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6월 29일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개>, 38쪽

 

 

 

시간은 잘 흘러갑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말을 하고 우리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70년이 되었더군요. 70년 전에 모두 우리말을 쓰지 않은 건 아닐 테지요. 아니 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말로 말하고 글쓰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우리말을 하면 괴롭힘 당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네요. 학교에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없애기 위해 가장 많이 마음 쓴 건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이 말하면 멋모르고 따르잖아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도 좋아야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더 좋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선생님부터겠네요. 제가 어릴 때도 유치원 있었을 테지만, 저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는 건 좀 안 좋겠네요. 이런 말로 흐르다니.

 

시인 윤동주는 스물아홉(만 스물여덟)에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에도 말했는데 그때가 1945년 2월 16일이에요. 여섯달 뒤에 우리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1945년 2월에는 그런 생각 못했겠지만요. 윤동주 시집은 예전에 하나 사뒀더군요. 좀 작게 나온 시집인데 이 책에 실린 것보다 시가 조금 많더군요. <사랑스런 추억>은 없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있었습니다. 그 시집 가끔 펴보기도 했는데, 자주가 아니고 가끔입니다. 하나하나 잘 봤다기보다, 넘기면서 대충 봤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시가 어떻다 말하는 건 어렵겠네요. 시를 보려고 가끔 시집 사는데, 그것을 보고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못 봤습니다(처음 하는 말이 아니군요). 얼마전에 시를 보고 뭔가 생각나는 걸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것도 쉽지 않네요.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다보면 전에 봤을 때와 다른 것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쓰기 전에는 바로 두번만 보는군요. 쓰고 나면 편하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롭게 보이는 시가 있으면 좋겠네요.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얼굴은 어린다.  (73쪽)

 

 

 

앞에 시는 아는 거예요. 윤동주는 ‘순이’라는 이름을 시에 썼습니다. 순이는 누굴까요(순이가 아닌 순일까요). 윤동주 시에는 쓸쓸함 슬픔 따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을 텐데. 거지 아이를 보고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있는가 하면, 전봇대에 돌을 세개 맞추고는 문제 다섯개에서 세개 맞고 육십점 맞겠지 하고, 시험 공부하지 않고 공 차러 가는 <만돌이>도 있어요. <만돌이>는 재미있기도 하지요. 맨 앞에 쓴 <개>는 그 모습을 그려보면 그렇겠구나 하겠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윤동주 시 하면,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짐하는 <서시>와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별 헤는 밤>이 떠오릅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생각을 깊이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다들 그랬겠네요. 아니 그때뿐 아니라 시나 소설을 쓰는 이십대는 저보다 어른 같아요, 여전히. 글이 사람을 성숙하게도 하겠지요. 저도 그래야 할 텐데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다른 책)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40쪽)

 

 

 

제목은 같지만 다른 시예요. 예전에 산 시집에는 앞에 것이 여기에는 뒤에 것이 실렸습니다. 앞에 것도 괜찮지요. 눈을 지붕이랑 길이랑 밭을 따듯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말하는 것이. 북극에 사는 사람은 얼음으로 집 짓잖아요. 눈 위보다 눈 밑이 따듯하겠지요. 사람이 눈 밑에 오래 있다보면 숨막혀 죽겠지만. 숨구멍이 있으면 죽지 않겠네요. 별말을 다했습니다. 윤동주 시는 힘든 세상에도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듯합니다(자신없는 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여주는 시도 있어야 하지만, 힘들고 아파도 살아갈 희망을 말해주는 시도 있어야 하겠지요.

 

 

 

 

 

 

 

난 외롭지 않아요

 

 

 

어느 가을날 나는 책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깊은 가을이 아니어서 나뭇잎들은 여전히 풀색을 띄우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작은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는 줄에 묶여 있었다. 그 줄은 누군가 옆에 세워둔 자전거 바퀴에 엉켜 있었다. 엉킨 줄 때문에 강아지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듯해서 내가 엉킨 줄을 풀어주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여 그만두었다. 강아지를 남겨두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줄에 묶여 있고, 밥그릇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는 앉아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여웠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한번 더 보고 일어섰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여전히 밥그릇을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 모습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서 즐거운 듯 장난치던 작은 강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난 그렇게 외롭지 않아요. 묶여 있지만 내 옆에는 은행나무, 자전거, 그리고 내 밥그릇이 있으니까요. 저녁 땐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요. 거기엔 작은 아이도 있어요.’

 

내 마음,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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