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15 엘피 공장 산책기 좋다. 어떤 미래를 바라보기에 현재를 꼼꼼하게 채워나가고 있는 걸까. 그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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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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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은 `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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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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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김영하 소설 읽었다. 두 시간이면 완독. 교묘하게 편집한 영화 보는 듯 하다. 김영하 소설은 확실하다. 이 작가는 이걸 쓴다 하면 이걸 써 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죄는 단죄된다(이것이 작가가 지키려 한 `이걸 쓴다`였을까). 여튼 죄인도 모르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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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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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눈덩이를 굴리고 굴려서 빙산도 만들어내는 작가, 큰 이야기를 이겨내는 그릇이 있는 작가, 김연수 정말 좋다. 이 소설집에 있는 달로 간 코미디언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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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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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 대학원 동기들과 수업 후 까페에서 수다를 나누던 평화로운 순간, 과제는 많지만 다음 수업까지는 무려 일주일이나 남았다며 한가로이 커피를 홀짝이던 그 순간, 그 질문은 방심한 옆구리를 강타하듯 기습해 들어왔다. '도대체 새들은 어디서 죽는 거지?' 동기이기는 하나 나보다 아홉인가 열 살이 많은, 철학과 출신 문학도의 공허한 울림이었다. 그 날 우리는 시 수업을 들었고 누군가 새에 대한 시를 써와 그것을 함께 읽었다. 그 시에서 새들은 어찌 알고 그 투명한 유리창을 피해 허공을 나는가, 하는 식의 문장이 있었는데 새들은 투명 유리를 허공으로 착각하고 부딪쳐 죽는 경우가 오히려 많지 않은가요, 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골방의 시와 광장의 현실 사이 괴리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정말로 그 둘 사이 분리는 당시 우리에게 지나치게 민감한 문제였다). 시의 낭만성은, 비현실에서 기반한 것이 아닌 거야, 현실에 땅을 짚어야 낭만도 철저해진다. 뭐 그런 답을 내리려 애쓰면서. 그 테이블에 몇 명이 모여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이며 그 질문 '새들은 어디서 죽는가'에 대해 우리는 약간의 공방을 벌였다. 나는 '공방'이라기보다는 '감탄' 쪽에 가까워, 어떻게 그런 질문을 생각하실 수가 있냐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누군가 로맹 가리를 언급하며 '거기서 죽잖아. 페루.' 라고 농을 쳤다. 웃을 수 없는 허무한 개그였고, 웃었다면 그것은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리라. 그 시간들은 벌서 7년 전의 일들이 되어버렸다. 7년이라니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질문만큼은 내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해가 지날 수록 선명해졌다. '새들은 어디서 죽지?' 종종 그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공원을 돌다가 한국전력이 세워놓은 커다란 철제 네모 박스 위에 얼어 죽은 비둘기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내릴 수 없지만, 그 날 비둘기의 모습을 떠올리면 새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죽을지 절대 모르리라, 그러니 그 질문에는 영원히 답할 수 없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새를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으로 새들은 페루에 가다, 라는 제목의 책과 연이어 로맹가리를 떠올렸다. 


로맹가리는 말하자면 '새'의 매개였다. 아니면 '새'가 로맹가리의 매개였다. 그러다가 <자기 앞의 생>을 읽은 이후,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매개가 되었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의 매개가 되었다. 로맹 가리에 대해서 부지런한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가 진 세버그라는 스물 다섯이나 어린 여배우와 결혼하고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며, 프랑스 외무부에서 공직을 수행했다는 것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 때면 늘 그렇듯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마음 편하게 지나치는 습성을 발휘했다. 그는 새이면서, 에밀 아자르이고, 마성의 남자, 거짓말의 황제 그리고 공무원이었구나. 그랬구나. 그리고 모든 연결의 부작용을 한 번에 관통하듯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내 삶의 의미>는 그가 죽기 몇 달 전 캐나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준 이야기였다. 책표지를 철저히 살펴보지 않았으니, 처음에는 짧은 소설이라고 착각하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그냥 로맹 가리 그 자체였고, 손쉽게 뒤표지를 돌려 읽어보니 그렇단다. 정말 이건 그냥 로맹가리의 이야기였다. 삶을 돌아보는 긴 유서와 같은 짧은 책. 단숨에 후루룩 읽어버리자 몇 십 년이 흘러 있었고, 로맹 가리는 죽었다고 한다. 이 문장들 안에서 반짝이는 생명이 도대체 무엇인가 싶게. 맹렬한 삶의 활력이 로맹 가리 언술에 남아 있었다.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망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저버렸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지요.(117)' 권총 자살이라는 비극 앞에서, 유서와 같은 문장 앞에서, 애도하는 기분으로 문장을 숙고해본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정착하여, 어머니의 꿈인 '프랑스'를 살아내려는 노력이 어쩌면 로맹 가리의 추구였을까. 아마도 로맹 가리의 뼛속에 각인된 어머니의 프랑스 동경과 숭배는 그가 영원히 떨쳐 낼 수 없는 허상이었을 테다. 하지만 어머니의 꿈인 '프랑스 대사' 자리를 코앞에 두고 포기한 것을 보면 마지막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허상이 '어머니의 프랑스'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존재' 혹은 '어머니라는 여성성'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는 '훗날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여성성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118)'이라는 소망을 남긴다. 그리고 주어진 모든 삶에 철저히 부딪히며, 그 맹렬한 과정이 오히려 순응적으로 보일 정도로 열정이 끊이지 않는 이 삶을 살아낸 작가는 자전적 회고의 처음과 끝을 비슷한 말로 끝맺는다. '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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