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싱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5p)

최근 몇 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어서, ‘인문학의 부활’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찾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명문대에 최고위과정에 ‘인문학관련’ 수업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고도 하고 (참고로, 이 책도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2011 CEO 추천도서이다, 최고경영자들이 ‘인간 경영’의 목적에서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영’해야 할 것이 기업과 부하직원만이 아니라, 본인의 심성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서적을 자기 계발서의 일종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물론 세기의 천재들이 풀어내는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 그들이 전해주는 지혜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더 지혜로와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 강신주가 말하는 인문학의 참 목적, 철학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가면을 벗고 자신과 세계를 바로 응시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렇게 알게 된 자신의 본래의 모습에 당황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세계의 참 모습이 지금의 나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을 연기가 아니라, 진짜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선 가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지금의 현실에 맞닥드려야 할지도.

마음에 대한 것이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든 집착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강조했던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집착은 우리 자신을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진 타인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특히 중요한 것은 후자의 측면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타자가 방치된 채 시들어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닌가? (68p)

아, 아이에게 24시간 사랑과 관심을 주기는 거의 불가능한데, 아이는 24시간 사랑과 관심을필요로 한다. 내가 책읽기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나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는 방치된 채 시들어가고 있을 수 있다.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니냐고? 너무나 무서운 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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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1권이다. 나오는대로 12권까지 쭈욱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서 도와줄까 모르겠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적용되지 않고, 형은 귀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기> <곡례, 상>

피지배층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혔을 때 지배층은 그들에게 매우 잔혹한 육체적 형벌을 가했다. 그 육체적 형벌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 코를 자르는 것,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 (아흑, 몇 개는 생략한다) 등 수많은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예기>에 따르면 피지배층이 가혹한 육체적 형벌을 받는 조항은 30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반면 예는 이런 잔혹한 육체적 형벌과는 전혀 달랐다. ... 어떤 귀족이 이 ‘예’를 어겼을 때, 그에 대한 처벌은 단지 정신적 형벌, 나쁜 평판에 의한 수치심 정도에 불과했다.

귀족이 ‘예’를 어길 경우 주나라는 왜 그 귀족에게 육체적 형벌을 가하지 않고, 훈계나 수치심이라는 정신적 처벌만을 시행했던 것일까? 이것은 바로 당시의 지배층 자체가 하나의 ‘거대 가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 결국 주나라의 지배층 즉 천자, 제후, 경대부, 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조직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58-60p)

태생에 따라 죄에 대한 형벌이 달라진다. 똑같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아니 더 의도적이고,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귀족이라면, 귀족의 자녀라면, 몇 일간 방 안에 콕 틀어박혀 들여주는 밥만 먹는 불편함을 감수한 후에, 소문이 잦아질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죄를 지은 사람이 일반 백성이라면. 일반 백성이라면 그림은 달라진다. 죄의 경중에 따라 죄의 형벌이, 결과가 몸 안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새겨진다. 신분이 재산의 질과 양까지를 결정하는 세대였음을 생각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우리 님은 노역에 간 지 몇 날 몇 달인가?

언제면 만나게 되려나? 닭은 우리에 들고

날이 저물어 소와 양도 내려왔는데,

노역에 가신 우리 님이여! 목마름과 굶주림이나 안 겪으시는지.

- <시경> <왕풍, 군자우역>

징발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애닮은 마음을 노래한 시다. 짐승들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때에, 돌아오지 못 하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고단한 삶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고단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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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책에 번듯한 장하준 교수님 싸인

우리집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아, 책 많네.” 책이 많다. 그렇지만, 여기가 어딘가. 알라딘 서재 아닌가. 우리집 책 많다고 얘기해서도, 얘기할 수도 없다. 결혼할 때, 신랑이 가져온 짐 대부분은 책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곧잘 신간을 사기도 해서, 책장은 여유 없이 빼곡했다. 그리고 아이.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한 페이지에 "엄마", 그 다음 페이지에 "자동차" 이렇게 쓰여있는 책을 사는게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그림과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은 글씨빡빡하고 답답한 책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행복하고 황홀한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첫째 아이가 점점 자라자,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이 많아졌다. 유아기에는 읽은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경향이 있기에, 책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몇 권씩 단행본으로 사기 시작했다. 여섯 살이 되자, 어린이 백과 사전류가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전래동화도, 세계명작도, 과학동화도 없었다. (이런, 엄마를 보았나, 쯔즛) 아이와 친한 아이의 엄마의 아는 엄마 집에서 몇 질을 중고로 사 왔다. 그 집 작은 책장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다. 이젠 책장을 세울 곳도 없었다. 그래서, 꼭꼭꼭!!! 필요한 책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즉, 한번 두 번 정도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좋은 동네라, (ㅋㅎ, 지극히 도서관 중심적 사고에서) 지역 도서관이 많다. 걸어서 3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자동차로 10분거리에 두 개, 12분 거리에 하나, 14분 거리에 또 하나 있다. 도서관 카드 하나면, 이 모든 곳에서 개인당 3권씩 도서를 대출할 수 있고, 연장신청을 하면, 일주일 더 볼 수 있다. 3 곱하기 4 곱하기 5는 60, 60권을 대출해 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위의 도서관 중 세 곳은 지어진지 3년도 되지 않았다는 거다. 고로, 그 곳의 모든 책이 "새 거"라는 거. 그 곳에 가면 아빠, 엄마, 누나, 동생 모두가 원하는 책을 맘대로, 정말 맘대로 고를 수 있다.

물론, 그 많은 책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도 큰 일이고 (신랑 일), 반납기한에 맞춰 책을 찾는 것도 귀찮은 일 (내 일, 요즘엔 여섯 살 짜리 아들과 신랑이 맡았다. 아들이 글자 아는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이지만, 도서관 가는 길은 즐겁고, 돌아오는 길은 뿌듯하다. 아, 사설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이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인용할 곳을 확인하고, 맨 앞장을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장하준

책날개 뒷장, 첫 번째 노란 종이에, 어머나, 장하준 교수님 글씨였던 것이다. 크헉! 조심스레, 글씨를 만져봤다. 그럼 그렇지, 직접 쓰신 건 아니구나. 아, 그래도 교수님 친필을 볼 수 있다니 영광이다. 철칙을 깨고, 이 책을 사기로, 사야한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이렇게 인쇄될까. 인터넷으로 전화 번호 검색, 출판사 부키에 전화를 걸었다.

이러 저런한데요. 네, 직접 하신 건 아니구요, 이러 저러 합니다. 지금 구매해도 그렇게 인쇄되나요? 아니요, 그 때 잠깐 그렇게 한 거예요. 아~~~~(급실망) 네, 알겠습니다.

아, 슬프다. 도서관책에 번듯한 장하준 교수님 싸인을, 그냥 이렇게 보내야만 한단 말이냐!!!

아쉬운 맘으로 한 컷 올려본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장교수님 말씀에 희망을 봤다. 조금 더 나아질 이 세상을 위해 대안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이야기해보자.

2. Thing 0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스톡홀름의 버스기사 스벤이 인도 뉴델리의 버스기사 람보다 50배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보호주의 덕택이다. 자국 정부의 이민 통제 정책 덕에 스웨덴의 노동자들은 인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50p)

능력면에서 봤을 때 뉴델리의 버스기사 람이 더 능숙하고, 또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스톡홀름의 버스기사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은 스웨덴의 이민 통제 정책 때문이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되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것은 상쇄할 수 없는 간극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니, 결국엔 불공평한 결과를 가져온다.

장 지글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쨰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까? 페르남부쿠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해서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탐욕의 시대, 330p)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지금도 그렇게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3.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저개발의 이유로 지목하는 것들, 예컨대, 열대병, 내륙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 많은 양의 지하자원, 다양한 민족 구성, 낙후된 제도, 나쁜 문화는 적어도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1960년대, 1970년대에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도 경제 발전의 여러 신호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저개발의 이유는 뭘까.

저자는 정책, 즉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선진국 여러 나라들에게 강요당한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이 아프리카를 저개발의 쳇바퀴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4.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난한 부모한테 태어난 것이 무슨 벌을 받을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모든 아이들이 최소한의 음식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숙제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조처는 대부분 정책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고, 실제로 몇몇 나라에서는 무상 급식과 예방 접종, 기본적인 건강 검진을 제공하고 학교에서 고용한 교사들이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기도 한다. (286p)

수능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되면, 신문과 방송에서는 만점자 또는 최고점자를 찾아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은 매년 달라도, 인터뷰 내용은 거의 똑같은데, 1) 교과서를 위주로 공부했어요 2) 학원은 다니지 않았어요 3) 과외는 받은 적이 없어요 4) 하루 수면 시간은 6~8시간이예요, 등이다. 예전에는 인터뷰 내용을 고스란히 믿었고, 게으른 나를 자책했고, 특히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룬 지독한(!) 학생들에게 감탄했다. 난 아직도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학생들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터뷰 내용이 너무 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째, 이렇게 야무진 애들이 매년 나오냐. 그 언제 이후부터는 만점자 또는 최고점자의 부모의 직업을 살펴보게 됐다. 처음엔 회사원이었고, 그리고는 고등학교 교사, 그 다음부터는 교수, 의사, 교수, 의사. 만점자 또는 최고점자의 아버지들은 엘리트였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일선 고교에서 일하는 어떤 가까운 사람도 요즘엔 가정 형편이 좋은 아이들의 성적이 더 좋다고, 그 경향이 몇 년새 더 뚜렷해졌다 말한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아니라, 전설이 되려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다른 계층으로 이동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다. 독보적인 능력이 있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학력”, “대학의 이름”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는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이 나라는 그런 나라다. 대학 시험 본다고, 직장 출근 시간을 한 시간씩 늦춰주는 나라, 비행기 이륙 시간을 조정하는 나라, 조정해야 한다고 믿는 나라.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다. 왜? 수능 성적이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이, 대학의 이름이 남은 인생을 결정하니까. 그런데, 이젠 “가난한 집 공부 잘 하는 아들”, “가난한 집 공부 잘 하는 딸”이 서 있을 자리조차 없어진 것이다.

이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방학에도 굶지 않도록, 준비물 살 돈이 없어 학교 가는게 싫어지지 않도록, 현장 학습 돈이 부담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지원해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셀프서비스로 생각난다. 오세훈, 아이들 밥그릇 뺏기에 이은 주민투표 셀프 빅엿. ㅋㅎ

우리가 시장의 결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때만이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식 회사 경영자들이 받는 천문학적인 보수를 제한하기 위해 주식 시장과 기업 지배 구조를 개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능력 위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동등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33-4p)

장교수님 스스로도 이야기 했듯이, 외국여행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 장교수님은 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 사오신 시계를 선물받았고, 집에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당시 한국 상황으로는 매우 유복한 편에 들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기도 전에 교수로 임용됐는데, 그 때 나이가 스물 일곱이었다. 2002년에는 <사다리 걷어차기>로 ‘뮈르달 상’을, 2005년에는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다. 이런 사람이,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세상은 불공정합니다. 뒤에 처진 사람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적어도, 그들에게 매달린 모래 주머니는 빼 주어야 합니다. 암담한 현실에 대한 문제 해결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네가 세상에서 낙오된 건 네가 게을러서라고, 책 안 읽고, 공부 안 하고, 스펙 안 쌓고, 영어 실력 없어서라고, 모두 다 한 목소리로 윽박지르는 이 각박한 현실에서,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분이 계셔, 아, 기쁘다.

감동은 이럴 때 받는 거다.

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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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2012년, 임진왜란의 임진년이고, 다산 탄생 250주년이다. 다산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걸어다니는 인간 백과사전, 살인적, 초마력적인 양의 저술서, 긴 유배생활, 그리고 목민심서. 이게 다였다. 그리고, 순오기님의 ‘다산 소개’ 페이퍼를 보고, 결심했다.

“그래, 올해는 다산이야!”

해서, 처음 시작한 책이다. 행복만땅 끝없는 보물창고 다산의 세계로 초대해 주신 순오기님과 다산의 생애에 대한 사실적 서술로 다산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신 작가 이덕일님께 감사드린다. 꾸벅.

이승훈이 베이징의 북당을 스스로 찾아가 영세를 달라고 했다는 사실은 그가 이미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조선에는 이미 이승훈에게 신앙을 주었던 자생적인 천주교 조직이 있었는데, 그 조직의 지도자가 이벽이었던 것이다. (1권, 64p) 

 

저자는 이 부분이 세계 천주교사에서 설명하지 못 하는 조선 천주교 초기 역사의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이벽. 그는 누구일까. 고조부 이경상의 책을 통해 천주교를 접하고, 전도에 힘쓰다가, 이승훈이 영세를 받고 돌아온 후,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았던 사람. 그는 어떻게 천주교를 학문이 아니라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그가 읽은 '천주교 서적'은 무엇일까.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내 신앙과 믿음의 가장 중요한 원리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책에 소개된 이벽이 지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 ‘주교요지‘를 살펴보니, 이벽이 매우 정확하게 창조주 하나님과 성삼위일체에 대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읽은 책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들을, 완벽히 다른 세계관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일단 ’천주실의‘를 상호대차 신청했다.

무엇보다 정약용의 <성설>이 중요한 것은 근대 실학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백성들의 강제 노동(부역)이 아니라 역부를 모집해 쌓자고 주장한 대목이다. 성의 둘레 3,600보를 넓이 1장, 깊이 4척 정도의 구덩이로 나누어 1보마다 팻말을 세우고 1단씩 메워 나갈 때마다 일정한 품삯을 주자는 것이었다. 성과급 방식의 임금 노동을 실시하자는 것인데, 백성들의 강제 노동이 당연시되던 때 정약용의 이런 주장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1권, 144p) 

 

근대적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조선후기에 인센티브 제도를 생각해 내다니. 노력에 따라 결과를 얻는 방식이 그 어떤 사회, 경제적 제도보다 인간의 본성에 근접해 있기에, 다산의 이러한 생각은 결국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농토는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더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조세제도를 생각해냈던 다산이었기에, 그의 생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는 것은 참 가슴아픈 일이다.

정조와 정약용은 격식을 잊고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조와 정약용은 3개자가 1개자로 합성한 한자 쓰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晶(밝을 정), 姦(간사할 간), 森(빽빽할 삼), 磊(돌무더기 뢰), 淼(물아득할 묘)등을 쓰는 내기였다. “전하께서 한 자만은 신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자전에 있는 모든 자를 다 암기하는데 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란 말이 웬말이냐?” “그래도 한 자만은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둘이 각자 쓴 것을 교환했더니 과연 정조가 한 자 부족했다. 三(석 삼)자를 빼놓은 것이었다. 군신은 서로 무릎을 치면서 웃었다. (2권, 99p)

내각 아전이 정조의 유시를 대신 전했다.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했다. 너를 불러 책을 편찬하고 싶어서 주자소의 벽을 새로 발랐다. 아직 덜 말라 정결하지 못하지만 그믐께쯤이면 들어와 경연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느 누가 군주에게 이런 사랑을 받는다는 말인가? 이 인연은 살아생전 끊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 24p)

 

진짜, 이 말은 다시 한 번 써야한다. 어느 누가 군주에게 이런 사랑을 받았다는 말인가? 한 시대를 개혁하고, 더 나은 사회로 바꿀 수 있을만한 훌륭한 인재가 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훌륭한 인재가 임금의 마음에 들기도 쉽지 않다. 자기보다 학식 있는 신하, 자기보다 덕망 있는 신하를 좋아하는 임금이 어디 있는가. 언젠가 내 자리를 탐내지 않을까 하여 견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한 시대를 바꿀만한 훌륭한 인재가 있고, 그 자신이 학자군주로서 그 인재를 알아보는 임금이 있으니, 실로 조선의 기회였는데. 조선의 호재였는데. 조선은 찬스!를 쓰지 못하고, 패자부활전도 없이 허망한 스텝을 밟아간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며,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인정한 것도 아니다. (2권, 132p)  

 

결국, 다산이 18년의 유배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독서의 힘’이라 생각된다. 책이 없었다면, 연구 과제가 없었다면, 다산은 긴긴 유배생활을 원망과 분노로 보냈을 것이다.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거인의 면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유배생활이 끝난 후, 다산은 묘지명을 짓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이미 학문적으로는 본인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처절한 이유가 있었다. 혹독한 정권의 칼에 맞아 휘청거렸을지라도, 후대의 평가까지 그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묘지명 중 다산이 신경쓴 사람은 형 정약전 외에 정헌 이가환과 녹암 권철신이다. 정헌 이가환은 남인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녹암 권철신은 성호학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묘지명을 저술했다. (286p). 그리고, 60세부터는 본인 묘지명. <자찬묘지명>을 쓰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두 가지 버전 집중본과 광중본이 있다.

현세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학문을 하고 저술을 했던 다산,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학문체계가 완성되었다고 쓴 후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 주지를 않는 것으로 여겨 한 무더기 불 속에 처넣어 태워버려도 괜찮다. (296p)

 

다산의 뜻이 전해지는 세상, 지금은 그런 세상인가. 일반 백성, 사회 구성원의 99%를 위한 사회인가.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인가. 아니면, 다산의 뜻과 가르침이 불 속에 쳐넣어진 세상인가.

답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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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하 수상하고, 정권 말기마다 등장하는 귀염둥이 철새 레임덕은 이미나 찾아와 자리잡고 앉아, ‘대통령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이 때에, ‘나꼼수’를 그냥 두어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어려울 거라는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관측에, 정봉주 전 의원의 대법원 판결이 났는 바, 판결은 ‘허위사실 유포로 징역 1년, 피선거권 10년 박탈’.

허위 사실인지, 허위 사실이 아닌지, 즉 BBK가 MB의 소유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책임이 검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정봉주 의원은 법의 심판 앞에 묵묵히 교도소로 향한다.

깔대기 봉도사는 교도소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희망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고, 미권스, 나꼼수 팬들, 민주당원들과 함께 빨간 장미꽃으로 전송받는 신기한 모습을 연출했는데, 수감되는 날 여러 장의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내와의 키스 장면이다.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열심히 하려 해도 결국은 과거에 맺어진 관계, 운동권 시절에 형성된 서열 관계 이런 것들이 조직 구성의 우선순위인 것 같았다. 내 딴에는 그것이 계보정치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 계보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냥 한순간 잠깐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인식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134p)

우리 나라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서나 학력으로 연결되는 계보, 연줄은 끈끈하고도 강력하다. 운동권 내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정당이랴. 열심히 노력하고, 애썼지만, 선거 때에만 잠깐 ‘이용’ 당하고, 결국에는 ‘팽’당하는 심정은 암담했으리라. 시작이 아웃사이더였던 사람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 주류의 자리에는 낄 수 없는 ‘태생’인 것이다.

아,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님 모습이 겹쳐진다. 국민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정확히는 자기네 계파가 아니기에, 아니 계파를 짐작할 수 없기에 흔들어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정봉주 의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그 사람들이란 말이지.

현실 정치에서 보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현실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극빈층, 소외 계층, 그리고 서민층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배치되는 정책을 가진 보수 정당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 역시 자신들이 닮고 싶어 하는, 자신들의 현실적 욕구의 롤 모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닮고 싶어 하는 '워너비'를 보수 진영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73p)

작년, 지역 강연회에 오신 조국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저를 비꼬는 의미에서 ‘강남좌파’라고 하시는거 같은데요, 사실 저는 ‘강북우파’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우리동네는 강북이고, 우리 지역은 대대로, 대~~대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강북좌파’라고 할까. 내 생각으로는, 서울에서도 강남, 서초, 송파를 제외하고는 ‘좌파’적 성향이 ‘꼴통보수’보다는 강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는 ‘아파트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가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어쩔지.

아, 이번엔 조국 교수님 절친 진중권이 트윗에서 한 말이 생각나네. (진중권씨에게 미안하네. 조국 교수님은 교수님이고, 진중권은 진중권? 진중권님이라 정정합니다.) 

“사람들은 다 잊어버립니다. 지금은 이렇게 이명박 욕해도 나중엔 또 삼명박 찍을겁니다.” 크헉.

진보를 대표한 패널이 TV 토론에서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토론에 임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정의를 역설하는 모습을 본다면 국민은 진보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정봉주나 조국, 문재인처럼 잘생기고 말 잘하는 패널들의 참여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국민의 의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176p)

바야흐로, 상기는 ‘외모’ 깔대기이다. 물론 이외에도 엄청 많다. ‘진보 간지’, ‘간지나는 진보’의 모델이 본인이라는 둥, 조국 교수를 실제로 만나 악수해 보았더니, 외모나 포스나 자기 상대가 안 된다는 둥. 기타 등등이다.

안 그래도 봉도사 웃음소리 듣고 싶다. 크하하하하. 김문수 도지사와의 가상 통화 이후 웃음 소리를 통 못 들었더니, 더 듣고 싶네. 아이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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