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 내가 정신병원에 간 날은 목요일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독일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등장한 신예작가라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던 에바 로만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자신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정신 병동에 갇혔던 8주간의 경험을 그리고 있는데, 일단 군더더기가 없다. 처음 쓰는 책이라는데도 어쩜 이리도 유려하게 물이 흘러가는 듯이 하고 싶은 말만 얄밉게 해대는지 감탄했을 정도로...이런 재능을 가진 여자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어떤 회사인지는 모르나, 작가 자신이 정신이 피폐해지면서까지도 다녀야 한다고 하는걸 보면 꽤나 좋은 회사였던 것 같음.)에 다니느라 우울증에 걸렸다니 할 말이 없더라. 그러니까 때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내진 뭘 잘 하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피는거다.단지 그것만으로도. 물론 대체로 낭비없이 지나가는 인생이란 없다고 보면 되지만서도, 그러니까 내 말은 정답은 그것에 가깝다는 이야기. 하여간 완벽한 부모의 기대에 남모르게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밀라는 어느날 더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지 마비 환자도 아니건만 자살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진 그녀는 결국 항복을 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는 불안감과 서먹함, 막막함은 둘째치고, 그럼에도 그보다 그녀를 더 지배하고 있던 것은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이젠 더이상 정상처럼 보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한. 다시 살고 싶어지면 좋겠네 라는 희망을 안고,  어디선가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 그녀. 처음엔 과연 자신의 병이 나아질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그녀는 심리상담을 힘겹게 거치면서 점점 자신의 문제에 접근하게 되는데...


우울증 치료에 관한 완벽한 보고서라고 해야 할까? 우울증 외 그녀가 정신병동에서 만난 여러 환자들과의 만남와 에피소드들은 다 흥미롭고 유익한데다,  미쳤다는 이유로 한 곳에 모여 있는 그들이 서로를 도우면서 공감을 나누는 장면은 괜히 짠하면서 기특했다. 어쩌면 냉정한 독일 사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곳이 정신 병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거기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기대고 이해하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도 아픈 사람이기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보다는 한결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면서 말이다. 그런 유대속에서 사회와 인간들 속에서 다칠대로 다친 그들이 상처가 나아져서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희망적이었다. 정신병은 참 고치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어리버리한 신입 환자에서 8주간의 힘겨운 나날을 보낸 뒤 고참 환자가 되어 나가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왠지 내 여동생이 정신병동에서 퇴원하는걸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 미쳤음에도 흔들리지 않은 ) 탁월한 균형 감각에 통찰력, 문제를 파고드는 집요함에 문제를 직시할 줄 아는 영리함,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설득력 있는 묘사, 거기에 과장하지 않는 유머 감각에 따스한 인간미까지...독일 문단에서 그녀의 등장에 환호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칭찬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던 작가,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민낯이 아름다운 여인네를 보는 듯했단 것이다. 가식적인 매력에 덕지덕지 바른 화장, 뻔히 들여다 보이는 교태 없이도 어쩜 이리도 아름답던지...자연 미인을 보면 눈이 시원해진다고들 하지? 이 책을 보니 내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녀의 장점들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보심 되실 것이고, 나는 어린 그녀가 자신의 입원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통찰력 있는 문장 몇 개를 여기에 적어놓고 간다. 아름다운데다 통찰력까지 있다니...가히 부러움의 종합체다.


"진단을 받고 사흘 뒤 어머니가 정신과 전문 병원에 자리가 났으니 그리로 옮길 거라고 했다. 그곳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을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멈추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안심이었다. 나는 정신질환을 확진받았다. 즉, 내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죄책감 없이 마음놓고 아파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런 긍정적인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였다."--15

 

'여긴 정신병원이야. 여기서 더 이상 이상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남들 눈치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조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이 되어 보는거야."--26


" 저 선생님.........제가 여기 와야 하는게 맞나요?" 

나는 밖으로 나가기 전 마지막 용기를 내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재밌다는 듯, 그러나 너그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제 생각엔  아주 딱 맞습니다."--36


뭔가 잘못됐다.오늘부터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힘들여  일해야 하는가?--47


낯선 사람들과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입원한 지 2주도 안 됐지만 이미 고정적인 친구 그룹이 생겼고 밖에 있는 내 절친들과 보낸 몇 달  보다 이곳에서의 2주가 훨씬 재미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우리는 하나같이 다 맛이 갔으니까.--73


"이렇게 한번 표현해 봅시다. 우울증은 절대 혼자 오는 법이 없어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 보세요. 다들 이런 저런 병을 줄줄이 달고 들어옵니다. 영혼이 아프면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죠? 우린 그걸로 영혼이 아프다는걸 알 수 있고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언제 영혼까지 돌보느냐고 합니다. 우리 머리와 이성은 영혼보다는 일, 육아, 경제 위기, 일상 같은 외부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찾는겁니다. 우리 영혼은 인내심이 강해서 힘든 상황도 아주 잘 견딥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외면당하게 되면 골치 아픈 존재가 됩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소통을 시도하는 거여요. 몸을 통해서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죠. 허리 통증, 피부병, 불면증...어떤 증상이든 나타날 수 있어요."--81


잠시 후 상담자가 모두에게 묻는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하라고 누가 가르치던가요? 왜 무조건 완벽해야 합니까? 완벽하지 못해도 충분히 잘 하는 겁니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사람들이 존중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됩니까? 아니면 ...완벽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요?"

목안에 걸려 있던 자그마한 응어리가 커져서 목이 터질 듯이 아프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울상이다. 여섯 명의 어른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자신을 불쌍해하며 속으로 울고 있다. 어쩌면 심리 치료라는 것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일이 아닐까. 평소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표출하는 일.---95


어릴 적의 말라는 공상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어른이 된 말라는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고 모든 일을 똑바로 처리하고 강박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즉흥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여자다.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맞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생각없이 살면 내가 원하지도 않은 삶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정신병원에까지 들어올까? 왜 갑자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을까?--96


나는 혼자 가만히 미소짓는다. 나는 여기 들어온 환자들의 병명과 비밀도 알지만 행인들이 우리보다 덜 아프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즐기는 이 휴식을 부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줄도 모르고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본다. 그리고 병원 간판은 우리가 사이코 족속임을 말해준다. 나는 구경꾼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자들의 목에 흰색 팻말을 걸고 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우울증 :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냄.

거식증: 먹이 주지 마시오.

나는 잠시 '에비!' 하면서 구경꾼들을 놀래줄까 하는 유혹을 느낀다. 미친 사람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132


" 어이구, 이 아가씨야, 왜 모든 걸 그렇게 심각하게만 생각해요?"

"생각을 해봐요. 이제 겨우 스물 여덟인데 지금 사는 삶이 못마땅해요. 그럼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인생을 바꿔요. 해보지도 않고 겁에 질려서 엉뚱한 걸로 인생 망치지 말고요."

"그렇게 간단하다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네, 가끔은 그렇게 간단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옳고 그르고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냥 결정을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여요. 일단 결정을 내리면 훨씬 좋아질 겁니다."--141


"머리가 생각하는걸 다 믿지는 말아요."--174


"엄마, 지금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큰 걸 기대하는지 아세요? 그냥 행복해지길 바란다고요?"

내 입에서 행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금지된 것을 말하는 것 같고, 처음 듣는 말 같고, 왠지 홀가분하다.

"그냥 행복해 지라구요? 그게 얼마나 큰 요구인지 아세요? 행복해지라구요? 삶에 만족하는 균형잡힌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어떻게 하는 건지 좀 알려 주세요, 행복해지는 방법 말이여요. 전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고요. 행복해지는건 그렇게 쉬운게 아니여요. 지금 난 행복할 수가 없어요."--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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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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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우선 발상이 신선했다. 돈이 궁해 충동적으로 인질 납치를 시도했는데, 돈을 요구하기도 전에 다른 범죄로 감옥에 가는 바람에 동굴속에 숨겨둔 피 납치인의 생사가 불분명하게 되었다라는... 범인외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남겨져 생사를 다투게 된 여인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감히 입을 떼지 못한 범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그런 참신한 설정이라면 일단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고, 또 그런 참신한 스토리를 생각해 낼 줄 아는 작가라면 기대해볼만하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에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발상을 가지고도 이 정도밖엔 쓰지 못하냐 싶더라. 그러니까, 최고의 식재료를 갖다 주었더니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 내온 듯한 느낌? 분명이 이것보다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싶은 짙은 아쉬움.  아까웠다. 이런 소재를 생각해냈다는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맨날 맨날 일어나는 일은 아닐텐데, 왜 이보단 맛깔나게 버무려내지 못했을지 싶어 내가 괜히 섭하더라. 능력있는 작가에게 이런 소재가 떨어졌다면 굉장히 멋들어진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마도 그건 창작이라는걸 모르는 독자가 할만한 나이브한 상상이려나? 이야기를 창작해 낸다는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니 말이다.


내용은 뭐, 위에서 간단하게 언급했듯이, 납치극을 벌이려다 일이 심하게 꼬여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돈이 궁해 돌파구를 찾던 라이언은 한적한 도로에 홀로 서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납치한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고향의 여우 동굴에 그녀를 감금한 뒤, 남편에게 돈을 요구하러 간 그는 우연찮게도 그 전날 술집에서 벌인 싸움으로 감옥에 갇히고 만다. 여우 동굴에 여자가 갇혀 있는걸 아는 것은 라이언뿐, 하지만  그는 감옥 생활 2년 반 내내 그 사실에 대해선 한마디로 뻥끗하지 않는다. 여자를 살리겠다고 자신의 수감 생활이 늘어나는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이 칼을 들고 실제로 죽인 것은 아니니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나 현실감이 덜했던 것도 사실, 그는 납치된 여자나 그녀의 가족의 고통은 나몰라라하고 자신은 왜 그렇게 운이 없는가를 되뇌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나 출소하게 된 그는 이제는 착실하게 살아보자면 다짐을 하지만 그날부터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의 엄마가 납치되어 숲에 버려지고  그의 옛 애인마저 강간 당한 채 발견된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아무런 연관없이 벌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한 라이언은 그간 자신의 죄책감을 갉아먹고 있던 그 사건을 떠올린다. 과연 누가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라이언의 짐작대로 이 모든 사건은 납치된 그 여자의 짓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살아나올 것일까? 라이온의 손발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마는데...


용두사미 까진 아니라도, 초반의 압도적인 몰입도를 생각하면 뒤로갈수록 긴장감이 쳐진다. 차라리 한가지 이야기로 집중을 했었더라면 더 박진감 넘치지 않았을까 싶던데, 이것 저것 여러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벌어지다보니 오히려 집중이 안 되더라. 거기에 이 모든 사건들이 어쩌다 보니 라이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그가 벌였던 사건의 모방작으로 보여지는데다, 이 모든 것이 팍스밸리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에 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다보니, 과연 그때 어떻게 된 것일까 잔뜩 궁금증의 풍선을 키워 놓고서는, 그런 결론을 내어놓으면 반칙이라는 것이지. 이렇게 되면 독자는--정확히는 나는--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럴거면 뭐하러 분위기는 잡았는데 원망 사기 딱 좋았다.


거기에 심리 묘사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작가가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은 하는데, 정작 읽는 나는 반감이 많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다들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는데다, 작가 생각엔 그것만으로도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들 못난 점들 몇 가지씩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읽는 내가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하긴 추리 소설에서 존경할만한 등장인물을 찾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그래도 적어도 매력적인 인물 하나 정도는 나와줘야 했던거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기대는 창대했으나, 종착지는 실망 밸리 그 언저리쯤에 착륙해 앉게 된 작품이었다. 아~, 제목은 그럴싸했는데 말이다. 제목만으로 별 한 개는 먹고 들어가던 책, 폭스 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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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장 12년에 걸친 프로젝트라니... 완성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별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동안 벌어질 수 있는 변수들을 감안하면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지 감독이나 제작자가 대단하다 싶다. 물론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도 마찬가지고...다른 기성 배우들에겐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어 특별한 시간이 되었겠지만, <보이후드>의 주인공역인 소년 메이슨역의 엘라 콜트레인이야말로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영화 한 편에 담는낼 수 있었으니 그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겠다 싶다. 12년동안 나오는 배역들이 변경되는 일 없이 마치 한 가족처럼 세월이 흘러가는 모습 그대로 찍은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소년 시절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밉살맞은 누나와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여섯살짜리 아이의 눈에서 시작하던 영화는 대학 신입생으로  삶을 시작하는 청년 메이슨의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데, 과연 그 사이 이 소년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12년간의 프로젝트라는 말에 식겁해서는 굉장히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는 것이 함정. 그러니까 12년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다지 많은 이야기는 담고 있지 않았다. 페트리샤 아퀘트로 분한 엄마가 마지막에 자신의 인생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고 눈물을 흘린던데, 그 말이 그렇게 공감이 갈 수 없더라. 한편으로는 그녀의 나이 즈음에는 보통 그렇게 느낄만하단 생각이 들어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들이 그렇다는 뜻. 이보단 더 재밌는 뭔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하게 끝이 났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보이후드란 제목에 걸맞게 딱 소년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기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서도--그러니까 관객들에게 어필하게 위해 드라마틱한 조미료를 가감하지 않았다는 뜻--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심심하게 12년이 채워지는구나 싶더라. 소년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감독 입장에선 이미 어른이니까,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충분히 있었을텐데 왜 안 그랬는지 모르겠다. 창작력이 고갈되어서 그런건지 감독 역시 더이상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 감을 못잡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영화가 내내 심심하고 고리타분하게 흘러간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심지어는 이혼한 후 엄마가 만난 두 남편이 다 개자식이여서 그들과의 갈등이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어쩜 이 영화가 심심해진 이유는 엄마의 결혼 실패탓이 크겠다 싶다. 만나는 남자마다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던 건지 이상한 남자만 만나 살던 엄마. 덕분에 죽어라하고 열심히 산 건 맞는데도 그녀의 인생이 잘 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 부재한 집에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짙게 들더라. 고생스럽게 아이들을 길러낸 점을 생각하면 딱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것이 드라마처럼 갑자기 좋은 사람이 나타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거의 드무니 말이다. 현실이 그렇다는걸 감안하면, 영화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감독을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게 우리네 일상이고 인생이라면 그렇지 라면서 받아 들이는 수밖엔...

결론적으로 한 소년의 성장기, 밋밋하고 심심하다. 일단 주인공이 소년이 그다지 매력이 없어. 어릴적 그렇게 귀여웠던 아이가 왜 저렇게 밖엔 크지 못했을까 싶게, 소년은 별 매력없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한 눈에도 자신없는 걸음걸이에 등을 굽히고 어정쩡하게 걷던데, 설정인지 아니면 배우 자신이 그렇게 걸어다니는가는 모르겠으나, 김C의 어린 버전 같아서 별로더라. 청년이라면 그보단 패기 넘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 보기 좋을텐데 말이다. 12년이라는 이슈 자체에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인지 영화 자체로는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무엇이건 빨리 결정내리고 빨리 승부를 보는 내 성격상 그 세월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한가지 일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지만서도, 작품성은 시간의 길이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12년이 충분히 길수도 있다는걸 알게 되었는데, 그건 이 작품속에서 쭉 그 시간들을 지켜 보고 있으려니 충분히 길어서 말이다. 지루해질만큼. 이렇게 보면, 과연 이 영화가 한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찍어냈다는 외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을까 싶다. 아이가 이런 저런 시련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보시는 분들에 따라선 굉장히 감동을 받을 수있을지 모르는데, 이미 나는 어른이 되어서 인가 내겐 별로 크게 안 와닿았다. 다만, 이렇게 힘들게 크는데도 한번의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게 그렇게 어렵다니, 라는 자괴감이 살짝 들긴 했지만서도.  하니 ,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내진  뭘 원하는가에 따라 보실건지 마실건지를 결정하시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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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 혼란스러운 전개를 무시한 채 쭉 읽게 되면 마지막에 가서 보상을 받게 되는 작품. 분명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단점들이 널려 있음에도--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건 아니고, 초반 전개가 눈에 거슬리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되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추리 소설에선 보기 힘든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읽을때마다 모두 합해 결론은 완벽하다고 점수를 매기게 되는건 루이즈 페니만의 장기인 듯 싶다. 요즘 나오는 추리 소설들 가운데서 군계일학이라 할만한 작품으로 , 묵직한 감동마저 선사하던 흔치 않은 책이다. 올해가 다 가진 않았지만 올해의 책으로 탑 텐 안에는 넉근히 들어가지 않겠는가 미리 예상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한 탑 파이브 안에 들어갈지도...


내용은 마을에서 천사라고 불리는 아줌마가 강령회 도중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래 심장이 안 좋았던 사람이라 무서워서 심장 마비로 사망한거라 짐작하던 마을 사람들은 사망 원인이 독살로 밝혀지자 발칵 뒤집어 진다.  가마슈 경감이 부하와 함께 조용히 사건을 밝히고 다니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 역시 누가 과연 범인인가를 두고 촉각을 곧두 세우게 되는데 과연 범인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살인과는 가장 거리가 먼 마을 같은 스리파인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과연 천사라고 불리는 그녀가 살해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살해한 범인은?


이젠 거의 믿고 보는 루이즈 페니가 되겠다. 위에도 썼지만 요즘 왠만한 추리 소설은 다 손에 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던 작품. 추리 소설에서는 흔하게 보기 힘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좋다.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도 재미도 있지만 그보단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보는 작가의 통찰력이 만만찮으니 말이다. 루이즈 페니...처음엔 그냥 그저 그런 추리 소설 작가인줄 알았는데 그녀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작가의 재능이 심상찮다 이거지. 걸출한 작가 한 명의 탄생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녀의 재능과 통찰력에 찬사를...


★★★☆☆


아~~ 아쉽다. 별 네 개는 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지 싶어서 말이다. 북극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 더군다나 작가가 북극을 이리저리 탐험하고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서, 마치 북극에 내가 간듯 그렇게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북극으로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북극을 그렇게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서, 북극을 굉장히 재밌는 곳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합격점이다. 안타까운점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전개가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책은 그저 좀 지루하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서도...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중반을 넘어서서 지루해지면 곤란하단 것이지. 그런 면에서 위에 언급한 <가장 잔인한 달>은 그야말로 특이한 책이다. 초반의 어수선을 뒤로 가면서 멋지게 역전했으니 말이다. 영화나 책이나 음악이나 하여간...완벽함이란 무엇일까? 결국 진심이 무엇인지, 그게 중요한게 아닐까 싶다. 진심이 훌륭하다면 약간의 묘사 부족이나 표현력의 미숙함 정도는 얼마든지 커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우리를 사로잡은 가장 궁극의 것은 < 진심>이나 <생각> 이라는 것이 아닐런지...다른 말로 좋은 작가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두고 두고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

  

역시나 빌 브라이슨! 하고 감탄을 하고 만 작품.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1927년만 쳤더니 이 책이 나온다. 왜냐면 그것이 이 책의 주요 중심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는데, 빌 브라이슨은 별장에 가두고 글만 쓰게 하고 싶다고. 아마도 어떤 주제를 던져 줘도 그는 잘 써 낼 것이라고 말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책이다. 도대체 미국의 1927년에 뭐가 있다고 책 한 권을 써 낸단 말이냐? 싶겠지만서도, 빌 브라이슨에게 갖다 주면 훌륭한 책이 되어 나온다니까? 그러게 내가 아무 작가에게나 미저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다 그만하니까 나서는 것이겠지. 하여간 빌 브라이슨이라면 나는 미저리의 주인공을 기꺼이 하러 나설 용의가 있다 . 물론 종종 터무니 없는 주제를 가지고 너무도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바람에 읽는 독자도, 번역하는 역자도 학을 떼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서도, 그래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결국 만들어내는 작가가 어디 흔하던가. 이 정도면 무조건 존경해 마지않아 하는 능력이라고 봐야 한다.


내용은 미국의 전성기를 막 구현해내고 있던 특별한 한 해 1927년을 글로 재현내 낸 것이다. 그 해에는 베이비 루스와 루 게릭의 홈런 경쟁과 최초 대서향 횡단으로 나라의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의 해였다. 야구와 항공사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외 소소한 뒷 담화들과 함께 빌 브라이슨은 1927년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오래전 미국의 이야기임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특히나 야구를 어찌나 맛깔나게 묘사하던지, 마치 내가 그 해의 야구를 직접 관람한 듯한 착각마저 일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는데, 빌 브라이슨의 특별한 재능이 과연 어디서 내려온 것인가 라는 점. 이렇게 특별한 재능이 홀로 발현될 리는 없고, 그렇다고 그의 이력을 보자니 그다지 특별한 구석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난 늘 그의 재능이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생각이 났던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 못지 않게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던 스포츠 기자였다는 사실이. 부전자전이라고, 이 책을 읽게 되면 누구보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듯...역시나 내 아들이야 하면서 말이다.


★★☆☆☆


만약 이 책을 < 나 소시오패스>를 읽기 전에 읽었더라면 분명 좋은 점수를 주었을 터인데...안타깝게도 이미 그 책을 읽은 뒤에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어떤 책을 먼저 읽었다는 이유로 점수가 확 깍인 책. 필 맥그로의 <라이프 코드>다.


내가 위에 쓴 말을 한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소시오패스를 조심하라는 취지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 소시오패스>라는 책에서도 말한 것 같은데, 보통 사람들은 소시오패스를 짐작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당사자가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그들의 성향이나 충동을 짐작만 할뿐, 알아차릴 수는 없다고 말이다. 심리학의 대가는 아니라도, 심리 상담의 내놓으라 하는 전문가인 필 맥그로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소시오패스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만, 그간 자신이 만나왔던 가해자 목록을 적어 보면서 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유레카를 외친 것이지...아, 이 사람들에겐 이런 습성들이 있구나, 하니 우리 선량한 보통 사람들은 조심해야 되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가 60년의 세월동안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아챈 소시오패스에 대한 데이타가 실은 소시오패스 자신의 고백으로 이미 들통이 난 정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알겠는가? 소시오패스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짐작해서 때려 맞추기 힘든 문제라는 것을. 심리 상담에 모든 것을 걸고 60평생을 살아온 필이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소시오패스 한 사람의 30년에 걸친 고백으로 그새 한물간 것이 되고 마니 말이다. 결론은 그래서 우리는 소시오패스를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그저 잘 피해 가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 소시오패스>는 그런 면에서 내게 참 유용한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난 더이상 아니, 어떻게 인간이? 라는 말을 하면서 머리를 썩히지 않는다. 그저 아, 그 사람은 소시오패스겠군! 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니 말이다. 설명의 명확성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명확함을 선호하시는 분은 이 책보단 <나 소시오패스>를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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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은 뒤 20년, 사라는 가족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 소문의 진위를 알아보기로 한다. 그건 바로 사라가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농담에 대한 것. 도대체 어떤 가족이길래 그런 끔찍한 농담을 함부로 하나 싶겠지만서도, 사라의 엄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설마! 와 역시~~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신빙성 높은 이야기였다. 다만 정작 당사자인 사라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었기에 어느것이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일 뿐. 해서 어른이 되고 커리어면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사라는 드디어 용기를 내서 자신이 늘 궁금해하던 문제에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과연 그녀는 아버지의 친딸이 맞을까. 그런 소문을 무성하게 뿌리고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린 그녀의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사라는 엄마가 죽기전 엄마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자신이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보기로 한다. 그녀가 그녀의 후손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 것인가.

끔찍한 농담이 사실로 밝혀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의문에 최대한 정직하고 비교적 우아하게 답을 내놓고 있던 감독의 자전적 다큐다. 처음엔 놀랍도록 용기있는 한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보단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나름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던 작품이 아니었는가 싶더라. 아니 왜 이런 이야기를 굳이 영화로? 라고 보는 내내 꺼림칙하더니만, 마지막에 가서야 그 의문이 풀렸으니 말이다. 과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키운 정이냐 핏줄이냐를 저울질 하면서 정답은 단 하나라고 못박아 대답하길 좋아하지만서도, 어쩌면 거기에 대한 답은 모든 경우에 따라 다 다른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작품속엔 자신만의 답을 내어놓은 딸이 있고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할 것 같은 작가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남부끄러운 사생활을 끄집어 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서, 최대한 보기 좋게,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그려내준 점이 참 대단하다 싶다. 부모이기에 이해는 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감독으로써의 객관적인 시선 역시 견고하게 유지하는걸 보면서 말이다. 감추고 싶은 내 가족의 치부와 모든걸 테이블에 올려내어 보여줘야 하는 감독으로써의 시각을 비교적 충돌없이 잘 엮어냈지 싶다. 가장 재밌고 흥미로웠던 것은, 엄마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 하면서도 교묘하게 자신은 어떻게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내지 않던 감독이 맨 마지막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어찌나 깜찍하던지...박장대소 하고 말았다. 지인과 친척들이 고인이라는 이유로, 점잖은 성품이라서, 남은 것이 그녀뿐이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같은 여자 입장에서, 그리고 내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등 기타 감상적인 이유를 달아 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못하는 것 같던데, 카메라 뒤에서 아무 코멘트 없이 조용이 듣던 감독이 실은 그녀만의 통찰력으로 엄마를 파악하고 있었더라니...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에 스스로 묻고 답하는 듯했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엉큼한 점에 있어선 모전여전이지 싶더라. 생전에 거칠것 없이 기세등등하게 사셨을 듯한 엄마도 어쩌면 딸에게만큼은 당해내지 못하셨을지도. 하여간 감독의 작가로써의 역량을 짐작하게 하던 탁월한 피날레던데, 그 장면 때문에라도 난 그녀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듯 싶다. 그녀가 이젠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줄 자신만의 훌륭한 전설을 만들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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