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 그러니까 가장 처음 나온 《눈 먼 자들의 국가》는 여전히 못 보았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것도.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보기 힘들 것 같기도 하네요. “엄마, 나야” 하는 말은 더 가슴 아픈 제목이군요. 이 말 아직도 저는 듣기보다 하는 쪽입니다. 엄마 아빠, 부모 마음 잘 모릅니다. 부모라고 해서 다 좋은 부모만 있는 건 아니지만(이런 말을 하다니). 이건 시집이고 시인들이 아이들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사랑받고 형제자매와 잘 지낸 아이들이더군요. 가끔 싸울 때도 있었겠지만. 글 보면서 부모 형제한테 사랑받지 못한 아이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런 아이도 기억해야 할 텐데. 제가 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했을 때는 다들 설레고 기뻤을 텐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탄 아이들은 다 마음 착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신보다 남을 생각할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 만화 <표류교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을 보았습니다. 드라마 시작할 때 “지금을 살아라(今を生きろ)” 하는 말이 나와요. 이 드라마 보기 전 새벽에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곳보다 덜 했을지 모르겠지만, 땅이 울리고 창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죽는 게 무서웠다기보다, 아무 말 못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 잘 살자 생각했는데.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다음에 고등학교가 사라집니다. 원작은 초등학교라는데 드라마는 고등학교고 나오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라진 고등학교에는 선생님 몇 사람과 학생 스물둘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가 간 곳은 인류가 거의 사라지고 지구는 사막이 된 그다지 멀지 않은 앞날이었어요. 드라마에서 지금은 2002년이에요(만화는 더 옛날에 나왔군요). 이 드라마 한 지 오래됐군요. 저는 지진이 일어난 뒤에 이걸 보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간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곳에서 살기는 하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습니다. 만화는 더 무서울 것 같더군요. 드라마에도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인류가 나타납니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지만 무서운 듯하더군요.

 

지금 2002년을 사는 사람과 지구가 사막이 된 곳으로 간 사람들을 보여줘요. 지금이 더 조금 나옵니다. 학교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사라진 아이들 부모와 친구는 무척 슬퍼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 딸(학생은 아닌 일반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고 목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도움도 주어요. 사막이 된 지구(일본)에 간 아이들은 그날 말하지 못한 것과 그동안 멍하게 산 것을 아쉬워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학교가 사라진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 때문에 지구는 사막이 된 것일지도. 앞날에 간 사람도 생각합니다. 자기 둘레만 괜찮으면 상관없다고 한 건 아니냐고. 한 사람이 ‘나 하나쯤 어때’ 하는 생각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겠지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 하나라도 잘 하자’ 하면 좋을 텐데요. 선생님과 아이들은 2002년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냅니다. 그 편지 잘 닿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마지막에 학교 둘레가 바뀌었어요. 어떤 마음은 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나타낸 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삼켰던 두려움이 바다의 포말이 되었어요

내 친구들이 흘렸던 눈물이 한 잎 한 잎 낙엽이 되었어요

하고 싶었던 모든 말들이 송이송이 눈발이 되었어요

우리 모두가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봄별이 되었어요
이 모든 것들 빛깔과 이름을 잊지 마세요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면

그건 여기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그리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손짓하고 있다는 것, 나처럼요

그러니 귀 기울여주세요

가만히 가만히 닻처럼 잠긴 4월 산사꽃 비명을!

이제라도 환하게 밝혀주세요

기다리며 기다리며 벼렸던 4월 새파란 별빛을!

 

지난해 흘렸던 눈물은 여전하네요

오는 봄볕과 빛을 가리지 않게 해주세요  (54쪽)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을게요.  (189쪽)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모두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하늘 높이 올라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늘 다니던 동네 슈퍼, 운동장, 학원 근처에서

생생하게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할게요.  (253~254쪽)

 

 

 

드라마에서 아이들은 비록 사막이 된 지구에 갔지만 살아있었습니다(나무나 물도 없고 살기 힘든 곳이지만). 세월호를 탄 아이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가 목숨을 잃었네요. 두번 다시 못 본다 해도 어딘가에 살아있는 게 나을지도 모를 텐데요. 시 속에서 아이들은 말합니다. 자신은 그곳에서 잘 지내니 엄마 아빠 언니 누나 오빠 형 동생도 잘 지내라고. 아이들 이제 차갑지 않은 곳에 있겠지요. 밤하늘 별이 되어 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건 산 사람이 생각하는 거지만. 아이들도 부모 형제자매 친구한테 그런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자신이 맡은 일이라도 책임감을 갖고 하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좀 넓게 생각하고 양심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나, 여기 있어’ 하고 별들이 인사할 것 같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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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

  허영철 원작    박건웅 그림

  보리  2015년 02월 02일

 

 

 

 

 

 

 

 

 

 

 

 

 

 

우리나라는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고 제대로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닐 거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돕기로 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한 나라가 아닌 둘로 나뉘고 만 걸까. 해방이 되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려고 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른 나라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지금까지 이어질 거다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하지 못했겠지. 바로 통일이 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와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7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북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식구가 사는 사람들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을 거다. 그 자손은 있겠지만 첫세대만큼 식구와 고향 그리워할까.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 많이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이 노래 가르칠까. 이 통일도 반공처럼 세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남과 북이라고 해야 할까)가 통일을 하면 좀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다. 천천히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어가면 좋을 텐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말을 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 일 정말 있었던 일일까. 내가 어렸을 때도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 표어를 썼다. 이런 거 언제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낮은 학년 때까지만 한 것일지도. 그때는 북한이나 공산당을 아주 나쁘다 생각했다. 북한에서 그것도 일요일 새벽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배웠다.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다. 남한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미국이 우리 통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왜 방해했을까.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될 것을 걱정한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도 미국 때문이 아닐까. 친일파가 미국에 붙은 것도 있지만, 미국이 친일파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독립운동도 사회주의자와 농민만이 끝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지식인이 친일을 했다. 절망스럽다고 마음을 바꾸다니.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겠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 온 일을 무척 슬프게 생각하는데, 남쪽에서는 그런 일 없었을까. 내가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죽임 당한 사람 무척 많다(제주, 광주). 여러 사람이 있으면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그것을 죄로 여기다니.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여러가지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예전에는 조금 다르면 모두 빨갱이로 몰았다. 이런 말하는 사람 아직도 있겠다. 사상이 다른 사람만 힘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사람 식구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은 다 힘들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허영철은 비전향 장기수였다. 1920년에 태어나 일본 탄광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만난 책이 다른 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에서 잠시 만난 사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아오고 공산당에 들어가고 고향 부안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활동을 하고 북에서 당 간부학교 교육을 받았다. 장풍군에 잠시 있다가 1954년 공작원으로 남쪽에 오고 한해 만에 잡혔다. 허영철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전향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하지 않았다. 허영철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다. 당이 남쪽으로 가라고 했으니 그 말 어길 수 없었겠지. 허영철도 남쪽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허영철은 서른아홉에 감옥에 들어가고 일흔둘에 그곳에서 나왔다. 그 뒤에는 보안 관찰법 대상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러고는 남이 좋은지 북이 좋은지 묻다니. 허영철이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허영철 식구는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영철한테는 한해도 함께 살지 않은 아내와 얼굴도 잘 모르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그저 호적에 아내와 딸 아들이라고 적혀 있을 뿐일 텐데. 그게 아주 모른 척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구나. 허영철은 나름대로 자기 신념을 위해 살았을 테지만, 그것 때문에 나머지 식구는 살기 힘들었다. 그건 나라에서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다.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민주주의가 없는 건 아니고, 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독재가 없는 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야기해서 더 좋은 걸 찾아야 한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하나를 정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하나만 좋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답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예전처럼 덮어놓고 공산당은 나쁘다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6·25 때 한국 군인이나 미군 잘못한 일 없을까, 없지 않을 거다. 잘못한 일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여러가지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이건 나라보다 개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이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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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6월 29일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개>, 38쪽

 

 

 

시간은 잘 흘러갑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우리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70년이 되었더군요. 70년 전에 모두 우리말을 쓰지 않은 건 아닐 테지요. 아니 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말로 말하고 글쓰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우리말을 하면 괴롭힘 당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네요. 학교에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없애기 위해 가장 많이 마음 쓴 건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이 말하면 멋모르고 따르잖아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도 좋아야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더 좋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선생님부터겠네요. 제가 어릴 때도 유치원 있었을 테지만, 저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는 건 좀 안 좋겠네요. 이런 말로 흐르다니.

 

시인 윤동주는 스물아홉(만 스물여덟)에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에도 말했는데 그때가 1945년 2월 16일이에요. 여섯달 뒤에 우리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1945년 2월에는 그런 생각 못했겠지만요. 윤동주 시집은 예전에 하나 사뒀더군요. 좀 작게 나온 시집인데 이 책에 실린 것보다 시가 조금 많더군요. <사랑스런 추억>은 없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있었습니다. 그 시집 가끔 펴보기도 했는데, 자주가 아니고 가끔입니다. 하나하나 잘 봤다기보다, 넘기면서 대충 봤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시가 어떻다 말하는 건 어렵겠네요. 시를 보려고 가끔 시집 사는데, 그것을 보고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못 봤습니다(처음 하는 말이 아니군요). 얼마전에 시를 보고 뭔가 생각나는 걸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것도 쉽지 않네요.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다보면 전에 봤을 때와 다른 것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쓰기 전에는 바로 두번만 보는군요. 쓰고 나면 편하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롭게 보이는 시가 있으면 좋겠네요.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은 어린다.  (73쪽)

 

 

 

앞에 시는 아는 거예요. 윤동주는 ‘순이’라는 이름을 시에 썼습니다. 순이는 누굴까요(순이가 아닌 순일까요). 윤동주 시에는 쓸쓸함 슬픔 따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을 텐데. 거지 아이를 보고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있는가 하면, 전봇대에 돌을 세개 맞추고는 문제 다섯개에서 세개 맞고 육십점 맞겠지 하고, 시험 공부하지 않고 공 차러 가는 <만돌이>도 있어요. <만돌이>는 재미있기도 하지요. 맨 앞에 쓴 <개>는 그 모습을 그려보면 그렇겠구나 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윤동주 시 하면,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짐하는 <서시>와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별 헤는 밤>이 떠오릅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생각을 깊이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다들 그랬겠네요. 아니 그때뿐 아니라 시나 소설을 쓰는 이십대는 저보다 어른 같아요, 여전히. 글이 사람을 성숙하게도 하겠지요. 저도 그래야 할 텐데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다른 책)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40쪽)

 

 

 

제목은 같지만 다른 시예요. 예전에 산 시집에는 앞에 것이 여기에는 뒤에 것이 실렸습니다. 앞에 것도 괜찮지요. 눈을 지붕이랑 길이랑 밭을 따듯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말하는 것이. 북극에 사는 사람은 얼음으로 집 짓잖아요. 눈 위보다 눈 밑이 따듯하겠지요. 사람이 눈 밑에 오래 있다보면 숨막혀 죽겠지만. 숨구멍이 있으면 죽지 않겠네요. 별말을 다했습니다. 윤동주 시는 힘든 세상에도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듯합니다(자신없는 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여주는 시도 있어야 하지만, 힘들고 아파도 살아갈 희망을 말해주는 시도 있어야 하겠지요.

 

 

 

 

 

 

 

난 외롭지 않아요

 

 

 

어느 가을날 나는 책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깊은 가을이 아니어서 나뭇잎들은 여전히 풀색을 띄우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작은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는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줄은 누군가 옆에 세워둔 자전거 바퀴에 엉켜 있었다. 엉킨 줄 때문에 강아지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듯해서 내가 엉킨 줄을 풀어주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여 그만두었다. 강아지를 남겨두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줄에 묶여 있고, 밥그릇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는 앉아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여웠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한번 더 보고 일어섰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여전히 밥그릇을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 모습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서 즐거운 듯 장난치던 작은 강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난 그렇게 외롭지 않아요. 묶여 있지만 내 옆에는 은행나무, 자전거, 그리고 내 밥그릇이 있으니까요. 저녁 땐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요. 거기엔 작은 아이도 있어요.’

 

내 마음,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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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내가 쓴 것을 읽어보니 제목으로 쓴 말이 있다. 그때 그런 마음으로 썼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왜 저렇게 썼을까 싶다. 다른 생각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 기분이 아주아주 안 좋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 기분을 이런 데 풀면 안 되는데. 늘 쓰지 않아야지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 건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데, 날마다는 아니지만 이게 일기처럼 되었기 때문일지도. 밑에는 지금과 맞지 않는 것도 썼다. 그것도 피하고 싶었던 건데, 본래는 이걸 십일월에 올리려고 했다. 그걸 쓰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괜찮겠지 했다. 지금은 십이월이다. 올해 마지막 달이다. 올해도 여러 쪽 책을 보려고 했지만, 계획하고 책을 보기보다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여전히 그러고 있다니, 여전히 쓰는 것도 비슷하고. 얼마전에는 쓰는 걸 바꾸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별로 애쓰지 않아서일지도. 어떻게 하는 게 애쓰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알아야 할지, 좀더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해야 할지. 책을 보면 빨리 쓰고 다른 책 보고 싶어서. 잘 못 써도 그렇게 빨리 못 쓴다. ‘쓰기 싫다’는 마음과 늘 싸우지만, 결국 쓰고 나서 ‘이렇게 쓸 거였는데 왜 그랬을까’ 한다. 책 읽고 안 써도 상관없는데, 언제쯤 책을 읽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떠오를까. 앞으로도 조금이라도 떠오르는 걸 쓸 수밖에 없겠다. 그전에 책을 즐겁게 봐야 할 텐데. 어떤 책 보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기대한다. 기대를 자주 배신당해서, 아니 내가 책을 제대로 못 읽어서 그렇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겸손하지 않아설까, 경험이 별로 없어설까, 아는 게 없어설까. 경험이나 아는 것은 그다지 상관없을 것 같다.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으니까. 보르헤스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고, 책에 마음을 맞추려 한다고 했다. 책에 마음 맞추기, 그 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잊었구나. 책에 마음을 맞추는 건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마음을 맞추는 건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니시우라 애쓰고 있지만

 

  크게 휘두르며 25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5년 08월 21일

 

 

 

 

 

 

 

 

 

 

 

 

 

 

 

 

책을 봤는데 시작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잠깐, 아니 좀 오래 헤맸다. 그래도 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좋겠구나 하는 게 생각났다. 나는 자주 아픈 일 없다, 아직은. 다시 생각하니 꽤 오랫동안 조금 안 좋은 곳이 있기는 하다. 잠 잘못 자서 안 좋아진 것 같은 어깨가 여전하다. 나는 그렇게 힘든 일 안 해서 어깨 아플 일 없다. 컴퓨터 쓰다보면 아프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픈 것(이건 어깨 근육이 뭉치는 건가)하고 조금 다르고 한쪽이 편하지 않다. 팔이 올라가지 않는 일은 없다. 좀 나을 때도 있었다. 나아지다가 다시 안 좋아지기도 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 만화 본 지도 몇해 됐는데. 그게 부럽다는 거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나이를 먹고 건강이 나쁜 건 자신이 관리를 잘 못해서기도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건강은 건강할 때 잘 지켜야 한다. 평소에 마음을 쓰면 나이를 먹어도 아주 안 좋아지지 않겠지. 나이를 먹으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할 말 없는가보다.

 

자신이 아파도 기분 안 좋지만 가까운 사람이 아픈 것도 기분 좋은 일 아니다. 자기 건강은 스스로 잘 지키면 좋을 텐데. 나는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구나. 좋은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그것보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가고 나아지면 좋을 텐데(이것을 여기에 쓸 때쯤에는 시간이 흘러서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꼭 그럴 거다. 왜 이런 말 썼을까 하겠지). 운동은 오래 연습하면 더 잘하겠지. 지금 야구하기 좋을 때다(책 보고 썼을 때는 좋을 때였는데, 이것을 생각 못하고 쓰다니). 그러고 보니 가을 현대회 하는 거구나. 니시우라 아이들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고 1학년이 새로 들어오면 투수 늘어날까. 니시우라 투수로 경기에 나가는 건 미하시지만 두 사람 더 연습은 해두었다. 다른 둘은 경기에 나갈 만큼 되지 않는 듯하다. 미하시가 무너지면 니시우라는 그걸로 끝이다 했다. 그런 거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미하시는 공 던지지 않는 것보다 던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투수는 그래야 하는 거겠지. 야구는 투수만 잘하면 안 되는구나. 이 만화에서는 그런 걸 잘 보여준다.

 

니시우라는 사이타마 현에서 야구 잘하는 학교 센다와 경기를 시작했다. 2회말까지 니시우라가 3점을 넣었는데, 센다는 3회초에 3점을 넣어서 동점이 되었다. 지난번에 3회말 하다가 끝났다. 투아웃이었는지, 하나이가 루에 나가고 타지마가 칠 차례가 왔다. 지금까지 타지마는 다쳤을 때 빼고 거의 4번 타자였다. 센다와 경기하는 지금은 하나이가 4번 타자다. 감독은 여러가지 생각하고 하나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도 공 치는 차례 많이 바꾸었다. 그렇다 해도 4번 타자는 특별하겠지. 하나이는 잘 했다. 타지마는 타자 자리에 서면 공 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나이를 마음 썼다. 잘해도 그렇게 헤매기도 하는구나. 모모 감독은 그런 모습 보고 잘됐다 생각하기도. 경쟁할 상대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은 거겠지. 어떤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상대가 될 사람이 없다 여기고 그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얕잡아 보기도 했다. 니시우라는 4회말에 사카에구치가 루에 나가고 미즈타니가 번트를 해내고 아베가 뜻밖의 공을 쳐서 사카에구치가 홈에 들어왔다. 니시우라는 1점 올라가서 4점이 되었다. 그 뒤로도 점수 더 넣었다면 좋았을 텐데. 5회말에 점수 낼 기회가 있었는데, 타지마 때 트리플 아웃이 되었다(이때 감독이 주자한테 히트 앤드 런 사인을 보냈다. 히트 앤드 런은 상대 투수가 공을 던지면 주자가 바로 다음 루로 달리는 거다. 타지마는 공을 굴리지 못하고 띄웠다). 센다가 안 좋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다가 니시우라가 트리플 아웃을 당하다니.

 

센다를 상대로 니시우라가 잘 했는데, 미하시한테 조금 문제가 생겼다. 공을 던져서 아웃시키기는 했지만, 아베는 미하시가 던지는 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4회초 끝날 때는 가볍게 넘어지기도. 예전에 아베가 다치고 다른 아이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미하시가 어떨까 하고는 포수자리에 앉아서 공 받아보면 알 텐데 했다. 투수와 포수는 공을 던지고 받는 걸로 서로를 아는구나. 미하시가 왜 이상해졌느냐 하면 공 던지는 자세를 바꾸려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미하시한테 혼자 연습하지 마라 했는데, 미하시가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금씩 책 보고 고치거나 다른 사람 따라해도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꽤 다른 듯한가보다. 미하시는 시간을 들여서 연습하면 익숙해지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모자랐을까. 미하시 하면 9분할 제구력인데 제구력이 떨어졌다. 6회초에서 센다한테 1점을 내주었다. 6회초부터 센다가 달라지기도 했다. 니시우라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잠깐 공 던지기 연습한다고 잘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미하시 혼자가 아니고 아베와 함께 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지금 위기를 잘 넘기면 좋을 텐데. 다쳐서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니 다행이다 여겨야 한다.

 

타지마가 하나이를 마음 써서 집중 못하게 됐다고 했는데, 오키도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연습했는데 공 못 치다니 하고, 똑같이 연습하면 안 되는구나 했다. 그러면 연습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잘 하고 싶어도 경기할 때는 긴장하기도 하겠지. 타지마는 경기하기 전날 밤 신발 끈 구명을 세면 괜찮다고 했다. 경기 때는 그것을 안 해봤는데 이번에 했다(긴장한 거겠지). 다음에는 타지마가 공 잘 치기를 바란다. 타지마 앞인 하나이도, 하나이와 타지마가 잘 하면 다른 아이들로 이어서 루에 나가겠지. 26권 언제 나올까. 다음권에서 경기 끝날지도 모르겠다. 니시우라가 이기는 거 보고 싶은데. 동점이니 먼저 점수 더 내주지 않고 6회초 끝내야겠다. 센다가 야구 잘한다 해도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6권은 이달에 나온다.)

 

 

 

 

 

라디오를 끌까 하다가 그대로 뒀더니 노래가 나왔다. 아는 노랜데 노래하는 사람은 이적이잖아 하고, 언제 저런 노래 했지 했다. 노래가 끝난 뒤 본래 들국화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걸 알았다. 라디오 방송에서 한번, 아니 여러번 들어본 적 있을 거다. 그때는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다니. 노래를 이적이 했기 때문일지도. 그날 여러 사람 노래를 들었다. 찾아본 건 이것 뿐이다. 이 노래 여러 번 듣다보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뜻이 있죠’ 하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노래는 뜻이 아닌 의미라고 한다. 이 음악을 찾은 곳에서 1988년 대학가요제 때 무한궤도가 하는 <그대에게> 영상도 보았다. 그렇게 오래전 것이 있다니. 그거 듣고 늘 듣던 음과 다른 곳이 있다는 거 알았다. 본래는 그랬는데 나중에 녹음할 때 바꿨나보다.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그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다니. 대학가요제에 나왔을 때 노래한 건 한번, 아니 두번뿐이니까. 자주 보는 건 아닌데, 그곳은 노래 영상을 보다보면 줄줄이 이어서 나온다. 인터넷이라는 곳이 본래 그렇지만. 다른 노래도 보여서 조금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노래를 듣고 위로받은 적은 없다.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위로받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은 없다 해도 노래 좋아했다. 지금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많이 듣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걸 듣는다. 내가 무언가를 걱정할 때 이적이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었다면 위로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쩌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노래, 음악은 꼭 그럴 때만 듣는 건 아니기도 하다. 좋아서 들으면 되는 거다. 얼마전에 일본 드라마 <오모테산도 고등학교 합창부>를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한편 한편에 노래와 함께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가 나왔다. 합창이라 하지만 남녀 중창에 가깝다(사람이 적어도 다함께 하는 거니 합창이라 해야 할지도. 잘 모르면서 이런 말을). 그렇게 노래하는 거 좋아하고 노래하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은 여러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서는 음악, 노래로 사람이 이어졌다고 말한다. 책 이야기가 나오는 곳에서는 책으로 이어지고, 이것 말고 더 있을 텐데. 드라마 <오모테산도 고등학교 합창부>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목소리로도 이것저것 알 수 있겠지. 지금까지 그런 거 생각하고 들은 적 없는데, 갑자기 이적 목소리는 올곧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이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다른 사람 목소리도 그렇다고 말할 것 같다. 딱 맞게 떠오르는 말이 없다니. 나는 그런 걸 잘 나타내지 못하겠다. 아는 말이 적어서 그런가보다. 드라마 마지막은 뮤지컬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냥 듣지만, 누군가는 어느 날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으면 좋겠다.

 

 

 

희선

 

 

 

 

 

걱정말아요 그대 -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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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8 0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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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9 0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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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선   마음산책  2015년 10월 20일

 

 

 

책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은 무슨 책일까 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긴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계있는 산문인지, 소설인지. 이 책에서 가장 처음 본 건 맨 앞이 아닌 마지막에 나온 참고자료예요. 거기에는 일본말로 된 책과 영어로 된 책이 있어서 임경선은 일본말뿐 아니라 영어도 잘하는가 보다 하고 부러워했지요. 아직 읽지 않았는데, 지난해에 임경선 소설 《기억해줘》가 나왔을 때 제가 아는 그 사람인가 했습니다. 몇해 전에 임경선은 캣우먼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연애상담을 했습니다. 그때 뭐하는 사람인지 확실히 몰랐고 연애하고 연이 없어서 방송도 거의 안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서 이름은 기억했네요.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연애이야기 하던 사람이 소설을 써서 조금 놀랐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다면 본래부터 글을 썼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말했을 텐데 제가 듣고 잊어버린 건지도(제목에 캣우먼이 들어간 책이 있고 그동안 책 많이 냈네요). 이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 말했군요. 이름 알고 있었다는 거 말하고 싶어서였어요.

 

여기에는 거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임경선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서 일본말을 먼저 배웠더군요. 부모님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일본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여기저기 자주 옮겨다녀도 힘들 텐데, 다른 나라를 옮겨다니는 건 더 힘들었겠습니다. 그때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과 여러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본말과 영어를 잘 알잖아요. 어릴 때는 부모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요. 부모와 떨어져서 한곳에서 살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상처가 됐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힘들다 해도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게 낫겠지요. 임경선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노르웨이 숲》을 만났답니다. 그때는 다시 일본에서 살아서 그랬겠네요. 이런 말 또 하는데 저는 어릴 때 책 거의 안 봤습니다. 책이 없기도 했고 둘레에 책을 즐겨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학교다닐 때 좋아한 건 노랫말 적기였네요. 저는 고등학교 나온 다음에야 책을 봤는데 잘 못 봤습니다. 몇해 전까지도, 지금도 ‘문장이 아름답다’ 이 말 잘 모릅니다(여러 번 말하는군요). 시간이 흘렀으니 아주 조금 알아도 좋을 텐데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언제쯤 알 수 있을지.

 

이것도 처음 하는 말 아닌데, 저는 아주 좋아하는 책도 작가도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좋아한다는 건, 그 작가를 아주 좋아해서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읽어본 책도 다시 읽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괜찮다 생각하고 보는 작가는 많습니다(좋게 생각하는 작가가 많다 해야겠네요. 이 말이 더 좋겠지요. 이것도 좋아하는 것에 들어가겠습니다). 하루키도 그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그래도 하루키는 하나 특별한 게 있습니다. 일본 작가 가운데서 가장 처음 안 사람이라는 거예요. 예전에 저는 하루키와 다른 일본 작가가 비슷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하루키가 처음 소설을 썼을 때는 하루키와 비슷한 작가는 일본에 별로 없었겠네요. 지금은 하루키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작가가 되었네요.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하잖아요. 하루키는 미국에서 지낼 때 자기 소설을 내 줄 곳을 스스로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하루키 자기 소설에 자신 있었군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중학생 때부터 영어 소설을 읽고 고등학생이 되고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하루키는 번역하는 소설가지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는 것은 취미라고 했네요. 그게 소설 쓰는 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하는 거겠지요. 하루키는 1984년에 딱 한번 만난 레이먼드 카버 소설을 모두 일본말로 옮겼습니다. 레이먼드 카버가 건강했다면 일본에도 갔을 텐데요. 레이먼드 카버를 일본에 알린 건 하루키예요. 그 일은 자기 소설이 잘된 것만큼 기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루키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건 알았는데 부모가 모두 선생님이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읽은 적 있는데 잊어버린 건지도. 아니 하루키는 부모님 이야기 한 적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루키는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쩌다 가끔 역사책을 보는데. 한 나라가 지나온 이야기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재미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겠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재미없어서. 역사를 좋아하고 잘 알아서 하루키는 대학에서 아내 무라카미(다카하시) 요코를 만났습니다. 하루키 아내 이야기도 거의 몰랐습니다.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서 말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길지 않았네요. 하루키와 요코는 대학생 때 결혼했군요. 결혼하면 남자는 가장이라는 마음이 커서 부담이 될까요. 하루키는 학교를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세해가 지난 뒤 재즈 카페를 열었습니다. 하루키가 음악 좋아하는 건 많은 사람이 알겠네요. 카페 이름은 ‘피터 캣’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문단 사람을 보기도 하고, 하루키 책 그림을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도 만났습니다. 예전에 《잡문집》에서 그 이야기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몰랐는데 안자이 미즈마루는 2014년 3월에 일하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더군요. 하루키 마음이 참 아팠을 듯합니다. 오래 사귄 친구가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재즈 카페를 하던 때 하루키는 야구장에 자주 갔습니다. 1978년 4월에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소설을 한번 써 보자 생각했습니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고 많이 고치는군요. 고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이상해 보이는 말만 고치거든요. 일하면서 밤마다 쓴 소설이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고 하루키는 소설가가 됐습니다. 《노르웨이 숲》은 하루키가 작가가 되고 십년째에 나온 거더군요. 그게 일본에서 잘 팔려서 좋기도 했지만 안 좋은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좋은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안 좋은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은 생겼지만 친구를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돈 때문에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었네요. 《먼 북소리》에는 마흔이 되기 전에 일본이 아닌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고 썼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지금 생각났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산 건 《노르웨이 숲》을 쓰기 전이군요. 그 책이 나온 다음에 다시 간 거겠네요. 그때는 미국이었나. 이름이 잘 알려지는 거 그리 좋은 일은 아니겠지요. 소설가는 소설만 보아야 할 텐데. 그때 하루키 아내 요코가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것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해야겠군요. 하루키가 다시 일본 사람을 생각한 건 고베 큰지진과 사린가스 사건 때문입니다. 사린가스 사건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언더그라운드》로 내고, 옴 진리교 신자를 만난 이야기는 《약속된 곳(장소)에서》로 냈군요. 그게 소설로 이어지기도 했네요. 소설이 사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바뀌게 하면 그것만으로 좋은 거겠지요. 하루키가 그것을 바라고 쓰는 건 아니고 큰 아픔을 지나는 사람 이야기를 쓴다고 하네요. 힘든 일은 사람을 한층 자라게 하지요. 자라지 않는다 해도 아주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겠지요.

 

운동 이야기 하니까 저는 걷기라도 꾸준히 할까 했습니다. 달리기는 힘드니까요. 어디든 걸어다니는데 날마다가 아니고 한주에 두세번이에요. 두세번은 많은 거군요. 거의 한두번입니다. 좀더 걸어야겠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못하고. 저는 밤에 밖에 돌아다니는 건 싫어하지만, 밤에 깨어있는 건 좋아합니다. 하루키처럼 아침형 사람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다 자기한테 맞게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저는 게으르군요. 게을러서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그러고 보니 하루키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달리기를 한 건 소설가가 되고 난 뒤군요. 이 책에는 하루키가 쓴 책에서 본 것도 있고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경선이 하루키를 아주 좋아해서 이만큼 쓴 거겠지요. 좋아하고 힘도 얻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거 부럽습니다. 임경선이 좋아한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한번 보고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하루키 소설 몇 편 봤는데 이것은 아직 못 봤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일본말로 보고 싶습니다. 하루키가 영어를 일본말로 옮겼다고 하니, 저는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겨보고 싶더군요. 전에 조금씩 해야겠다 했는데 거의 안 했습니다. 하다보면 막혀서, 끈기가 없네요.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제가 느낀 건 그 일 전문으로 하는 사람 대단하다는 겁니다. 하루키는 취미로 생각한다지만 잘 아니까 하는 거겠지요. 하루키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면서 작가가 그것을 쉽게 썼는지 힘들게 썼는지 안다고 하더군요. 저도 작가 마음 알고 싶네요. 그것도 많이 해봐야 알겠습니다.

 

하루키는 성실하게 글을 씁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마다 자신한테 맞는 게 있는 거죠. 하지만 저도 조금 성실해지도록 해야겠네요. 약속한 일은 아니지만, 저와 한 약속 잘 지켜야겠습니다. 이게 더 편하죠. ‘삶은 지는 경기’ 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자기 자신으로 잘 버티고 사는 게 좋겠지요. 자신이 어떻든 좋아하면 좋을 텐데, 저는 그게 어렵네요.

 

 

 

희선

 

 

 

 

☆―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을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야깃거리는 내 안 깊은 곳에 있기에 그곳까지 우물을 파고들어가듯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곳은 매우 어두운 곳이지요. 하지만 제가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갈수록, 그리고 더 오랜 시간 그 깊은 곳에 머물수록 제 소설은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작품을 쓸 때마다 한층 더 깊은 곳에 들어가려고 애씁니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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