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절판


"아기는 대상을 '좋은사람' 과 '나쁜사람'으로 분리해서 받아들인다. 엄마가 젖을 주고 포근히 안아줄 때는 좋은 사람이고, 욕구를 채워주지 않고 야단을 칠 땐 나쁜 사람이다. 통합되지 않은, 두 사람으로 인식한다. 한 사람 안에 'good' 과 'bad'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극단적인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경계선 인격장애'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특정인에 대해 좋고 싫음의 극단적인 감정을 갖는다.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신처럼 숭배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이유로 같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며 폄하한다."(책을 펴내면서)-9쪽

"내가 경험했다고 해서 그 문제의 보편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일한 경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사안이라도 그때마다 개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이명박 대 박찬욱, 이명박 편)-29쪽

"과거의 성공을 미래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파악해야 한다"(앨빈토플러)(이명박 대 박찬욱) -31쪽

" '절세미인'의 미모에 대한 끊임없는 결핍감을 "아직도 부족하다"는 겸양으로 보기는 어렵다. 쉼없는 회의와 불안과 자조와 두려움을 거치지 않고 어찌 탄탄한 안정감이 만들어질 수 있으랴만, 거기에도 균형은 필요한 법이다."
(이명박 대 박찬욱, 박찬욱편)-47쪽

"동일한 물리적 상황에서도 '내 현실'과 '네 현실'은 다르게 인식된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주관적으로 '나의 현실감각'이란 늘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나의 현실감각과 어긋나는 현실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무시해도 좋은 마이너리티거나 불가해한 예외적 상화일 뿐이다. 무엇보다 먹거리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옷가지에 많은 돈을 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정신 나간 '비현실적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 '감이 없다'는 게 별거 아니다. 다른 현실이란 있을 수 없고 내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만 현실이라고 우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려면 타인의 행위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상적 시각이 필ŸG다ㅏ. 내가 보고 싶은 상황만 보지말고 나와 타인의 전체적 현실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현실감각은 한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이의 현실감각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이어진다."(정몽준 대 이창동)-64쪽

"그림자 없는 물체는 '실체'가 아니듯, 완벽한 '객관적' 현실이란 이데아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와 남이 함께 소통하는 장은 그 '현실'이란 마당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도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소통의 노력은 값진 것이다."(정몽준 대 이창동, 이창동편)-83쪽

"영화촬영 현장이란 때때로, 또는 자주 소외의 구조 속에 빠질 때가 많다. 역할이 작을수록 중심에서 멀어진다.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지금 어떤 장면을 찍는지도차 알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장의 변두리에서 고개를 파묻은 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작업에 임할 수 잇는 열린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이창동의 말)-89쪽

"내향성/외향성의 분류는 정신분석가 융의 이론에 의한 것이다. 융은 심리학적 유형의 하나로 인간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별하였는데, 그들은 주체와 객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이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이 주로 객체에 의한 것일 때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며, 반대로 객체보다도 주체에 의해 결정되면 내향적이라고 한다."(심은하 대 김민기)

"가령 어떤 사람이 미술전람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신문의 호평이나 화가의 지명도에 근거해 특정한 그림을 좋다고 평가를 내린다면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평이 좋고 그 화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의 태도는 내향적이다. 그의 판단기준은 주관적 측면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140쪽

"사람에게는 '자아 동조적' 측면과 '자아 비동조적' 측면이 있다. 원래 자아 동조적/자아 비동조적이란 개념은 정신과에서 성격장애와 신경증을 구분할 때 중요한 잣대가 된다. 청결과 반복적 확인,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두 질환인 강박증과 강박적 성격장애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하루에 수십 번 손을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증' 환자는 본인도 괴로워한다. 안 그러고 싶은데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자신의 행동이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아 비동조적'이다. ...... 그러나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아 동조적'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청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하루 종일 걸레를 들고 쉴새 없이 닦고 또 닦는 것도 단지 집이 더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심은하 대 김민기) -152쪽

"오해가 지속되면 편견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편견을 고치려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회나 개인은 언제나 불행하다."(심은하 대 김민기)-165쪽

"욕심과 희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 피해가 가면 욕심이고 누구에게 피해가 안되면 희망인가. 그냥 생각해볼때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욕심이라면 불행해졌을 때 가져야 할 게 희망일 것이다. 잠시 욕심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희망을 버린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욕심이 아니라 그냥 정당한 (...) 내 삶의 희망인 것 같았다."(이인화 대 김근태, 20대 어느 젊은이)-169쪽

"역사소설은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보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배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황석영 왈)-185쪽

"인간은 원래 과거에 겪은 쓰라린 일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더 잘 회상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과거의 괴롭고 쓰라렸던 일들이 지금의 행복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는 쓰라린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고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이인화 대 김근태, 이인화 편)-188쪽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를 위해선 일단 나의 실체가 어디까지인지부터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개성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정신분석가 융이 정신치료의 궁극적 목적을 '자기 개별화' 혹은 '자기 개성화'로 정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융이 말하는 '자기 개성화'란 무의식에 있는 자기 모습을 찾는 것이다."(김수현 대 손석희)-247쪽

"반 박자 앞서야 할 때와 반 박자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건 '지금 여기'의 나를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김수현 대 손석희, 손석희 편)-275쪽

"모든 존재가 존재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조각상의 외적 형태를 색깔, 무게, 길이 등으로 말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그 외적인 조건만으로 존재성이 있따고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아버지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가져야 하는 온전한 존재의 형태, 즉 부성이 없으면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존재는 하지만 존재성이 없는 것이다. 존재성이 있는 사람이라야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존재성'에 있으며, 존재성이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상대의 존재도 그만큼 명백해지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성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만 일어난다."(김대중 대 김훈)-285쪽

"기능적 사고에 고착화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정서적 격리'현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 정서기능은 거의 정지상태에 이르고 사고기능만 비대해지는 현상이다. 이들이 사건이나 상황을 기억하는 방식은 좀 특별하다. 사건이나 생각은 자동적이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기억되지만 그 사건에 수반된 정서는 거의 휘발되어 기억되지 않는다. 김훈의 글에는 그런 '정서적 격리'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김대중 대 김훈, 김훈편)-308쪽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김훈, <칼의 노래> 서문)-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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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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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VS 사람>은 정혜신의 두번째 작품이다. 그녀는 이미 <남자 VS 남자>라는 책으로 주목을 받았고 책도 꽤 잘 팔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첫 시도가 잘 먹혀들자 이에 힘입어 두번째 작품을 내놓은 듯 하다.
 
 나는 <남자 VS 남자>를 읽지는 않았다.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읽고싶은 책 목록에 추가만 했을 뿐 정작 선택의 갈림길에 가서는 항상 다른 책이 나의 사랑을 차지했다.

 <남자 VS 남자>에도 그녀가 다룬 인물들은 나의 주 관심인물들이었다. 김영삼, 김어준, 조영남, 강준만, 유시민, 김윤식, 이외수, 마광수, 김종필 등등 그들은 나의 관심인물 리스트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같은 구도를 가지고 등장인물만 싹 바뀐 <사람 VS 사람>은 나의 관심을 받았다.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저 두 책이 나온 시점에서 내가 관심갖게 된 다른 책들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정혜신은 연세대 의대를 나와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의사가 이런 책을 썼다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의사 앞에 '정신과'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의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외과의사, 내과의사, 성형외과, 정형외과, 마취과, 산부인과 등 여러가지 직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신과는 다른 과와는 확실히 외따로 떨어진 영역을 점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의사이긴 하지만 의사이면서 심리학자  혹은 철학자 쯤으로 생각해도 될 터이다. 마음의 병, 정신의 병이 든 사람들과 상당하고 치료를 유도한다는 면에서 의사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영역은 심리학이나 철학의 영역이 아닐까. 그래서 정혜신이라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는 말에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확실해 해둬야한다. 그녀는 의사지만-의사중에도 정신과 의사이긴 하지만, 확실히 글발이 대단하다. 내공도 상당하다. 마치 여자 강준만을 보는 듯 하다. 물론 강준만과 같이 적나라한 솔직함과 대담함, 공격성을 띄지는 않지만 엄청난 자료 수집능력과 인물분석은  실로 강준만에 버금간다. 아니 어디서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고 언제 이걸 다 읽어내는지 궁금하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일까. 내공도 대단하고 글발도 대단한 인물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정몽준과 이창동, 이인화와 김근태, 이명박과 박찬욱, 심은하와 김민기, 박근혜와 문성근, 나훈아와 김중배, 김수현과 손석희, 김대중과 김훈을 대립시켜 다루고 있다. 언뜻 두 사람을 붙여놓은 것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가령 김대중과 김훈, 박근혜와 문성근처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명박과 박찬욱, 심은하와 김민기 처럼 말이다. 그러나 각 장으로 들어가 그녀가 풀어놓은 서두를 보기만 하면 왜 두 사람을 붙여놨는지 금방 이해된다.

 나는 대체로 그녀의 인물분석에 동의한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평상시의 이미지와 나름대로의 분석이 그녀의 그것과 대개 일치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것이 좀더 세밀하고 탁월하다. 나는 그저 두루뭉실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찌보면 각각의 인물들의 배치와 분석내용은 순전히 그녀의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객관적인 자료들이야 어떻게 짜깁기 하느냐에 따라 가져다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 중간중간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분석대상이 된 인물들이 자신의 글을 봤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녀가 대상인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자기검열을 한 것이 아닐까.

 그녀의 심리평전 제 3탄은 또 어떤 인물들을 다루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음 책 제목은  '여자 VS 여자'는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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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3-0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도 강준만을 연상하게 하더군요

마늘빵 2005-03-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저도 강준만의 흔적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자가 그동안 강준만을 모델로 수련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절판


"고들이 고른 것은 하시시(hashish)라는 효능이 뛰어난 약재였다. 그들의 악명이 세상에 퍼져나가자 이 치명적인 군대의 사람들은 한 단어. 하사신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하시시를 마시는 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하사신이라는 이름은 지상에서 죽음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이 단어는 살인이라는 뜻을 품은 채 진화해서...... 심지어 오늘날까지 현대 영어에서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이제 이 단어는 아사신(Assassin)이라고 부른다."-32쪽

"신 세계 질서. 이것은 과학적인 계몽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일루미나티는 이를 '루시퍼의 교리'라고 불렀습니다. 교회는 루시퍼를 악마와 다름없다고 주장했지만, 일루미나티는 루시퍼가 라틴어 의미 그대로 '빛을 가져오는 자'라고 보았죠. 다른 말로는 '빛을 밝히는 자', 즉 일루미네이터였던 거죠."-67쪽

"일루미나티 같은 조직의 철학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들의 상징은 남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다른 집단이 가져가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그런 경우를 '전이'라고 합니다. 기호학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나치는 힌두교에서 스바스티카(나치문양)를 가져왔고, 기독교인은 이집트인에게서 십자가 형태를 따왔습니다."-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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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나와 같은 여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한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를 먼저 읽고서 재미를 느끼고 저자의 또다른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자 반갑게 읽어준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실제 저자가 미국에서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고 <다빈치코드>가 후속작이지만-이는 두 책의 출판년도를 확인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빈치코드> 초반에 랭던 교수는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고 하는데 그 위기가 바로 <천사와 악마>에서 살인범을 쫓으며 겪은 경험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빈치코드>의 흥행에 힘입어 <천사와 악마>가 뒤이어 출판되었다. 전작의 유명세를 다른 작품으로까지 이어가려는 출판사의 상업적 속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건 출판사의 잘못이 아니라 출판사의 정당한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를 먼저 번역해 내놨어도 지금과 같은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확답을 하지 못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댄브라운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고 소수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끝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이라는건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두 책의 줄거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앞선 작품과 뒷선 작품을 시간순으로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접어두자. 오히려 나는 <다빈치코드>보다 <천사와 악마>에서 손에 땀을 쥐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나중에 봤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없다.

 <천사와 악마>의 원 제목은 Angels & Demons 다. 엔젤은 그렇다 치고 왜 데블이 들어가지 않고 데몬이 들어갔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데몬과 데블의 차이점은 뭘까? 사전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데몬은 데블과 같이 악마, 악귀, 귀신이라는 의미이지만 세밀하게는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신들과 사람들 중간에 있다고 생각되는 악마라고 한다. 반면 데블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악마다.

 흠. 그래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책의 제목은 데몬 대신에 데블이 들어가야 마땅하다. 종교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 천사의 반대개념으로서 더욱 적합한 데블을 쓰지 않고 데몬을 쓴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넘어가자. 모르니까. 저자에게 물어봐야 알 듯 하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그는 책의 서두에 '사실'이라는 대목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임을 미리 말해두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사실에 기반한 영화나 소설들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실화는 언제나 머리 속에서나 가슴 속에서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일루미나티가 실제하는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실제한다고 하지만. 하지만 일루미나티와 연관된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바 있다. <그림자 정부>라는 책은 이키유바라 최라는 사람이 썼다. 중국 출생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15년간 머물다 캐나다로 가서 사업가로도 활동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하고 그 실체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라는 것이다. 히틀러, 루스벨트, 처칠, 러셀, 현존하는 사람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빌 게이츠까지도 모두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주요위치에 머물며 서로 짜고 고스톱을 친다는 주장.

 댄 브라운이 소설 속에서 언급하는 일루미나티는 바로 프리메이슨과 연계되어 있다. 일루미나티는 사라졌다고 생각되지만 프리메이슨은 현존한다.

 바티칸에 맞서는 일루미나티의 부활. 네명의 교황 후보인 추기경들의 피살. 그것도 물, 불, 흙, 공기라는 네 가지 원소를 이용한 피살. 그리고 대칭되는 상징문구. 랭던 교수는 결국 네 명의 후보 모두를 구하지 못한다. 이는 소설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네 명 중 한명이라도 구하게 되면 소설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구할거라고. 하지만 결과를 알면서 보더라도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번의 반전. 반전은 언제나 그렇듯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언급을 자제해야한다. 두번의 반전으로 나는 절정에 올랐다. 캬~ 하는 감탄사와 함께.

 이쯤에서 난 댄 브라운이 도대체 미국에서 어떤 과목의 교사였는지 궁금해졌다. 프로필엔 그냥 교사라고만 할 뿐 과목은 언급하지 않았다. 수학교사일까? 화학? 아니면 영문학? 뭘까... 의문은 계속된다. 수학교사라고 생각한건 그가 기호학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기호학을 전공하고 고교교사로 있을 것 같진 않았고 아무래도 비슷한 것으로 수학이 있다. 화학. 이건 아닌거 같다. 소설 속에서의 각종 화학반응과 물질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필이 안온다. 그의 전공이라는. 영문학이라고 생각한건 그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야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보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는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난 의심만 해볼 뿐이지 알려지지 않은 바에 대해 알 수는 없다.
 
 백수인 내가 집에서 놀면서 책을 읽어도 이렇게 빨리 읽을 수는 없다. 하루에 한권씩 이틀만에 다 봤다. 그의 소설은 지적인 만족을 주면서 재미도 안겨주고 있어 지적재미를 추구하는 내게 딱이다. 다른 작품들도 이어서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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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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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22쪽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임제선사)-28쪽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의해 내 인간 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32쪽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51쪽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소로우)-52쪽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56쪽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57쪽

"행복의 기준이라니, 행복에 어떤 기준이 있단 말인가. 만약 행복에 어떤 기준이 있따면 그건 진짜 행복일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른 환경과 상황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기준(틀)으로 행복을 잴 수 없다는 말이다.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물어야 한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꽃향기처럼 들려오는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면서 누릴 줄 알아야 한다."-70쪽

"봄에는 파랗게 움트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는 누렇게 익으라. 그리고 겨울에는 말문을 닫고 안으로 여물어라."-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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