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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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테드 강연으로 유명한 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얇은 책이다. 애초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하지 않던 아디치에가 사전에서 찾은 페미니스트 뜻은 이렇다.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일체 여성적인 것을 거부하여 일부러 제모하지 않고, 하이힐을 신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흔히 오해하는 남성혐오자=페미니스트 공식은 케케묵은 옛날의 것이다. 사견이지만 남성 혐오를 바탕에 둔 여성의 불평등 해소는 자칫 남성 불평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예전에 미혼의 한 여성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면 '돈 버는 일'도 '집안일'도 남편이 다 하게 만들 거야 라고. 당시 나는 좀 의아해 하며 넘겨 들었지만, 훗날 거듭 떠올리면서 그 농담은 농담이란 핑계를 대더라도 이기적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아니라 노예를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녀 개인의 의식 문제가 아닐 수 있었다. 결혼한 여성은 살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집안일도 남편'에게 미루겠다는 생각을 낳게 한 건 아닌가. 그녀가 '집안일'을 자신에게 부과될 노역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 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리자로 남편을 내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살림이 여자의 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집안일은 그녀의 일만이 아니게 되고 그러므로 그녀의 남편이 집안일을 온전히 떠맡게 될 확률도 거의 없다고 본다. 



중학생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외출하면, 둘 다 십대라서 용돈이 몇푼 없는 것은 똑같지만 늘 남자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내야 한다고들 여깁니다. (그러고서는 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부모의 돈을 슬쩍하는 경우가 더많을까 의아해하지요.) 

만일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남성성과 돈을 연결 짓지 않도록 배운다면 어떨까요? "원래 남자애가 내는 거야" 대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내는 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누려온 이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대체로 남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년 혹은 백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츠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30-31)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강요로 일어나는 문제를 아디치에는 위와 같이 지적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일상에 도사리는 모호한 문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만 아니라 남성 문제도 말한다. 젠더는 연결되어 있으니 여성을 말하면 남성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나면 성적 불평등은 교양과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이 잘 이뤄진 나라인 스웨덴에서 여러 단체 후원으로 이 책을 16세 스웨덴 청소년 모두에게 선물했을 때, 이 현상은 뉴스거리 조차 되지 못했다고 한다. 유일한 불만은 이 책이 스웨덴 고등학생들에게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십대 청소년에게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이야기가 구식이라니. 왜 나의 16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16세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까. 지금 스웨덴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 불평등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이다.



나는 내 여성성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만하니까요. 나는 정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사상에 관해서 훌륭한 논쟁을 벌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성스럽습니다. 여성스러워서 행복합니다. 나는 하이힐을 좋아하고, 립스틱을 바릅니다. 남자에게 받는 칭찬도 여자에게 받는 칭찬도 다 좋지만(솔직히 털어놓자면 스타일 좋은 여자들의 칭찬이 더 기쁘긴 합니다), 가끔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그 옷을 입으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남성의 시선"이 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대체로 부수적입니다.(43)



솔직히 책을 읽기 전까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뜻모를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정의도 몰랐다. 그저 '극단적인 어떤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거부하는 건 페미니스트라는 기표 아래 숨은, 무조건 순응하지 않으려는, 귀를 닫아버린, 극단적인, 유연하지 못한, 예쁜 것을 혐오하고 남성성을 싫어하고, 반대편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끝없이 불만을 제시하는 피로한 영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상들은 누가 만들었던 것일까. 확실한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아낸 인상이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잔상은 자신도 모르게 습격당한 상처 같은 것이었다. 미디어 폭력의 일부일 수도 있다. 지인들의 친절한 충고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남아 있는 것은, 좀 다른 기의들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인정하되 그것의 '평등' 또한 부지런히 인정하는 것이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예쁜 건 예쁜대로, 멋진 건 멋진 대로 옳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집중하면서 타인이 추구하는 삶도 존중하는 근면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페미니스트'라는 기표는 올바르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런 과제를 남기는 것 같지만, 이 질문으로 끝을 맺는 건 (내 생각에) 옳지 못하다. 아직 그 단어는 너무 많은 오독에 시달리고 있고, 단어 속으로 나의 개별성을 집어넣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런 질문을 해보는 건 나쁘지 않으리라. 앞으로는 자신을/타인을 성별로 구분짓지 않고 개별적으로 존중하려 노력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대체로 답이 정해져 있다. 혹시 그 답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굳이 대답을 하자면 이런거다. 네. 네. 당연히 YES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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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자연, 좋은 마음씨를 가진 유쾌한 친구, 주말마다 일본식 스위츠, 호수에서 카약타기, 다 정말 좋은데 이건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인가 묻게 된다. 그래도 마스다 미리 만화에서 일상을 견뎌나갈 작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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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편견에 강요당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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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_17 `물건을 고른다는 것은 나다운 인생을 선택하는 것과 통합니다.` 생활에 있어 버리기 만큼 소중하게 선택하기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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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_16 다니구치 지로 만화를 연달아 두 편 읽었다. 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그걸 모르더라도 정확히 천천히 걸어나아간다. 기다림에 가까운 긴 산보는 미래의 구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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