

그렇게 본다면 굳이 '짊어짐'이기 보다는

그냥 그순간의 '나'로 보는건 어떨까?

그때 그 순간의 '나'는 분명 그랬다고.

기억속의 '나'는 그랬다고... 앞으로의 '나'역시 그럴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의 '나'역시나...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시간을 짊어짐'보다는

다양한 시간속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한다고 본다.

스스로도 잘 몰랐던 '나의'모습을 다시 볼 수도 있고

언제나 생각하던 '내'가 있기에 무엇인가 선택하고 즐길 수 있고...

이렇게 쓰고 나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ㅎㅎㅎ

어쨌거나 습관적으로 '가벼움'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이런 저런 생가을 한번 해봤다.

결과는...'행복'이다.

어쨌거나 '행복',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복'이란 단어를 빼버린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또 있겠지만...

과거를 짊어지든 현재를 사랑가든 미래를 동경하든

목표는 '행복'함을 찾는 것.

그렇기에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해보는게 인간이다.

한번은 과거의 시간속으로 들어가서 행복했던 어떤 기억들을 불러오고

지금 이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어 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행복'한 상상들을 해보는 것.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왔다갔다 하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인간이지.

그리고 보니 어쩌면 탐정 히구라시 타비토가 찾는 것 또한 '행복'아닐까?

분명 무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많은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긴 하지만.

어쩌면 굉장히 무서운 인물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추억속에서 일부러 숨기려하며 보여주고 싶은 것은

'행복'했던 오감을 느꼈던 그 순간들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다음 편들이 궁굼해 진다.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오랜만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본다.

그럼 다음 책이 올때 까지는 다시 내 사고가 깊어지는 독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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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개정판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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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가 노희경! 그녀의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재미를 떠나서 그녀의 드라마를 보면 사람을 참 많이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눈에 들어 온다.

시청률로 대박이 난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노희경의 드라마를 보면 특히 시청률이 저조한, 대중에게는 재미없는 드라마 일수록 영상과 배우의 호흡 대사들이 드라마속 캐릭터 하나 하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마 시청률이 낮은 그녀의 드라마 들은 첫 회를 보고 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려운 드라마'라는게 자리 잡아 버리기 때문에 동시간 때의 다른 드라마로 회피 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이기에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그 말도 안되는 세상이 마치 현실 같이 느껴지기에...

드라마 속 어떤 캐릭터가 되든 꼭 하나쯤은 마치 나인 것 같고, 그래서 괜히 불편해 지기에...

 

드라마라면 수동적인 재미를 위함인데, 노희경의 드라마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 처럼 능동적인 사고가 필요하고,

그녀가 말하는 세상의 다양한 사랑들이 가슴아프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말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의 드라마를 보다보면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건 그녀가 말하는 '사랑'에 공감이 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녀가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008년에 출간했던 에세이집에서 새로 쓴 산문 몇편을 더하고 그녀의 친필메세지를 통해 더욱 풍성해진 내용으로 북로그 컴퍼니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그녀의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나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내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막 상병을 달고 이제 좀 책을 읽어도 되는 여유?와 환경이 되어 우연히 읽게된 책. 처음인가? 두번째로 읽었던 책이라 읽고 나서 어땠는지 따로 기록해 둔 건 없었다.

 

다만 일기장에... '책 한권을 통해 사람, 사랑,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 같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사랑이 있다. 전역을 앞둔 선임이 이별에 미친짓을 하는게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젠장!.'

이라고 적어 둔걸 찾았다... 며칠 뒤 독서노트를 따로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2015년 다시 다온 책을 다시 읽는 느낌... 괜히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았던 상병시절이 생각나 괜히 슬프다.

벌써 7여년 이란 시간이 흘렀구나... 그때의 난...하루 하루 그저 시간만 흐르길 기다렸었는데...

지금의 난... 크게 달라진건 하루 하루가 너무 짧아 아쉽다는 것. 책 읽는 시간도 부족한데, 취업준비며, 외국어 공부하고, 꾸준히 운동도 해줘야 하고. 어찌보면 군대에 있을때 만큼 단조로운 하루살이지만 잠들기 전엔 항상 조금,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는 것...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노희경이 바라보는 세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첫 산문은 책의 제목과 같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산문속 한 문장이 콕! 가슴을 찌른다...

 

나를 버리니,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 나에게 사랑 받을 그녀를 유기하고 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유죄다!! 다만... 무죄이고 싶지만 대상이 없어 괜히 더 슬프다...

아니.. 여기서 괜스레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 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데.

'사랑'이란... 사랑이란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던데...

'사랑'을 해본적이 있기나 했었는지 이젠 알수가 없다.

그래도 다음페이지에 있는 대사 덕분에 위로를 받는다.

​니가 30년 동안

사랑을 못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괜찮아.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순간일 테니까.

-괜찮아,사랑이야

​캬~!! 이런 대사가 있었나?

푹 빠져본 드라마이긴 하지만 남는건 영상들뿐이여서...

공효진과 조인성!

집에 책도 있긴 하지만!!.ㅎㅎㅎ

드라마 정주행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 둔다​

노희경님의 경험이 잔득 실린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첫사랑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사랑에 대한 자세...

나이가 들어서야 놓아주는 집착마져도 인간미가 철철 넘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고백을 듣고 있으면

그동안 봐왔던 그녀의 드라마들이 조금은 다르게 생각나기 시작한다.

아! 하나 하나 그녀의 관심이 듬뿍 담긴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 들이기도 하구나.

소설가는 소설로 이야기 하지만.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으로 하는 구나.

청소년 시절 방황했던 그녀이 이야기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어릴때의 그녀와 나이를 조금 먹고나서의 그녀

세월의 경험은 지금의 내가 짐작하기에도 벅차겠지만

20대의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껏 살아온 날들을 들여다 본다.

곧 정년퇴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취업은 아직도 남의 이야기 같은 내 상황.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런 거였나? ​

포기하기엔 아까운 시간들이 있긴 하지만.. 포기 해야하나?

앞으로 남은 나날들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하기에,

취업은 생각보다 어려운 세상이기에...

지금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인데.

그녀가 말한다.

돈 보다도 중요한 꿈을...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것을.

지금도 말로안 아는 그 것

돈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는 하나의 수단 뿐이라는 진실.

돈에 먹히지 않는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중 하나의 수단 일 뿐이란 것.

그래서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은 가름으로 느끼지 못하는 그것.

지금도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닐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막연한 자신감이 조금 자라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그 사실인데.

돈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나 너무 가혹하잖아.

성공은... 살다보면 뒤따라 오는 어떤 것.

내 목표는 결코 '성공'이란 말에 담길 수 없는 것이니까.

'행복'한 삶을 찾아. 난 조금더 나를 '사랑'하기로 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오랜만에 새롭게 읽게 되니 좋다.

5년뒤에 10년 뒤에 이책을 다시 읽으면 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때의 난 무엇을 보게 될까?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세상이 어떤 것을 보고 있을까?

잊지 말자!

삶은 '사랑'이란 것을.

사랑은 역시 '삶'이란 것을.

사람을 보고,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랑을 보고, 사랑을 이해한다는 것.

사람과 사랑, 사랑과 사람.

사람을 보는 눈과 사랑을 보는 눈은 같다는 것.

사람 사는 세상은 그래서 '사랑'하는 세상이며,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것.​

지금의 난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무죄! 라고 변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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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나면 고민되는게 하나 있다.

책을 읽고 남는 것들을 어떻게하면 잘 정리해서 남길 수 있을까?

 

서평을 남길때 역시 하는 고민이다...

어떤 책이든 서문과 말문을 읽고 나면 책에대해서 내가 더 무슨 말을 첨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서평이랍시고 서문과 말문을 그대로 옮겨다 놓을 수도 없으며,

여러 추천사들 조차 하나같이 어쩜 내생각하고 이리 똑같은지!! 어떤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던 말로 추천의 글을 남겨두니 난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고민의 답은 언제나 '나'만의 느낌이기에 책을 정리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다라고 평가 하는 것도 아닌

책을 옮겨 적는 것도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긴다.

 

두서 없이 남기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도 하는 이야기들...

 

<독한 것들> 역시 그렇다.

오랜만에 선정된 서평단이라서 정말 열심힘 꼼꼼히 읽고 멋진 서평을 한번 남겨 두리라! 마음 먹었는데.

서문과 말문을 두번 세번씩읽고 나면 책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더해 남길 말이 없어진다.

그저 감탄과 존경만이 남아 이런 책을 읽을수 있게 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뿐...

 

결국 두서없이 적어 본다. <독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EBS다큐 프라임 기생의 박성웅 PD와 제작진!!

기생 제작을 위한 촬영중 발견한 블루진 개구리! 그로부터 시작된 독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여정!

2년여의 시간동안 공들인 끝에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 독"으로, MID 출판사의 책 <독한 것들>이 탄생했다.

 

EBS다큐프라임을 책으로 읽고 언제나 느끼는 것은 책과 함께 다큐를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큐와 책 서로 다른 매체이기에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독자와 시청자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게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책으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은 다큐의 멋진 영상으로 느끼고, 다큐에서 담지 못했던 생각들은 책으로 꼼꼼히 담겼다.  책과 다큐 따로 따로 봐도 훌륭하지만 함께 보면 정말 멋진 경험을 하게 된다.

 

독이란 무엇일까?

독성 생물들은 왜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생물들에게 독을 가지도록 만들었을까?

독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말로는 독! 영어로는 톡신, 포이즌, 베놈 이란 이름이 붙은 그것!

국어사전에선 독을 '건강이나 생명에 해개 되는 성분'이라고 짧게 말하고 있고

화학사전에서는 독소라고 하여 '높은 독성을 가진 생물체 기원의 물질을 말하지만 그 개념이 매우 애매하지만 보통은 주로 고분자 물질로 고등 동물의 체내에 들어 갔을때 매우 미량으로 생체 기능을 장해하거나 혹은 죽음에 이르게 하고 세포를 파괴하는 특이적 작용을 나타내는 것' 이라고 한다.

 

우리가 독을 알게된건 매우 오래전 부터일 텐데

그 개념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니! 그래서 그냥 독은 독일 뿐이라니! 놀라웠다.

 

독과 진화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놀라웠던건

우주를 개척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아직 우주 많큼이나

우리 지구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란, 생태계란 정지해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순간 변화하는 환경과 그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을 위해 다양한 생명들이 전쟁으로 치르는 것 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종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고, 또 어떤 종은 변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혹독한 세계처럼 보이겠지만 지구가, 자연이 수억년이라는 시간동안 균형을 맞추며 지금껏 만들어온 환경이자 법칙이다.

 

인간 역시 이 법칙속에서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며 끈임없이 생존과 종족보존을 위해 지금 껏 존재 했다.

다만 한가지 그 무엇도 예상하지 못한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진화하는 다른 생물들과는 확연이 다른 모습!

지구상에 거의 모든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자연환경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개발'이란 이름하에 마구잡이로 바꾸는 능력! 도무지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라도 어떻게든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능력!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인간은 자연을 인간에게 억지로 적응시키고 강제로 진화의 압밥을 준다.

 

별 생각없이 그저 인간의 변의에 의해 바뀐 환경에 인간들 역시 영향을 받지만

다양한 생물들은 인간보다 더 큰 영향으로 하나 둘 지구상에서 살아져 간다.

미쳐 적응할 시간을 갖지못한 모든 것들은 사라져 가는것... 경각심 없이 인간 멋대로 바꾸는 환경에 생물들이 사라진다면, 육지의 모든것이 전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다면, 시간이 더 흘러 결국 바다마져 생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지구가 된다면 인간은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높은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듯 싶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의 변화에 가장 둔감한게 반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마구잡이로 바꾸는 것은 인간이 적응하는 것보다 주변환경을 인간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자연을 마구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변화에 둔감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선택중 하나 라고 생각하고 싶다.

 

수억년의 시간 속에서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독!

우리는 아직 독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어떤 이유로 독이 만들어 져서 어떻게 저장되는지, 과연 '독'이라고 불려야 할 지.

 

독과 약은 과학적으로는 같다고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인체에 들어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약,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독이 되니까.

독의 분류법 역시 인간의 임의대로 정해 진다.

어떤 것은 다른 생물들 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인간에게는 약으로 작용한다면 약이 되고

반대로 다른 어떤 생문들은 영향이 없지만 인간에게만은 치명적이라면 독이 되는 것.

독과 약은 이렇듯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결국 어떤 용도로 어떻게 얼마만큼 쓰이는 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이나 산소 역시 인간이 생존에는 꼭 필요하지만 적정한 농도를 벗어난다면 죽어버리는 치명적인 독이다.

 

생물들은 어떻게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

많은 지면들을 활용해 생태계에서 독을 가진 여러 생명체를 소개한다.

 

'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 블루진 개구리! 독화살개구리중 한녀석의 별명이다.

녹색이 천연한 수풀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빨간 몸통과 마치 청바지를 입은 것 처럼 파란 다리를 가진 녀석!

그 색상의 배치 덕분에 블루진 개구리라는 이름이 붙어버린 녀석은 그 크기가 엄지손톱 크기라고 한다.

크기는 작지만 어마무시한 녀석이다.  온통 녹색이 가득한 곳에서 눈에 잘 띄는 빨강인 이유!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처럼 명확하게 밝혀진 이유 없이 논란의 연속이지만 덕분에 생존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개구리와는 다르게 독화살 개구리는 '나! 여기 있소! 잡아 먹을테면 잡아먹어봐!'라며 광고 하듯이 다닌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상위포식자들은 그런 개구리를 모르고 먹었다가 큰코 다치기 일 수다.

한번 뜨거운 맛을 본 포식자는 다시는 먹지 않는다. 아니 주변에 있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경험으로 배운 것이다.

독화살개구리의 위험성을!

 

독화살개구리를 먹으면 독화살개구리는 피부를 통해 독을 분비한다. 포식자는 그 독때문에 상당히 괴로워 하며 씹지도 않고 뱉어낸다. 작은 독화살 개구리는 처음 사냥당하는 충격에 얼마 않있어 죽지만 그 한 번의 희생으로 더 많은 무리의 개구리들의 생존률을 높여 준다.

 

그렇다고 독화살 개구리가 무적은 아니다! 독화살개구리의 강력한 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포식자가 있다. 포식자는 독화살 개구리를 먹기위해 독화살개구리의 독에 면역을 가지도록 진화를 했다.

 

살아남기 위해 더 독한 독을 가지도록 진화를 하는 것.

역시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독에 대항하는 강력한 면역을 가지도록 진화하는 것.

먹이사슬의 생태계는 유일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할 뿐이다.

우연한 돌연변이가 살아남았다면 번영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끝일 뿐이다.

 

그렇게 생태계는 균형을 맞춘다.

누구하나 특별하지 않게... 다만 인간이란 종족은 예외로 하고...

 

<독한 것들>에는 독을 가진 많은 생명들을 소개하고 있다.

개구리, 뱀, 두꺼비,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

 벌, 개미, 거미와 같은 곤충?

유칼립투스, 고사리, 은행과 같은 식물

단궁류인 오리너구리 등등...

산호와, 복어, 가오리 같은 바다 생물들도 있고

코모도 왕도마뱀 같은 특이한 녀석도, 무시무시한 청자고둥역시 소개하고 있다.

 

많은 사례를 들어 독에 대한 변명을 한다.

생존을 위한 우연의 산물일 뿐이였다고.

 

독화살 개구리는 몸집을 줄였어야만 했고, 다른 개구리처럼 한번에 수십 수백의 알을 낳지 못한다.

어쩌면 양보다는 질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독을 생산하는 대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독을가진 동물들은 독을 가진 만큼 포기하는 것들이 있다.

 

같은 종이지만 환경에 따라 독이 퇴화되는 경우도 있다

상자해파리는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지만 황금해파리는 독이 없다.

고립된 환경에서 더이상 사냥하지 않고도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 진화 했기에 포자에 독이 없다.

그렇게 해서도 살아 남았다.

 

독이 없는 개구리와 뱀, 가오리도 있다.

독이 없는 녀석들을 독이 없어도 살아 남을 수 있는 환경에 맞춰 그렇게 진화 했을 뿐이다.

독이 있는 녀석들 역시 우연의 산물로 독을 가졌고 그로 인해 살아남았을 뿐이다.

 

독이라고 모든것에 만능은 아니다.

같은 독이지만 통하는 곳은 다르다.

 

바다뱀의 독 같은 경우는 먹이가 물고기이기에 거의 모든 독을 하나의 해독제로 해독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육상에서의 뱀들은 환경에 따라서 먹이가 다양하기 때문에 주로 먹는 먹이에 치명적인 독들이 진화 했고,

먹이가 다양한 만큼 독 또한 다양하다.

 

바다뱀은 바다라는 환경에서 물고기를 먹기 위해 강력한 독을 가지게 되었다.

바다라는 공간은 육지에서 처럼 추적이 불가능 하기에 단 한번에 사냥을 끝내야 하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처럼 평면적으로 이동하는 곳은 냄새로 추적할 수 있지만

물고기보다 느린 바다 뱀은 한번 놓치게 되면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 없다.

사방어디로나 도망가는 물고기를 그것도 바다뱀보다 몇배는 빠른 물고기를 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때문에 단 한방을 위해 더욱더 강력한 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상자해파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자해파리의 몸은 잴 같아서 물고기의 저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에 재압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다 보니 역시 강한 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청자고둥도 강력한 독이 있다.

역시 물고기가 먹이이기에 강력한 독을 가지게 진화를 했다.

다큐를 보면 독을 통한 사냥은 실패하지만 몸집보다 크게 벌려지는 입을 통해서 물고기를 통째로 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을 통한 사냥이 전부는 아니지만 독이라는 무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독을가진 대부분의 동물들은 독을 남용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사용한다. 독을 만드는데 역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독이 없어도 사냥이 가능하다면 이들 역시 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독을 사용했다는 흔적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이 역시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선택이다.

독이 필요 없다면 굳이 독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창과 방패의 하모니!

공격하고 막고, 누구 하나 특별한 승자 없는 이 자연의 생태계에 무시무시한 강적이 나타 났다.

인간! 이다.

 

사탕수수두꺼비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을 했는지 알려준다.

사탕수수두꺼비란 독을 가지고 있는 두꺼비 인데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도입한,

인간에 의해서 강제로 이주당한 두꺼비들이다.

 

사탕수수를 갉아먹는 딱정벌래를 퇴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한 두꺼비

그래서 사탕수수두꺼비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효과는 없었다.

사탕수수를 갉아먹는 벌레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2미터 높이의 사탕수수 위나 나무위에서 휴식을 취한다.

사탕수수두꺼비는 낮에는 그늘을 찾아 이동할 뿐이고 밤이 되어서야 사냥에 나선다.

그렇기에 도입 목적인 벌레퇴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살충제를 통해 벌레는 퇴치했지만!

사탕수수두꺼비가 큰 문제로 남아 있다. 대책없이 이주한 두꺼비들을 잡아먹을 천적이 없었던 것이다.

뱀이나 도마뱀 심지어는 악어까지 두꺼비를 잡아 먹는 포식자가 사라졌다.

사탕수수두꺼비의 독에 적응할 아무런 대비 없이 맛을 봤기 때문이다.

포식자가 없는 두꺼비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

자연히 먹이는 한정되어 있을 테고.. 제동없이 늘어나기만 하는 두꺼비들에 의해서 먹이가 고갈 된다면

두꺼비들 역시 먹이 가 없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겠지.

 

그렇게 인간에 의해서 한 지역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외례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많은 경험을 했다.

아직도 저수지에는 베스가 득실득실해서 토종 물고기들이 살 공간을 잃었고,

황소 개구리로 인한 피해, 붉은귀거북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등등...

우리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에서 일아나고 있다.

 

사람들 역시 뉴스에서 심각성을 가지고 잠깐 보도하면

대책역시 그때 뿐! 뉴스에서 사라지면 관심역시 사라진다.

여기에 경각심 마저 함께 사라진다...

 

'독'! 생존을 위한 우연한 자연의 선택!

어쩜 인간들은 인간 그 자체가 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죽하면 요즘 시대에 독한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마져 있겠는가.

인간이 만들어온 인간들 만의 생태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독한 인간들의 이야기는

우리는 많이 본다. 어떤 면에서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독한 그 인간을 배워야 살아남는 다고 한다.

독하기에 살아남은 그들...

독한 리더들의 이야기가 넘처나는 세상

 

우리는 스스로 독을 가지도록 스스로에게 압력을 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고 정착시킨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독한말, 독한 정신, 독한 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들...

독과 약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살려 독을 약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독해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약해야 살아남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독을 약으로 바꾸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독한 세상에서 약한 세상으로,

독이 되는 말 대신에 약이 되는 말을 하고

독이 되는 글 대신에 약이 되는 글을 쓰고

독이 되는 생각에서 약이 되는 생각으로

하나 하나 약으로 바뀌 간다면 독한 우리 세상

약으로 살아남을 지혜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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