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제의 영화를 나도 드뎌 봤다. <박수칠 때 떠나라>.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관객의 평이 엇갈리는 이 영화. 일전에 밴드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단 한명을 빼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영화를 보고 안좋은 평가를 내렸던 것. 그만큼 한 사람의 관객의 힘은 영화의 흥행과 직결된다. 영화 개봉 이전의 사전 홍보효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리 홍보가 덜 됐다 하더라도 일단 먼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그  힘은 실로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은 비단 영화 뿐 아니라 책이나 음악 등의 모든 문화장르의 흥행에 이러한 작동기제가 작용한다.

  나를 포함 세명이서 이 영화를 관람. 함께 본 한 명은 그다지 확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평. 그냥 그랬다 정도. 나는 오 재밌다 라는 반응. 역시 같은 영화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자리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이 다르다.



* 6자 회담(?)하는 뽕팔이들. 얘네들도 잠깐이지만 아주 재밌었다. 흐흐

  처음에 범죄추리극 정도로 비춰지던 이 영화가 영화 중반즈음해서 이상하게 바뀐다. 갑자기 공포물이 되어버린 것. 머냐? 하지만 재밌다. '장르의 극적인 전환' 이라고 까지는 못하지만 장난스럽게 살짝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이 귀엽다. 그러더니 어어 더 이상해진다. 과학적인 증거물에 의존해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무당을 데려와서 굿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진짜로 귀신이 들렸고 카메라를 담당하던 생방송 감독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칼을 쑤신 범인을 지목하고, 이어서 나타나는 진범.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다. 누구일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무당에 의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 오 깬다. 그래도 재밌다.



* 박정아. 난 처음에 그녀인줄 몰랐다. 꽤 연기를 잘 하던걸? 그리 많이 나온건 아니지만. 이쁘다. ^^

  장진 감독이 최근 그가 직접 감독을 한 건 아니지만 참여했던 <웰컴 투 동막골>과 감독으로 나선 <박수칠 때 떠나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내놓은 박찬욱은 한편 뒤로 물러섰다. 오 이런. 실로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보여준 만큼의 등장인물들의 허무하고 웃긴 대화방식이 고스란히 여기에도 전해진다. 같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장진 영화의 최고봉은 <아는 여자>라고 하지만 난 그 영화를 보고 싶어했음에도 아직 못봤으므로 제외하고. 일단 <킬러들의 수다>에서의 그 재미난 대화방식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장르의 전환, 반전의 반전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장진 영화의 핵심은 그만의 화법에 있다. 실컷 씨부리다가 순간 멈추고 존재말로 바꿔주는 센스. 내뱉어지는 대사 속에 숨어있는 특유의 억양(?). 아 뭐라 참 설명하기 뭣한 그만의 화법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일단 보는 수 밖에 도리 없다.  



* 떴다 신하균. 불쌍해보이면서도 때론 사악해보이는 그만의 표정. 거짓말을 진실같이, 진실을 거짓말같이 하는 그의 대사법.

  장진도 장진이지만 신하균. 그도 <웰컴 투 동막골> 과 <박수칠 때 떠나라>. 1,2위를 다투는 이 영화로 입이 찢어졌을 듯 하다. 신하균은 뭔가 당하는 역할이 알맞다. 된통 당하고 찌그러지고 다시 카메라로 얼굴을 들어대는 그 표정. 그건 그가 아니면 안된다. 또한 아주 흥행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혈의 누>에 이어 얼굴을 내밀은 차승원의 연기도 볼만하다. <혈의 누>에서도 수사관이었는데 여기서도 현대판 수사관 검찰이다. <혈의 누>의 그의 배역은 썩 어울려보이진 않았지만 <박수>에서는 좋았다. 장진, 신하균, 차승원. 아주 대박 터졌구나.

  마지막으로 음악을 살펴보자면 영화의 음악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장면 장면의 분위기에 효과를 배가 시키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음악감독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일단 잘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장진 영화의 담당 음악감독이라는 점은 알 듯 하다. <킬러들의 수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등을 그가 맡았으니. 장진의 영화 절반 가량은 그의 손에서 음악이 완성됐다.

   아직 안본 이들에게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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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8-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매했어요. 보고 와서 얘기 다시 하자구요. ^^

마늘빵 2005-08-2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넹. 재밌을거에요.

책속에 책 2005-08-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나서 무척 헷갈려했던 작품이에요..예를 들면 마지막에 신하균은 왜 웃었을까..등등 차승원의 연기는 꽤 좋았는데..신하균은 외려 비중이 작았단 느낌도 들고..원가 매듭하나가 덜 풀리고 끝난 느낌였어요..저는 ^^

마늘빵 2005-08-2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하균은 훼이크가 아니었나... ㅋㅋ

로즈마리 2005-08-2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막골하고 금자씨 본 다음이라서 그런지 그 중 가장 별루였어요..--;;
막판에 심령영화 된것두..그렇고..언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두 그렇구..
웃고싶어도 이거 진지해야 하나? 진지해도 이거 웃어야 하나?
그게 좀 엉성하게 되었네요...장진감독식 유머를 좋아하는데 그런 유머는
동막골에서 더 발휘된 듯 하네요.
동막골하고 금자씨는 재밌었는데...

마늘빵 2005-08-2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세 영화 다 괜찮았어요. 금자씨만 너무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지 이전작들에 비해 조금 실망했었구욤. 장진식의 유머 참 재밌습니다. 전 그냥 힘 빼고 봐서 그런가. 많이 웃었어요.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동물농장>으로 오웰에 감탄했고, <1984년>으로 그의 진가를 알았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로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느꼈고, <코끼리를 쏘다>로 그가 이제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그의 남은 책들 <제국은 없다> 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오웰이 좋아져서 그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싶었지만 이자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난 같은 값이면 그의 남은 재미없어 보이는 저서들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다른 작가를 물색하련다.

  대체적으로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나의 그것에 비하면. 별 네 개 혹은 별 다섯 개 정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다. 건성건성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개반을 줄 수 있다면 난 그리 했을 것이나 네 개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순전히 나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안에 담긴 조지 오웰의 여러 단편들 중의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오웰이 지은 제목이 아닌 우리네 편집자들이 오웰의 단편을 엮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만의 제목인 것이다. 엄밀히 오웰의 책은 아니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의 잡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일 뿐.

   이 책에는 오웰이 살아온  삶과 밀착된 세심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글들이 담겨있다. 크게 제 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제2부 문학과 정치, 제 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제 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제 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의 5가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5개에서 7개 가량의 단문들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버마에서 경찰생활을 할 당시에 도망쳐 난장판을 만들었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가 관찰한 버마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놓고 있다.

  한 사물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꽤나 깊이있게 전개된다. 다음은 첫번째 단문 '교수형'의 일부분이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P26)

  사형을 언도받은 한 죄수가 죽기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쓴 것이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낮 사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머리는 이미 죽을 걸 알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여전히 계속 살기 위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쓰며 몸부림치고 있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과학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후 계속되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비용' 까지는 그럭저럭 좋다.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지루하다. 물론 소재는 다르지만. 복수, 공원, 두꺼비, 스포츠, 서점, 영국요리, 차, 담배 등등 그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일상 속의 사소한 소재로부터 생각은 넓게 번져나간다.

  어쩌면 그의 이 단문들은 <동물농장> 과 <1984년>이라는 저서의 흥행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 책의 흥행으로 작가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지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이 책을 펴내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충분히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깊이있는 사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만큼의 관찰과 사색을 하는 이들은 꽤나 널려있다. 오로지 조지오웰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글을 썼는가 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었다. 굳이 오웰이 아니어도 된다면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웰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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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8-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만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늘빵 2005-08-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흠... 그럼 읽은 김에 마저 나머지 두 개도 읽어볼까.

하이드 2005-08-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쁘죠.

마늘빵 2005-08-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이뻐요. ㅋㅋ 종이도 저 이런종이 좋아해요. 갱지같은 재활용지. 왜냐면 땀이 잘 닦이거든요. 요즘은 수술 후 괜찮지만 예전엔 땀 투성이라 미끈한 책을 쥐면 땀방울이 책표지에 맺히곤 했는데 이런 책 껍데기는 땀을 흡수해주거덩요.

이상익 2019-04-3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모르겠지만, 나라는.. 자기 방어적 표현이 많은 리뷰입니다. 주장을 확실히 할거면 그리 하시길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품절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26쪽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89쪽

"복수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그리고 힘이 없기 때문에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인 것이다. 무력감이 사라지면 그런 욕망 또한 없어지게 된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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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데요.^^

이리스 2005-08-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힘을 얻게 되면 복수의 욕망이 사라질런지.. 그건 개인차가 심하게 있을듯 합니다. ^^

마늘빵 2005-08-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오웰이 그런 야기를 하더라구요, 괴벨이나 히틀러를 감옥에 잡아넣고 나면 그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미 사라지고 우리앞에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깨부숴야 더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5-08-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마치 더이상 초라할 수 없이 초라해진 후세인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인가요? 저는 못돼먹어서 그런지 히틀러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으면 아예 더 작게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버릴것 같아요.나약한 눈빛을 보이면 가증스러워하며 말이죠. -.-
 



 

 

 

 

  아 재밌다. 스트레스 날리기는 딱이다. 연구소 교육은 해당시간에 가서 수업만 하는 것으로 끝나질 않는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즐비하고 일일히 다 신경써서 하면 시간 무지 잡아먹는다. 첨삭도 해주고 코멘트 달고 뭐 파일 보내고 머하고 머하고. 그제, 어제, 오늘. 교재 안에 일일히 코멘트 달아주는 것도 참 시간 무지 잡아먹는다. 이거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배째라 하고선 쇼파에 뒹굴며 짱깨집에서 볶음밥 시켜먹으며 케이블 영화를 시청.

  오늘 나에게 걸려든 영화는 <블레이드2>다. 지금 <블레이드3>까지 나온 걸로 아는데 흠. 두번째 작품은 내가 전에 얼핏 중간부분만 본 것 같다. 익숙한 장면이 몇군데 있었다. 이래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돼. 보다말거나 중간부터 보면 안된다니깐. 다행이 이번엔 첨부터 끝까지 다 봤다.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어 잠시나마 화제가 되었든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영화. 사실 난 그를 잘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전까지는. 역시 그런게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점을 느낌.



* 수많은 리퍼족들을 혈혈단신 상대하고 있는 웨슬리 스나입스. 그는 연기하는게 아니라 영화 속에서 노는 거 같다. 전쟁놀이하듯. 이건 칭찬.

  흡혈귀와 인간의 대결. 그리고 또다른 존재 변종 뱀파이어 리퍼의 출연.



*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리퍼. 그는 뱀파이어의 정예부대의 일원인 니사를 살려준다. 왜? 동생이니깐.

  "친구는 가깝다. 하지만 적은 더 가깝다." 라고 그가 말했던가. 과거의 적인 뱀파이어와 인간 블레이드의 대결은 이제 뱀파이어와 블레이드 VS 리퍼의 대결로 바뀐다. 리퍼는 뱀파이어를 사냥하고 순식간에 리퍼족으로 변신해버린다. 엄청난 속도로 뱀파이어가 다 잠식당하고나면 다음 목표는 인간. 그러니 블레이드도 가만 있을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뱀파이어의 계략이었다. 정많고 착한 블레이드 당연히 계략에 넘어가주고, 원래 그를 사냥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블러드 팩 집단과 한패거리가 되어 리퍼를 사냥하는데. 아무리 이제 같은 팀이라고는 하나 블러드 팩과 블레이드가 온전히 한팀일 수는 없다. 당연히 뱀파이어는 블레이드를 중간중간 노리고.  그 안에는 믿었던 인간첩자까지 숨어있었으니.



* 잔인하고, 날카롭고, 거대한 존재이지만 불쌍한 존재.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자.

  대결, 배신, 연민, 사랑이 곁들어있는 영화. 그리고 화려한 볼거리. 사실 화려한 볼거리가 주고, 연민, 사랑, 배신 이런 것들을 영화를 감질나게 하는 양념에 불과하지만 볼거리 못지 않게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실패한 디엔에이 조작으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리퍼. 아버지는 너무나도 냉혈인(?)이다. 냉혈 뱀파이어. 뱀파이어의 우수한 종족보존을 위해서는 아들도 딸도 가족도 없다고 말하는 대왕 다마스키노스. 내가 볼 땐 오히려 뱀파이어보다 리퍼족이 더 강해서 실패한 디엔에이 같지도 않더구만. 리퍼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였을까. 뱀파이어를 노리며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와의 대면하게 된다.

  뱀파이어를 죽이는 각종 적외선(?) 자외선(?)  수류탄하며, 이런저런 무기들. 거의 매트릭스의 레오수준으로 날아다니다시피하는 블레이드의 화려한 액션신. 다 잊고 이 순간을 즐기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블레이드 3> 에서는 무슨 일이?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 그 다음 이야기는 뭘 다루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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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3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번역된 저서 중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책. <여행의 기술>. 물론 그의 번역된 책 중에서 절판된, 지금은 도서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또다른 저서가 있긴 하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 그것인데, 요놈도 얼른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위인인지라. 그렇다고 다 사보는 건 아니고 친구나 동생 것을 빌려 읽기는 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사서 보는 걸 선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에 책이 많은건 아니다. 워낙 읽는 속도도 느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껏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저서들 모두 나에게 별 네개 이상씩의 만족은 안겨주었고, 그렇기에 난 그의 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내게 별 네 개 정도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별 하나 부족의 이유는 내가 여기 나오는 여행의 장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여행한 그 장소들을 이미 다녀왔다면 이 책을 읽을 때 더 밀착하여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여행이라는 건 순전히 '머리 속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행에 관한 이 책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 인해 증명되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보통씨가 사색하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 책의 순서는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그리고 귀환 이렇게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져있고, 여행의 할 때의 출발시의 주의점, 장소 등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그것까지 다루고 있다. 여행할 때의 시간순에 맞춰서 책의 순서를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순수하게 여행에 대해, 여행장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통해 그가 느낀 것, 호기심, 숭고함, 아름다움, 습관 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사색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오히려 여행의 시간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띄엄띄엄 그가 본 것이 시작이 되어 끝없이 그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사색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P27)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P43)

  어쩌면 이 책은 일종의 대중적 미학 서적이 될수도 있겠다. 건물과 거리거리마다의 느낌,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이를 통해 펼쳐지는 숭고와 미학. 예술작품에도, 미학에도, 여행에도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내가 잘 아는 이들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다 들어본 이들이다. 이름만. 위스망스,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워즈워스, 에드먼드 버크,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등 이들의 이름은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안내자가 되어 나와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 난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를 한탄하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일 밖에.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p46)

  알랭 드 보통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자의 몫까지도 지나치게 사색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펼치는 자랑질이다. 난 이만큼 알고 이만큼 똑똑해. 그래 너 잘났다. 이런 식이 되는 거다. 보통이 그걸 의도하고 책을 쓰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자. 많이 안다는 것은 인정하자. 하지만 그는 너무도 자신이 아는 것을 현학적으로 그려낸다. 좀더 쉽게 안될까?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난 나의 무지를 깨닫고 아 이런 멍청이 머 아는게 하나도 없냐 이런식의 자기비판을 하고 있으니 그의 책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니 뭐 이래. 나이 먹은 움베르트 에코 쯤 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고작 30대의 젊은 스위스 철학자 아냐? 너무한걸.

  <여행의 기술>에는 어떻게 여행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철학에세이다. 미학에세이다. 그러니 나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갈 계획도 없는 이들이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자 그를 통해 이제 머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사색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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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잘난척 하는 똑똑한 스위스 젊은 철학자에게 아주 푹 빠져 있습니다. 우호호호... 게다가 미남이지 않으시옵니까? ㅋㅋ

마늘빵 2005-08-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푹 빠지긴 했습니다. 잘난척도 밉지가 않더군요. 미남이 해서 그런가? 난 남자 별로 안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