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라든지 진심이라든지, 그런 것에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나 버렸기에 제목만 보고는 흘려 보낸 작품. 도무지 저딴 제목으로 멀쩡한 작품이 나와 주겠어 라면서 혀를 끌끌 찼는데...문제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도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밟히더라는 것. 해서 결국 호기심에 지는 셈치고, 그리고 더이상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서 보게 된 작품. 결론은 안 봤음 어쩔뻔했어~~라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릴 정도로 재밌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저급의 퀄리티는 온데간데 없이--그렇다고 대놓고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서도--군더더기 없이, 유려하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봐서인가 감탄하고 말았다.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배우들의 연기와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가 되게끔 풀어놓고 있던 감독의 연출력. 가히 기가 막히다고 할만큼 멋진 앙상블이었다. 소재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이야기가 나와 주더라는 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나이 42에 무작정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오오구로 시즈오는 이제와서 자아를 찾겠다고 오도방정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 하겠노라고 엄숙하게 선언을 하는 시즈오, 그 앞에는 빨리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아버지와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라고 등떠미는 착한 17살의 딸네미가 있다. 백수 한달 만에 천직을 찾았다면서 만세를 부르는 시즈오, 그것은 바로 만화다. 만화를 그릴 줄은 아느냐고 묻는 딸과 얘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는 아버지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명랑한 시즈오는 만화가 데뷔를 위해 불출주야 노력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기로 했다기로서니 어떻게 하루종일 만화만 그릴 수 있겠는가. 하여  42살 시즈오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게임 삼매경, 그다음엔 이십대 청년들과 함께 알바 삼매경, 그 다음엔 성실한 샐러리맨 소꼽친구 불러다 술 얻어먹기, 불안해질때쯤 철야 만화 그리기, 돈 부족해지면 딸에게 돈 빌리기등 도대체 어른이 얼마나 철이 없으면 이라고 할만한 일상으로 첨철되어 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만만한 시즈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타박을 당할때마다, 그리고 힘들여 그려간 만화가 퇴짜를 맞을때마다 '아직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런 최면도 결국엔 현실에 맞닿아 깨지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인 시즈오로 나오는 배우의 원맨쇼 같던 작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찌나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던지, 신인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 한다고? 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츠츠미 신이치...그럼 그렇지, 내가 아는 배우였다. 다만, 이렇게 망가진 역으로는 처음 봐서 몰라본 것일뿐. 아는 얼굴임에도 몰라볼 정도로 츠츠미 신이치는 철저히 배역 그 자체더라. 가장임에도 어찌나 철딱서니 없고 생각이 없는지 밉살맞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캐릭터인데, 그런데 츠츠미 신이치가 연기를 하니 밉지가 않다. 사실은 귀엽기 그지없다. 중년의 남자가 주책을 떠는데도 귀여울 수 있다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가능했단 것이지. 그런 보기 드문 설득력으로 무장한 영화였으니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서 결론적으로 주연 배우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것, 거기에 이 영화는 조연들도 좋다. 일본 영화를 보면 맘에 드는 것이 주연만 사는게 아니라 조연들도 산다. 주연을 위해 버려지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연과 공생하는 캐릭터라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말이다. 좋은 배우들을 끌어다 연기를 시키면서 결국 아무것에도 쓰지 않는 낭비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그밖에 또 맘에 드는 점을 들라면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리나라 영화인 <슬로우 비디오>를 보고선 경악하고 말았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선문식 철학을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면서 어떻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지 만드는 사람들이 안이했다 싶더라. 이 영화속에서는 다행히도 그런 우는 범하지 않는다. 그게 최소한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최대한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알기에, 맥락이 이어지는 대화를 해대는 이 영화가 멋지게 다가왔다. 원작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문인지 전개가 물 흘러가듯 스스럼없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설정이 아니라 진짜로 백수 아저씨가 있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보는 듯하다. 환상을 꿈꾸면서 마냥 낙천적인 아저씨를 보는데 진짜로 현실적이라는게 이 영화의 포인트.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있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하다고 상상이 될만한, 그런 인간들이 그려진다는 점이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 점은 이 영화가 웃긴다는 것이다. 이 영화, 코미디다. 배우의 신공 넘치는 연기에도 웃고, 진짜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어물쩍 넘어가려 애를 쓰는 주인공의 강한 정신력에도 웃고, 42에 중 2병에 걸린 아들을 어째야 할지 몰라 고민인 아버지 때문에도 웃고... 하여간 등장인물들은 진지한데 보는 나는 웃긴다. 바로 이 것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가 들었으면 철이 들어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서도, 철이 어떻게 드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그런 사람을 향해 마냥 타박을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사람이라도 진심이라면 응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작가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공감력만큼은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단 한 수 위 같아서 살짝 부럽더라. 다양한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진심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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