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학력의 가치가 또 하나 드러나는 셈이다. 만약 학사학위가 있는 중년이라면 그렇지 않은 동년배에 비해 사망 확률이 사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 P312

경제적으로 그것은 경제성장을 돕기보다 방해하는 데 금융 활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도덕 및 정치적으로 그것은 ‘시장이 금융계에 주는 막대한 보상‘과 ‘그것이 실제 공동선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것‘ 사이의 큰 불일치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불일치에다 금융 종사자들이 투기 활동을 하면서도 분에 넘치는 명성을 누리는 현실은 실물경제에서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존엄을 조롱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현대 금융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금융을 개혁하려 한다. 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그 도덕적, 정치적 영향이다. 일의 존엄을 살리려는 정치 어젠다는 세금 제도를 써서 명망의 경제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즉 투기자본을 억누르고 생산적인 노동을 상찬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는 세금 부담을 일에서 소비로, 그리고 투기로 옮긴다는 뜻이다. 이를 급진적으로 추진하려면 급여세를 대폭 인하하거나 아예 없애버리고 대신 소비세, 부유세, 금융거래세를 통해 세입 부족분을 메워야 할 것이다. 보다 온건하게 가려면 급여세 (고용주나 고용자 모두에게 일 관련 비용을 늘리고 있는)를 줄이고 그만큼 줄어드는 세입은 단타 거래(실물경제에 아무 보탬이 안 되는)에 한해 금융거래세를 매겨 충당한다. - P338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행크 애런 이야기의 모럴은 우리가 능력주의를 애호해야 한다는 게 아니며, 오직 홈런을 때려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인종주의의 부정의한 시스템을 혐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정적 원칙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은 아니다.
- P348

그것은 단지 자동차나 높은 급여에 대한 꿈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질서의 꿈이다.(제임스 애덤스, 미국의 서사시>

그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애덤스가 말하는 꿈은 단지 사회적 상승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더 폭넓고 민주주의적인 조건적 평등을 말하고 있다. 확실한 예로, 그는 미국 의회도서관을 가리켜
"민주주의가 그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모든 삶의 영역의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와서 공공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50

일반 열람실을 보면, 물어볼 필요조차 없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1만권이나 비치되어 있다. 지리마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노인도 젊은이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흑인도 백인도, 경영자도 노동자도 장군도 사병도, 저명한 학자도 학생도 한 데 섞여 있다. 모두가 그들이 가진 민주주의가 마련한 그들 소유의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 제임스 애덤스, <미국의 서사시>)

애덤스는 "이 장면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확실한 사례다. 사람들 스스로가 쌓은 자원으로 마련된 수단,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 지성, 이 예가 우리 국민 생활의 모든 부문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는 현실이 되리라" 라고 썼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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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내신 성적도 어느 정도는 집안 소득 수준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SAT 점수는 그 연관성이 더욱 크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오랫동안 위원회에서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SAT는 과외를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설 과외를 받으면 분명 성적이 오른다. 그리고 그 점수를 높일 편법과 꼼수를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업은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 P261

성별, 인종, 민족적 차이에 대해 훨씬 관용적인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능력주의 엘리트는 유동적이며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를 못 만들어냈다. 대신 오늘날의 학력주의적, 전문직업인 위주 계층은 그들의 특권을 어떻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감을 잡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해 주는 방법이 아닌, 능력주의적 사회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입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 P263

"우리는 아이들의 성공에 너무 집착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부모 노릇이라는 게 마치 어떤 생산물의 생산 과정처럼 되고 말았다." - P280

"사소한 문제에 흥분하며, 그들 다수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분노에 차 있었다. 그들은 부모, 교사, 코치, 동료의 말에 지나치게 복종적이었으며 어려운 일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까지도 남들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문제가 삶의 어려움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었다.
매들린은 이들이 ‘풍요로움과 지나칠 정도의 부모 간섭 때문에 불행하고 깨져 버리기 쉬운 인간이 되었음‘을 차차 알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는 법 The Frice of Priniege)》이라는 책에서 레빈은 그녀가 ‘특권층 젊은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질환 증후군‘이라 부르는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일촉즉발‘의 젊은이는 도시 빈민굴의 불우한 청소년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고 용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야만 했던 아이들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괴롭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레빈은 "미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일촉즉발의 젊은이 집단은 부유하고 잘 교육받은 집안의 아이들" 이라고 지적했다.
- P281

부유한 출신 젊은이들이 과도하게 감정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능력주의적 사명에서 찾을 수 있다. ‘뭘 해내라‘, ‘뭘 이뤄라‘, ‘뭘 성공해라‘ 하며 끊임없이 떨어지는 사명. 투라는이렇게 썼다. "부모와 자식 모두 언제 어디서나 들려오는 메시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 초기부터 들려오던 것이며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가르치는 목소리다. 돈을 많이 벌어라. 그러기 위해 명문대에 들어가라."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 나는 그 사실을 내 학생들을 보고 알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고리를 뛰어 통과하는 일을 거듭해왔고, 그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분투하고 있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 숙고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싸우고 또 싸운다. - P282

이런 병리학적 상황을 넘어 심리학자들은 이 세대 대학생들의 보다 미묘한 정신적 문제점을 찾아냈다. ‘완벽주의라는 숨은 전염병‘이다.
몇 년 동안이나 불안 속에 분투해온 결과 젊은이의 마음은 약하디 약한자부심, 그리고 부모, 교사, 입학사정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냉혹한 한 마디에도 산산조각 날 자의식으로 채워져 버렸다. "실적과 지위와 이미지만이 한 사람의 쓸모와 가치를 정할 수 있는 세계에서, ‘완벽한 자신‘이라는 비이성적 생각이 의미 있는 게 되고 말았다." 4만 명이상의 미국, 캐나다, 영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물의 공저자 토머스 쿠란과 앤드류 힐의 말이다. 이들은 1989년부터 2016년까지 완벽주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사회적인, 그리고 부모의 기대에 매인 완벽주의의 증가세는 32퍼센트에 달했다.
완벽주의는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병폐다. "젊은이들이 끝도 없이 학교, 대학, 직장에 의해 선별되고, 구분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현대 생활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실적을 내고,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한다." 성취 요구에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개인의 능력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를 결정한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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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rna laughed. "Sounds like being a therapist. People normally came into my office because something happened. Someone had died, or betrayed them. Their love wasn‘t reciprocated. They‘d lost a job. Gotten divorced. Something big. But the truth was, while that might‘ve been the catalyst, the problem was almost always tiny and old and hidden."
Gamache raised his brows in surprise. It did sound exactly like his job. The killing was the catalyst, but it almost always started as something small, invisible to the naked eye. It was often years, decades, old. A slight that rankled and grew and infected the host. Until what had been human became a walking resentment. Covered in skin. Passing as human. Passing as happy.
Until something happened.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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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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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가마슈 경감이 퀘벡 주의 무릉도원 같은 '스리 파인스'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 나라에 8권밖에 출간이 안 되어 있다. 몇 년 전 아마존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오랜 1위 행진을 막은 책이 열두 번째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던데.. 우리 나라에선 아직 번역이 안 된 것 같다.

책을 읽고 너무 취저라 (올해 책을 안 사겠다는, 책 소비액을 현저히 줄이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깨고) 8권을 다 구입해 버렸다. 한 권 한 권 읽을 생각을 하니 크리스마스에 선물 상자를 잔뜩 받은 아이의 기분이랄까.

시리즈의 첫 권이다 보니 살인 사건 해결 외에도 다양한 주요 등장 인물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소개가 나와서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리즈 두 번째 책인 <치명적인 은총>을 먼저 읽었다가 <스틸 라이프>의 범인을 스포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사실 읽는 재미가 쪼~금 덜했지만. 이 책은 범인을 미리 알고 읽어도 재밌기만 할 거다. 그냥 범인을 알아내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 다가 아닌 소설이기 때문이다.

동화 같은 마을, 예술가인 등장인물들(화가, 시인)
매력적인 비앤비와 비스트로, 그곳을 운영하는 게이 커플.
바로 옆엔 진짜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가정의 서재 같이 편안한 책방,
자주 등장하는 요리나 음식에 대한 묘사들(이 책을 읽고 있다보면 '카페오레'가 그렇게 먹고 싶어진다.)
골동품 이야기. 이런 것들이 소설의 기본 세팅이라 그냥 읽고만 있어도 얼마나 좋은지.
게다가 아르망 가마슈 경감 역시 내가 좋아하는 중년의 진중하고 지혜롭고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정의로운. 그런 멋진 탐정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위트와 유머, 프랑스어 발음의 신기함..
자주 언급되는 '아르노 사건'의 미스터리 등등 매력이 끝도 없는 추리소설.

이 책이 시리즈 중의 다른 소설에 비해 더 기억에 남는 부분은 '미운오리새끼' 이베트 니콜 형사를 교육하려는 가마슈 경감의 좌충우돌이다. 이베트 니콜 형사가 <치명적인 은총>에서 무슨 쓰레기 같은 인간처럼 언급되길래 정말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스틸 라이프>를 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도 있고 안쓰럽기도 하고. 하지만 매우 어리석기는 한.. 가마슈 경감의 가르침을 잘못 알아듣고 실수를 하는 장면에선 폭소를 터뜨리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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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0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은 정말 끝이 없네요. ㅠㅠ 이 시리즈 저도 덕분에 급관심!! 아~~~~!! 책 그만 정말 그만 사야 하는데...😰
 

"좀 도와줄래요?" 백작이 안드레이에게 브랜디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 이어 ‘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걸쇠를 푼 다음 마치 커다란 책을 펴듯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유리잔 52개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리잔 26 쌍이 매우 안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는데, 폭이 넓고 풍성한 부르고뉴 와인 잔에서부터 남유럽의 밝은 빛깔 리큐어를 위해 디자인된 조그마한 멋진 잔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유리잔은 목적에 따라 모양을 달리했다. 백작은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무작위로 잔 네 개를 골라서 옆으로 건넸고, 그러는 동안 안드레이는 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는 명예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 P33

그런 다음 책상에 앉아 방에 남겨놓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몹시 좋아했던 이 책을 읽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 라고 선언했을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백작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고독을 그에게 제공하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손에 꼭 들고 한 발을 농의 구석에 댄 채 의자를 뒤로 젖혀서, 의자가 뒷다리 두 개로만 균형을 이룬 기울어진 자세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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