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먹어치운 음식은 그의 배를 채운 것이 아니고 그의 식욕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 그의 허기를 채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허기를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 P195

그러나 에뤼시크톤의 시장기는 먹어도 먹어도 가시지 않았고, 팔아도 팔아도 딸은 지나갔던 계절처럼 되돌아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드메티나가 먼 나라의 왕비로 간택되어 갔을 때 딱 한 번 포세이돈은 이 딸을 그 아비에게 되돌려주지 않았지요.
에뤼시크톤은 허기를 견디다 못해 처음에는 제 팔을 잘라 먹고 다리를 잘라 먹고 엉덩이 살을 베어 먹고 하다가, 입술까지 다 베어 먹은 다음에야 데메테르의 복수에서 놓여났답니다. 에뤼시크톤이 있던 자리에는 이빨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는 얘깁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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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를 만난 후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웃을 수 있다는 건, 나를 향해 웃어 보일 여유가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웃지 못하는 건 대체로 지금의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속도 모르고서 웃는 상대가 밉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그럴 때‘ 같은 건 없는데도 말이에요.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인생이 지나가버려, 그건 토니식의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조금더 자주 웃고 싶어요. 더 많은 것을 지나쳐버리기 전에 나를 웃게 한 농담들을 기록해두고, 삶에는 좋은 순간들도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요.
- P118

생활이란 것 속에는 얼마나 구차한 일들이 많던가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손해 보지 않으려 날을세워야 할 때도 있고, 대충 잘 지내기 위해 대충 존재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일하러 나간 곳에서는 거실 소파에 누워있을 때보다 두 배는 똑똑하게 굴어야 하고, ‘이런 게 중요한 거‘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며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돈이되는 정보들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거기 매몰되어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잊게 돼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이런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럴 때 저에겐 이야기가 도움이 됩니다. 나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삶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이야기, 지구 어딘가에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눈앞의 이런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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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 일상에 먼지처럼 떠돌던 불안감 -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 이 점차 사라집니다. 일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로부터 늘 도망치는 사람 (네, 접니다)이 평생 느껴온 자책감,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무력감도 희미해지고요.
무엇보다 스스로의 꾸준함을 비로소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적어도 ‘하루 한 줄씩 일기 쓰기‘를 실천할 만한 꾸준함이 있다면, 다른 것도 비슷하게 해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자신을 믿게 된다니, 일기는 아무래도 놀랍습니다.
- P38

그러다 보면 생각하기를 자꾸 미루게 됩니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내 일상을 더 잘 꾸려가고 싶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마음을 놓쳐버린 건지 알 수 없어지곤 하지요.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그냥 나는 원래 기복이 심해‘라는 말로 넘겨버리곤 했습니다. 나는 일희일비의 인간이야, 이유 없이 우울해져, 그렇게 말하고 나면 내 삶에서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좀 가벼워졌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정했으니 그걸로 된 것 같았어요. 삶에는 당연히 ‘일희(喜)‘가 있다면 ‘일비(悲)‘가 있기 마련인데 매일이 좋기만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더라고요. ‘일희‘를 챙기는 만큼 내가 느끼는 ‘일비‘의 순간, 그 마음 또한 알아채야 나라는 사람을 데리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마음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마음은 덮어버리려 하는 것, 밀어서 뒤로 치워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반쪽만 사는 삶일 테니까요. - P41

나니까 당연히 나에게 제일 잘해줄 것 같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삽니다. 마음을 돌보는 데 있어서는 특히 더 그렇지요. 힘들다고 찾아온 친구의 고민은 몇시간이고 들어주면서 내 고민은 쉽사리 잠으로 덮어버리려하고, 시간이 지나면 힘든 마음이 알아서 괜찮아지길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왜 나는 남에게 하는 만큼도 나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걸까? 하고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던 시절, 그제야 시시때때로 범람하던 우울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20대 내내 그저 ‘기복‘이라 불렀던 마음 상태가 실은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울이었다는 것을요. 그때 저는 오래되고 좁은 방의 주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마음의문제들을 벽장 안에 밀어넣고선, 더러 손님이 올 때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맞이하곤 했습니다. 남들한테 괜찮아보여야 할 것 같아서, 때로는 괜찮아 보이고 싶어서. 흔한 취향과 가벼운 농담으로 채운 방에선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니, 마음 안쪽에 엉망인 벽장을 두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살기도 했습니다. 벽장 속의 문제들은 언제든 쌓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나오리라는 걸 모른 채로요.
- P42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짧게 메모해두지 않았다면, 후에 그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그저 알 수 없는 불쾌함만이 남아 있었을 거예요. 어쩌면 20대 내내 그런 기분으로 살았던 것만 같습니다. 별로인 나를 데리고 별로인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정말 별로인데, 구체적인이유는 알 수 없어서 늘 헝클어진 마음으로 걸어 다니는 것같았어요. 그러니 뒤늦게 시작한 이런 일기 쓰기는 어쩌면나라는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유심리학자 김영아 교수는 <나와 잘 지내는 연습>에서 우리 모두에게 제목 그대로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계속 남과 잘 지내는 방법만 고민할 뿐, 정작 나하고 잘 지내는 방법은 모른 채 살아간다고요. 그걸 제 식대로 옮기자면, 내가 나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일 같아요. 드문드문 마음의 날씨를 적어오는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 P45

‘나한테는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나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는 사실을요. 누군가에게 말하다 보면 안 보이던 내 감정이나 문제가 점점 언어를 갖고 선명해질 때가 있지요. 말하는 중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마음도 있고요. 일기는 그렇게 내가 말하고내가 들어주는 대화인 셈입니다.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인생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은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 P46

좋은 순간을 하나라도 주웠다면, 오늘도 잘 살아낸 셈이에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것으로 하루치의 피로와 상심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을 하나라도 찾아낸 하루가그렇지 못한 하루보다 나을 테니까요. 우리를 지탱해주는건 결국 삶의 사소한 아름다움들이니까요.
그런 기록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행복의 ㅎ‘이라 여기고 모은 것들이 실은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바깥을 아무리 헤매도 찾지 못했던 파랑새가 돌아온 집 안에 있었듯이, 알아채야만 보이는 행복이 늘 곁에 있었다고요..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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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ing there Ma said, "You all listen now, this is a real lesson in life. Yes, we got stuck, but what‘d we girls do? We made it fun, we laughed.
That‘s what sisters and girlfriends are all about. Sticking together even in the mud, ‘specially in mud.‘"
Ma hadn‘t bought any polish remover, so when it began to peel and chip, they had faded, patchy pink nails on all their fingers and toes,
reminding them of the good time they‘d had, and that real-life lesson.
Looking at the old bottle, Kya tried to see her sisters‘ faces. And said out loud, "Where‘re you now, Ma? Why didn‘t you stick?"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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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말 못 말리겠다. 아마추어 여자 축구가 있는지 없는지, 여자들이 축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전혀 관심 없는 세상의 곳곳에서 축구에 푹 빠진 여자들이 축구를 시작하고, 축구를 시작하게 끌어 주고, 축구를 하다가 다치고, 힘겹게 재활하고, 그래 놓고 또 기어들어 오고, 축구를 못 해서 병이 나고, 축구를 공부하다 못해 심판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축구를 좀 더 잘해보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매일매일 연습을 한다.
- P247

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피치를 딛는 발에 어쩐지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세상이 일방적으로 나눈 구획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면, 우리가 속한 팀과 거기서 하고 있는 취미 활동이 그 영역을 어지럽히고 경계를 흐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개인이 편견에 맞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건 결국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는 싸움 아닐까. "여자가 ㅇㅇ를 을 한다고?" 라는 문장에서 00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나와 우리 팀과 수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은 저기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를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저 축구가 좋아서 할 뿐인데 얼결에 운동이 된 거지만, 또 생각해 보면 모든 운동이 그런 식이다.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개념을 살짝 빌려 표현한다면, 어쩌다 보니 생긴 자연적인 연루‘가 참여적인 연루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축구가 좋아서 할 뿐인데, 개인적인 불쾌함을 견디지 못해 맞섰을 뿐인데, 체육 대회에 나가지 못해 속상해서 항의했을 뿐인데, 그냥 보이는 대로 엄마를 그려 갔을 뿐인데,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을 뿐인데, 사회가 욕망을 억눌러서 생겨나는 이런 작은 ‘뿐‘들이 모여 운동이 되고 파도처럼 밀려가며 선을 조금씩 지워 갈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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