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라든지 진심이라든지, 그런 것에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나 버렸기에 제목만 보고는 흘려 보낸 작품. 도무지 저딴 제목으로 멀쩡한 작품이 나와 주겠어 라면서 혀를 끌끌 찼는데...문제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도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밟히더라는 것. 해서 결국 호기심에 지는 셈치고, 그리고 더이상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서 보게 된 작품. 결론은 안 봤음 어쩔뻔했어~~라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재밌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저급의 퀄리티는 온데간데 없이--그렇다고 대놓고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서도--군더더기 없이, 유려하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봐서인가 감탄하고 말았다.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배우들의 연기와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가 되게끔 풀어놓고 있던 감독의 연출력. 가히 기가 막히다고 할만큼 멋진 앙상블이었다. 소재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이야기가 나와 주더라는 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나이 42에 무작정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오오구로 시즈오는 이제와서 자아를 찾겠다고 오도방정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 하겠노라고 엄숙하게 선언을 하는 시즈오, 그 앞에는 빨리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아버지와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라고 등떠미는 착한 17살의 딸네미가 있다. 백수 한달 만에 천직을 찾았다면서 만세를 부르는 시즈오, 그것은 바로 만화다. 만화를 그릴 줄은 아느냐고 묻는 딸과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는 아버지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명랑한 시즈오는 만화가 데뷔를 위해 불출주야 노력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기로 했다기로서니 어떻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릴 수 있겠는가. 하여  42살 시즈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게임 삼매경, 그다음엔 이십대 청년들과 함께 알바 삼매경, 그 다음엔 성실한 샐러리맨 소꼽친구 불러다 술 얻어먹기, 불안해질때쯤 철야 만화 그리기, 돈 부족해지면 딸에게 돈 빌리기등 도대체 어른이 얼마나 철이 없으면 이라고 할만한 일상으로 첨철되어 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만만한 시즈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타박을 당할때마다, 그리고 힘들여 그려간 만화가 퇴짜를 맞을때마다 '아직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런 최면도 결국엔 현실에 맞닿아 깨지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인 시즈오로 나오는 배우의 원맨쇼 같던 작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찌나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던지, 신인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 한다고? 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츠츠미 신이치...그럼 그렇지, 내가 아는 배우였다. 다만, 이렇게 망가진 역으로는 처음 봐서 몰라본 것일뿐. 아는 얼굴임에도 몰라볼 정도로 츠츠미 신이치는 철저히 배역 그 자체더라. 가장임에도 어찌나 철딱서니 없고 생각이 없는지 밉살맞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캐릭터인데, 그런데 츠츠미 신이치가 연기를 하니 밉지가 않다. 사실은 귀엽기 그지없다. 중년의 남자가 주책을 떠는데도 귀여울 수 있다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했단 것이지. 그런 보기 드문 설득력으로 무장한 영화였으니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서 결론적으로 주연 배우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것, 거기에 이 영화는 조연들도 좋다. 일본 영화를 보면 맘에 드는 것이 주연만 사는게 아니라 조연들도 산다. 주연을 위해 버려지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연과 공생하는 캐릭터라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말이다. 좋은 배우들을 끌어다 연기를 시키면서 결국 아무것에도 쓰지 않는 낭비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그밖에 또 맘에 드는 점을 들라면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리나라 영화인 <슬로우 비디오>를 보고선 경악하고 말았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선문식 철학을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면서 어떻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지 만드는 사람들이 안이했다 싶더라. 이 영화속에서는 다행히도 그런 우는 범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최대한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알기에, 맥락이 이어지는 대화를 해대는 이 영화가 멋지게 다가왔다. 원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문인지 전개가 물 흘러가듯 스스럼없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백수 아저씨가 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보는 듯하다. 환상을 꿈꾸면서 마냥 낙천적인 아저씨를 보는데 진짜로 현실적이라는게 이 영화의 포인트.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있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하다고 상상이 될만한, 그런 인간들이 그려진다는 점이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 점은 이 영화가 웃긴다는 것이다. 이 영화, 코미디다. 배우의 신공 넘치는 연기에도 웃고, 진짜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어물쩍 넘어가려 애를 쓰는 주인공의 강한 정신력에도 웃고, 42에 중 2병에 걸린 아들을 어째야 할지 몰라 고민인 아버지 때문에도 웃고... 하여간 등장인물들은 진지한데 보는 나는 웃긴다. 바로 이 것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가 들었으면 철이 들어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서도, 철이 어떻게 드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그런 사람을 향해 마냥 타박을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사람이라도 진심이라면 응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작가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공감력만큼은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단 한 수 위 같아서 살짝 부럽더라. 다양한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진심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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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 - 부모와 교사를 위한 하버드 교수의 자전적 멘토링
캐서린 엘리슨 외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왜 집어 들게 되었는지는 명확하다. ''부모와 교사를 위한 하버드 교수의 자전적 멘토링' 이라는 표제에 궁금증이 일었고--아마도 하버드에--ADHD 판정을 받은 문제아가 어떻게 하버드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라는 문구에도 솔깃했다. 나 역시도 학벌에 연연하는 속물이라 그런지 그런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버드에만 방점이 찍힌건 아니고, 어떻게 저자가 역전에 성공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의 성적으로 대학교가 결정이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고등학교 중퇴자가 어떻게 하버드에? 그게 가능한가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학교 성적이 하도 낮아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저자가 하버드 교수가 되었다는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의 서구 결정판 같은 이야기, 읽기도 전에 내용이 대충 그려지면서, 뭔가 건질게 있을 거라고 난 지레 짐작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할 정도면 명철할 것이고, 그런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 얼마나 풍부한 사례들로 가득하겠는가 라는...돌아온 탕아가 자신의 개과 천선 과정을 직접 설명한답니다, 여러분! 다들 앞으로 물려 나와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 책 자체가 말이다.


결론만 말하면 나 혼자 너무 앞서 나간 모양이었다. 알고보니 제목이 저자가 단순히 ' 사고뭉치' 라는건 굉장히 언어를 순화시킨 것이더라. 그는 한마디로 불량배였다. 아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도때도 없이 드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ADHD를 앓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나 밉살맞게 행동을 하던지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애가 타고 속이 타고 그러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훤하게 들려왔다. 그냥 단순히 장난을 치는게 아니라 애가 정말로 타인에게 해가 될만한 행동을 한다.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해보도 싶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차에 창문에 돌을 던지지 않나, 동생들을 위협하고 못살게 구는건 애교 수준이고, 평생 폭력을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다고 자랑하지만, 폭력 못지 않게 주위에 해를 끼치고 다녀서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저자는 폭력과 그냥 못되게 구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 같던데, 사실 당하는 입장에선 그다지 차이가 없다. 싫은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해서 버스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규칙은 지키지 않으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다발로 하고 다닌 덕분에 학교에서 왕따 신세가 된 저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솔직히 억울한 것은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 아닐까 싶어 가소롭더라. 더 웃긴 것은 그가 자신의 밉살맞은 행동 덕분에 몸집이 더 큰 학생의 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주 아주 괴롭게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한 행동은 수긍할만한 행동이고, 자신이 남에게 얻어 맞은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던데, 당장 반발심이 들었다. 적어도 저자라면 균형감각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왜 자신이 남에게 끼친 해는 별게 아니고, 자신이 당한 것만 대단한 일이라는 것인지...거기서부터 이 책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던지 간에, 그의 왜곡된 시선을 통해 보여진 것이니 올바른 것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말이다. 그가 학교 폭력을  그렇게 소리높여 고발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행동 역시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되는거 아니었을까. 그는 학교에서 자신이 맞는 것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억울해 하던데, 아마 내가 거기에 있었다해도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고소해했을지도 모른다. 잰 맞아도 싸, 누군가 내 대신 때려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면서...아마도 이런 사고방식들이 학교 폭력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되겠지만서도, 그걸 알면서도 저자의 행동은 참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ADHD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그걸 넘어서 저자에게 소시오패스나 아스퍼거스 증후군이 살짝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였다.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것 같던데, 나중에 진단을 해보면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 그저 장난이었다고 생각하던데, 그건 정말로 정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렇게 한때 밉살맞은, 범죄자의 미래가 예약되어 있었던--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그는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범죄에 가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교도소에서 인생을 끝내지 않는 것은 그저 다만 그가 너무나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걸린 적이 없었기에--그가 19살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그래도 제 궤도에 올라 지금은 대학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다행이긴 하다. 이 사람 머리가 좋아서 만약 범죄의 길에 빠져 들었다면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를 잘만 보살피면, 그리고 믿어주면, 악순화의 고리가 아닌 선순환의 고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강변하고 있었다. 문제는 선순환이라고. 언제나 아이를 그쪽으로 밀어 주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이다. 왜냐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이의 마음 속에도 실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일뿐이라고 말이다.


ADHD가 이렇게 파괴적이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충동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우리 사회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니 말이다. 저자 말에 의하면 지금 어엿한 교수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도 사실 그 충동은 어렸을 적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그 충동이 벌어질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일뿐. 그러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충동을 조절하는 짠밥이 는 것이라고나 할까.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충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게 아닌 일. ADHD 가졌다는 것이 참 현대 사회에선 적응하기가 힘들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그럴지니 그걸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타들어 가는 것은 뻔한 일...그런 부모들에게 어쩜 이 책은 그래도 어두운 밤에 빛나는 등불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적어도 희망을 주니 말이다. 거기에 부모에게 아이를 놓치 말라고, 그게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버팀목이라고 설명하는데 이해가 갔다. ADHD가진 아이들을 키우면서 좌절하고 어리둥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하는 부모님들이 보심 좋을 듯 싶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행동 하나 하나로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뭐, 미래까지는 아니라도 고통의 크기는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는가. 내진 서로를 바라보는 이해의 눈길이 깊어질수도...하니 사고뭉치를 넘어서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신 분들은 한번은 보셔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보기엔 좀 역겨울지도...하여간 이런 아이들을 키워 내는 부모님들 기타 선생님들은 대단하시다니까. 나는 인내심이나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 일은 못하겠다 싶다. 하니 ADHD가 있는 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은 기억하시길....늘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놓치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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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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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월스트리트의 초단타매매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던 책이다. 월스트리트의 일그러진 초상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던 수작 <라이어스 포커>, 영화 <머니 볼>의 원작이 된 <머니 볼>, 어릴적 체육 코치였던 피츠 선생님이 시대에 밀려 학부형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담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호랑이 선생 피츠의 위기>,어른들을 경악하게 한 발칙한 미국 10대들의 향연 <넥스트>, 새로운 것이 우리를 부유하게 하리라는 모토로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것을 선점하려 발악하는, 천재거나 미쳤거나 괴팍한 미국 자본가들을 취재한  <뉴뉴씽>, 지난 20년간 벌어진 네번의 커다란 경제 패닉을 연구한 <패닉 이후>, 서브프라임 사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 <빅숏>까지...그의 책들을 들여다 보면 그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경제와 스포츠...스포츠를 말하면서 단지 타율만 논하는게 아니라 경제적인 의미도 언급하고, 경제를 논하면서 단지 숫자만 말하는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함의를 우리에게 까발려 준다는 것이 그의 특징인데,  쉽게 읽히고 ,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며, 경제학자나 스포츠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을 쉽게 쉽게 설명하며, 무엇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각광받을만한 작가다. 무엇보다 글을 시원시원하게 잘 쓴다는 점에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서도...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의 책을 못 읽은지 한참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글은 언제나 반가웠기에...그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썼던지 간에, 그것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이건 아니건 간에 나로 하여금 주목하고 읽게 만드는 글발을 가진 마이클 루이스...하지만 간간히 그의 책이 내게 실망을 가져다 준 적은 있어도 이 책만큼 실망한 적은 없었지 싶다. 일단은 재미가 없다. 이 책은 영화 <스팅>처럼 0.001초의 차이를 가지고 우리의 --아니 미국인들의--돈을 합법적으로 강탈해가는 월스트리트의 사기꾼들을 고발한 것인데,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재미가 없어서...대부분의 그의 책들이 왠만하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예외라고 할만했다. 0.001초를 남들보다 미리 알게 됨으로써, 그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던 사기꾼 집단이 대단했던 것은 그들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 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거래 내용을 미리 알게 됨으로써 거래 이익을 얻게 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돈벌기였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그 누구의 레이다에도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니 놀랠 노자다. 다행히도 무언가 수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집념에 의해 마침내 그 정체가 밝혀진다는 이야기...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의 대립이자, 정당하게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과 돈이라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립을 다루고 있던데, 그들의 대립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속에선 거액의 연봉을 물리치고 악당들을 물리치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내는 그들이 별게 아닐지 모르지만서도, 막대한 돈이 오고가는 월스트리트에서는 그런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일. 그런 유혹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자신의 일을 해낸 사람들과, 그들에 의해 못된 짓이 탄로난 악당들의 정체를 취재를 통해 드러내 주고 있는 책이라고 보심 되겠다.


경제통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저자로 알게 되었다는 점이 장점이나, 단점이라면 그 특유의 인간에 대한 묘사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때문이었다. 인간보다 숫자가 이 책을 더 많이 채우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보니 결국엔 지루해진다. 초 단타매매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을 다루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의 전작들에서 익히 보아온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면서 날카롭게 인간을 통찰하는 부분이 빠진 것 같아서 섭섭하기 그지 없었다. 사건은 그럭저럭 설명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거기 출연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 주는게 없는 듯 했다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딱히 기억에 남는 등장인물이 없더라. 러시아 인들이 미국에서 초단타매매에 일가견있는 세력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운 정보긴 했지만서도, 그외엔 사기꾼들이 이렇게 머리를 써서 돈을 번다는 사실이 징그럽더라.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머리를 쓰느니 차라리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 것 같더구만, 대박의 꿈을 가진 사람들의 스케일은 아마도 우리완 다른 모양이다.


이 책을 계기로 FBI와 미 증권 거래 위원회, 뉴욕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디까지 파헤쳐지고, 벌을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서도, 적어도 경각심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만큼은 박수를 쳐줘야 할 듯 하다.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보시면 좋을 듯...우리나라는 나라 규모가 작아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진 못할 것 같은데, 그건 모르는 일일까? 이런 일이 아니라도 어디선가 우리의 돈을 누군가는 몰래 거두어 가고 있는게 아닐런지...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알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을지도...우리가 아무리 물샐틈없이 막는다고 해도, 선량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라는 것 말이다. 과연 거기에 우리는 얼마나 대응을 할 수 있을런지, 그런 점에서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준 마이클 루이스의 통찰에는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가 좀 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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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


미나토 가나에의 책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작품. 원래 미나토 가나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일드 <N을 위하여> 1화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1화가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라 눈을 뗄 수 없던데, 일본 드라마 관계자들이 워낙에 연출력이 좋아서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온것인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 저의기 궁금해서 말이다. 아,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기다리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서도...


내용은 초호화 고층 아파트에서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장에 있었던 네 사람을 취조하던 경찰은 그 중 한 명이 자백을 하자 살인죄로 그를 기소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우연히 그 장소에 모인 것이었다고 말하던 네 사람은 각자의 기억대로 당시를 회상하는데...


네 사람, 살인 사건, 10년뒤의 회상, 그 네 사람에 얽힌 사연, 과연 진실은? 이라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게 하던 작품이다. 과연 드러난 진실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괴리는 어쩌다 생긴 것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안 볼 수가 없었다. 설정이나 풀어가는 전개등에서 뜻밖이다 싶을 정도로 탄탄하다는 점이 장점. 특히나 그 네 사람중 유일한 여주인공인 스기시타 노조미의 인생 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만 했다. 데릴 사위로 들어온 아버지가 17년간의 헌신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단지 자기 마음대로 한번 살고 싶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다 내 쫓았다는 이야기. 도무지 어디서고 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게  묘하게 신빙성과 호소력이 있어서 말이지,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단점이라면, 그외 다른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 부분에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점과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 늘어나면서 같은 문장들이 자꾸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대체로 극도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등장시킴으로써 리얼리티를 해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그러니까 한마디로 지나치게 극단적이라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뜻--이 작품속에서도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별로였다. 그런 사람들을 빼고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면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상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켜야 하는 것이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인가 보다. 그녀가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고 한다면, 독자로썬 적응하는 수밖엔...그게 싫음 읽지 않음 되니 말이다.  아직 드라마가 1회밖엔 방영되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으나, 아마도 작품성 면에서는 드라마가 좀 더 낫지 않겠는가 한다. 다른건 몰라도 일본 드라마 제작진들, 별거 아닌 원작들을 가지고도 뚝딱뚝딱 근사한 드라마를 잘도 만든다니까. 그것 하나만은 인정해 줘야 할 듯...


                 우편 주문 신부/ 마크 칼레 스니코/★★★☆☆



일단 이 책은 19금이다. 뭐, 내 기준에만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아무나 빌려 갈 수 있는 서가에 꽂혀 있던 만화책에 이런 내용이 숨겨져 있어서 살짝 놀랐다. 뭐, 이런 정도는 요즘 청소년들이 봐도 아무 지장이 없으려나? 하긴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가질 만한 나이가 아니긴 하겠다 싶지만서도...


우편 주문 신부...제목만으로 반발심이 들만한 작품인데, 보게 된 이유는 표지에 보이는 한복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한복 같아서, 설마 한복? 이라고 들여다 봤더니 진짜 한복이다. 한복에 담배라...거기에 우편 주문 신부라. 뭐, 이 정도면 이 작품에 대해선 설명은 거반 다 한듯 하다. 캐나다의 39살 숫총각 몬티는 우편 주문으로 한국인 경을 신부감으로 데려온다. 작은 동양인 여인을 기대했던 몬티는 키가 큰 경을 보고는 실망하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그는 실망감을 누그러뜨린다. 경 역시 한국이 싫어 모든 것을 잊는다는 심정으로 캐나다에 왔지만, 만화책 가게를 운영하면서 크지 않는 아이처럼 집안 가득 장난감을 모으고 살아가는 몬티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선 두 사람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 한편으로는 실망감을 감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앞으로는 행복했음 좋겠네 라는 희망을 안고 둘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순종적이고, 근면하고, 가정적이고, 고분고분한 동양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몬티가 과연 산전수전 다 겪은 현대적인 여성 경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덜 자란 애들처럼 환상에 절어사는 몬티에게 경은 과연 사랑을 느낄수 있을까? 둘의 파국이 예정된 것이라면, 남은 것은 이제 언제 그것이 터지는가 하는 것일 터... 탈출구를 찾던 경은 우연히 사진 작가 이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누드 모델 제안에 응하면서 예술이라는 일탈로 나가가게 된다. 그런 경을 바라보는 몬티의 눈에는 불안감과 질투가 가득한데, 과연 이 커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이 과연 부부로써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팔려온 신부, 라는 말이 맞겠지? 팔려온 신부가 타국에서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라는걸 뜨악하고 끔찍한 심정으로 보게 된 책이다.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읽기가 더욱 더 끔찍하던, 물론 여기엔 살인이나 그런게 없지만서도,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것 자체가 이미 끔찍한 일이라서 말이다. 작가가 어디서 어떤 경로로 경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을 만났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분명히 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리얼리티 있어서 말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렇게도 행복은 잡기 힘든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을 내버린다는 것의 결과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순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성 면에서는 거짓이 섞이지 않는 수작이나, 솔직히 이런 책을 읽고 싶은가는 의문이다. 내용을 알았더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오해는 마시길. 주인공이 한국인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인간으로써, 읽기 힘들었다는 것일뿐.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박현희/★★★☆☆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사회학인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전래 동화의 다시 읽기 내진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던 책. 기대하고 봤는데, 기대만큼 좋았다. 물론 이 작가의 견해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동의를 넘어 한 수 배웠다고 할 만한 곳도 군데 군데 있었다.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존경스러워 보긴 또 오랜만 인데, ( 오해는 마실 것이, 이럴때의 오랜만은 일주나 이주 정도의 기간이다. 이는 지루한 것을 못 참는 나의 성향상, 독서 주기가 시간 주기보다 짧기 때문이다.). 다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이때 재해석의 상대가 주로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심 된다. 그걸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래 동화를 사용한 것이고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거짓말을 이해하라는 부분이었다. 비교적 자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어른들에 비해 모든 것을 통제 받아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엔 없는 것이라고 하던데, 일리 있지 했다. 하니, 거짓말 했다고 그들을 추궁하고 다그치기 보단 이해하는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라고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이다. 오히려 내가 왜 그걸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어렸을 적에 어른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 맘대로 , 그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편리하게도 그건 까맣게 잊어 버리고, 너희들은 뭐가 불만이냐, 불평할게 뭐가 있냐면서 고개를 저었더랬으니... 그런걸 보면 기억력이란 참 편리한 것이고, 우린 우리들의 기억력을 너무도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하여간 아이들의 거짓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가는 모르겠으나...그 외 외로움 때문에 백설공주가 자꾸 문을 열어준다는 해석이나, 싫어하는 것들을 굳이 좋아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도 맘에 든다. 이 모든것을 합해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작가가 참 마음이 따스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는 파워를 가지신 분이었는데, 그걸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힘으로 사용하시는걸 보면서 말이다. 이런 선생님이 아직 존재한다는 자체가 아직은 우리 학교에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런지...그리고 그 선생님의 눈엔 아이들의 희망이 보인다고 하시니, 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다.


고등학생들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던 책으로, 더 확대해 보자면 학생을 자식으로 둔 학부형들이 읽으셔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선생님의 눈으로 본 이야기니,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귀 기울여 들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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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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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줘>의 작가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 제목에 식겁해서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길리언 플린의 작품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서 들여다 보게 됐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낸 경우라 할까나. 내용에 들어가 보자면, 시카고 작은 신문사 기자인 카밀은 미주리 주 윈드 갭으로 출장을 다녀 오라는 사장의 지시에 질겁한다. 그녀의 고향인 그곳에 기자라면 침흘릴만한 연쇄 소녀 살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워낙 구석에 박혀 있는 시골이라 아직은 다른 신문사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특종을 잡아 오라고 등떠미는 사장, 까밀은 식은땀이 나고 말문이 막히면서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자신도 효율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아름답고 지적이며 쉽게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듯한 외모의 카밀에겐 남에게 숨기고픈 비밀이 있으니 그녀가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는 커터라는 사실이다. 여름에도 긴 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 할 정도로 남아 있는 구석이 없는 그녀의 몸은 한계를 넘어선지는 이제 오래, 다행히도 몇년 전 중독 센타에 들어가 회복 과정을 거친 그녀는 이제 자신이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에 가라는 지시를 받기 전까지...1년에 걸친 공백을 두고 9살과 10살 소녀가 이가 뽑힌채 살해되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윈드 갭, 그곳의 가장 유력 가문의 외동딸인 카밀의 엄마는 그녀를 냉랭하게 맞아 들이고, 카밀의 이부 동생은 되바라진 모습과 행동으로 그녀를 경악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특별히 초빙되어 온 형사는 1년간 이 마을에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면서, 살인자가 누군지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다들 입을 딱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부 동생의 도발을 흥미롭게 하지만 지친 마음으로 바라보던 카밀은 서서히 엄마가 그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이 부유한 가족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갔던 카밀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간 잠재워 왔던 커터의 유혹이 되살아 남을 느끼게 되는데... 

 

다른건 몰라도 길리언 플린, 이 작가는 못된 여자들의 심리는 확실하게 잘 꿰고 있지 싶다. 추리소설이건 스릴러 소설이건 간에 주로 피해자로 등장하기 마련인 여성들이 그녀의 작품들 속에선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며 거칠 것 없는 싸이코패스로 출연하는데,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 길리언 플린 자신이 여자라서 그런가, 남자 작가들이 상상해내지 못하는 극악의 부분까지 신빙성 있게 파고 들어가는 품새가 보통이 아니다. 스티븐 킹의 <캐리>급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 캐리는 정신이라도 나갔지. 길리언 플린의 주인공들은 다들 겉보기에 너무도 멀쩡한 사람들이라 설득력과 공포심이 배가되는 듯하다. 여성 범죄자들의 급을 높여줬다고나 할까. 이런 통찰력에 상상력은 어디서 온 것이냐 싶어 존경심이 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길리언 플린처럼 아름답고 이지적인 모습의 백인 여자가 어쩜 이리도 범죄자의 심리에 정통할까 싶어 의문도 생기지만서도... 이 작가도 작품속의 카밀처럼 카터인 것은 아닐까. 내진 <나를 찾아줘>의 에밀리처럼 싸이코패스인건 아닐까 싶은,  물론 그만큼 리얼리티가 넘친다는 것이겠지만서도, 솔직히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고 있다는게 좋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작가로써는 그만이겠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써는? 글쎄...하여간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탄탄한 심리 묘사와 끝까지 놓치지 않는 긴장감이 혀를 내두른다. 반전에 반전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전개 방식도...병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식이 살아있는 작은 마을 윈드 갭을 무대로 한편의 드라마를 잘 그려냈지 싶다. 이 작품 역시 <나를 찾아줘>처럼 판권이 팔렸다고 하던데, 당연하지 했다. 그냥 이대로 드라마를 찍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만큼 완벽했으니 말이다. 완성도 높은 스릴러 소설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아마도 이 작품은 여성들이 보기에 더 재밌게 보지 않을까 싶다. 남성들보단 여성들이 더 몰입해서 볼만한 이야기란 생각에서 말이다. <나를 찾아줘>에서는 어쩌다 글을 잘 쓰게 된 작가인줄 알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그게 아니라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였구나 싶다. 주목해봐야 할 작가로써,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싸이코패스를 들고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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