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

  허영철 원작    박건웅 그림

  보리  2015년 02월 02일

 

 

 

 

 

 

 

 

 

 

 

 

 

 

우리나라는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고 제대로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닐 거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돕기로 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한 나라가 아닌 둘로 나뉘고 만 걸까. 해방이 되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려고 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른 나라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지금까지 이어질 거다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하지 못했겠지. 바로 통일이 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와 만날 수 있으리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7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북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식구가 사는 사람들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을 거다. 그 자손은 있겠지만 첫세대만큼 식구와 고향 그리워할까.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 많이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이 노래 가르칠까. 이 통일도 반공처럼 세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남과 북이라고 해야 할까)가 통일을 하면 좀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다. 천천히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어가면 좋을 텐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말을 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 일 정말 있었던 일일까. 내가 어렸을 때도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 표어를 썼다. 이런 거 언제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낮은 학년 때까지만 한 것일지도. 그때는 북한이나 공산당을 아주 나쁘다 생각했다. 북한에서 그것도 일요일 새벽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배웠다. 우리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다르게 말할 거다. 남한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미국이 우리 통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왜 방해했을까.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될 것을 걱정한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도 미국 때문이 아닐까. 친일파가 미국에 붙은 것도 있지만, 미국이 친일파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독립운동도 사회주의자와 농민만이 끝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지식인이 친일을 했다. 절망스럽다고 마음을 바꾸다니.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겠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 온 일을 무척 슬프게 생각하는데, 남쪽에서는 그런 일 없었을까. 내가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죽임 당한 사람 무척 많다(제주, 광주). 여러 사람이 있으면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그것을 죄로 여기다니.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여러가지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예전에는 조금 다르면 모두 빨갱이로 몰았다. 이런 말하는 사람 아직도 있겠다. 사상이 다른 사람만 힘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사람 식구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은 다 힘들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허영철은 비전향 장기수였다. 1920년에 태어나 일본 탄광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만난 책이 다른 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에서 잠시 만난 사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아오고 공산당에 들어가고 고향 부안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하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활동을 하고 북에서 당 간부학교 교육을 받았다. 장풍군에 잠시 있다가 1954년 공작원으로 남쪽에 오고 한해 만에 잡혔다. 허영철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전향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하지 않았다. 허영철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다. 당이 남쪽으로 가라고 했으니 그 말 어길 수 없었겠지. 허영철도 남쪽을 미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허영철은 서른아홉에 감옥에 들어가고 일흔둘에 그곳에서 나왔다. 그 뒤에는 보안 관찰법 대상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러고는 남이 좋은지 북이 좋은지 묻다니. 허영철이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허영철 식구는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영철한테는 한해도 함께 살지 않은 아내와 얼굴도 잘 모르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그저 호적에 아내와 딸 아들이라고 적혀 있을 뿐일 텐데. 그게 아주 모른 척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구나. 허영철은 나름대로 자기 신념을 위해 살았을 테지만, 그것 때문에 나머지 식구는 살기 힘들었다. 그건 나라에서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다.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민주주의가 없는 건 아니고, 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안에 독재가 없는 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야기해서 더 좋은 걸 찾아야 한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하나를 정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하나만 좋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답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러고 있는지. 예전처럼 덮어놓고 공산당은 나쁘다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6·25 때 한국 군인이나 미군 잘못한 일 없을까, 없지 않을 거다. 잘못한 일도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여러가지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이건 나라보다 개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이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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