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비타민 -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내가 바뀌는
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전선영 옮김 / 부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내가 바뀌는 < 철학 비타민> 라는 표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젠 어떤 것을 읽어도 세상이 다르게 보이거나 내가 바뀌는 경험을 하기는 힘든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목차때문이었다. 철학은 무슨~~이라면서 아무 생각없이 목차를 흩어봤는데, 그것들이 내 흥미를 끌어냈지 뭔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 사람은 제각각이다.(소피스트) /철학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괴짜의 등장(소크라테스) /이토록 낭만적인 철학(플라톤)/스승을 걷어차다.( 아리스토텔레스)/ 한결같이 신을 믿다.( 아우구스티누스)/ 그가 있었기에 냉난방이 있다?( 베이컨) /우리 마음은 새하얀 종이( 로크, 버클리, 흄) /세계를 180도 뒤집은 꼬장꼬장한 철학자(칸트) /괴로워 하는 '나'를 위한 철학( 키르케고르 )/ 삶은 고뇌다. ( 쇼펜하우어) /만약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니체)/ 웃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제임스) /죽음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하이데거) /인간의 끝없는 자유 ( 샤르트르) /쾌락에도 질의 차이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마르크스) /인간은 죽었다.(푸코) /무의식을 둘러싼 싸움( 프로이트와 융)...목차만 읽는데 철학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궁금하게까지 만든다는 점에서 일단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정도의 목차를 끌어낼만한 기지라면 어쩌면 따분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철학사를 흩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거기에 이런 목차 안에 저자가 어떤 내용으로 각 학파들을 요약해 놓을지가 저의기 궁금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간절한 표정으로 철학을 가르치시던 윤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그가 해내지 못한 철학의 정수를 이 책 한 권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어떤 탁월한 발상의 전환으로 핵심만 골라 잡아 쉽게 내게 이야기해준다면, 철학 그까지껏 어렵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해서 결론은, 기대가 충족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대가 충족되었다고 한 부분은 흥미를 자아내는 목차하에 칸칸히 들어간 서양 철학자들의 설명들이 예상대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충족되지 않았다고 한 부분은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철학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았다는 포만감이 든다거나, 철학이 너무 재밌어서 더 연구해보고 싶다거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예기치 못한 성과를 들라면, 철학사를 한번 휙하니 흩어보는 과정을 통해 그간 내가 얼마나 성장을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만큼 머리가 빨리 돌아가거나 기억력이 좋진 않지만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만큼은 그 시절보다 깊어졌음이 확실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윤리 선생님이 어떻게 해서든 이해시키려 애를 쓰시던 말들이 이젠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아, 가여운 윤리 선생님. 어떻게 보면 그분은 불가능한 것이 도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그 분이 가장 공감할만한 영웅은 시지프스가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철학 문제를 잘 푼 것은 단순 암기력이 좋아서였을뿐, 철학을 제대로 이해해서는 아니었구나 라는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시절의 이해력이다 보니, 과연 무엇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열심히 달달 외고, 맞는 짝을 맞추는 혜안만 길렀던 것일뿐...해서 이제와 철학사를 되집어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 철학의 올스타라는 분들의 인생 역정 말이다.


그들과 나를 같은 인간 선상에서 두고 보니,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기꺼이 마신 과정은 놀랍기만 했다. 악법도 법이라는 그의 소신은 얼마나 섬뜩할만큼 존경스러운 것인지...그것이야말로 법을 이루는 근간이겠지만서도, 정법마저도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피해가려하는 소신배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자신을 어이없게 죽음으로 내모는 악법마저 주저없이 따르겠다고 하던 그의 마지막을 현재에 대입하니 초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어찌보면 무지렁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얼마나 불행했으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서도,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의 이성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자체가 참으로 소름이 끼쳤다. 니체는 또 어떤가? 그렇게 불행한 삶도 다시 주어진다면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내 보이겠다는 그의 삶의 대한 애정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루소의 어린 시절을 들어보니, 그가 왜 그렇게 삐뚤어졌는지도 이해가 간다. 그가 생각따로 행동따로 사는 이중적인 사람이 된 것은 어린 시절의 불행때문일 수도 있고, 그가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들었던 일화들을 현재에 대비해 다시 재해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장 의미가 깊었다. 그들이 그렇게 유명해진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과 그들 인생 자체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간단하게나마 철학에 대해 쉽게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적당한 책이 아닐까 한다. 쉽게 읽힌다. 각 철학파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알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여러 철학 거장들의 사상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 시야를 넓히는데 좋다. 어쩌면 당신 맘에 드는 철학자를 혹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들 일견 맞는 말만 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마도 이제와서는 누구의 말이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견을 자신이 인생을 해석하는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가 이 책을 보고난 최종 결론이 아니겠는가 한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도, 내가 바뀌지도 않았으나,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인가 정도는 알아낼 지 모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우드 잡>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대학에 떨어지고 여친에게까지 차인 히라노 유키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집어든 삼림관리 교육관 모집서에 호기심이 생긴다. 내용때문이 아니라 그 전단지 속의 여자 모델이 예뻤기 때문. 단순히 그녀가 맘에 든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덜컥 낸 유키는 긴 여정끝에 가무사리 숲이란 곳에 도착하게 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이 공기도 사람도 말도 다른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지게 되었을때 누구라도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유키는 다른 도시 청년보다는 훨씬 더 어리버리하고 약골이라서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살면 안 되는 곳에 떨어졌을때의 충격과 갈등을 다들 짐작하시리라 본다. 1개월만 버티면 수료증을 준다는 말에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는 어느날 야밤에 짐을 싸고 마는데...

 

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숲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주던 영화다. 일본 영화답게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 뺀질이 초짜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직업에 도전해 당당한 일꾼으로 성장해간다는 기본 줄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린 것이 주효하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도 볼만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을 들라면, 숲의 정경이다. 어디에 카메라를 갖다 대건 눈이 확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녹색의 바다가 출렁이는 듯한 장면은 감탄스러웠다. 거기에 일본에서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직업 벌목꾼처럼 나무를 타고 베는데 그것도 대단했지 싶다. 어떤 액션 장면보다 아찔하던데, 그걸 어떻게 찍었을지 저의기 궁금하다. 숲을 존중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도시 청년의 직업탐방기. <가무사리 솦의 느긋한 나날>의 감동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보셔도 좋을 듯. 


                                                       < 투 데이즈 원 나잇>


마리옹 꼬띠아르의 원맨쇼를 보는 듯했던 작품. 주인공의 옆 모습만 비쳐주는데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더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우울증에서 간신히 회복된 상드라는 병가에서 돌아와보니 직장에서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투표에 의해서. 사장이 보너스냐 상드라의 복직이냐를 두고 투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월급이 간절히 필요한 상드라는 눈물을 흘리지만, 친한 직장 동료의 설득으로 월요일에 다시 한번 전체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이틀 낮과 하루 밤의 주말 동안 동료들의 집을 돌면서 자신에게 찬성 투표를 해달라고 설득하는 것. 우울증의 여파로 깨질듯 연약한 그녀는 자신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내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자신없어 한다. 다른 누구보다 돈이 얼마나 커다란 유혹인지 아는 그녀로써는 자신을 위해 그들의 몫을 포기해달라고 부탁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갖고 있는 용기를 긁어모아 가가호호 집집 방문을 시작한 상드라, 그녀는 과연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상드라의 감정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마치 내가 해고 직전에 동료들의 동정에 호소하고 다녀야 하는 상드라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처음엔 그것이 말도 못하게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외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 그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다. 마지막에 상드라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 We had a good fight." ( 정확치는 않음. 본지 좀 오래되서.)이라고 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에선 때론 결과가 전부가 아닐때도 있다는 것을,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속에서 얻어내는 것도 있구나 라는걸 생각하게 했다. 화려한 비주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로 승부하는 작품.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공감하기 더 쉽지 않을까 한다.



                                                                        <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스티븐 카렐이 출연한다고 해서 보게 된 작품.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에 짐을 싸들고 나온 칼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첫사랑과 결혼해 아내만 보고 살아온지 어언 20여년. 가정을 위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살아온 그에게 아내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배신감과 상실감에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던 그에게 그런 그를 안스럽게 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섰으니 그가 바로 야곱이다.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 멋들어진 카사노바는 지루하고 축 늘어진 재미없는 아저씨가 되어있는 칼을 개조시켜 주겠노라고 선언한다. 처음엔 어린 네가 뭘 안다고 하면서 반발하던 칼은 점차 야곱의 조언에 따라 중년 카사노바로 거듭나게 된다. 새 인생이 펼쳐졌다면서 환호를 하는 칼,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선 여전히 아내에게 돌아가고픈 마음 하나뿐인데...

경쾌하고 다소 꼬인듯한 로맨스 영화라고나 할까? 줄곧 엇갈리기만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혼란스러웠는데 마지막에 제대로 정리를 해주어서 다행이다 했다. 화려한 배우들에 그럴듯한 연애 기술 조언, 그리고 그들의 왁자지껄 연애로 재밌게 본 작품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웃을 수밖엔 없었음.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스티븐 카렐을 보려고 보게 된 영화인데,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작품. 엠마 스톤도 예쁘게 나온다. 아, 그러고보니 요즘 잘 나가시는 줄리언 무어도 나오시네. 하여간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던 작품.


                                                    <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라이언 고슬링에서 시작해서 데인 드한으로 끝이 나는 영화. 리뷰가 길어지는 관계로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2대에 걸친 악연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던 작품이다. 서커스의 모터싸이클 스턴트맨인 루크는 1년 반 전에 하루밤 잤던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아버지가 없어서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나선 루크, 문제는 그녀에게 이미 결혼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관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란 어려운 법, 당장 사단이 나기 시작하고, 아이에게 돈이라도 원없이 주고 싶었던 루크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은행 강도에 나서게 된다. 한편 신참내기 경찰인 에이버리는 도망친 은행강도가 민가에 침입했다는 말에 출동하게 되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진심어린 연기, 데인 드한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눈에 들어오던 작품. 브래들리 쿠퍼도 어디 가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둘에게 밀리는 느낌이다.  2대에 걸친 악연을 조금은 억지스럽게 아귀를 맞춘게 아닐까 싶은 감이 있다는 것이 별로였지만 영화의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살린 듯. 특히나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면서 아들 주변을 빙빙 도는 칼의 슬픈 인생이 눈에 밟히던 영화였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알아줄 수 없는 진심에 가슴이 아리더라. 그런 역에는 이상하게도 라이언 고슬링이 제격인듯...매력적인 세 남자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영화 자체는 좀 어둡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드몽이 학교에 갔어요
티보 귀숑 글, 프레데릭 피요 그림, 김영신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까지 떠나지 않던 책이다. 미소로 시작해서 미소로 끝나는 책이라고나 할까?  ' 개조심! 사납고 무시무시한 개 있음' 이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비실비실 미소가 삐져 나오게 된 이유를 정확하게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서도, 아마도 리즈가 " 큰" 소리쳤어요. 라는 문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전에 물론 "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 라고도 했고, 그 뒤를 이어서 가족 " 모두" 기분이 아주 좋았다는 말에서도....흠...이쯤되면 눈치를 못채는 것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여기엔 분명 함정이 있다. 함정이 아니라면 조금은 커다란 허풍이... 과연 이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허풍을 떨게 된 이유는 무엇일일까? 그것은 바로 ....


 

그들이 키우는 개 에드몽의 상태가 이랬기 때문이다. 사납기는 커녕 짖지도 못하는 개가 가족을 지킨다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 하지만 한눈에도 소심하고 겁많아 보이는 에드몽이 귀엽기는 하다. 비록 그가 집을 지키지는 못할 지라도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는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문제라면 요즘 이 동네에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 해서 가족들은 의논끝에 명망높은 '집 지키기 훈련 학교' < 성 베르나르>에 에드몽을 입학시키기로 결정 한다. 거기에만 다녀오면 에드몽도 용감한 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기대에 차서 에드몽을 스쿨버스에 우겨 넣는 에드몽의 가족들. 과연 에드몽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용감한 개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에드몽은 진짜로 용감한 개가 될 수 있을까요? 라는 것이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밖엔 없었던 책이다. 물론 에드몽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학교에서도 난리 부르스를 춘다. 각 학과마다 난처하거나 당황하거나 쩔쩔매거나 어정쩡하거나 , 나에게 왜 이러셔요? 라는 듯한 에드몽의 표정이 압권으로, 조카 읽어주려고 고른 책인데, 페이지를 열자마자 내가 웃고 말았다. 난 아무래도 루저 증후군 , 뭐 이런게 있는 모양이다. 완벽한 사람이나 동물보다는 약간 루저스틱 한 사람이나 동물에게 마음이 간단 말이지. 해서 완벽하게 소심한 이 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더라. 물론 에드몽을 키우는 주인들 입장에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이 개가 불만스러울지  모르지만서도, 짖지도 이빨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이 개가 나는 너무도 사랑스웠다. 해서 아가들용 동화책임에도 낄낄대고 웃으면서 고모 미소 함박 지으면 본 작품이 되겠다. 그나저나 요즘 작가들은 어쩜 이야기를 이리도 맛깔나게 잘도 쓰는지 말이다. 지금 내가 아기로 태어난다면 동화책 보는 재미로 정말 신 날 것 같다. 왜냐면 내가 어렸을 적 봤던 동화책이라곤 생쥐가 나오는 것이 유일했는데, 볼게 그것뿐이라는 이유로 닳고 닳도록 읽어댔었다. 그 여파때문인가? 아직도 나는 생쥐가 나오는 동화를 보면 뭔지 모르게 끌린다. 마치 자석처럼...아마도 어린 시절의 각인 효과 때문인가보다.  아...하려던 말이 옆길로 샜네. 그러니까, 요즘은 동화책이 다 너무 재밌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소재도 신선하고, 다양한데다, 그림은 귀엽거나 앙징맞거나 세심하거나 ...더군다나 이야기도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니, 아이가 부러운 내 마음 이해가 가실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 입장에선 이런 동화책이야말로 땡큐라는 것이지. 마음 놓고 읽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어른이 읽어도 재밌어~! 그러면 다 된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보다 더 나은걸 바라겠어? 읽어주는 어른도 재밌고, 듣는 아이도 재밌는 동화책이라면 그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동화책 아니겠는가. 하여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이나 기타 등등님들에게 추천. 웃깁니다요. 아무리 냉소적인 사람이라도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오는 책이여요. 그리고 루저인 듯한 개가 주인공이긴 한데,  뭔가 뭉클한 감동으로 끝을 맺어요. 이상 끝.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든 사족이 될 것 같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집어든 책마다 하나같이 재미가 없어, 집중력도 인내심도 바닥이고, 독해력도 예전만 못 하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까? 라면서 목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을 단숨에 날려준 책이 되겠다. 게걸스럽게 읽었다. 단 하루밤만에...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왜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나는 왜 이럴까를 되뇌면서 좌절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서 이런 상황에 읽게 되서 특히나 고마웠던, 더불어 이렇게 잘 쓴 책이 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던 작품이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라면 어디서 누군가가 거품을 물어도 진작에 물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여간 간만에 좋은 책을 건져서 무척이나 기분 좋았던--여기서 말하는 간만이라는 건, 최소한 일주일 최대한 이주일 되는 기간이 되겠슴다.--<무게>의 본격 리뷰에 들어가기로 하겠다. 


188센티에 230킬로 그램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아서는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옛 제자 샬롯이 전화를 걸어오자 설레기 시작한다. 십대 시절부터 강박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어언 40년, 그래도 한때는 대학 교수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긴 했으나 이젠 그 모든 것을 청산하고 집에서만 살아온지 거반 20년으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생활한지 10년째라는 것이다. 뚱뚱한 자신의 몸매에 놀라고 부끄럽고 당황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못해 다른 삶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단념하고 살았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 것이다. 58세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심한 그는 샬롯이 왜 전화를 했는지와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 것인가를 저울질 하면서 고민한다. 만나자는 그녀의 요청에 펄쩍 뛰게 당황한 아서는 고민끝에 자신이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며, 그럼에도 현재의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연락을 하라고 편지를 보낸다. 한참 뒤에 보내온 그녀의 편지속엔 십대 소년의 사진 한 장이 달랑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과 함께...아서는 도대체 18년전을 마지막으로 자신을 만난 샬럿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진을 보내 왔으며, 결혼했다는 말도 흘린 적이 없던 그녀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궁금증을 못 이긴 그는 샬럿을 만날 생각에 20년간 치우지 않는 집을 치우기로 결심하고,  욜란다란 헬퍼를 집으로 부른다. 한편 기다리던 샬롯의 전화를 받게 된 아서는 술에 취한듯 발음을 흐리는 그녀의 억양에 한층 그녀가 걱정이 되는데... 과연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이 잔잔한 소동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샬롯은 왜 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고작 반학기 동한 스승이었던 아서에게 전화를 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도대체 그 세월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강박적으로 먹어댄 탓에 집에 은둔하게 된 외톨이 아서, 그의 오래 전 제자 샬롯, 그녀의 재능 넘치는 아들 켈, 그리고 고작 스무살에 불과하지만 아서보다 현실적인 마인드를 지닌 욜란다. 이렇게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던 소설이다. 


일단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높은 가독성에 있다. 그냥 술술 읽힌다. 막힘없이...이 책의 저자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단언컨데 학생들을 가르칠만한 능력이다. 이런 선생님에게 배우는 제자들은 얼마나 행운아들인지...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선생님 자신이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잘 쓴다. 유려하고, 거침없고, 흥미진진하고, 화자에 따라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데도 주저함이 없으며, 실제로 화자가 쓴 것인양 내면의 이야기가 설득력있다. 어떻게 병적으로 비만인 전직 교수와 십대 소년의 이야기를 이렇게 공감가도록 풀어놓던지 말이다,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작가가 남자인가 싶을 정도로 남성의 심리를 그럴듯하게 풀어놓는데, 가공할만한 대입능력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딱 맞아서가 아니라, 글을 워낙 잘 쓰다보니 그럴것도 같다면서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녀가 설명하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팥인줄 믿어주겠다. 대체 이 작가는 어디서 튀어 나온 것인지, 감탄하고 말았다니까.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이처럼 산뜻한 이야기로 탈바꿈시켜 놓다니...존경스러운 필력이다. 사실 이 책은 소재가--230킬로그램이 주는 무게?-- 너무 무거워 보이는 지라 선뜻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랬는가 싶다. 책은 경쾌하고, 감동적이고, 도와주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연민이 모략모략 솟아나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선입견이란건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그런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이야말로 짜릿한 것이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은둔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을 과연 작가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책이었는데, 거기에 감동까지 있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에게 공감을 하거나 연민을 보내거나 함께 고민하거나 하지 않은 채 이 책을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다.  얼핏 생각에 230 킬로 그램이나 나가는 주인공이 그 자체로 혐오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된다. 왜냐면 그는 그럴만한 대접을 받아도 좋은 사람이니까... 착한 소설, 재밌는 소설, 읽고 나면 행복한 소설이었다. 뭐랄까. 이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인 것처럼 생각되더라. 아마도 주인공들의 선한 성품에 동화가 되서 그런 모양이다. 이런 사람들의 행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빌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달까. 굳이 꼭 단점을 꼽으라면 잔인한 십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병적으로 비만인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것이겠지만서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사랑하는 독자로써는 그 단점마저도 다행스러웠다. 왜냐면 삶의 무게에 이미 충분히 눌려있는 주인공들이 더 이상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읽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결국엔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음으로...


보라. 책속 등장인물들의 행복을 바랄 정도이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얼마나 잘 쓴 작품인지 짐작이 되실테지. 하니 특별한 책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이 책을 보니 앤 타일러의 <우연한 여행자>가 떠오르던데, 이 작가의 앞 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마도 앤 타일러 못지 않는, 좋은 작품들을 내주지 않을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스텔라 리뷰를 길게 쓰다가 날려 버렸다. 왜 임시 저장을 누르지 않은거야 자책을 해 봐도 이미 소용 없는 일. 김도 새고 기운도 빠져서 결국 쓰던 것중 기억나는 것만 적기로, 고로 설명이 대략 친절하지 않고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이해가 안 되시면 그냥 건너 뛰시길. 결론만 알고 싶으시다면, 기대를 크게 하시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비티보단 조잡하고, 앞 부분은 지루한데다,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져서 SF영화라기 보단 가족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대단히 재밌다고 거품 물만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한번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는데,  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우뇌형 인간을 위한 최신 우주 이론 정복기 >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빅뱅이니 블랙혹이니 웜홀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 매혹적인 이론들을 접할때마다 우리 우뇌들이 겪는 한결같은 좌절감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렸다. 그렇게 우주에 대해 심오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이해력이 달리는 관계로 당최 뭔말을 하는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감상적인 소재를 당의처럼 입혀서 최신 우주 이론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던 작품이구나 했다. 비유를 해보자면 드라마판 <코스모스>라고나 할까나? 해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우주를 설득력있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좌뇌형 인간들에게나 의미있을 이론들을 지극히 감상적인 톤을 입혀 우뇌형 인간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좌뇌형 인간들에겐 어쩜 이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이렇게 감상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주를 분석하는데 그런 감상이 필요하지도 않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 있는 그대로의 우주' 는 삭막 그자체란 말이지. 이상하게도 우린 감성적으로 접근할때 더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해서 놀란 감독이 이런 작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뭐, 이것이 이 영화를 본 내 감상이고...

해서 나에게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했던 점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나 그 지구의 미래를 걸머지겠다고 우주로 나섰던 우주 탐험대가 아니라, 우주 이론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던 그들의 방식이었다. 우주에 나갔다. 우리가 살만한 별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지만 그럴듯한 후보군별까지 가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웜홀이다. 중력이 강한 한 후보군에 들어선 탐사선 사람들은 10분후 돌아와보니 23년이 지났다는걸 알게 된다. 상대성 이론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대한 추측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실제로 블랙홀이라고 추측되는 공간이 관측되었다고는 하나 과연 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할 뿐이지만 정설은 없고, 미래, 우리 지구 과학자들이 그걸 밝혀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다만 그곳에는 4차원이 아닌 5차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금까지의 최신 우주 이론들을 망라하고 있는데, 말로 풀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안 갈지 모르나, 영화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이 이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모면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론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이 최대 단점도 포착된다. 마지막 결론 부분쯤에서 뭔가 석연찮게 두리뭉실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과학 다큐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그저 허무맹랑한 SF영화처럼 톤이 바뀐다고나 할까. 앞까진 그럭저럭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정도였다면 저건 그냥 상상 아냐? 진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어리둥절하던데, 알고보니 영화가 그렇게 풀려가게 된 데는 현대의 우주 과학 이론이 바로 그 앞 지점까지만 밝혀져서 라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블랙혹과 5차원에 대한 이론은 아직까지 딱 이렇다 저렇다 정설로 내세울만한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두리뭉실하게 된 것은 우리가 아는 것 역시 그렇게 두리뭉실하기 때문이란다.

하긴 다른건 그럭저럭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내가 우뇌형 인간이라고 해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직관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해서 가장 설득력없는 이론을 가져다가, 가장 감상적인 결론을 쉽게 내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마지막 부분만은( 이성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웠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은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수긍하건 말건 간에 그냥 즐기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니, (우뇌형) 인간으로써 보자면 결론만큼 다행스러운 것이 없었다. 초반 하도 우울하게 지구의 미래를 그려놓길래 먹먹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우울하게 끝을 내놓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말이다. 과연 우리 지구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할 수 있을까 내내 의아해하면서 지켜봤는데, 적어도 인간들이 결국 답을 찾아 내더라는 결론만큼은 지지하고 싶었다. 삭막한 미래의 지구를 보니, 그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 사랑과 추억과 우정와 열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더라. 아마도 감독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인 결국은 그런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런지...감히 추측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