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 Jeon Woo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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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협지라면 질색을 하는 편이다. 열 살무렵(혹은 열 서너살) 무협지를 딱 한 번 보고 다시는 무협지를 책으로 분류하지 않고 쓰레기로 분류했다.(난, 어렸을 때도 건조한 인간이었던 거 같다) 장풍을 쏘아대고 축지법으로 한 걸음에 수만 킬로미터를 가는 일이 신기한 판타지가 아니라 황당무계했다. 전우치를 보면서 어린 시절 딱 한 번 봤던 무협지의 아우라가 연상됐다.

오백 살도 넘은 인물들은 시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어 산수화 속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광고판, 텔레비전, 벽, 어디든 공간이동이 가능하다. 그들이 21세기 서울의 빌딩 숲을 누비는데 묘한 쾌감이 있다. 이 쾌감의 실체를 들여다보니 고층건물 숲 속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봐왔던 익숙함 속에 한국적 정서가 녹아있다. 무협이라는 한국적 정서가 이 영화를 애정을 갖고 볼 수 있는 힘이다.  

뉴욕이나 엘에이에서 스파이더 맨이나 배트맨이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청계천, 광화문에서 조선시대 출신인 사람들이 장풍과 불을 쏘아댄다. 그들은 맞아서 쓰러지고 뼈가 부러져도 멀쩡하게 살아난다. 할리우드 영화가 첨단과학기술의 산물인 로보트나 인조인간을 내세운다면 <전우치>는 '도사'라는 오래 묵은 사람이다. '도사'의 전능함은 신을 능가한다. 한국식 사고는 신VS과학이 아니라 신의 변형체들이 있다. 요괴, 도사, 부적, 신선, 호리병, 그리고 윤회를 바탕으로 과부도 스타일리스트로 부활한다. 이런 요소들이 현대적 아이콘들과 조합하면서 묘한 액션을 만들어낸다.  

최동훈 감독 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한다면 캐릭터 열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캐릭터 열전이 눈부시다. 인물 각자의 개인기가 빈약한 플롯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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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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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따뜻한 나라로 잠깐 여행 다녀온 거 말고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봤다. 맹렬한 추위는, 발걸음을 주차장에서 집으로 직행하게 한다.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올해처럼 겨울이 견디기 힘든 적이 없는 거 같다.  

오늘도 외출했다 차를 세워놓고 극장에 가려고 했다. 집을 나설 때는. 잽싸게 집에 들어와서 극장만큼은 위안이 되진 않지만 컴퓨터 모니터로 건조하고 피폐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뻔할 거 같아서 안 봤던 영화다. 극장에서 봤더라면 분명히 눈물을 흘렸을거다.   

일상이란 소중하지만 늘 반복되어 같은 것처럼 여겨져 종종 무시당한다.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의 의미를 깨닫는다. 아내가 싸준 점심 샌드위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직접 샌드위치를 싸서 부재를 거부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부재는 점점 더 강조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야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남편은 아내가 원했을 공간, 일본으로 여행한다. 낯선 것으로 가득 차고 아들 집에 오는 길조차 쉽지 않은 그런 미지의 공간에서도 아내의 부재는 또렷하기만 하다. 아내가 남긴 스웨터와 치마, 그리고 목걸이만이, 그도 한때는 아내가 있었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아들도 일본에서 스치는 낯선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유품. 거리에서 춤 공연을 하는 십대 소녀는, 그가 가진 물건을 보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며칠 동안 소녀를 만나러 가면서 혼잡한 도쿄 전철도 익숙해졌다. 어떤 공간이나 사물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 스며들어야 익숙해지면서 정이 든다. 사람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물건이나 공간은, 그저 스쳐가는 풍경이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후지산은 식탁보나 엽서에나 남아있는 이국적 풍경일텐데 혼자 남겨진 남편은 후지산을 보러간다. 후지산을 보는 건 곧 아내의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아내는 없지만. 

우리는 이렇게 추억을 끄집어내고 연상작용을 가동시켜 슬픔이란 무형의 괴물을 이겨보려고 한다. 대체로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는 대체로 슬픔을 이겨내지만 이 영화에서 남편이 가진 물리적 시간이 적다. 남편은 익숙한 아내의 곁으로 간다. 아름다운 동행이다.

 덧. 올해 벚꽃 필 때, 교토에 갈 수 있었으면....좋겠다. 내 여행이 허기진 이유는, 풍경과 사물에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연결시킬 수 없이 고즈넉한 탓이다. 고즈넉한 풍경이 짙어져 고독만이 내 여행에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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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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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을 보면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든 봐야지, 하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쟁쟁한 여배우들이 한 곳에 모인 것만으로 큰 관심거리였다. 배우들, 나아가 연예인들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안다. 물론 미디어에서 다루는 범주에 한정되지만. 상대는 우리를 모르고 우리는 상대를 아는, 우리가 우위를 선점한 채 이러쿵저러쿵 맘 놓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악담이나 험담도 있지만 대개는 호불호에 대한 간단한 평 정도다.  

극중 윤여정의 말대로 "짜고 치는 거"라도 상관없다. 이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이 실제상황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실제 캐릭터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으로 영화를 대할 것이다. 영화는 이런 점을 대충 잘 얼버무린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연기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연기 속에 진실이 있고 진실 속에 연기가 있는 교묘한 접점이다.  

촬영이 늦어지면서 와인파티를 하는 동안 여배우로 사는 것에 대한 괴로움에 대해 토로한다. 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난 사실 좀 작위적 느낌을 받아서 삐딱하게 봤다. 그러나 연륜있는 사람의 말 속에는 진리가 담겨져 있는 법이다. 최지우가 여배우라서 겪어야하는 수모가 있다고 하자 윤여정은 대신 여배우라서 받는 갈채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사물의 양면을 볼 수 있는 지혜의 소유자시다. 여배우란 직업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대체적인 인간사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나니... 

이 영화에서 최지우 캐릭터와(완전 얌체공주) 고현정의 캐릭터(털털 무대뽀)는 재미있다. 립서비스 술술하는 고현정과 자신밖에 모르는 최지우가 화면 밖에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화면에서 보기에는 눈에 띄는 캐릭터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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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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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서사가 일본스럽다. 시간을 재구성했지만 줄거리를 요약하고 범인을 알아보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대체로 심증이 간다.ㅋ 줄거리야 그렇지만 촬영기법도 대체로 관습적이다. 눈에 띄는 거는 인물들 얼굴 클로즈업이다. 너무 잦아서 문득문득 놀랄정도다. 긴장감을 주지 않는 장면에서도 인물들은 얼굴을 스크린에 들이댄다. 아마도 감독과 촬영감독의 취향인듯. 이 영화를 보고 끄적거리고 싶은 부분은 인물, 정확히는 배우들이다.  

1. 한석규-나의 옴므파탈이신데 세월에는 장사없다고, 세월의 무게가 흠뻑.ㅠㅠ 극중 캐릭터가 한물간 형사로 등장하지만 실제처럼 여겨져 가슴아프다. 어째 마른 것 같기도 하고. 형사 역이 이 아닌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역할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2. 고수-고수 좋다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목구비는 또렷하지만 표정이 없고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눈을 가졌다. 이 영화에서는 완전 재탄생. 손예진보다 더 결이 좋은 피부를 자랑한다. 또렷한 이목구비 소유자답게 옆모습이 정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라스트 씬에서 위쪽에서 비스듬히 잡은 고수의 얼굴샷은, 크레딧이 올라가도 안 잊혀진다. ㅋ 

3. 손예진-참 연기 안 느는 배우다. <외출>,<무방비 도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와 똑같은 대사톤이다. 예쁘장한 얼굴만 있는 배우다. <무방비 도시>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카리스마를 지닌 역할인데 카리스마는 커녕 예쁜 인형이 생긋 웃는다. 그럼에도 손예진이 출연한 영화는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본 거 같다.-_-

4. 이민정-요즘 내가 예뻐라 하는 배우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끔 보는데 볼수록 예쁘다. 살짝 비음이 들어간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사랑스럽다. 다음에 손예진을 제치고 손예진 역할을 하기를, 내가 꼭 볼게요.ㅎ 

5. 차화연-드라마 <씨티 홀>에서도 나왔는 데 차화연인지 크래딧보고 알았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년여인줄 알았는데 암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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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 T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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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OCN에서 봤다. 앞부분 좀 놓쳤지만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아무 지장없고 마지막을 놓쳤다. 밤에 혼자보다 상황종료된 시점에서 무언가 다시 일어날 거 같아 무서워서 전원을 꺼버렸다.-_-;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다 보지 않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태도, 별로 좋지않지만 꽤 괜찮라 몇 마디 끄적이고 싶다. 한국영화는 이제는 일정한 궤도에 확실히 올라있는 거 같다.

이 영화는 미덕이 많은 영화다. 스릴러란 장르적 특성과 트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로드무비의 예측 불가능한 특징을 잘 활용하고 있다.

헐리우드가 범인을 나중에 밝히는 수법을 써서 관객이 함께 추론해가게 유도한다.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즐기는 이들은, 그래서 자신들의 논리적 추론 능력이 좋아서 두뇌게임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착각을 한다. 할리우드의 서사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단순한 사실도 디테일로 승부를 걸어 여러 가지 반전 장치를 숨겨놓는 계산이 필요한데 이 계산을 잘 하는 게 할리우드 스릴러다. 할리우드 시스템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에 한국 스릴러는 범인을 초반에 알려주고 출발한다. 관객은 이미 범인을 알고 있고 극중 인물만 모를 때 빚어지는 감정이입을 초반부에서 사용한다. 범인이 밝혀진 후에는 범인의 행동반경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방점을 둔다. 이런 도식은 자칫하면 김빠지기 쉬운데 이 영화는 끝까지 극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해진의 불안한 표정과 진구의 능청스런 연기는 백미다. 진구는 주는 것 없이 정이 안 가는 비호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비호감 지수가 좀 내려갔다.ㅋ  

달리는 트럭이니 배경이 당연히 도로다. 여기에 비가 오는 밤거리는 으슥하고 트럭 옆에서 바퀴와 같은 위치에서 카메라는 움직인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본다. 카메라의 눈을 통해 우리는 바퀴가 돼서 도로를 응시한다. 코너를 돌 때 비스듬한 속도감은 지루할 수 있는 대화씬을 도와주는 훌륭한 미장센이다.   

이런 오락 영화를 보고 철학 운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오락 영화가 어떤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지가 오락 영화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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