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그림의 움직이는 지도

 

사회과부도를 던저버려라

 

 

 

역사는 두 줄기로 흐른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정적인 흐름과 역동적으로 변화해 자신조차도 흔적 없이 바꿔버리는 동적인 흐름이 있다. 세상이 안정과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하면 정적인 흐름으로 편승하다가 혼란스러워지면 순식간에 동적인 흐름으로 바뀐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기업가들이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은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질서란 변화가 가져다준 산물에 불과하므로 사람은 질서에 편승하기보다 시대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양에서 철학의 비조로 받드는 공자와 맹자도 전국시대에는 한낱 일개 학파에 불과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지배하고 중국을 움직인 사람들은 시시각각의 형세에 주목하는 종횡가들이었다.

다가올 미래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현재보다 더욱 극심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계의 숨 가쁜 변화를 포착하고 활로를 모색해도 시원치 않건만 미래의 자원을 가르치는 우리의 교과서는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표1> 시판 중인 중학교 검정교과서 사회과부도 8종 분석(2007년도, 경향신문)

 

 

 

위 표를 보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사회과부도가 2007년도의 것인지 90년도의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가장 기본적인 세계인구조차 2000년의 자료를 반영한 곳이 단 1곳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교재를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위 정보에 대한 최신 자료를 획득하는 길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정은 가르치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의있는 교사라면 ‘구닥다리’ 통계수치나 자료를 자체적으로 보완해서 가르치는데, 사실상 상당수 교사들이 그냥 가르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선학교를 담당하는 장학사의 고백이다. (관련기사 : 케케묵은 ‘사회과부도’…10년 넘은 통계자료 버젓이)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느 해에 무엇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변화’이며, 그 위치가 만들어낸 ‘관계’이다. 그것을 파악해야만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이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흘러왔고, 미래로 향해 가고 있다. 곧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흐름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각지의 사정과 변화양상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사회과부도’가 나왔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이 그것이다. 이 책이 흥미를 끄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출판화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학자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프랑스 지상파 제5채널인 아르테 방송에서 1990년부터 「지도의 이면」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러고 보면 서양에서 다큐멘터리가 출판 고전이 되는 환경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부럽기 그지 없다. 그만큼 교양에 대한 일상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영국 BBC 방송은 클라크의 「문명」이라는 텔레비전 시리즈에 이어, 우리가 잘 아는 J.브로노프스키와 함께 인류의 문명을 추적한 텔레비전 시리즈「인간등정의 발자취」를 만들었다. 그것이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 시리즈가 책으로 출판된 것이 바로 『인간등정의 발자취』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지식과 일상과의 괴리’와 달리,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지식의 일상화를 실천하고 있다. 외국의 연구소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하우스를 열어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주는데, 이것을 ‘아웃리치’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일상화되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과학커뮤니케이터’라고 한다. (관련기사 : “학문의 ‘크로스오버’ 더 많아져야”)

우리의 경우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일반인들은 과학이나 지식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고, 학생들은 구닥다리 찌꺼기나 훑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황우석 사태’를 낳았으며,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식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식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타국의 지식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역시 정치와 지리, 외교 등 전문가, 식자층에게만 국한되었던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연합의 개념

 

 

전국시대는 秦(진)나라라는 서쪽의 강국과 나머지 6개국(越(월), 趙(조), 韓(한), 魏(위), 楚(초), 齊(제))이 겨루는 형국이었다. 6국의 전선으로 통일작업을 한 전략을 合綜(합종)이라고 하고, 진나라를 중심으로 각국과 교섭하는 통일전략을 連橫(연횡)이라고 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합종은 WTO나 각종 지역연대와 유사한 형태이며, 연횡은 FTA와 같이 쌍자 단독협상에 비유할 수 있다. 비록 전략가나 국가 고유의 역량차이는 있겠지만, 합종은 구조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왜냐하면 연횡은 ‘진나라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목표가 있는 반면, 연횡은 6개국의 이해관계가 6중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힘을 모으기가 힘들고, 연횡의 교란에 넘어가 자중지화에 빠질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나라의 장의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형상의 이유를 들먹이며 끈질기게 합종을 교란하였고, 영토를 하나씩 먹어들어간 끝에 진나라의 중국 통일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

 

 

제후들이 합종을 하려는 것은 그것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임금을 높이며 군대를 튼튼하게 하여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합종하는 자들은 천하를 하나로 통일시켜 의형제가 되기로 약속하고 洹水(원수)라는 곳에서 白馬(백마)를 잡아 피를 마시며 맹세하여 서로의 결속을 굳게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끼리도 서로 재물을 다투는 일이 있는데, 간사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소진(대표적인 합종가)의 술책을 믿으려고 하니,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역시 명백합니다.

만약 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하여 조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북쪽 지역 전역을 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나라는 남쪽으로 내려와 위나라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위나라도 북쪽으로 올라가 돕지 않을 것이고, 위나라가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합종의 길은 끊어질 것입니다. 합종의 길이 끊어진다면 왕의 나라는 아무리 안전을 바라더라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장의(대표적인 연횡가)가 위나라 왕을 협박하는 모습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은 유럽연합(EU)부터 시작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1993년 11월 1일 발효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하면서부터 출범한 연합기구인데, 2007년 현재 참가국이 27개국으로 늘어났으며 중국, 미국에 이은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유럽연합의 구성원을 보면 당연히 가입할 것 같은 나라들은 스스로 가입을 꺼려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스위스가 그러한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스위스는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가입을 꺼리고 있다. 이는 연합이라는 개념이 철저히 경제원리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특징을 보여주는 나라는 ‘터키’이다. 터키는 1986년에 이미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놓은 상태이지만, 유럽연합은 터키의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터키는 영토 대부분이 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종교 또한 97%가 이슬람교도로 터키의 EU 가입은 유럽 안에서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에 덴마크의 조그만 신문사가 게재한 마호메트 만평이 보여주듯 유럽과 이슬람은 앙숙의 골이 깊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이 특정 대륙이나 국가에 앞서 ‘연합’을 첫 번째 화두로 삼은 것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세계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현대로 오면서 이와 같은 이합집산이 더욱 두드러졌다.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이었던 구소련(러시아)과 미국이 패권을 다투며 50년 넘게 냉전을 유지해 온 것에서 시작해, 앙숙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손을 잡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하기야 미국에 의해서 수십 만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일본은 지금 미국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은 바로 ‘이익’이다. 이익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진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은 오늘날에는 매우 당연한 말이 되었다.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

 

 

아프리카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륙이다. 지구상에 있는 49개의 ‘미개발국’ 가운데 34개국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에 총 52개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가난과 혼란’을 상징하는 곳이다. 아프리카에는 지독하게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심지어 아프리카에 저축한 돈도 선진국이나 금융규제를 덜 받는 외국에 투자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설은 왜 일어날까.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누가’ 아프리카에 투자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인도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는 ‘수익성’이 더 확실한 근거이다. 세계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인도적’으로 보기보다는 철저히 ‘비지니스’의 관점으로 본다.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세계투자의 22%를 차지하는 데, 거기에는 ‘훌륭한 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무고한 주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세계자본의 입장에서는 내전이 유지되는 것이 ‘이익’이 된다. 스위스의 국제대학원연구소는 아프리카에 약 3천만정의 소형무기가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총기상’들에 의한 밀수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 무기수출국들은 합법성을 주장하지만 합법이든 불법이든 검은 대륙을 피로 적시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무기 팔아 돈 벌고 그 가운데 일부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행태이다. 저자는 전쟁이 일어날 때에는 그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잘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공공연히 주장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독재정권을 지원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독재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한 나라의 자원이 있을 때 이것을 독재자가 독점하고 있다면, 이 자원은 독재자와 독재자를 지원하는 나라가 나눠가지면 된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 자원은 ‘만인의 공동 소유’가 되기 때문에 독재자를 지원하는 나라로서는 그만큼 가져가는 것이 적어진다. 이것이 바로 독재정권이 존립하는 확실한 이유가 된다. 저자는 국제사회가 분쟁과 위기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개입 자제

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 체첸의 분쟁에 국제사회는 개입하지 않았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있다. 반대파에 대해 한 국가가 전면전을 벌이지만, 국제사회는 대답이 없다. 한 국가 혹은 한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살인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꼴이다.

 

인도적 지원

개입을 하는 대신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분쟁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이다. 직접 개입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군사적 비용 대신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1996년 기근 이후로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 예이다. 또 1998년 앙골라 전면독립민족동맹이 무너졌을 때도, 2002년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앙골라에 인도적 지원을 해주었다. 인도적 지원이 끊기면 수단 남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근이 발생하고,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개입

국제사회의 마지막 선택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이 그랬고,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다. 이때에도 물론 인도적 지원이 병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군사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지, 진짜로 ‘인도적’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인도적 전쟁’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전쟁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원을 해주는 것이 인도적 전쟁이다.

- 책 167쪽

 

 

 

 

아름다운 그림속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

 

 

이 책의 자랑은 무엇보다 350개의 아름다운 지도이다. 이 지도의 아름다움은 색채와 자료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기 어려운 그 지역의 속사정에 대해서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중국을 설명하는 지도는 화선지를 이용하여 동양적 색감을 주고 있다. 아래의 지도는 2005년 현재 완공된 이스라엘의 장벽이다. 완공된 빨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장벽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제국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위의 빨간 색은 녹색 선의 한참 안쪽까지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인의 정착지가 있다는 이유다. 그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사로 있는데, 이와 같이 비상식적으로 세워진 장벽 때문에 1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에 사는 5,200은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 장벽, 책 106쪽>

 

이제 우리가 민족감정을 분출하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알아보자. 독도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을 확보한 덕에 일본은 자기 영토의 열두 배나 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지고 있다. 바다는 일본의 확실한 자원으로서 그 덕에 일본은 전 세계 어업 생산량의 12퍼센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나고야와 치바의 항고에 집중된 조선업은 세계 제1위이고, 편의치적선(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타국에 등록한 선박)을 제외하면 그리스 다음으로 많은 상선을 보유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처럼 일본에게 바다는 무척 중요한 자원이다. 일본 영토는 땅이 아니라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것이다.

- 글과 그림, 책 142쪽

 

 

위 그림을 보면 일본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분쟁, 아니 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독도나 동해 명칭에 대해서 과도한 민족감정이나 여타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에 비해 일본을 철저히 실리적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며, 독도와 동해 문제는 거대한 해상 계획의 일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지구본을 쳐다보면 평범한 공 모양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한다. 이 책은 지도가 하고 싶은 말을 구체적으로 재현했다. 강조해야 할 부분에는 좀더 큰 그림을 보여주고, 헷갈린 곳은 색깔을 이용해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마치 아이들이 진흙놀이를 할 때처럼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물러서 만든 ‘움직이는 지도’이다. 때문에 이 책의 결론은 역시 ‘환경 문제’이다. 지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바로 ‘환경’이기 때문이다. 아예 지도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이 결론에 관해서는 이 책의 그림을 쓰기보다는 더 좋은 그림이 하나 있다.

 

 




 

<경향신문, 2005.9.23일자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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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5-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2기의 첫 작업인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네여 ㅡㅡ;;

마늘빵 2007-05-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걸 시도하고 계시는군요! :)

승주나무 2007-05-1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프 님//저의 인생은 언제나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