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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SK 언니와 접시꽃 당신

내가 다녔던 회사는 “특허 법률 사무소”였다. 특허와 관련된 일을 법적으로 대리해 주는 곳이고, 나는 상표부에서 일했다. 상표부에서는 외국 회사 “상표”의 출원에서 등록까지의 절차를 처리했는데, 외국 회사에게는 “너희들 지시대로 잘 진행하고 있다” 서신을 쓰고, 관련 서류를 특허청에 제출하는 일을 했다. 특허청 서류는 “청서류“팀에서 만들어 줬고, 나는 그 서류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결제를 맡고, 다시 ”청서류“ 팀에 가져다 주었다. ”청서류“를 갖다 주고, (사실 청서류의 실체는 황화일이다. 혼란 없으시길^^) HSK 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일상이 좀 지루하다, 심심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그래? 심심해? 그럼, 이거 읽을래? 하면서, HSK 언니는 책상 오른쪽 제일 밑 서랍을 열었다. 세상에!!! 그 안에는, 그 큰 서랍 안에는, 시집들이, 그 얇고도 작은 시집이 빼곡이 들어차 밖으로 튕겨나올 것 같았다. 아, 언니, 시 좋아해요? 응, 그냥, 난 시가 좋아서. 뭐, 읽을래? 아... 나는 ”접시꽃 당신“을 집었다. 아... 너무 좋은, 너무 가슴 아픈 시였다. 난, 청서류가 쌓이는 책상 속에 시집을 쌓아놓은 HSK 언니를 그날 다시 발견했고, 접시꽃 시인 도종환을 발견했다.

#2. 전교조 해직 교사

토요일 신문의 연재란에 느낌 있는 그림과 같이 실린 글을 읽다가, 도종환 시인이 오랜 시간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투쟁했단 사실을 알게 됐다. 도종환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말하는 시인이면서, 복직을 위해 일하는 투사이기도 했다. 쭉 이어 읽어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3. 명사 초청 강연회 강사

작년 12월에 도종환 시인 초청 강연회가 강북구 주최로 열렸다. 이 웬일이래 하며, 강연장소로 갔다. 강연회에서 들었던 말씀, 소개해주신 시들, 모두 좋았다. 그런데, 가장 놀랐던 건, 바로, 도종환 시인 그 자체였다. 세상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 “고운”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단어를 써도 된다면, 그 단어는 남자 도종환, 도종환 시인을 위한 단어다. 정말 고우셨다. 화려한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우셨다. 아, 시인이라 그런가. 진짜 이슬만 드시고 사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의심하시는 분들을 위해 찍은 사진 올리고 싶으나, 핸드폰에 찍은 사진 올릴 방법이 없어 올릴 수가 없다. 단언컨대, 실제로 보면 더 동안이시다.

#4. 이제부터가 진짜 리뷰다. 헉, 앞이 길었다.

수업료를 안 낸 사람이 나 혼자라서 교무실에 불려갔는데, 언제까지 낼 수 있느냐고 묻는 담임 선생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줄 수 있는지 물어볼 어머니, 아버지가 옆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강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쪼그려 앉아 울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노래했는데,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습니다. (35p)

많은 경우, 가난의 긴 터널을 통과한 후, 그것이 기억 속에서 나타날 때, 가난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소중한 기억이다. 가난은 아이를 일찍 철들게 하고, 부부간의 정을 돈독하게 하고, 자식을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의 고생을 뼈속 깊이 느끼게도 한다지만, 가난의 기억은 쓰라리다. 중학생의 나이에, 사는 게 힘들어, 너무 힘들어, 혼자 강둑에 앉아 우는 아이를 생각해 보라. 흐느끼는 가녀린 어깨가 너무 안쓰럽다. 가난은 쓰라린 기억이다.

그 때 우리는 서른 두 살이었습니다. 젊디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황망한 일이었지만, 여기서 생이 끝나고 만다면 무엇이 가장 아픈 일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바르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런 날이 짧아지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에 성한 곳이 있다면 주고 가자고 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다 가겠다고 했습니다. 병상에서 이 시를 읽어주며 나는 울었지만 아내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가 죽거든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고 말했습니다. (120p)

서른 두 살, 서른 두 살에 죽음을 이야기한다. 예전엔 “서른 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00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서른 두 살 적지 않은 나이인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그러고도 아직 철들지 않고, 그러고도 아직 고민하고, 방황하는 내 자신을 보니, 그 나이가 참 파랗도록 젊디 젊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내의 죽음을 대면하며 울면서 시를 쓰던 시인은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픔을 극복하려는 시인에게 얼마나 냉정한지. 나중에 좋은 분을 만나 재혼한 시인에게 쏟아진 비난은 이전에 쏟아졌던 관심만큼 시인을 당황하게 했다. 시집이 헌 책방으로 쏟아져 나오고, 만나는 사람마다 ’왜 재혼하셨어요?‘ 재촉하며 물어온다. 사람들은 시인이 언제까지나 떠나간 ’접시꽃 당신‘을 그리며 울고 있기를 바랬던 걸까.

비는 내리는데 미안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배운 글씨로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차가운 회색 벽에 이마를 대고 그 벽을 손바닥으로 치며 울었습니다. 이런 내가 싫었습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을 뚫고 넘어 아이들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감옥 문을 발로 차고 이마를 짓찧어 피를 흘려도 벽은 무너질 리가 없어 다음 날 아침 망연히 앉아 있다가 뾰쪽한 젓가락 같은 나무로 벽에 금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가로세로로 수없이 문질러 파서 벽에다 십자가를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5-186p)

전국교직원노조 일을 계속하던 시인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만다. 수상한 시절, 이 때, 정부와 학교측으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받는 문제 교사는 1) 아이들에게 열성적인 교사 2) 아이들과 함께 문집을 만드는 교사다. 감옥에 갇히고, 해직되고, 생계는 어렵고, 엄마도 모르는 아이들은 아빠를 잃어버리고. 시인이 직접 몸으로 겪은 시대가 너무나도 가혹해서, 생각만해도 맘이 아프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을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을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졸시 <담쟁이> 전문 (208p)

강연회에서 시인은 말했다. 이건 제가 쓴 시이지만, 어려분들이 읽고, 여러분들이 외우면, 그것은 “여러분의 시”입니다. 수천개 담쟁이 잎을 이끌고 벽을 넘는 담쟁이 잎 하나는 연약한 우리 자신이면서, 또한 우리 옆 사람이다.

이렇게 맑은 시를 쓰는 시인이 끌려가고 거리에서 집회를 이끌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일을 도모하면서 어떻게 이런 여리고 부드러운 시를 쓸 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맞습니다. 그 두 가지를 아우르며 양쪽 일을 잘 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됩니다. 둘 중 하나는 진정성이 결여되었거나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나도 그분들이 납득하고 이해해할 만한 대답을 잘 찾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나같이 여리고 약한 사람도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았던 거지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 말이 수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들었다는 표정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264-265p)

송경동 시인이 생각난다. 시를 써야하는 사람이, 희망버스를 타고, 감옥에 가고. 할 일이 많다. 시를 쓰는 일만큼, 앉아서 시를 쓰는 일만큼, 거리에서 집회를 하고, 민주화운동을 하고,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에, 그리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을 버리는 용감한 모습에 숙연해진다.

살아 있는 동안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원하던 것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자신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입니다. "텅텅 비어버린 꿈의 적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다산 선생이 그러하셨듯 좌초한 그곳에서 찬물에 이마를 씻고 다시 정좌하고 붓을 드는 겁니다. (347P)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데.

아이들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청소년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젊은 부부는 걱정없이 예쁜 아이들을 낳고, 엄마 아빠는 집값 걱정, 물가 걱정, 사교육 걱정 없이 살고, 노인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삶을 살 수 있고.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건 아닌데. 왜 우린 그런 사회에 살 수 없을까. 왜 그런 사회는 오지 않을까.

시인은 내일을 말한다. 살아있는 동안에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할지라도, 그래도 꿈을 버릴 수는 없다고. 꿈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이다.

캄캄한 시대, 암담하고 답답하지만, 그래, 기다리자. 꿈을 잃지 말고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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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2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3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는 꼼수다'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해도 (나같은 분(!!!) 많다는거 잘~ 안다), '조국 현상을 말하다'는 예상에 미치지 못 했다. 그래도 혹시, 하고 도전해 보았던, <나는 꼼수다 뒷담화>. 이 책은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김용민 PD는 극동방송 근무 중, 조용기 목사에 대한 비판글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순복음교회의 압력을 전달받은, 회사의 압력을 느낀다. "이 땅에 건강한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퇴사의 변을 전하며, 2000년 10월 31일 회사를 그만둔다. 483년 종교개혁 기념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웃사이더의 길은 험난하고 고단했지만, 불굴의 저항정신은 2011년 "나꼼수"로 활짝 피어난다. 앞날이 촉망되는 유능 피디다.

나꼼수 4인방 덕분에 너무 행복하기는 하지만, 요즘엔 이 분들이 좀 걱정되기도 한다. 봉도사님이야 무상급식 시찰하려 가셨으니, 나름 안전은 걱정이 안 되는데, 나머지 세 분은 좀 걱정된다. 세상이 하 수상하지 않은가. CCTV 있는 곳으로만 다니세요. 혼자 다니지 마시구요, 탁교수님이랑 꽁지언니도 명심하셔요. 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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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시대 법학자 조국

책의 전반부는 ‘좌절‘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좌절의 시대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대학생들은 등록금 때문에 좌절하고,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좌절하고, 중학생들은 물고문, 학교폭력 때문에 좌절하고, 젊은 엄마는 옆집 아이가 벌써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말에 좌절하고, 아빠는 술 먹자는 상사 때문에 좌절한다. 일반 시민들은 정부 여당 10. 26 부정선거 때문에 좌절하고, 주부들은 물가 이야기에 좌절한다.

현정부의 ‘소통 부재’, ‘몰상식’을 비판하시는 조국 교수님은 “우리 시대의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다. 특별히,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제안이 기억에 남는다.

단기간 내로 비정규직 문제는 한 가지 원칙을 적용해야 됩니다. 바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입니다. 똑같은 노동을 하면 그 사람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임금을 같이 주라는 얘깁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파업의 이유는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 한쪽은 다른 한쪽보다 반밖에 못 받습니다. 이게 지금 전국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47p)

2011년 리뷰 1번 책이 "진보 집권 플랜“이었고, 9월에는 조국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예인 포스라고나 할까.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듯한 분이 "법"과 "법치", "진보"와 "집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광경 중의 하나였다. 2011년 나의 "명장면" 중 "명장면"이다.

추천도서 :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밥값(정호승), 사기, 그리스인 조르바

2. 치유의 심리학자 정혜신

심리학자, 의사 정혜신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는데, 그 글을 직접 읽으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 부부는 결국 스스로 견뎌 내고 버텨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네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는 너를 한결같이 지지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한 10여 년을 그렇게 한 거 같아요. 서너 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너무 몰두하지도 않고 너무 개입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다만 “우리가 보기에는 네 행동이 이렇게 보인다, 엄마의 생각과 마음은 이렇다”라는 표시만 던져 놓았습니다. (72p)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인 자세는 비난하지 않고 항상 포용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저렇게 생각하네.” 정도로 말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아이는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통하게 됩니다. (73p)

나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중 하나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부럽지?),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만 한정하겠다.(고맙지?)

나는 첫아이를 낳은 그 다음날, 자고 있는 아이의 곧은 콧날을 들여다 볼 때 느꼈던 그 감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낳았지만, 내가 낳았는데도, 내가 낳았음에도, 내가 몸소, 직접 낳았는데,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쁜 아기가 바로 내 아기라니... 하지만, 핑크빛 나날은 길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유아의 기본적인 성향도 모르고 있었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이고 푸근한 사랑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작은 실수도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였고, 아이의 선택을 믿지 못 하는 엄마였다.

둘째를 낳고, 나는 나이가 먹었다. 둘째는 첫째와 다른 기쁨을 부모에게 선사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첫째가 “신기함”이라면, 둘째는 “귀여움”이라고 할까. 첫째가 했던 똑같은 행동을 둘째가 하는데도,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첫째를 봤다. 첫째 아이는 벌써 다섯 살, 여섯 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첫째에게 미안했다. 그 애를 기다려주지 못했던 시간들, 그 애의 결정을 존중해 주지 못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지금부터라도 잘해 주자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물론 지금 나는 “정혜신”씨처럼 좋은 엄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점점 자라며, 자신의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게 될 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해 준다면, 적어도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나를 믿어주는 엄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저는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의 총합보다 더 많은 영향을 부모로부터 받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부모가 이렇게 바라보면 세상도 그렇게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모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태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74p)

나 자신이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준다면, 아이는 세상의 위협, 세상의 태클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3. 타워크레인의 노동운동가 김진숙

저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대중의 역동성을 살려 가는 일, 어떤 구조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 주변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나아가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8p)

이 강연은 크레인에 올라가시기 전에 이루어진 듯 하다. 얼마나 용감하신지, 얼마나 긍정적이신지 새삼 존경스럽다.

4. 예술가의 좌절 강풀

저는 이렇게 오늘도 좌절을 겪으면서 또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라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좌절을 겪게 되면 제가 했던 두 가지 이야기를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이 있을 때 그 해결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느라고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꼭 정공법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그걸 선택해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방법으로 10년 동안 만화가로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 쓸 만한 방법일 것입니다. (153p)

만화를 잘 못 그리는(^^), 만화를 너무 늦게 그리는 만화가를 본 적이 있는가. 여기에 있다. 좌절 전문 만화가 강풀. 강풀씨의 솔직하고, 만화같은 이야기에 맘껏 웃으면서도,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사람이 이렇게 강할 수 있구나. 이렇게 끈질길 수 있구나. 스물 네 시간 중 스물 한 시간 앉아서 작업을 한다는 만화가. 그래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만화가. 아...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너무나 나태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계속 부끄러웠다.

5. 철학하는 즐거움 강신주

당장 쓸모가 없어 보여도 우리가 공부하고 책 읽고 감동받아 놓은 걸 하나하나 저장해 놓는 건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우리를 보여 줍니다. 모든 것은 정확한 문맥에 놓여야만 제대로 음미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색깔을 가진 천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붉은 천입니다. 분명 붉은 천은 루비를 제대로 볼 때는 장애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붉은 천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붉은 천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투명한 보석을 보는 데는 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4p)

아, 나는 이제야 만났다. 강신주를.

철학뿐만 아니라 시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해야만 하는 나 자신, ‘나의 온몸’입니다. 며느리의 몸이 아니라 바로 나, 절대적인 나입니다.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여러분 자신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올해 핀 벚꽃은 작년의 핀 벚꽃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고 나는 며느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겪어야 될 것, 이겨야 될 것, 행복해야 될 것을 여러분이 찾지 않으면 시어머니가 주시지 않습니다. (188p)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나는 책을 읽다가 놀라 책장을 덮었다. 아, 강신주가 직접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내가 찾지 않으면, 내가 행복해야 될 것을 시어머니가 주시지 않는다. 나를 여자라는 끈, 며느리라는 끈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이야기, 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이야기를 철학자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니, 머리가 띵하는 충격에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그래, 나는 누구보다도 나다. 나는 나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다. 그래서,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인 내가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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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고싶다는 시어머니 연락에 아이들과 함께 현대백화점에 갔다. 1층에서 시어머니를 만났다. 딸롱이가 '알밥정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9층으로 가자.

9층으로 올라가 우리가 자주 가는 '현대우동'으로 향했다. 알밥정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다. 알밥정식을 먹었다. 목요일인데도 왼쪽, 오른쪽, 앞쪽, 뒤쪽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테이블이 꽉 찼다. 알밥정식 두 개에 18000원. 하나에 9500원이었다. 밥 한 끼에 9500원이라니.

전날 저녁에 읽은 '흑산'이 떠올랐다.

정조 대왕 이후, 조세 제도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백성들은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다.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지방 수령들은 말 그대로 '본전'을 뽑아야 하겠기에 수탈에 적극적이었고, 지방 토호세력들은 그들을 도우며 한 몫 챙기기에 바빴다. 급기야는 집과 땅을 버리고 (버리는 집은 무너지기 직전, 버리는 땅은 힘써 농사지어도 배불리기 불가능한 땅이었다.), 전국을 떠돌기에 이르렀고, 유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조정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왜 아이들을 죽여서 먹고 있냐 물으면, 아이를 죽여서 먹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죽어서 가져다가 불에 구워 먹었노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말해준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집을 떠나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이 먹을 만큼의 양식을 구하지 못해 마냥 굶고 있는 사람들, 열심히 일했는데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아주 멀고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100년, 150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랬다.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농민이 대부분이었던 이 땅의 사람들은 굶주림과 싸워야했다. 굶주림이 가장 큰 적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한끼 밥값 9500원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백화점 9층에 가보면, 한끼 밥값 9500원에 놀라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나도 조금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9500원 한끼쯤 사먹을 여력은 있으니 감사해야 하나...) 아직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극심한 기아에 처한 사람들의 수는 과거 그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이 좋은 시대라 해야하나.

 

굶주림에 대한 이야기만큼 내 가슴을 울린건 '사람',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약전, 순교자 정약종, 정약종과 다른 길을 간 정약용, 평안도 정주 역참의 마부 마노리, 흑산도와 뭍을 오가는 사공 문풍세, 16세에 임금을 대면하고, 나중에는 천주교에 귀의한 순교자 황사영, 황사영의 장인 정약현, 황사영의 처 명련, 포도청의 간자 박차돌, 흑산도 별장 오칠구, 중국인 신부 주문모, 아리, 아리의 어미, 젓갈장수 강사녀, 박차돌의 동생 박한녀, 황사영에게 면천된 육손이, 흑산도 조풍헌, 조풍헌의 조카 순매, 흑산도 청년 창대, 창대의 아버지 장팔수, 궁녀였으나 수유리에 터를 잡은 길갈녀, 형문 집장사령 오호세, 남대문 밖 옹기장수 노인 최가람, 등짐장수 오동희, 강사녀의 딸.

배고픔을 이겨내야할 때, 사람들은 비굴함을 참아낸다. 살아야 하겠기에, 살아남아야 하겠기에 사람들은 비굴함을 견뎌낸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람됨을 포기할 때, 동물적 본능과 탐심에 누런 이빨을 드러낼 때, 동물보다 못한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며, 그들에게 짓밟힌 사람들 또한 '인간성'을 훼손당하니, 그 곳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정확히는 가문이 다른 이들을 사사하고, 유배에 처하고, 천주교라는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능지처참을 명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어미 잃은 아리에게 미음을 먹이라 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아리 어미에게서 계속 젖을 뽑아내는 그들은 누구인가. 아리를 짓밟은 이들은 누구인가. 마노리를, 김개동을, 육손이를 평생 그 주인에게 묶어두는 이는 누구인가. 누가 그들에게 이런 힘을 주었는가.

마노리도, 육손이도, 강사녀도, 박한녀도, 흑사도의 사람들도 모두 원하는 바가 있는 '인간'인데도, 그들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한다는 생각조차 어려웠다. 어두움의 고리는 그렇게 단단했다.

강물을 피로 적신 순교의 이야기는 이제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리일 수 있겠으나, 그 당시를 괴로워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여, 매 맞아 죽은 우리 아비의 육신을 우리 아들이 거두옵니다.

주여,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당신의 주검을 거두신 모친의 마음이 어떠했으리까.

하오니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 죄를 묻지 마옵시고 다만 사하여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리처럼, 이 기도문이 바로 '나'를 위한 기도문이라 느껴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린 아직도 진행중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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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추천 도서 책자에서 눈여겨 봐두었던 책이 도서관 카트에 꽂혀 있었다. 이전에도 남편이 <헌법의 풍경>을 추천했지만, 별로 흥미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이 책도 그 때 지나친 책 중에 하나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 불편해도 괜찮아. 뭐가 불편해도 괜찮냐. 불편하면 불편하지. 그리고, 사실은 불편하다는 얘기 아니겠어? 하면서.

책을 대출해 책 무더기에 쌓아놓으니 퇴근한 신랑이 반색한다. 그래, 이 책도 그 형 책이라니까. 그래? 심드렁한 나의 대답. 응. 자신감 넘치는 신랑의 대답. 프로필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 김두식 교수님은 선교단체 예수전도단 활동을 하셨고, 여러 교회를 섬기셨다.

"그러니까, 이 형이 사시 되고 나서, 우리 YM 선배 중에 사시 된 사람이 있단 얘길 들었어. 형도 모임에서 인사하고 했다니까. "

"그래서, 그 형이 자기를 알어?"

"아, 저런 애가 있구나 했겠지."

"?"

안녕하세요, 신랑의 선배님~ 사진을 다시 한 번 보고, 인사하면서 책 읽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빵! 터진다.

우리집 딸롱이는 말 그대로, "모범생"이라, 나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공부잘하다가, 아니면 모범생으로서 모범생활 하다가, 중학교 들어가서 막, 반항을 하는 건, 부모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하자면, "저 집이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애가 저럴지도 모른다.'

그날그날 우리 딸의 '지랄'을 보고하면, 유선생님은 그것보다 심한 그 집 아들의 '지랄'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 딸이 "교수 부모 밑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더라고 말씀드리면, 유선생님은 그 집 아들이 "우리 부모는 둘 다 서울대 나왔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친구들이 모두 "똥 밟았네"라고 대꾸하더라는 더 심한 사연을 들려주시는 식이었지요. (18p)

초등학교 때 멀쩡했던 저자의 모범생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선언을 해 버린다. "난, 엄마 아빠처럼 찌질이로 살진 않을거야.", "교수 부모 밑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리고는 대문 바로 앞까지 남학생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입장하신다. 상상해보라. 완전 울고 싶다. 그래도 저자는 딸의 '지랄'을 보고할 때, 들어주시고, 더 심한 '지랄'을 이야기해 주실 조언자가 옆에 계셨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이 첫번째 이야기, "청소년 인권"에 대한 이야기에 소개된 드라마는 "네 멋대로 해라"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네가 결정해.", "엄마 아빠는 네 결정을 존중한단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짬뽕' 말고 '짜장면'이 어때?, '분홍색 티' 말고 '노란색 티' 어때?'를 연발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솔직히 난 그런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아들롱이 딸롱이들의 '지랄'은 더 심해질 뿐이다. 그래서, 저자가 제안한 방법이 이거다. 좀 늦으면 어떠냐,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으면 어떠냐, 청춘의 몇 년이 좀 늦어지면 어떠냐. 그 아이가 '네 멋대로' 하도록 놓아두자. 내버려두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조종하려 하지 말고, 놓아두자. 그리고 기다리자. 응원하면서 기다리자.

두번째 이야기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다. 들여다 볼 영화는 <300>.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멋진 남자들의 벗은 몸이 뗴거지로 나온다는 거는 확실하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 속의 누군가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동일시의 대상은 보통 그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영화감독이 동일시의 대상으로 제시한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우리를 동일시하다보면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 영화<300>에서 적대적 인간의 꼬리표를 붙이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짐승'입니다. 영화는 비인간화의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영화 속의 페르시아 군대를 복면이나 투구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설사 그 복면이나 투구가 벗겨져도 우리에게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안면장애에 가까운 시커먼 형체가 드러날 뿐입니다. (132-134p)

영화를 보며 영화의 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인공의 역경, 고난이 완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주인공의 최후 승리에 나도 맘껏 기뻐할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는 기실, 영화감독이 동일시의 대상으로 제시한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대적, 주인공의 방해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될 때, 말그대로 난감해진다. 영화 <300>에서 내가 주인공이라 여길 때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우리는, 슈퍼울트라 철인 주인공보다는 그가 '짐승'이라 부르며 응징하는 페르시아 군인에 가깝다. 이 영화를 보며 주인공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사람들은 "백인 남자", 그것도 "건강한 백인 남자"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의문을 품습니다. '철도공사 직원이 국립대 교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된 일일까?' 물론 교수 되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박사학위 취득할 때까지 학비도 많이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억지로 시켜서 그리된 게 아니라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길입니다. 교수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원하는 글을 쓰며 그걸로 월급을 받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명예와 존경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자기들이 철도공사 직원보다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어느 공기업의 평균임금이 6천만원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는 분들은 우리나라 최대기업 등기이사들의 평균연봉이 78억가량이라는 사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철도공사 직원들이 자신보다 몇천만원을 더 받는 데 분노하는 사람들이 왜 자신보다 100배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차이가 100배에 이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94-195p)

논점 1. 철도공사 직원이 국립대 교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게 뭐가 잘못되었나?

대답 1. 첫째는 철도공사 직원은 국립대 교수보다 많은 월급을 받지 못 한다. 둘째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수가 철도공사 직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의견에 100% 찬성한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 공부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 일하라. 교수에게는 학문적 성과로 인한 평가, 사회적 인정이면 족하다. 그거면 됐다. 물론, 대학강사는 아니다. 대학강사는 말 그대로 경제난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며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내 박사친구는 강의료로 딸아이 어린이집 보낼 비용도 안 된다고 했다. 대학교수 월급에 1/2만 지급해도 이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등록금 올리면 절대 안 되고, 교수 월급을 나눠줘라. 일한만큼, 노력한만큼 월급 받아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논점 2. 노조 간부의 임금이 직원들의 평균 임금보다 더 높은 것은 뭐가 잘못된 일인가?

대답 2. 언론이 노조의 파업을 부정적으로 그리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노조 간부들의 임금이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높으면 어떤가. 훨씬 더 위험한 일을, 훨씬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논점 3. 철도공사 직원들이 자신보다 몇천만원을 더 받는 데 분노하는 사람들이 왜 자신보다 100배의 연봉을 받는 등기 이사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대답 3. 이에 대한 대답은 장하준 교수님(존경한다, 교수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Things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를 참고하면 되겠다. 결론을 말하자면, 경영자, 등기 이사, CEO의 월급이 너무 많다.

추천영화 : <안토니아스 라인>, <가족의 탄생>,

추천도서 : <앵무새 죽이기>

쓰다 보니, 나름 긴~~~ 리뷰가 되었다.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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