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1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지금에야 봐놓고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옳지 않다. 이건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나왔다는 거다. 시리즈물도 착착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데, 난 이제야 읽고는 어머어머 한다. 정말 리뷰라고 쓰기도 민망스럽다.

 

그럼에도 백만년 만에 장르소설 리뷰를 쓰는 건, 닥치는 대로 읽어서 이젠 시들시들해지고 있는 이넘의 장르소설이라는 분야에서, 어라? 이건 시리즈물로 다 읽어볼까? 라고 생각하게 만든 간만의 책이기 때문이다.

 

S&M 시리즈라고도 부르는 이 시리즈는, 사이카와 소헤이라는 N대학 건축학과 조교수와 니시노소노 모에 라는 같은 대학 건축학과 1학년 학생이 콤비를 이루어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다. 총 10부작까지 나왔다고 하고 이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첫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보니 이게 원래는 첫번째가 아니었다고 불라불라 하던데, 그냥 생략)

 

이 둘의 인연은, 모에의 아버지가 사이카와의 은사이고 모에의 부모는 사고로 죽었으며 그 사고의 현장에 둘이 같이 있었다.. 로 이어진다. 모에는 워낙 잘 사는 집안이라 사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으나 (오히려 일반 경험이 부족한 아가씨) 마음에 외로움이 남아있는 아이이고 사이카와에게는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라는 설정이다. 어쨌든 모에는 일종의 천재이고 사이카와는 천재는 아니라도 뇌구조가 대단히 괜찮은(이건 이 책에서도 설명된다)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외딴 섬에 연구소를 두고 완전 격리된 상태로 생활하던 천재 과학자 마가타 시키 박사의 방에서 두 손과 두 발이 절단된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밀실도 이런 밀실이 없는데 어떻게 이걸 뚫고 사람이 죽어 나올 수 있는가가 해결해야 할 대상이었고. 이 마가타 시키 박사는 14살에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다중인격이랄까, 심신상실이랄까로 일단 풀려났던 인물이다. (조금 으시시하다) 그러나 공학 측면에서의 그녀의 천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이 책은 철저하게 이공계적인 접근방법을 취한다. 내용의 전개나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나 대부분이 숫자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아주 오래 전이라 좀 촌스러운 구석이 없지는 않으나 읽다 보면 오 이런 용어를 장르소설에서도 쓸 수 있구나 뭐 이런 감탄도 하게 된다. 그러나 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가 모리 히로시의 생각들이 군데군데 배여난다는 것이고 그게 좀 재미있으면서도 옳다구나 싶다는 거다.

 

"오뚝이 인형 말입니까?" 하마나카가 되물었다. 상대방의 말을 되묻는다는 건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증거이고, 대부분은 생각이 정지되었다고 봐도 좋다. - p46

 

헉. 들켰다... 시간 벌자고 되묻는 거,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일인가 보다, 나만이 아니라. 하하. 되물음으로써 나의 머리가 생각하기다보다는 잠깐 이해하는 데 시간의 간극을 벌이고자 하는 것, 이걸 날카롭게 지적하네.

 

"오호, 육수도 파는구나..." 모에가 일어서서 철판 쪽으로 다가간다. "우아! 이거 야키소바네요.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꽥! 야키소바를 한번도 안 먹어봤다고!?" 가와바타가 절규한다. 모두들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p79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야키소바를.. 그 맛난 야키소바를 ... 대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안 먹어본 일본인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고!

 

"기억과 추억, 뭐가 다른지 아나?: 사이카와가 담뱃불을 끄면서 물었다.

"추억은 좋은 일투성이, 기억은 싫은 일투성이요."

"그렇지는 않아. 싫은 추억도, 즐거운 기억도 있어."

"그럼 뭐예요?"

"추억은 전부를 기억하고 있지만, 기억은 전부를 추억하지 못해."

- p281

 

... 이 대목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다시. 추억과 기억을 이렇게 정의한 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추억은 전부를 기억하지만 기억은 전부를 추억하지 못한다.... 그래 그렇구나.

 

"일본에서는 같이 놀자고 할 때 섞어달라는 표현을 쓰지요.' 사이카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섞다, 라는 동사는 영어로 '믹스mix' 입니다. 이것은 원래 액체를 한데 섞을 때 쓰는 말입니다. 외국, 특히 구미에서는 사람이 어떤 집단에 끼기를 원할 때 '조인트joint' 한다고 합니다. 섞이는 게 아니라 이어질 뿐... 다시 말해서 일본은 액체 사회이고, 구미는 고체 사회인 겁니다. 일본인은 저마다 '리퀴드liquid' 인 셈이지요. 유동적으로 혼연일체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사회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구미에서는 개인은 '솔리드solid' 이니 결코 섞이질 않습니다. 아무리 모여도 반드시 부품으로서 독립되어 있다... 흙벽을 쓰는 일본 건축, 기와를 쓰는 서양 건축과 딱 판박이군요."  - p414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쓰면, 뭐랄까 작가의 장광설을 듣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안 좋아지곤 하는데 이 내용은 왠지 크게 공감이 갔다.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곘지. 그래서 혼연되어 섞이지 못하면 외로움을 느끼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일게다. 개인이 완전한 개인일 수 없는 사회. 그래서 어딜 가나 무리지어 다니는 사회. 그게 일본, 우리나라 혹은 중국 같은 아시아권의 특징인 걸까. 구미의 사회는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존재감만으로 함께는 있으나 언제든지 튕겨 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 같고 말이다.

 

좋은 책이다, 여러가지로. 이후의 S&M 시리즈들을 망설이지 않고 보관함에 넣게 만든다. 아직까지는 진부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모리 히로시의 작품을 몇 권 더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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