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히로시는 그때그때 주어진 대로, 되는 대로 살았지만, 거기서 사랑하는 요소를 발견하고 열심히 소중히 살았다. 탁월하지 않더라도 보이는 것들 속에서 가장 좋은 면을 보려하고, 좋아하는 것은 놓지 않고 계속 노력한다. 지금 여기, 그리고 미래의 저쪽까지 어쨌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소중하게 만들려고, 해서 그는 정말 즐겁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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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최은영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수시로 바뀌지만 지금은 최은영이다. 최은영!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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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대로 옛날 생각이 나서 읽던 페이지를 펼쳐두고, 이런 일 저런 일 짧은 일기를 적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2월 초에 (책 선물할 일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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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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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저녁 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나쓰메 소세키를 아시느냐고 여쭤보았다. 워낙 신문을 자주 보시니 특별히 문학에 관심이 없어도 유명한 작가 목록은 어느 정도 훑는 분인데, 그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대신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안다고 하셨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상을 받았으니, 신문에 이름이 나오긴 나왔을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인세 수입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어, 다소 강한 인상을 받아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나쓰메 소세키가 국민 작가이고 일본 지폐에 등장했던 인물이라 말씀드리자 그런 작가가 있었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셨다.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번역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행인>을 읽으면서, 아버지께 어떤 부분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특히 오빠가 독립한 뒤로 점차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드는 점이나, 어릴 적 어머니가 두 형제를 다루는 모습에 나타나는 차이 따위가 비슷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문호란 대인간관찰자에 다름 아니다, 소세키는 오랜 세월 위궤양을 앓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행인>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 형, 돌아오고 나서, 번뇌. 이렇게 나누어진다. 친구/형, 돌아오고 나서/번뇌. 이렇게 3개의 중편으로 세분하여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럽지 않을 듯하다. 특히 앞장 '친구' 편은 개별적으로 읽어도 완성된 느낌이 있다. 그래서 혹시 <행인>의 두꺼운 분량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앞장만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시작 또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메다 역에 내리자마자 나는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곧장 인력거를 잡아타고 오카다의 집으로 달렸다. 오카다는 어머니 쪽으로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대체 어머니와 어떻게 되는 사이인지도 모른 채 그저 먼 친척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오사카에 내리자마자 그를 찾아간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일주일 전에 한 친구와, 지금부터 열흘 안에 오사카에서 만나자, 그리고 함께 고야 산에 오르자, 만약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세에서 나고야까지 둘러보자, 라고 약속을 했는데 둘 다 오사카에는 딱히 만날 만한 장소가 있는 게 아니어서 나는 그 친구에게 그만 오카다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던 것이다.(행인, 현암사, 15쪽)




   러시아 소설만큼 일본 소설도 이름과 지명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오카다, 오카네, 오사다, 오시게. 인물 이름이 짧긴 해도 굉장히 헷갈리는 구조다. 읽다보면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공책에 이름을 적어놓고 읽었다. 그렇지만 얼마 읽지 않아 인물들의 개별적 윤곽이 잡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비슷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었다(그로 인해 중반부까지 굉장히 탄력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 천천히 읽으려 해도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갔다, 물론 이것은 '중반부'까지의 상황이다. 세번째 장이 시작되면서 소설은 느린 독서를 요구하는 듯 하다). 얼마 전 독서한 <보바리 부인>에서는 좀처럼 인물의 개별성에 닿지 않는 인물의 전형성을 읽었다면, <행인>에서는 반대로 인물의 전형성에 닿지 않는 인물의 개별성/개인성을 읽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저렇구나 감히 판단내릴 수가 없게 된다. 인물의 내면을 탐사해가면서, 사건은 먼지 더께가 앉은 듯 흐려진다. 가령 형인 이치로가 부인인 나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형과 함께 여행 중인 H의 편지를 통해 2중으로 흐릿해진다. 신경쇠약을 겪는 이치로의 광기가, 가족에게 폭발한 최초의 사건은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남기지 않는다. 이치로의 부인 나오는 이치로에게 맞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처럼 저항없이 맞는다. 사실 나오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부의 인물이다. 화자인 지로와 지로의 형인 이치로 사이에서 두 사람의 사색을 더욱 깊게 만드는 여자로서 등장한다. 그녀로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로가 형수인 나오를 두고 생각하는 구절을 읽어보면,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더 명확히 알게 된다.



  나는 그동안 한 사람의 형수를 여러 가지로 보았다. 그녀는 남자조차 초월할 수 없는 것을 시집온 그날부터 이미 초월해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쩌면 처음부터 초월해야 할 담도 벽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자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때는 또 그녀가 모든 것을 가슴속에 넣어두고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야무진 사람처럼 비쳤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는 흔해빠진 야무진 사람의 단계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그 차분함, 품위, 과묵함, 누가 평해도 그녀는 너무 야무진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놀랄 만큼 뻔뻔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떤 순간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고상함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아 있는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요컨대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서 거의 천성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행인, 현암사, 303쪽)



   화자인 지로는 형수와 자신 사이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어 형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로 역시 형수만큼이나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이러한 처사는 늘 형의 의심을 사게 된다. 그것이 형의 예민한 신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형이 형수에게 손찌검을 하게 된 계기 중 많은 부분은 지로의 애매한 태도에 있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 소설에서 모든 사건은 흐릿해지고, 작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발설하며 오히려 자신을 지워나간다. 지로의 형인 이치로의 경우, 모두의 관심과 걱정 속에서 주시되고 있지만 그가 어떤 정신적 상태로 고통받는지 알 수 있는 증거는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난 H의 긴 편지 뿐이며, 편지의 주관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형의 상태는 도저히 객관적으로 이렇다, 결론 내릴 수 없는 처지이다. 게다가 나쓰메 소세키는 영원히 시원한 답을 내려주지 않을 작정으로 H의 편지를 끝맺으면서, 동시에 소설을 끝낸다. 내내 기대하고 있던, 편지를 받아본 지로의 반응이나, 형수와 지로의 관계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 한 발 물러선 (진심으로는 사려깊다 할 수 없는) 지로처럼 책을 읽은 독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쓰여지지 않는 <행인>의 다음 장이 어떻게 되어갈 지 짐작하며 H의 편지를 읽을 뿐이다.



  자네나 어르신들은 형님의 장래에 대해 특별히 명료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바랄지도 모르겠네만, 예언자가 아닌 나는 미래에 참견할 자격이 없네. 구름이 하늘을 어둑하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리는 일도 있을 거고 또 비가 내리지 않는 일도 있을 거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네. 자네나 어르신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며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행복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네.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 하고 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인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행인, 현암사, 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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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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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말해도 날아가지 않았기에, 이 말은 계속된다. 그리고 계속되고 있으므로 알게 된다. 여전히 아프고 부지런히 위로해야 한다. 성실히 위로받아야 한다. 미아키 스가루. 이 작가에 대한 어떤 이들의 팬심이, 좀 대단하다고 느꼈다. 좋아하는 마음을 한껏 드러내도 괜찮을, 그런 뭔가가 있는 걸까. 그 기세에 밀려 앞뒤 재지 않고 미아키 스가루의 신작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를 구입했다. 읽어오던 소설과 다소 달랐다. 가볍다면 가볍지만 가없다면 정말 가없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두 사람의 불행을 너무도 쉽게 보여주고 만다. 애틋한 감정을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눈치채게 만든다. 이것은 독서의 진입장벽을 한없이 낮춘, 노골적인 전개다. 잔인한 묘사도 뭉그러뜨리지 않는다. 가혹은 흐려지지 않고, 촘촘하게 엮인다. 그것이 의외라면, 의외인 부분이었다. 철저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도중에 몇 번 책장을 덮었다. 두 번째로 책을 덮은 순간, 아마도 다시 펼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삶을 망친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 그 잔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그 방식이 여자 주인공인 키리코가 사용하는 양재가위처럼 날카롭게 신경을 세웠다. 하지만 언제 다시 펼쳐든 걸까. 잔인성과 가혹성에도 불구하고 키리코와 미즈호 군이 만들어내는 연약하고 기묘한 평온에 매료되었다. 결국 무심결 책을 펼쳤다 불편한 자세로 읽어 나갔다. 나중에는 독서대를 펼치고 책상에 앉아 끝까지 읽었다. 사로잡힘이 있는 가독은, 독자에게는 충분한 미덕이라 생각한다. 미아키 스가루는 그것을 해냈다. 예고된 만큼 복잡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키리코와 미즈호 군이 빠진 불가해한 함정 속에서, 나는 예고되지 못한 복잡한 심경에 자주 휩싸였다. 어찌할 수 없음을 어찌할 수 없음으로 두어야 하는 '약함'을 이겨내기 위해, 키리코와 미즈호 군,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날아가지 않겠지만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적어도 진심을 다한 위로는 지치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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