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Horse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어떤 분야의 학자가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보통사람이 들을 때면 약간 현학적이고 때로는 우습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런 전문용어에도 존재 이유는 있기 마련이므로, 대부분 필요성과 고도의 기술성은 난해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바르게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사라진, 그래서 고풍스럽고 세련되었으나 유식한 체하는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어휘들이 있다.
색채표현에서 보자면 프랑스의 문장학(紋章學) 용어가 그 예로서 하양, 노랑, 빨강, 파랑, 녹색이라는 색 이름 대신 은(銀, argent), 금(金, or), 입(gueules), 창공(azur), 모래(sable), 시노플(sinop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승마 용어에서 말의 털빛(robe)에 대한 기술도 이러한 예에 해당된다.
보통 사람이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마필학자(馬匹學者, 또는 가까운 부류인 말 애호가와 말 전문의)들이 전문용어로 사용하면, 색의 뉘앙스에 미묘한 정확성을 부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때로는 일정치도 않고 의미도 없이 짐짓 거드름피우는 것이 되기도 한다.
사실 기대와는 달리 이 용어들은 과학성이나 정확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색과 관계되는 모든 사항이 그러하듯이 말의 털빛에 대한 기술용어도 주관적 인상과 각종 분류법에 의지하고 있어서, 물리학자의 팔레트가 아니라 화가나 시인의 팔레트에 가깝다(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불평하지는 않지만).
또 이런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언어와 일상적인 언어를 같이 사용하며 오히려 불확실성과 혼동을 즐기려는 것 같다.
그 전문용어의 첫 번째 기능은 동물의 털빛에 대한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어휘를 사용하는 작은 세계에서 문외한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언어학보다도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어휘를 이용한 이러한 전략은 지식의 모든 영역과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이 전략은 언어학자에 의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지적할 필요는 없다.
털빛은 갈기와 꼬리를 포함한 말의 털 전체를 가리킨다.
갓 태어났을 때의 털빛은 성년 때보다도 짙으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데 여름에는 밝고 겨울에는 어둡다.
털은 단색, 두 가지 색 혹은 다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색의 경우 하양(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밝은 회색), 회색, 검정 또는 알레장(alezan)으로 분류된다.
알레장은 특정한 색조가 아니라 밝은 황갈색과 짙은 갈색 사이에 포함되는 모든 단색의 털을 말한다.
알레장에는 ‘밝은’, ‘불타는 듯한’, ‘황금색의’ 등의 형용사가 붙는 경우가 많다.
말이 혼합색의 털을 가질 때는 몇 가지의 경우가 고려된다.
몸통이 단색이면서 사지, 갈기, 꼬리가 검은 경우에 몸통이 적갈색이면 배(bai), 몸통이 누르스름하든가 까페오레 빛깔이면 이사벨(isabell), 몸통이 회백색이면 수리(souris, 쥐색)라고 부른다. 몸통, 사지, 갈기가 똑같이 두 색의 혼합인 경우 흰색과 붉은색 털의 경우는 오베르(aub뢳e, 적부루마빛), 붉은색 또는 적갈색과 검은색 털의 경우는 루베(louvet, 늑대) 혹은 그리(gris, 회색)라고 부른다.
그리라는 색은 강철색(fer), 노르스름한 회색(tourdille) 등의 형용사로 더 자세하게 분류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색 혹은 두 색의 털을 말한다.
‘오베르’라는 색은 밝은 색일 때는 복사꽃색 또는 복숭아색이라고 하며, 어두운 색이면 라일락색이라고 한다.
털이 3색으로 구성된 경우(대부분은 몸통이 두 색, 끝부분들이 다른 한 색)에 말은 루앙(rouan, 밤색 바탕에 희끗희끗한 털이 섞인 말)이라고 부른다. 털이 두 색일 때 그 중 한 색이 흰색이면 점박이(pie)라고 하는데, 흰색이 바탕색인 경우는 갈색 점박이(pie alezan), 검은 점박이(pie noir), 적갈색 점박이(pie bai)라고 부르며, 검은색이 바탕색이면 흰점박이 갈색(alezan pie), 흰점박이 검정(noir pie), 흰점박이 적갈색(bai pie)이라고 한다.
말의 털색이 더 복잡하고 줄무늬거나 불규칙한 경우도 있다.
호랑이색(tigr?, 얼룩말색(mouchet?, 테두리형(bord?, 작은 반점(truit?, 물결 무늬(moir?, 흰 담비색(hermin?, 양떼구름색(pommel?, 눈색(neig?, 흰색·갈색·검정이 섞인 색(rouann?, 흰 털과 붉은 털이 섞인 색(aub뢳is? 등이 그것이다.
문헌학적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말의 털에 관한 프랑스 어휘는 대부분이 1937년 소뮤르(Saumur) 기병학교에서 편찬한 『마필학개론 Traite d’Hippologie』에 의해 체계화되고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 『마필학개론』은 실용적이기보다는 이론적인 책이기 때문에, 어휘사용자나 승마 관계자는 이에 관계없이 각각 자기의 습관이나 개성에 따라 다르게 사용한다.
이 책은 문외한에게는 아주 근사한 몽상과 시적 상상을 많이 제공한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이 책이 존재할 가치는 충분하다.
⊙ 「색 이름」, 「스타킹과 팬티스타킹」, 「포도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