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절판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 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의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신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어진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17쪽

요즘은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사랑'을 하고 있다거나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에 빠져 있다거나 혹은 과거에 그랬었다고 숨김없이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고 공감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었더라도 그렇게 마구 이야기해버린 것을 후회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맞아요, 나도 그래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 하고 남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내 열정의 실상과는 아무 상관 없는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21쪽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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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쇼핑몰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어깨끈 없는 분홍색 브라와 반바지만을 입고 나타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커스틴 던스트라는 미국의 여배우인데, 뒷조사 결과 82년생으로 확인. 음 이 여배우가 무슨 배짱(?)으로 반 나체상태로 거리를 활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뭐 전도유망한 젊은 이쁘장한 여배우가 반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면 보는 남성들이야 좋아라하며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겠지?!

* 화제의 사진. 저게 속옷인지 아님 길거리엣서 입으라고 만들어놓은건지는 모르겠다. 험. 양쪽의 여성들이 쳐다봐주는 센스. 자신감인가, 관심 좀 갖어주세요의 표현인가.

  화제의 여배우 커스틴 던스트는 영화 <윔블던>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테스트 선수로 활약한다. 이 사진을 먼저 접하고 영화를 후에 봤으나 나 조차도 동일인물인지 몰랐다. 미국 배우들은 유명한 애 빼고는 다 갸가 갸인거 같아서 원. 게다가 이름도 잘 모른다. 브래트 피트, 안젤리나 졸리, 제니퍼 애니스톤, 탐 크루즈 같은 매스컴을 자주 타는 배우들 빼고는.

  <윔블던>은 테니스 영화다. 2005년 3월 개봉작이지만, 영화가 개봉했는지도 몰랐다. 평소 개봉 영화마다 관심이 있는 내가 지나쳤다면 그닥 흥행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최근 길어지는 러닝타임을 무시한 단 98분의 짧은(?) 영화다. 스포츠 영화들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가 힘들다. 관객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듯한 흥미진진함을 원하지만, 스포츠 영화에서는 스포츠의 흥미진진함 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더 중요하므로. 경기를 보는 짜릿함과 흥분을 원한다면, 그냥 스포츠 생방송을 보면 된다. 영화에서조차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 그것은 영화관람을 망치는 요인이다. 별 생각 없이 봤다. 재미있을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주연배우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커스틴 던스트는 <윔블던>으로 유명하기보다는 <스파이더 맨>이나 <엘리자베스 타운> <이터널 선샤인> <브링 잇 온> <쥬만지> 로 더 알려져있다. 험. <쥬만지>에도 나왔나? 이건 의외인데.



* 비기와 피터. 거참 이쁘네. 커스틴 던스트. 음 이름 외워놔야겠다.



* 비기의 테니스 경기 장면. 그녀는 오늘날의 최고의 테니스 선수 사라포바를 연상시키는 다혈질 플레이를 보여준다. 칠 때마다 아.아. 소리를 내질 않나, 심판 판정에 불복하며 열을 올리고 바락바락 대든다. 사라포바 보다 더 한건가?

  이렇게 커스틴 던스트에 대해 먼저 언급해버린 바람에 영화의 촛점을 놓치게 되었는데, 주인공은 물론 이 여자도 되지만, 이 여자보다는 남자 테니스 선수에 집중되어 있다. 본래 이 절망적인 노땅 테니스선수로 휴 그랜트를 낙점했다는 설도 전해지지만, 그는 테니스 선수로 너무 늙었다고 판명되었다나 머라나. 결국 폴 베타니라는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뒷조사 생각보다 그는 괜찮은 작품에 출연했다. <도그빌> <기사 윌리엄> 과 같은. 올해 개봉 예정으로 되어있는 <다빈치 코드>에서도 활약을 한다하니 그 때 한번 더 주목해봐야겠다. 그닥 매력적인 배우로는 보이지 않고, <윔블던>은 그가 실력을 보여주기엔 적당하지 않은 영화인 듯 하다. 연기라고 할 만한 꺼리가 별로 없었다.  

  미국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 비기와 아줌마들의 테니스 강사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있는 피터의 로맨스. 피터는 윔블던 출전을 위해 호텔에 투숙하나 자신이 예약한 허름한 방칸이 아닌 대궐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이게 뭐여. 내 방이 아닌가벼? 헉 이런 감사할 때가. 방안 욕실에는 왠 이쁘장한 여성이 전라상태로 목욕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이 여성 놀라지도 않는다. 그냥 살며시 미소지으며 하던 목욕 계속하는 이 여자. 머여. 계속 보고 싶다만 내 방이 아니니 나갈 밖에. 하지만 운명의 시작은 거기서부터 출발.

  비기는 예전부터 피터를 좋아했고, 피터를 만나고 싶어했다. 아버지 몰래 피터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고,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하며,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단순히 경기 전의 긴장을 풀기 위한 가벼운 관계(?)가 아닌 사랑하는 깊은 관계로 발전. 비기는 이 때문에 경기에서 계속 실수를 범하고, 이쁘장한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와 연애를 하게 된 피터는 언제는 인생 이제 쫑나나 싶더니 연신 좋아라 하며 경기에서도 승승장구, 결국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번외선수가.

  영국 남자 배우와 미국 여자 배우의 만남. 우리에게 더 알려진 커스틴 던스트 때문에 폴 베타니가 화면에서 죽는 결과가 발생. 머 그게 아니더라도 저 별볼일 없는 남자배우보다 이쁘고 매력적인 여자배우한테 나의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최고의 테니스 선수와 최악의 테니스 선수의 로맨스라 하여 만들어봤지만, 테니스도, 로맨스도, 영화는 잡지 못한 듯 하다. 영화를 보며 가슴 속에서 따뜻한 에로스의 감정이 생겨나야함에도 불구하고 난 무감각. 아무 반응 없음. 두 배우가 좀더 친밀하게 다가갔어야했다. 사전에 좀더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너무 연기하는 티가 났다. 테니스 경기 장면도 그냥 맹탕. 테니스를 기대하지도 로맨스를 기대하지도 말고 그냥 커스틴 던스트를 보기 위해서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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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스틴 던스트 옆에 있는 여자도 비슷한 차림인데요, 어느 쇼핑몰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치(휴양지) 근처에선 저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 많은데, 아마, 파파라치가 헐리우드 스타 사진 찍은걸 가지고, 우리나라 언론에서 어쩌네,저쩌네 기사 떴던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커스틴 던스트라면, 옷을 어떻게 입건 사람들이 쳐다볼테죠.

마늘빵 2006-01-2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함. 옆에 보니 그러네요. 오른쪽 여자도 비슷한 차림. 외국을 안나가봐서 어떤지 잘몰라요. 크크. 저런 차림이 많은가봐요? 비치에선. 근데 넘 적나라하게 입었당. 머 보는 사람이야 좋지만. ^^

mannerist 2006-01-2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베타니, 난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에서 "The one! the only, Sir~ Uuuuuuuuuuuurhic von Rictenstein~~~!!"을 외치던 제프리 초서로 등장할때부터 열광했는데. 그 투박한 영국놈 발음이랑 형형한 눈빛과 가증끼 때문에. 결국 "Today, today, you'll find yourself equal, for all of you, equally blessed!"라고, 귀족과 평민, 천민들 다 같이 섞여있는 곳에서 외치던 저 작자의 목소리 때문에 DVD까지 샀다나 뭐라나. 그걸 떠나서 "기사 윌리엄"은 공주 따먹기 무술대회-_-컨셉만 빼면 무독성에 가까운 헐리웃 영화라 생각함. ㅎㅎㅎ

저 윔블던도 극장까지 찾아가서 본 이유도 영화 내내 폴 베타니의 발음이 흐른다는 기대 하나때문이었구. 좌우간, 푸짐-_-한 커스틴 던스트보다 폴 베타니의 할랑함에 본인은 한 표. ㅎㅎㅎ

마늘빵 2006-01-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기사 윌리엄을 안봐서 흠 이 남자는 여기서 처음 봤다오. 그나저나 난 영어를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므로 발음에 열광할리 없다는 것을 전제, 흠 내가 이 남자에게 빠질 일은 없나. ㅋㅋㅋ 커스틴 던스트도 머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 사람이 저 여자 밖에 없군. 근데 커스틴 던스트로 검색을 하니, 이 여자 바닷속에서 비키니 입고 돌아댕기다 가슴이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군. 인터넷에 캡쳐사진 세 장이 번듯이. 흐흐. ㅡㅡ;;;;

poptrash 2006-01-23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스틴 던스트 좋아요! 남자 주인공 역에 휴 그랜트였다면 정말 더 볼만했겠는걸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재밌게 봤던 듯. 하긴 휴 그랜트는 요즘 너무 늙어버려서.

마늘빵 2006-01-2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3분력
다카이 노부오 지음, 은미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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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들어 동생방에 있는,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책들을, 끄집어 읽는 재미를 붙였다. 구입해놓고 아직 안보고 있는 책들도 쌓여있는데 왜? 글쎄다. 최근 몇 차례 책주문을 통해 읽을 책들이 산적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서재에 기웃거리며 읽을 책을 또 찾고 있는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책들은, 읽지도 않았지만,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의 소유가 되었다 라는 인식이 박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또 다른 지식의 소유를 위해 다른 서재를 기웃기웃.

  이번에는 동생방에서 <3분력>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딱 보아하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책이다. 자기계발서 혹은 처세술 서적이라고 분류되는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그닥 내용이 없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책이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3분력> 이라는 요 책에서는 모든 것을 3분안에 끝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영업사원이든, 회사 면접을 보러 왔든, 연애를 하든간에 모든 것은 3분안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와 같이 정보가 흘러 넘치고 바삐 사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할당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므로, 짧은 시간안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쩜 지금 이렇게 빠르게 사는 시대에 더 빠르게 살 것을 주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시각에서 '3분'을 바라보고 있다.

"3분력이 의미하는 스피드란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쓰라는 것이다. 일처리를 반듯하게 하면, 오히려 시간적인 면에서 여유가 생기고,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근 '슬로 푸드'운동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사고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일에 관해서는 신속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일에 미치고 나면 늦잠을 자든 게으름을 피우든 상관없다. "(P25)

 느리게 살기 위해, 우리는 3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무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빠르게, 신속하게, 를 외치고, 나의 삶으로 돌아와서는 게으르게, 느리게, 를 외치자는 것이다. 이는 나의 삶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다. 나는 업무를 할 때,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최단기간에 후딱 끝내놓고 나머지 여유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여유시간에 내가 낮잠을 자건, 음악을 듣건, 영화를 보건, 아니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건 그것은 나의 업무에 대한 신속함 이후에 누릴 수 있는 여유다. 일은 빠르게, 삶은 느리게. 그것이 나의 신조이고, 또한 <3분력>에서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저자는 3분 안에 나의 영향력을 발휘하기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자신감, 대화의 기술, 들어주기, 말하기, 정보수집하기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고 습관화되었을 때 비로소 3분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매우 어려운 것 같지만 다 뻔하고 뻔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고, 단지 남은 것은 내가 그것을 얼마나 습관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우리가 이미 다 어디선가 들었던 내용들이다. 그는 단지 그것을 수집하여 요약하고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정보가공력.   읽어서 후회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사놓고 두고두고 볼 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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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력
다카이 노부오 지음, 은미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04년 4월
품절


3분력이 의미하는 스피드란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쓰라는 것이다. 일처리를 반듯하게 하면, 오히려 시간적인 면에서 여유가 생기고,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근 '슬로 푸드'운동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사고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일에 관해서는 신속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일에 미치고 나면 늦잠을 자든 게으름을 피우든 상관없다. -25쪽

"자신감이란 누가 인정해줘서 생기는게 아닙니다. 나무에 물을 주듯 스스로를 격려해야지요. 성공을 해서 자신감이 있는게 아니라 자신감이 있어서 성공한 겁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41-42쪽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혹은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음직 한 말로는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원하는 바를 제대로 챙길 수도 없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명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61쪽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야기의 초반을 매우 느린 리듬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이 집중하고 이야기가 고조에 이르면 빠르게 이끌어간다.
이처럼 이야기의 시작을 천천히 꺼내는 것은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지 못하면 자연히 말을 더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듣는 이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말머리를 천천히 꺼내는 것은 대단히 유리하다. -69쪽

사이를 두는 사람 앞에서는 억지로 말을 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좋다. 손가락 끝이나 눈앞에 있는 커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뜻이고, 시선을 피하거나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뜻이다. 전자라면 조금 더 기다려주고, 후자라면 "다음에 이야기할까요?"라고 얘기를 매듭지어주는 것이 좋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다음 대화에 오히려 신뢰감을 줄 수 있다. -72쪽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와 같은 자만심이다. 혹 상대보다 지식이 뛰어나거나 학력이 앞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에게도 그만의 인생이 있다. 그것은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일수 있다. 내가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자긍심은 그런게 아니다. "나는 뭐든 잘 안다", "나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지, 세상 물정이 어떤지를 전혀 모른다는 증명 밖에 되지 않는다. -132-133쪽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이 같은 증세는 하나의 질환으로까지 취급되고 있다. 이른바 '끄덕끄덕 신드롬'과 '질의응답 마비 증후군'이 그것이다. 끄덕끄덕 신드롬은 지식을 얻고 싶은 욕구보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강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서, 세미나 또는 대화 중에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나와도 마치 자신이 잘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질의응답 마비 증후군은 회의나 세미나에서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주체할 수 없는 긴장감에 압도되어 아무말도 못 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134쪽

누군가를 막힘없이 설득하고 싶다면,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길 일이다. "약삭빠른 말과 꾸미는 얼굴에는 군자의 근본인 인이 깃들기 힘들다"라는 말이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막힘없는 말솜씨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46쪽

"세계 역사는 네 종류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시대, 반대로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대, 지식인 등 일부 계층만이 지식을 갖고 뽐내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대중 사이에서 자기 지식에 회의를 느끼는 인텔리 지식층의 시대가 그것이다."
(버틀란트 러셀, <인생에 대한 단장>)-171쪽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하나의 혀를 선사했다. 인간은 말하는 것의 두 배 만큼 들을 의무가 있다."(제논)-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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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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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점선의 <10cm 예술>. 사실 뭔지 몰랐다. 김점선이 누군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난 어디선가 얼핏 '배꼽 밑 10cm'인가 하는 제목을 본 거 같아서 이게 그건가, 하고 집어들었는데, 아니었다. 흠. 성 관련된 책이 아니라 그림과 관련된 책이었다. 어쨌거나 일단 집어들었으니 보긴 봤는데, 으하핫, 너무나 재밌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유머집도 아니고, 재미난 소설도 아닌데, 너무나 재밌다. 버스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한시간도 안되어 다 봤고, 그 사이 난 버스칸에서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난 책을 읽다 웃기는 대목이 나와도 그냥 속으로 흐흐 하고 웃는 스타일인데, 속에서 웃는걸 넘어서 더 웃긴건 입가에 미소로, 더 웃긴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키득키득 거리며 소심하게 웃는다. 그런데 어제 버스칸에서 그 수준까지 갔다는 말씀. 너무나 재밌고, 너무나 웃기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슬픈 이야기였다.

  <10cm 예술>은 김점선이라는 화가의 컴퓨터 그림과 글을 담은 책이다. 그녀는 그림을 너무나도 그려댄 나머지 오른쪽 팔에 무리가 왔고, 좀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알려준 컴퓨터 포토샵 프로그램과 그림판을 가지고, 그 사이를 못참고, 또 그림을 그려댄 것이다. 10cm라는건 컴퓨터 화면 상의 그림판 크기를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컴퓨터를 처음 다루면 어떠랴, 화가의 손은 역시 다르다. 그녀가 손을 댄 순간 그것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나왔다. 그냥 그림만 보면 사실 별다른 걸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직접 쓴 그녀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 그 그림들은 그녀 자신의 삶 자체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릴때부터 공부 잘했지만 내가 공부 잘하는지 몰랐고,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다 생각되어 다음날 미술학원 등록하고 그림을 그렸대는데, 그러고서 홍대 미대를 갔다. 그녀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온갖 기행을 낳고 다닌듯 하고, 못생긴데다 꾸미지도 않고 노숙자처럼 하고 다니는 그녀의 행색은, 길거리에서 경찰관들에게 심문을 받을 정도였다. "분명히 마약한 놈같은데... 왜 없지?"

  어릴 때, 행복이 거적을 입고 변장한 채 사람의 집에 찾아오는 내용의 동화를 읽으며, 그녀는 교복을 벗으면 거적을 쓰고 다니리라 마음 먹었단다. 그리고 실천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빗지도 않고 단추도 안채우고 구겨진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다녔다. 미친 사람처럼.

  도서관과 문화원에서 책을 읽다가는 아니 어떻게 읽은 책을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있어, 그러면서 온갖 책을 다 훔쳤다는, 게다가 자신이 찜한 책을 넘어서, 친구가 이 책 괜찮네, 하면 또 그 책도 훔쳤다는, 이런 기행, 나아가 교수가 이 책 어디서 났니, 그랬더니, 훔쳤어요,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향해, 이거 빌려줘, 라고 말하는 교수, 아예 가지세요, 라고 마무리지으며 공범자가 생겼다고 좋아라한다.  

  이 책에 나온 그녀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온갖 기행으로 가득차있다. 아니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아무리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어떻게 의도하지 않고 이런 생각과 이런 행동이 나올 수가 있지? 더욱더 가관인 것은 그녀의 남편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여자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헉 결혼을 했다. 그래서 난 그녀보다 그녀의 남편이 더 궁금해졌다. 하긴 앞에서 아들이야기가 잠깐 나오니 결혼을 하긴 했겠지. 남편은 그녀의 선배다. 그의 기행은 그녀의 그것을 넘어선다. 신발을 안신고 등산용 양말을 신고 길을 걷질 않나, 록가수의 무대에서 기이한 춤을 추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술을 먹고, 여자를 탐한다. 결혼은 했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매일이 담배와 술이다. 도덕성이라곤 아예 기초가 없는 인간이라 했다. 그는 결국 폐암으로 죽었다.

  그녀의 선생님이 이렇게 이야기 했단다.

 "예술은 그런게 아니다. 집에서 탄 돈으로 물감 사서 기분 나는 대로 물감칠을 하면 그게 예술인줄 아느냐? 너희들이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결혼해라. 백마 탄 왕자가 아닌 아주 가난한 사람과, 얼음물에 손을 넣고 기저귀를 빨고,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으며 사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림을 그려야지..... 지금처럼 살면 너희들은 기생충이다. 부모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다."(P43)

 그래서 그녀는 그로부터 한달 뒤 가난한 사람과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컷 웃었지만, 그녀의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문입이 이그러지며 잠시나마 가슴이 저며오기도 했다. 세상 참 재밌게 사는 사람이다. 재미를 추구하고 그러진 않았을테지만,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가치관의 기본 토대가 참 궁금하다. 도통한 도사같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있을까 싶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의 자유로움을 꿈꿔왔지만 내 영혼은 자유롭지 못했다. 난 항상 사회의 형식과 규칙에 얽매여 살았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장남으로 살았고, 사회가 마련한 틀 안에서 평범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자유롭길 바랬다. 그것은 머리 속에서 뿐이었다. 행동으로 실천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고, 어떻게 실천해야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런 것 조차도 고민하지 않은 채 생각이 곧 행동으로  표출되는 그 순간이 영혼이 자유로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아 정말 이렇게 순수하고 자유로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김점선.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숫자나 기호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통해서만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손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상식적인 단계에서 시각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 화가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서 그려야만 한다. 손이 그린 것을 눈이 보면서 생각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손의 도움 없이 눈만으로 나아가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자꾸 손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글머리에 中)

  그녀는 자신의 눈과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을 보고 만진다. 그리고 내가 본 세상을 그린다. 그러다보면 그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참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46년생이라는 그녀,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구나. 그렇다면 그녀의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겠구나. 그녀는 그림으로써 뿐만 아니라, 글로서도 자신의 삶을 그렸고,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글은 어쩌면 그녀가 세상을 보고 만지고 접하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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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1-2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일단 찜. ^^

마늘빵 2006-01-2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냥 볼땐 별로 같아 보이는데 이 여자 글빨이 그림빨 못지 않습니다. 삶 자체도 한편의 그림이고.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최근 2권이 나왔던데 그건 아직 못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