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2월에는, 따뜻한 나라로 잠깐 여행 다녀온 거 말고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봤다. 맹렬한 추위는, 발걸음을 주차장에서 집으로 직행하게 한다.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올해처럼 겨울이 견디기 힘든 적이 없는 거 같다.  

오늘도 외출했다 차를 세워놓고 극장에 가려고 했다. 집을 나설 때는. 잽싸게 집에 들어와서 극장만큼은 위안이 되진 않지만 컴퓨터 모니터로 건조하고 피폐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뻔할 거 같아서 안 봤던 영화다. 극장에서 봤더라면 분명히 눈물을 흘렸을거다.   

일상이란 소중하지만 늘 반복되어 같은 것처럼 여겨져 종종 무시당한다.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의 의미를 깨닫는다. 아내가 싸준 점심 샌드위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직접 샌드위치를 싸서 부재를 거부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부재는 점점 더 강조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야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남편은 아내가 원했을 공간, 일본으로 여행한다. 낯선 것으로 가득 차고 아들 집에 오는 길조차 쉽지 않은 그런 미지의 공간에서도 아내의 부재는 또렷하기만 하다. 아내가 남긴 스웨터와 치마, 그리고 목걸이만이, 그도 한때는 아내가 있었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아들도 일본에서 스치는 낯선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유품. 거리에서 춤 공연을 하는 십대 소녀는, 그가 가진 물건을 보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며칠 동안 소녀를 만나러 가면서 혼잡한 도쿄 전철도 익숙해졌다. 어떤 공간이나 사물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 스며들어야 익숙해지면서 정이 든다. 사람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물건이나 공간은, 그저 스쳐가는 풍경이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후지산은 식탁보나 엽서에나 남아있는 이국적 풍경일텐데 혼자 남겨진 남편은 후지산을 보러간다. 후지산을 보는 건 곧 아내의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아내는 없지만. 

우리는 이렇게 추억을 끄집어내고 연상작용을 가동시켜 슬픔이란 무형의 괴물을 이겨보려고 한다. 대체로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는 대체로 슬픔을 이겨내지만 이 영화에서 남편이 가진 물리적 시간이 적다. 남편은 익숙한 아내의 곁으로 간다. 아름다운 동행이다.

 덧. 올해 벚꽃 필 때, 교토에 갈 수 있었으면....좋겠다. 내 여행이 허기진 이유는, 풍경과 사물에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연결시킬 수 없이 고즈넉한 탓이다. 고즈넉한 풍경이 짙어져 고독만이 내 여행에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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