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시리즈 - 전16권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레이 몽크 외 지음, 김병화.안인희.고병권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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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첫 관문으로 삼아도 좋은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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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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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도가니』는 인호가 기간제 교사로 발령 받아 무진市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화를 소설화할 때 즉 저널리즘식 글쓰기를 할 때 작가는 감상에 빠지거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들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전달자여야지 소설속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서 울고 불고 떠들어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3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정보로 전달해야 할 작가가 오히려 나서서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 저작이 사회소설일 때, 작가 공지영은 여전히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아니면 극복할 마음이 없던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하는 것과 "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정말 짐승, 악마 같은 놈들 아닌가요?" 하는 것은 어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이 작가를 보면 주목 받고 산 사람의, 주목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 같은 정서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선 '죄 없는' 아름다운 청년 사형수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도가니』는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구성상의 몇 가지를 제외하더라도 그 결말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결국 무죄 처리되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반면,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인호는 물론이고 피해 학생들 모두 예전의 악몽으로부터 구원받아 새로운 보금자리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작가는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는 것. 이런 동화같은 온화한 결말로 책 판매량은 늘었을지 모르나 독자 입장에선 사회적 독서를 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늘 감탄하지만 이 작가의 소재를 고르는 재주는 참 뛰어나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재료도 그것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는 법.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를 찢고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고발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다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소설외적인 문제일 뿐, 몇 년 새 아동성범죄가 너무도 만연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대중에게 환기시켰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이 해낸 역할 - 잊혀진 사건에 대한 주의 환기 - 에 비하면 저런 부분들은 차라리 부수적이고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광주의 옛이름이 무진주(武珍州)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무진은 김승옥의『무진기행』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이다. 문학 비평집을 읽다 우연히 마주친 짧은 문단에 반해서 그 날로 전집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김승옥의 무진市인 것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찹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pp.159-160,『무진기행』   

김승옥의 영향일까. 이번 공지영의 소설은 예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담백하고 묵직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강인호가 자신의 승용차에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할 무렵 무진시(霧津市)에는 해무(海霧)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뒤덮인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왔다. 안개의 품에 빨려들어간 사물들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미세한 수증기 알갱이에 윤곽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렸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p.7,『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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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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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건 책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던 감상은 어른을 위한 동화랄까, 소설이 참 착하다라는 것. 정말 소설이 착하다.
내용은 제목이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중2 때 담임이 내준 반성문을 30년이 지나서야 쓰게 된 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통로였던 웅변을 그만둔 직후 나선 백일장. 그리고 그 백일장에서 중압감을 못 이기고 우연히 읽은 남의 글을 '일부' 가져다 쓴 것이 빌미가 되어 쓰게 된 원고지 500매의 반성문. 그러나 벌을 수행하면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에, 또 그 외에도 내,외적인 이유와 변수들로 인해 나는 반성문을 쓰는 것을 자꾸만 미루게 된다. 그리고 30년 만에 담임선생님의 병실에서 다시 화두처럼 떠오른 아직 쓰지 않은 반성문과 과거의 기억들. 그리하여 목련을 보면서 마침내 쓰기 시작하는 반성문은 자신의 잘못과 마주하는 당혹감을 지나자 이내 지나간 시간을 향한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 여행이 된다.
내용 중에 아내가 나에게 '반성이 아니라 변명처럼 보인다'고 지적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쩐지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사실 긴 학창시절 동안 반성문을 써 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지만 만약 반성문을 쓴다면 나 역시 자기 최후 변론 같은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성을 들인 문장이 참 예쁘게 다가오는데 그래서인지 목련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마치 시인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담인데, (소설 속)김 작가가 쓴 백일장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눈 오는 겨울, 정거장, 소녀, 소녀가 두고 간 사진... 그 위에 덧입혀진 까까머리 중2 남학생의 정서가 궁금하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이 어른을 위한 착한 소설이라면 이어지는 단편「진부의 송어 낚시」는 한 편의 유쾌한 콩트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짧은 분량임에도 상당한 존재감을 가지고 다가온 정미도, 정미의 담임도, 송어축제 게시판을 수놓는 글들도 모두 깨알같은 잔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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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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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의 신작 소설 『바이퍼케이션』을 받아 들고 책 후면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배경도, 등장인물도 모두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국내 작가가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쓰는 소설에 알러지가 있다. 물론 서양이든 동양이든 보편적인 가치관의 바탕 그림은 대동소이할 것이나 중요한 건 정서의 뿌리가 다르다는 차이점은 상대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정도로는 쉽게 좁혀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이 통하는 것과 정서가 통하는 건 엄연히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다행히 작가가 이에 대해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작가의 말처럼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이야기의 큰 기둥을 이루는 이 소설은 이야기의 규모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무게를 볼 때 국내가 감당하기엔 확실히 시놉시스의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하다.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잠깐 언급되지만 서양사를 크게 양분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그 중에서도 헬레니즘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 신화가 이야기의 기둥이고 보면 이야기의 무대가 국내를 벗어나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바이퍼케이션』을 끌어가는 요소는 미국 소도시. 연쇄살인범. 모방 범죄. 과격하지만 인간적인 베테랑 형사. 유년기 상처를 지닌 천재 프로파일러 청년이다. 여기까지는 같은 장르의 여느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엽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건의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도 큰 줄기만 보면 흔하고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는 이 흔한 이야기에 신화를 끌어온다. 그것도 그리스 신화다. 주인공은 헤라클레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12과업. 헤라클레스의 정적으로 부활한 하이드라. 이쯤 되면 책장이 넘어갈수록 궁금해진다. 천재 프로파일러 에이들의 분석처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헤이워드 부인의 분열된 자아가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걸까, 아니면 과학과 이성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 것일까. 그리하여 『바이퍼케이션』은 읽는 동안 두 개의 추리를 요구한다. 첫째, 과연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분열된 자아인가 아니면 그의 주장처럼 실제로 부활한 신화 속 영웅인가. 둘째, 하이드라는 과연 누구이며(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그리고 제각각으로 보이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모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쯤 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책장을 넘어가게 하는 속도, 소일을 제쳐두고 독서를 우선 순위에 놓게 하는 흡인력. 이는 모두 작가의 힘이다. 서머셋 몸도 말했다. 소설은 첫째도 둘째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우혁은 정말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작가이고『바이퍼케이션』역시 세 권이라는 분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숨에 읽힌다. 오히려 이야기의 규모를 봤을 때 분량이 짧은 듯 느껴진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 흘러넘친다고나 할까. 장르의 전형에 충실한 한편 그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작가의 세계관까지 읽어 내기엔 여러 모로 시스템의 과부화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만도 벅찬데 데카르트와 융까지 등장하니 머리가 바빠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갈 길이 바빴던 탓인지 이야기를 통해 펼쳐져야 할 그리스 신화와 관련한 내용의 상당수가 에이들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새로운 장이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용은 그 자체로 엽기적인 한편 흥미진진하여 나중에 따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 분이 여행객들 중에 가장 골치 아픈 부류는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부류를 들라면 나는 두 말 않고 어설픈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어설픈 영웅을 꼽겠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신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이 우리 인간들과 하등 다르지 않아서인데 특히 신화 속 얘기를 풍성하게 하는 일등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질투하는 신들이다. 물론 질투하는 신의 최고봉은 헤라(로. 주노) 여신이고. 헤라가 없었다면 그리스 신화를 다룬 책의 두께는 상당히 얇아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 소설 『바이퍼케이션』도 탄생할 수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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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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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은 공포영화의 법칙을 비웃는 한편 공포물의 장르적 속성을 충실히 따르는 아이러니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공포영화였다. 말하자면 기존 장르를 비틀긴 하되 어디까지나 장르 안에서 노는 영리한 영화인 셈인데 사실 장르적 규칙(공식)을 지키는 것은 관객 혹은 독자와의 약속이다.
이젠 너무 익숙한 뻔한 얘기들, 즉 무리와 떨어져 혼자 남는 인물은 죽임을 당하고, 의심 없이 믿었던 인물이 실은 범인이더라, 등의 내용은  그것이 진부하든, 식상하든 간에 결국 그것의 장르적 속성 - 뻔한 공식 때문에 재미를 얻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생리적으로 시각적 공포에 약한 나는 공포, 호러라면 대놓고 기피하는데 무섭기도 하거니와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과정에서 으레 양념처럼 쫓아오기 마련인 이야기 또한 영 별로다. 그러니까 생각나는 한 예로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을 본 직후 내가 가장 많이 투덜거렸던 말은 '비상식적인 상황에 비상식적으로 반응하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어'였다. 사람이 수상하면 가까이 안 하면 되고, 집이 수상하면 그 집에 안 들어가면 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면 그만일 것을 괜스레 묘한 고집을 피우다 비명횡사하는 인물들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로야 쿨하게 '저들도 불쌍한 피해자야' 이해하고 싶지만, 실상 가슴은 '너 때문에 내가 미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고,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성이 그러하다. 보편성 혹은 상식선이 깨어지는 지점, 바로 거기에서 공포가 비롯된다.
이상민의 신작 제목인『카르마』는 업(業)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귀띔해주는 포석 역할을 한다.
시작은 10년 전 폐교. 추억을 만들기 위해 폐교 체험을 온 여대생들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촛불 몇 개를 밝히고 돌아가며 자신이 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10년 후,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알게 모르게 얽혀 있는 인물들이 10년이 지나 우연히 그러나 미리 예정된 대로 한 자리에 다시 모인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수.
장르에 충실하다는 얘기는 장르적 재미를 잘 살렸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카르마』는 공포물의 성수기인 한여름에 읽기에 제격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눈에 띄는 점은 장면의 전환인데 여러 등장인물들로 시점을 옮겨 가며 씨줄과 날줄을 엮듯 장면을 얽는다. 다만 중반까지 적당히 긴장감을 주며 몰입도를 높이던 장면 전환이 후반으로 갈수록 전환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지고, 그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구체적인 장면 장면의 공감각적 느낌이 두드러지는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송윤아, 이동욱 주연의 2006년作 <아랑>이다.
연기(緣起)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인(因)과 과(果)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는 불교 용어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그것이 정말 인과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다.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은 모두 이유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제껏 내가 본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는 극장판 <기묘한 이야기>의  첫번째 에피소드 '눈 속의 하룻밤(雪山)'인데, 공포물의 단골 클리셰인 ’왜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인 걸까‘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늘, 예외 없이 섬뜩하다. 이러한 클리셰는 <카르마>에도 등장한다. 

“다섯인데 여섯이야. 다섯인데 여섯이라고. 왜 여섯이지? 원래 다섯이잖아. 그런데 여섯이야! 나머지 하나는 어디서 온 거야? 어디서!” - p.19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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