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법과 도덕과 상식이 무의미했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기는 민족적 기질 탓도 아니고 반공체제의 특수성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3세계 개도국의 전형적인 역사였을 뿐 아니라, 이 책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미국의 역사도 크게 다를 바 없었던 듯하다. “신세계에서의 돈벌기 게임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쟁적 투쟁보다 더 거칠고 신사답지 못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사기, 편법, 폭행, 살인, 유괴, 난투극 등이 한창이었는데, 현란한 이전투구 속에서 계급격차가 심화되면서도 사회는 왜 이해를 달리 하는 계급간의 적대가 격렬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럭저럭 잘 유지되었던 것일까.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베블런은 상층계급(유한계급)이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고 하층계급은 상층계급을 존경의 대상 혹은 롤모델로 삼음으로써 사회가 응집력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이때 과시와 모방은 경제행위의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이 책에서 베블런에 대한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기업가를 가리켜 “사회적 기계에 저항하여 음모를 꾸밈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고 여긴 대목이다. 그는 기업가가 기계적 생산체제라는 토대 위에 금융이라는 상부구조를 세우고, 이런 구조 속에서 상품의 정규적인 흐름을 교란시키고 가치변동과 혼란이 발생하도록 하여 이윤을 거두어들인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마치 브로델이 '시장경제'라는 하부구조 위에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독점하고 그것을 운용하는 권력'으로서의 '자본주의'라는 상부구조가 존재한다고 말한 것을 연상케 하는데, 그가 브로델과 다른 점이라면, 토대가 되는 구조를 ‘기계 생산 체제’로 보았다는 점이다.

과연 베블런은 기계 신봉자였다. 그는 기계적 생산체제가 기술자로 하여금 의식성장을 촉진해서 조만간 전문성을 가진 기술자 집단이 금융교란으로 이윤을 챙기는 경영자들을 몰아내고 생산기계의 원리(라는 다소 모호한 원리)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전망은 뭔가 공상적이고 황당한 느낌을 준다. 한편, 이 책에 의하면 베블런은 <미국의 고등교육>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대학이 어떻게 “미식축구의 중심지”로 타락했는지 비평하기도 했다는데, 미국 대학의 학문적 타락이 벌써 20세기 벽두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말이니 새삼 대학의 위기를 걱정할 일도 아닌 듯하다.  

아래는 푸르동이 마르크스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 진정한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 하지만 제발, 기존의 모든 교조주의를 분쇄한 뒤에는 다시금 민중에게 교의를 주입시키는 일에 빠져들지는 맙시다. (...) 우리가 새로운 운동의 선봉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로 비관용의 선두에 나서지는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체하지 맙시다. 그것이 비록 논리의 종교, 이성의 종교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모든 반대파를 모으고 격려합시다. 모든 배타주의, 신비주의를 금지합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率路 2010-11-3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군대에서 읽은...;;;; 무슨 군대에서ㅋㅋㅋ-_-;;;;

수양 2010-11-3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생활 알차게 보내셨는데요 ㅎㅎㅎ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이 정말로 '상처적 체질'이었다면 시집의 제목을 이렇게 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상처를 남발함으로써 상처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설한다. 상처, 눈물, 슬픔... 이런 언어들이 시에 자꾸 들어있으면 의심스럽다. 그런 시들은 대개 극점에서 씌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적어도 시는, 스노비즘이어서는 안 된다. 그건 이미 시가 아니다.  나는 잔인하게도, 이 시집의 시인이 좀 더 상처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0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내게는 좋은 입구가 되었다. 베블런, 좀바르트 등등 차근차근 알아가 보고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특정한 생산양식이나 경제 제도로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물질적 발생과 그 발생을 둘러싼 총체적인 사회 관계,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그러한 움직임을 운용하고 조정함으로서 사회를 특정한 모양새로 구축해 나가는 권력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 헤게모니 정신으로서의 자본주의, 레짐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살펴보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아니, 필요하다기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은 그저 해수의 표면을 부유하는 미립자와도 같은 존재이지만, 그리고 그러한 처지에서 오는 무력감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심층의 거대한 해류를 관찰하고 그 흐름을 조망해 보는 일은, 그 자체로 내게는, 다소 이상한 얘기 같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뭔가 상당히 유미주의적인 탐구활동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목도하는 일들에 대해 느끼게 되는 부당함과 무력감, 공포 등등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이 자본주의라는 것을, 정치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마치 생물학자가 경이에 가득차서 탐미적인 시선으로 자연의 생명현상을 탐구하듯이 공부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1 모든 길들여진 영혼, 시들고 야윈 영혼에게 니체는 훌륭한 양분이다. 니체를 통해서 우리는 강해진다. 격전을 준비하는 스트리트파이터의 주인공처럼 두 손을 불끈 쥐고 바운스를 타게 된다. 니체가 위험한 것은 그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파이터-그것도 투쟁적인 세계를 헤쳐나가는 파이터가 아니라, 세계와 대결하고 세계를 전복하기 위해 투쟁적인 파이터-의 철학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니체의 사유에서 “지적으로 성숙하고 진정으로 도전적인 부분”과 “철학적 환상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이야말로 고루한 학자들이나 하는 바보 같은 짓일 것 같다. 차라리 우리는 니체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파이터의 철학’임을 감안하고, 그 사납고 오만하고 ‘근자감 쩌는’ 문체에 기꺼이 중독되는 편이 낫겠다.

2 니체가 보기에 진리는 종교나 도덕과 같이 인간이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고안해낸 개념으로 종의 보존과 생장을 위한 효용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고 편파적이며 부정확하고 오류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움을 이어나가고 진리를 추구하길 멈추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배움을 통해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지식을 흡수하고 소화하고 거기서 영양을 취하고 생장한다. 이는 곧 부단한 지적 대사작용이다. 활동능력의 증강은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좋음’이고 ‘선’이다. 개체의 활발한 생명활동으로서의 진리에의 열정은, 그런 면에서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1-2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7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첫사랑 / 이영주
 
쪽문 옆에서 언니는 잠이 든다. 저녁이면 마당에서 펄럭이는 셔츠의 한쪽 소매를 만지던 언니. 동생은 더러워진 빨래에 대해 단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하늘을 날지 않는 새들은 동작을 멈출 줄 아는 도롱뇽 같아. 끝에 닿기 전에 한 번쯤 정지하는 일 말야. 언니는 동물도감을 펼치고 도롱뇽 꼬리를 부엌칼로 잘라 낸다. 쪽문을 드나들다 키가 큰 언니는 매일 밤 흰 목을 구부린다. 난간에 걸친 달이 몸속에 뼈를 세울 때마다 언니는 어깨가 아프다. 그를 찾아가도 될까? 이제 더 이상 손발이 자라지 않으므로 언니는 밤마다 짐을 꾸린다. 오늘의 달은 구겨진 흰 셔츠처럼 마당에 떨어진다. 쪽문을 떠나기 위해 언니는 립스틱을 바르고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묵을 곳은 분화구밖에 없어. 달의 도면을 펼치고 도롱뇽이 분화구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1 내가 골룸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음습한 동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반짝이는 절대반지를 움켜쥐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있고 싶던 마음일 때, 어둡고 따듯한 골방에 숨어들어 모든 촉수를 내부로 말아넣고 온종일 웅크린 채 지내고픈 마음이었을 때, 나는 스스로 즐거이 유배 당하고 싶었다. 꼬리를 떨쳐버리고 분화구 안으로 들어간 언니, 언니도 나와 같았을까. 

2 하늘을 날지 않는 새들은 의젓하다. 살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베어낸 도롱뇽처럼, 더러워진 빨래에 대해 아무 말 없는 동생처럼, 단념할 줄 아는 짐승들은 모두 의젓하다. 그것은 슬픔을 견디는 고귀한 방식이다.

3 마당에서 펄럭이는 셔츠는 난간에 걸친 달처럼 닿을 수 없이 찬란했겠다. 그러나 셔츠는 언니에게 고작 한쪽 소매 정도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마저도 오늘은, 달조차 "구겨진 흰 셔츠처럼 마당에 떨어"지고 마는, 그런  날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살기 위해 단념했을 때, 단념하고 도롱뇽처럼 제 몸뚱이 일부를 잘라 삶에게 내어주었 때, 언니는 이제 더 이상 “손발이 자라지 않는” 의젓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언니가 곱게 단장하고 길 떠나는 곳은 "깊은 잠 속"이다. 그리고 깊은 잠 속에 도착해 여장을 풀 곳은 "분화구"다. 분화구는 뜨거운 내부이자, 안에서 바깥을 향해 최초로 그 뜨거움을 터뜨리는 입구이다. 분화구는 자폐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분출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기도 하다. 언니는 그곳에서 "첫사랑"인지도 모를 "그"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것들이 모여 한 권의 시집이 되었을 것이다.  

4 이 시는 아마도 시인이 발표 후에 약간 손을 본 듯하다. <2007 올해의 좋은 시>(현대문학, 2007)에 실려 있는 것과는 몇몇 구절이 다르다. 나도, 바뀐 시가 더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