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4] 아이는 배우는 부모를 배운다

수원역을 지나가는데 누가 나에게 말을 겁니다. 

“혹시 도를 아십니까?”

전국 어디서나 도인들을 볼 수 있지만, 나는 부모님이야말로 진정한 도인이자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 보면 도 닦는 기분이 드는 부모님이 많을 겁니다. 그 때는 도 닦는 기분이 아니라 진짜 도 닦는 겁니다. 밥을 안 먹고 뛰면서 돌아다니는 아이, 숟가락을 손으로 쳐서 밥알을 땅에 다 떨어뜨리는 아이, 밥상을 북으로 삼고 숟가락과 포크로 탕탕 두드리는 아이, 서로 TV가 잘 보이는 쪽에 앉겠다고 싸우는 아이들, 발을 밥상 위에 올리는 아이, 갑자기 일어서며 그릇을 엎어버리는 아이를 혼내지 않고 끝까지 밥을 먹이는 일은 웬만한 도인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 때문에 도인이 되는 것만도 아닙니다. 배우자 때문에 도인이 되는 분도 참 많습니다. 무척 권위적이고 완고한 남편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던 한 어머니는 자신은 ‘독재자의 성’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이 육아 고민을 이야기할 때 척척 대답하고 심리학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습니다. 자못 도인의 풍모가 느껴졌습니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겪으면서 도인의 경지가 된 겁니다. 갑자기 도 닦는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동양철학이 도와 가르침을 연결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용>은 첫머리부터 ‘교육’ 이야기를 하는데, 거창하면서도 오묘합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바로 그 성의 결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도를 익히고 수련하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떠나버리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진중하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 중용1장

마치 하늘에서 사람을 내려보낼 때(아이가 태어날 때) 고유한 바코드를 찍어준 것처럼, 사람마다 타고난 하늘의 명령이라는 게 중용의 철학입니다. 급한 성품을 타고 났다면 급한 성품대로, 쾌활한 성품을 타고 났다면 쾌활한 성품대로 잘 기르는 것이 바로 도(道)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평상시에 자신의 아이의 성격에 대해서 불평하며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 실제로 성격을 바꾸려고 하는 부모님들은 도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무척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든 진지하게 생각하는 버릇과 한 번 빠지면 엄청나게 몰입하는 버릇이 있어서 싫어했지만 결국 이 성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첫째 민준이는 눈이 커서 그런지 눈물이 많습니다. 어떤 날은 약해 빠졌다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고치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감정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풍부한 감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는 나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도는 이미 도가 아닙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중용의 화두는 집에서 도 닦는 부모님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하늘로부터 명령을 받은 사람의 품성을 다 모아 보면 결국 ‘인간성(人間性)’이 완성됩니다. 인간의 도인 것이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살다 보면 가끔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인간성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수도(修道)’입니다. 도망간 마음을 잡고 나의 중심을 잡으려고 하루 하루 애를 쓰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용이 말하는 ‘가르침’[敎]입니다. 동양은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려 드는 것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사람의 병폐는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함에 있다.”(7-23)
- 맹자7-23

그래서 감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교육을 시킨다기보다는 교육 효과가 있을 뿐이죠. 서울여자대학교 김창옥 교수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교수님께 들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고를 나와서 성악과에 들어갔을 때 예고 나온 친구들에게 잔뜩 주눅이 들어서 과시욕이 생기고 어깨와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대학생 김창옥에게 성악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은 보여주는 게 아니야. 보여지는 거지. 
음악은 들려주는 게 아니야. 들려지는 거지. 
- YTN 공감인터뷰 ‘김창옥 편’

아이를 키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아이는 부모가 의도하지 않는 것을 더 잘 배운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이런  저런 모습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을 갖지만 아이는 도리어 의도하지 않는 것을 배우죠. 민준이가 밥을 안 먹고 딴짓을 계속 하자 참다 못해 민준이에게 “밥을 계속 안먹으면 밥 치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민준이는 이 말을 듣고도 계속 딴전을 피웁니다. 그래서 정말 식판을 싱크대 위에 올려 놓아 버렸습니다. 민준이는 안 된다며 울고불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교육 효과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민준이는 동생 민서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민서 너 밥 안 먹고 딴짓 하면 밥 치운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서 민준이는 민서 식판을 들고 가 버렸습니다. 민서는 밥을 내놓으라고 막 울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게 만들기 위해서 식판을 치웠던 것인데, 민준이는 내 의도를 보지 않고 식판을 치운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동생의 식판을 치워 버린 것입니다. 
어느 부모이든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식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의도만이 아니란 것을 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돈을 버느라 지친 엄마의 표정을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엄마의 행복하지 않은 표정을 보면서 아이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표정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는 부모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말로는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부모의 관념이고(사실은 ‘나는 행복해야만 해’라고 생각하는 거죠) 행복하지 않다는 표정은 실제 세계입니다. 아이들은 실제 세계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계속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양은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모두 배우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모도 아이에게 배우고, 아이도 부모에게 배운다는 것이 동양의 생각이었고, 부모가 아이를 가르친다는 일방적인 모습은 동양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공자 역시 자신이 틀릴 때가 있고, 누군가가 지적해주면 고마워했습니다. 

진나라의 사패가 물었다. "소공은 예를 압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예를 압니다."
공자께서 물러가시자, 사패가 무마기에게 읍하고 다가가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군자는 편을 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군자도 역시 편을 드는가요? 노나라 임금은 오나라에서 부인을 맞아 왔는데, 그들은 같은 성씨였기 때문에 부인을 오맹자라 불렀습니다. 그런 임금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습니까?"
무마기가 이 말을 공자께 아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행복하구나. 내게 잘못이 있으면 남이 꼭 지적해 주니 말이다."
- <논어> 7-30

육아는 예술과도 같습니다. 아름다운 가르침은 항상 향기가 피어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습니다. 타고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를 가르쳐주신 김덕신 선생님을 아직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이다 보면 어느새 의자가 책상 옆에 튀어나와 있습니다. 선생님은 자리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의자가 계속 옆으로 튀어나왔고 선생님은 몇 번 더 지적하셨는데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멈추시고 지휘봉을 가지고 무서운 표정으로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선생님의 얼굴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오싹거릴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제 자리 옆에까지 오신 선생님은 지휘봉으로 내가 아니라 ‘내 의자’를 치셨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 승주가 지적받잖아. 얼른 자리로 들어가고 다음부터는 나오지 말아!"

선생님께 혼날 줄 알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던 나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엉덩이를 들썩이는 습관이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20년도 넘은 이 사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치 위대한 예술작품을 본 것처럼 내 마음에 남아서 향기를 내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도 훌륭한 스승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내 어머니는 칠순을 앞두고 있고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제주 해녀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면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남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좋은 말은 가슴속에 담아둡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공동집필을 참여해 쓴 책을 어머니께 선물로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30여 명이 참여해서 제가 쓴 분량은 4쪽 남짓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쓴 분량이 너무 작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저도 제가 조금 밖에 쓰지 못한 책을 선물해드리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며칠 동안 이 일을 가슴에 담아 두시다가 마침내 전화를 하셔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고생해서 쓴 책인데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어머니께 반드시 내가 쓴 책을 선물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듬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선물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부모로서 잘못한 일이 많았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된 데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컸습니다. <중용>에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용기다.”(知恥 近乎勇, 20장)라는 말이 나옵니다. 설령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할지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사과해야 할 일은 사과를 해야 하는 모습은 가족에게만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용기를 배웠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정의 부모와 교유하다 보면 많은 아이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는 잘못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두려움을 이기고 사과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부가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합니다. 사과를 했을 때 재미난 놀이를 더 많이 할 수 있고, 재밌는 대화를 계속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배우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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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2013-12-1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기억은 향기가 나네요.
그 기억을 살려 향기나는 글을 쓰는 승주나무를 응원합니다.
다음에 꼭 뵙고 인사드릴게요.

승주나무 2013-12-10 14:27   좋아요 0 | URL
찐빵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로 보답할게요. 저도 다음에 한번 뵙고 싶네요. 내년 5월 가정의 달에 맞춰 이 글이 책으로 나올 예정인데, 따뜻한 봄에 한번 뵙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