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가와 이토의 책을 여러 권 읽게 되었다. [반짝반짝 공화국]으로 시작하여 거의 우리나라 발간 역순으로 읽게 되었는데, 데뷔작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서너 권 읽다가 훅 맨 처음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가와 이토의 책 하면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면서 항상 데뷔작인 [달팽이 식당]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몹시 궁금했다. 요리책인가 어떻길래 항상 거론되는 것일까 궁금증을 못 참고 책을 들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오가와 이토의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왜 이 책을 인용해서 이야기했는지를 말이다. 이 책은 이야기 구조나 서사 그리고 재미로 봤을 때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 물론 저자의 모든 책 중 최고라고 말할 순 없다. 저자가 쓴 책을 전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읽는 이에 따라 감동의 포인트가 다르니 각자의 관점에서 최고의 책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이 수작이라는 것에는 부동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로서 첫 책이라 하기에는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다수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주인공의 불행, 어머니와의 갈등, 뛰어난 실력, 그 실력으로 인해 성공, 어머니와의 갈등 해결, 주인공의 불행의 해결로 이어지는 구조는 영화 한 편으로 나와도 족할 정도다. 추후 들어보니 영화로도 이미 나왔다고 한다. 흥행으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영화 제작 능력으로 봤을 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자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는 오가와 이토의 표현력은 첫 책인 [달팽이 식당]부터 세세하고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게 쓴 글 역시 그렇다. 휴대폰, 인터넷, 컴퓨터라는 말을 뺀다면 1900년대로 이야기해도 수긍할만하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10년 정도 되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디지털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이 책이 성공하게 된 주 요인 중 하나가 될 법하다. 요즘 디지털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아날로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날로그적으로 쓰여 있다. 아니 작가의 모든 책이 다 아날로그적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편의점 음식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다. 그러는 요즘 코코아 한잔을 타 마시기 위해 초콜릿을 녹이고 우유에 넣고 크림을 올려서 먹는 조리법이 나와 있는 이 책은 아날로그의 정점을 찍을만하다. 지금은 포트에 물을 넣고 버튼 누른다. 컵에 코코아를 넣는다. 물을 붓는다. 먹는다. 이게 코코아를 마시는 방법이다. 하지만 코코아 한잔을 위해 거의 반 페이지를 할애한다. 심지어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기 위해 3일 전부터 빵을 발효하고 과일을 따러 다닌다.

정말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 느림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나조차도 그 느림에 대한 호감을 갖고 말았다. 조그마한 MP3 기기에 얼마나 많은 곡을 넣을 수 있는지를 경쟁적으로 다루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1,000곡 하면 저기서 2,000곡 그러면 다른 편에서는 무제한 이런 식의 다툼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다 감성적으로 기기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의 인기는 그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다.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식당 하루에 1개의 예약만 받고, 예약할 때 면담을 통해 메뉴를 정하지만 예약자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그런.

서사도 재미있지만 서서히 흘러가는 느림의 미학에 묘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아날로그에 대한 인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나오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이런 것은 느려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시대 흐름이 점차 편해지다 보니 급하지 않아도 되게 바뀌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계속하렴.
내게는 없는 귀한 재능이니까, 일분 일초를 아까워하며 경험을쌓도록 해.
네가 비굴해질 일은 조금도 없단다. 너는 귀엽고, 영리하고, 요리도 잘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할 존재야.
손님 장사를 몇 십 년이나 해서 나름대로 사람 보는 안목이 있는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 내 말을 너는 조금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분명 맞을 거야.
더욱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땅에 발을 딛고 크게 호흡해.
너처럼 삐딱한 아이는 더 실컷 놀고, 연애를 하면서 세계를 넓혀야 해.
네가 상상한 이상으로 이 세계는 크고,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어디라도 갈 수 있어.
- 본문 P226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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