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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스크림>은 공포영화의 법칙을 비웃는 한편 공포물의 장르적 속성을 충실히 따르는 아이러니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공포영화였다. 말하자면 기존 장르를 비틀긴 하되 어디까지나 장르 안에서 노는 영리한 영화인 셈인데 사실 장르적 규칙(공식)을 지키는 것은 관객 혹은 독자와의 약속이다.
이젠 너무 익숙한 뻔한 얘기들, 즉 무리와 떨어져 혼자 남는 인물은 죽임을 당하고, 의심 없이 믿었던 인물이 실은 범인이더라, 등의 내용은 그것이 진부하든, 식상하든 간에 결국 그것의 장르적 속성 - 뻔한 공식 때문에 재미를 얻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생리적으로 시각적 공포에 약한 나는 공포, 호러라면 대놓고 기피하는데 무섭기도 하거니와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과정에서 으레 양념처럼 쫓아오기 마련인 이야기 또한 영 별로다. 그러니까 생각나는 한 예로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을 본 직후 내가 가장 많이 투덜거렸던 말은 '비상식적인 상황에 비상식적으로 반응하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어'였다. 사람이 수상하면 가까이 안 하면 되고, 집이 수상하면 그 집에 안 들어가면 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면 그만일 것을 괜스레 묘한 고집을 피우다 비명횡사하는 인물들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로야 쿨하게 '저들도 불쌍한 피해자야' 이해하고 싶지만, 실상 가슴은 '너 때문에 내가 미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고,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성이 그러하다. 보편성 혹은 상식선이 깨어지는 지점, 바로 거기에서 공포가 비롯된다.
이상민의 신작 제목인『카르마』는 업(業)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귀띔해주는 포석 역할을 한다.
시작은 10년 전 폐교. 추억을 만들기 위해 폐교 체험을 온 여대생들은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촛불 몇 개를 밝히고 돌아가며 자신이 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10년 후,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알게 모르게 얽혀 있는 인물들이 10년이 지나 우연히 그러나 미리 예정된 대로 한 자리에 다시 모인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수.
장르에 충실하다는 얘기는 장르적 재미를 잘 살렸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카르마』는 공포물의 성수기인 한여름에 읽기에 제격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눈에 띄는 점은 장면의 전환인데 여러 등장인물들로 시점을 옮겨 가며 씨줄과 날줄을 엮듯 장면을 얽는다. 다만 중반까지 적당히 긴장감을 주며 몰입도를 높이던 장면 전환이 후반으로 갈수록 전환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지고, 그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구체적인 장면 장면의 공감각적 느낌이 두드러지는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송윤아, 이동욱 주연의 2006년作 <아랑>이다.
연기(緣起)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인(因)과 과(果)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는 불교 용어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그것이 정말 인과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다.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은 모두 이유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제껏 내가 본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는 극장판 <기묘한 이야기>의 첫번째 에피소드 '눈 속의 하룻밤(雪山)'인데, 공포물의 단골 클리셰인 ’왜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인 걸까‘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늘, 예외 없이 섬뜩하다. 이러한 클리셰는 <카르마>에도 등장한다.
“다섯인데 여섯이야. 다섯인데 여섯이라고. 왜 여섯이지? 원래 다섯이잖아. 그런데 여섯이야! 나머지 하나는 어디서 온 거야? 어디서!” - p.194,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