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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평점 :
<100분 토론> 을 가장 즐겁게 보는 법. 딴 게 없다. 신해철과 진중권이 나올 때만 골라 보는 것이다. 솔직히 토론 프로그램이 얼마나 지겹고 재미없나. 이 두 사람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 관심 있는 주제가 다뤄질 때 몇 차례 보곤 했지만 영 토론이 밍숭맹숭하고 토론이 토론 같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 토론이면 토론답게 좀 치열하게 오가는 맛도 있고, 논리적인 견해가 오고 가야 하는데, 토론이 자기변론에 그치니 영 재미가 없지 않겠나. 그러나 진중권과 신해철이 패널로 나올 땐 다르다. 두 사람의 발언의 공통점은 일관되다는 것이다. 고집스럽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다루던 처음부터 끝까지 일맥상통하는 그들만의 일관된 논리가 있다는 말이다.
신해철이 극구 나오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담당 피디와 작가가 전화해서 그를 자극해 나오게 만들었을 땐, 최소한 그가 나와서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만한 주제여야한다. 몇 차례의 토론 참가를 통해서 여러 주제를 꿰뚫는 그의 일관된 논리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문제가 되는 부분과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을 확실하게 구분짓고,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왜 문제가 되는지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왜 그렇지 않은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왜 그런지를 깔끔한 논리로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대마초에 대한 논점은 그게 담배보다 몸에 나쁘다고 한들 국가가 그것을 간섭할 권리가 있느냐, 개인이 알아서 해야 될 일이 아니냐는 문제구요. 또 한 가지 간통과 다른 대마초만의 또다른 논점이 있다면 '국가가 소위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보를 조작하거나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해도 되느냐'라는 문제인데요. 군사독재 시절부터 대마초에 대한 정보를 곡해해서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알리고 공포심을 심어주면서 협박을 했거든요."(p56)
토론을 하다보면 논점이 흐려지거나 왜곡되는 때가 있다. 이건 상대가 멍청해서거나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논점을 왜곡시킴으로써 자신이 토론에서 주도권을 쥐고, 자기논리대로 이끌어나가겠다는건데, 이 부분을 명확히 해주지 않으면 토론 주제는 삼천포로 빠지고 - 많은 이들이 삼천포로 빠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 결론은 엉뚱하게 나버린다. 왜냐면 주제는 그대로인데 논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이 부분을 명확히 짚고 나간다. 왜 문제가 되는가, 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것은 이런 종류의 문제임을, 따라서 이런 부분에 한정해서만 논의를 해야함을 확실하게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대학에 들어간 파릇파릇한 대학생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솔로 데뷔를 했으며, 2집에선 시퀀스를 이용하여 다양한 장르를 한 앨범에 묶어버리는 - 지금은 보편화 되었지만 - 새로운 시도를 했고, 가끔씩 광고도 찍으며, 또 티비에도 얼굴을 내보이며 아이돌 스타로서 자리잡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밴드를 만들었고, 엄청난 작품을 들고 한국 대중 음악계를 강타했다. 넥스트. 공교롭게 90년대 한국 음악계의 양대 산맥인 서태지와 동시에 활동하며 시선을 분산시키게 된다. 그들 이후 그만한 재목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뮤지션들은 좀 시대를 나눠서 활동해주면 고마운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어느날 기자회견을 통해 밴드 해체를 통보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습니다." 기자들은 벙쪘고, 팬들은 충격받았다. 정말 그들은 올라갈 곳이 없었다. 이 책 속의 신해철은 당시 일주일이면 전국투어 다 끝나는 이 바닥에서, 공연 소식을 알리면 순식간에 표가 다 매진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넥스트는 최고였고, 이후 그만한 밴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에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새로운 넥스트를 통해 그의 음악실험은 계속 됐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후배 뮤지션에 대한 열정도, 그리고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도, 무척 인상적이다.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이 신해철로 인해 모습을 갖추었다고 해도 될만큼 난 어린시절부터 신해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철학과 중퇴인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 했고 - 고졸이라고 말한다 - 철학과에서 공부한 탓에 철학적 가사와 말빨을 얻게 되었다는 말들에 대해서도 불편해한다. 그것이 그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었다면서. 그러니깐 철학과를 간 것과 그곳에서 공부한 것은 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활동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로 인해 악기를 시작했고, 그로 인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는 그가 밟은 그 경로들을 나도 따라 밟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서강대 철학과 재학생이라는 여자분이 신해철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동문인 것에 대해서, 같은 곳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철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는, 나아가 신해철에 대한 존경까지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발언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원했던 원치 않았건 그는 이미 철학인, 구체적으로는 서강대 철학인에게는 가슴 뿌듯한 삐딱한 모델임에 틀림없다. 나에게 그는, 어릴 적엔 팬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닮고 싶은 모델로서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음악인으로서의 신해철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신해철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그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그는 여전히 멋진 사람이고, 아니 예전보다 더, 나는 여전히 그의 신도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어야 하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같이 바꿔나가자."
"김규항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사나운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온유한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은 조용히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둘은 본디 하나다.'" 그런 면에서 신해철은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어야 하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같이 바꿔나가자'고 끊임없이 말한다. 한국의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제도와 함께 남들의 인식이 다 바뀌길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