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오브 맨>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하지만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던 작품.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보게 된 영화인데, 그 서사에 압도 당했다.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암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폐해세상. 설마 저렇게 변할 수가 있으리라고 하면서 화면을 들여다 보는데 점점 감독의 논리 전개가 수긍이 된다. 왜냐면 미래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인간과 똑같았기 때문.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앞으로도 가망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즈음...어디에서도 희망이라는 것을 찾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하게 될 즈음, 그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탁월했다 싶다. 그 모든 것이 전혀 논리 전개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암울한 미래를 만드는 것도, 희망을 만드는 것도 지금의 인간과 다르지 않은 바로 그 인간들이라는 것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했다. 저게 바로 우리가 세월호를 놓치 못하는 이유라고. 칠드런 오브 맨. 레지스탕스 1인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줄리아(줄리안 무어역)가 단지 전남편이라는 이유로 그 중요한 임무에 테오(클리이브 오웬)을 선택했다는 것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결국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된 자의 보호 본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말이다. 어떤 이념이나 이기심, 생존 본능보다 강한 것이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컨택트> 

 

 

  고통스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걸 보기 위해 떡밥을 너무 휘향찬란하게 깔아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던 작품.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줄거리도 따라가기에 무리는 없었지만서도,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외계인이 찾아와 주어야 했었을까 라는,  우주인의 지구 방문이라는 거대 사건에 비해 마무리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언어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본창구다, 이 영화가 현대판 바벨탑을 그릴려고 했었다는 다른 블러거의 말이 수긍이 가긴 했지만, 영화 자체로 보면 그닥 균형이 맞아 보이진 않았다.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는데, 겨우 그거라고 라는 심정이랄까. 그래서 결론은 우리가 미래를 안다고 해도 과연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겠느나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 본다. 아니 그럴 수밖엔 없다. 인생이란게 생각보다 짧다. 진정한 사랑을 할 기회는 얼마 되지 않아. 도깨비처럼 불사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에게 온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생을 살아가는 이유이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넘 돌려서 감동적으로 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좀 오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건 사실 그렇게 대단한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싶어서.

 

 

 

                                                                                              <죽여주는 여자>

 

우리나라가 얼마나 남성 위주의 사회인가, 내진 거대한 마마보이들의 세상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 " 죽음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주지 않겠니? " 라는 물음을 냉소적으로 내뱉을 수밖엔 없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을 자신들의 따까리에 모든 쓰레기 같은 일들을 도맡아서 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지, 그런 사고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이구만, 더 놀라운 것은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고 해서 나름 약자에 대한 시선을 강조한 이런 영화들 속에서조차 꺼리낌없이, 그런 조잡한 생각을 만천하에 내놓는 다는 것이었다. 것도 자랑스럽게 말이지. 치매나 뇌졸증같은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노인들을 왜 가족들이 외면하겠는가? 그들의 고통을 몰라서? 아니 그건 그들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만큼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몇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명치료 거부 김할머니의 경우, 난 그 가족들이 그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본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분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명확했고.  그렇기에 그런 논란을 무릅쓰고 싸우려 한 것이다. 그렇게 가족들마저 꺼리는 존엄사를 생판 남에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로 떠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데, 그걸 박카스 할머니라는 소외된 계층이기에 덥석 받아들일 거라는 상상은 도무지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내 손에 피묻히기 싫으니 치매 걸린 내 친구를 죽여주고, 나 혼자 죽기 싫으니 죽어가는 동안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데? 얼마만큼 염치가 없으면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한평생을 살아왔으면 적어도 죽음 정도는 자신이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겠구만, 그걸 박카스 아줌마라는 이유로 편하게 떠넘기는 남자들의 작태가 경악스러웠다. 신사의 나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냥 여자도 너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걸 생각해줄 수는 없겠니? 너희들이 싫은건 우리들도 싫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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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가 어릴때--아기때?--함께 보면서 낄낄대던 < 못 말리는 양, 숀>이 영화로 돌아왔다. 한동안 재방송도 안 해주고 해서 서운하던 참이었는데, 영화로 한다니 얼마나 반갑던지... TV에서 마음껏 못 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영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기대작이라고 손꼽았던 작품들 중 하나였던 못 말리는 양 숀의 영화판 <숀더 쉽> 양의 해에 딱 맞춰 돌아온 숀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나?





영화의 시작은 반복되어지는 일상이 따분해진 숀의 각성으로 시작한다. 평화롭긴 하지만 어제와 다를바 없는 오늘이 너무도 지겨워진 숀은 하루 정도의 일탈이라면 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숀이 누군가? 양의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도 "못 말리는" 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양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그런 별명이 생긴 것이 어쩌다 우연히 붙여진 것은 아닐 터...지나가는 버스에 영감을 받은 숀은 하루만의 휴가를 자신들의 무리에게 선사하기로 한다. 하지만 거기엔 두 가지의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을 돌보는 목장 주인 아빠와 양치기 개 비처. 어찌어지 비처를 따돌린 숀 일행은 아빠를 잠재워 트래일러에 잠시 가둬 두기로 한다.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숀의 계획은 착오없이 착착 맞아 떨어져 두 장애물을 없앤 숀 일행은 아빠의 집에서 희희낙낙 자신이 원하던 휴가를 만끽하게 된다. 그저 그렇게 하루만 보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던 그때, 잠자고 있는 아빠를 태운 트래일러의 고인돌이 빠지면서 아빠가 정처없이 시내로 질주하는 사고가 생기고 만다. 이를 목격한 충성스런 개 비쳐는 숀 일행에 원망의 눈길을 날리며 트래일러를 따라 달리고, 숀 일행은 급작스런 사태에 당황하고 만다. 아빠가 잘못 되면 어쩌나 죄책감에 시달리던 숀은 큰 맘을 먹고 그를 찾아 시내로 나가기로 하는데, 과연 숀은 아빠와 비처를 찾아 농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한편 영문도 모른 채 차 사고를 당한 아빠는 머리를 다쳐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숀더쉽> 영화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윌래스와 그로밋이 처음의 신선함을 뒤로하고 점점 진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나로써는, 좋아하는 캐릭터인 숀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또다시 진부함의 극치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다행히도 대단히 신선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악이었다라던지 못말리는 양을 좋아하는 팬으로써 실망이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그간 못 말리는 양 숀에서 그닥 존재감이 없었던 목장 주인 아빠가 어느정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준 것이 맘에 들었다. 그냥 목장 주인이 아니라, 숀과 그 일행을 사랑하는 목장 주인으로써 그들이 실종된 아빠 찾아 삼만리에 나선다는 설정이라서 더 뭉클했다. 맨처음 영화를 시작하면서 숀과 비쳐의 어릴 적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아빠가 그들을 사랑했는지 보여주는데, 여태 TV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사이가 너무도 좋아보여서도 반가웠다. 아빠와 숀과의 역사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빠가 숀과 비쳐를 예뻐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왜 나중에 그렇게 아빠를 찾아 다니는지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참, '영리한' 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영리한 이라는 형용사가 숀 이외에는 해당되지 않는, 어리버리한 등장인물들의 향연이라는 점도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는 이유였지 않았는가 한다. 다들 어찌나 멍청하고 단순한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귀여운거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보니 마지막 감동은 덤이라면 덤이다. 단조로운 일상이 싫다 싫어 하면서 하루만이라도 일탈을 허락하소서 했던 숀 일행이 그 단조로운 일상으로만 복귀하게 해다오 하면서 난리법석 부르스를 추는 황당 소동 일지.흥미로운 것은 숀의 입장에 몰입해서 보다보니, 처음 단조로운 일상이야말로 끔찍해 보이더니만, 나중에는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소동끝에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내 말하지만, 양들의 시선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하여간 결론은 재밌습니다. 아이들과 가볍게 볼만한 것을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솔깃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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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하는 다섯가지 감정,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등은 그간 자신들이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해온 결과 라일리의 핵심 기억에 좋은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평온한 라일리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평생을 살아온 미네소타를 벗어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라일리는 정든 고향과 친구,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던 하키를 버리고 떠나와야 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거기에 물설고 낯설은 샌프란시스코란 곳은 어쩜 그리도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지...다섯 감정들 중 그간 라일리의 두뇌 속에서 대장 역활을 해왔던 기쁨은 라일리의 감정에 슬픔이 번져드는 것에 기겁을 한다. 감정통제부의 조정간에 슬쩍슬쩍 손을 대는 슬픔으로 말미암아 라일리의 감정은 널뛰기를 하고, 이에 위기를 느낀 기쁨은 슬픔에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짱 박혀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고분고분 순종적이기만 할 것 같은 슬픔은 기쁨의 말을 곧잘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은근슬쩍 앞으로 나와 조정간에 손을 댄다. 슬픔의 행동에 속이 터진 기쁨은 조정간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떼어 놓으려 애를 쓰지만, 슬픔의 뚝심도 만만찮아서 결국 둘의 다툼은 핵심 기억들과 더불어 둘이 통제센터를 튕겨져 나가게 되는 사건을 만들고 만다. 


자, 이제 사춘기의 문전, 11살이라는 마의 나이에다 이사라는 엄청난 사건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기쁨과 슬픔마저 통제부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라일리의 뇌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일리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 라일리는 행복해야해! 라면서 모든 희생을 마다치 않는 기쁨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쓰지만, 통제부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너무도 슬퍼서 한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다는 슬픔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랴, 기쁨의 마음은 조급과 안달과 불안으로 치닫는다. 한편 통제부에 남은 세가지 감정, 까칠 버럭 소심은 기쁨과 슬픔 없이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되었다는 것에 당황한다. 두 감정이 없음에도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세 감정의 마음과는 달리, 라일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부모는 왜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한데...


기대를 잔뜩하고 봤는데도 기대치를 훌쩍 넘기다 못해 상상 이상의 완벽함을 보여줘서 픽사에 새삼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던 영화였다. 픽사의 상상력이 빅뱅 수준으로 폭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고, 그걸 이렇게 깔끔한 이야기로 탈바꿈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게 되었을지 놀랍기만 하더라. 참신함 , 독창성, 이야기의 군더더기없는 전개에 더불어 감동적인 결론까지...내 인생에 더이상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 해왔었는데,--더이상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그 추측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엄청난 작품이 되겠다. 내가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인지 증명하면서 나를 놀리는 듯 했는데, 그것도 별거 아니라는 듯 가비얍게 말이다. 반가웠다. 세상이 넓다고는 하지만, 상상력과 창의성과 배려과 이해가 넘치는 사람이 이렇게 넘쳐날 줄 내 어찌 알았으리요. 아마도 하필 그런 사람들이 픽사에 우연히 몰려 있던 통에 이런 수작 애니가 탄생을 하게 된 모양인데,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상업 영화긴 하지만서도, 상업 영화 이상의 그 어떤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어서, 냉소적인 나조차 가슴이 찡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그리고 그걸 위해 인간에게 아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하면서도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신감에 박수를 칠 수밖엔 없었다. 거기에 감성만이 아닌 이성에도 호소하는 영화였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황당무개한 것 같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 이치에 맞는다. 너무도 이치에 맞아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라니까? 다섯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찌나 설득력있던지, 내가 왜 그걸 진작에 한번도 생각해내지 못했지? 이런 간단한 것을? 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하여간 이 영화의 장점을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갖다 붙인다해도 이 영화에겐 진부하겠다 싶더라. 두려웠다. 근사한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좀 기다려보면 좋은 것이 생각날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결국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니 턱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한 서투른 찬사를 나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다만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한가지는, 픽사에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이해의 눈으로 보게 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간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생각나게 해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행복하고 기쁨에 차 있던 아이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내내 궁금해하던 나는 이제 조카들을 키우면서 그들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것 같더니만, 어럅쇼. 누군가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거기에 그럴싸한 대답까지 내놓은 것에 감격하고 말았다. 이런 깨달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자신이 가진 의문에 고민하고 자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픽사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내어놓은 이 뻔하지 않는 진심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영화는 리뷰 쓰기가 쉽지 않겠는데 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한 글솜씨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압도당한 나머지) 나를 입다물게 하는 것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여서 말이다. 하니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들에게 꼭 보시라고 추천한다. 아이가 없으신 분들이라도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아이를 갖고 있으신 분들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봐도 좋다. 그들 역시 이 영화를 좋아하고 감동하고 울먹이겠지만서도, 그들이 느끼는 이해는 어른이 되어서 어쩜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이 부러울 뿐이다. 그들에겐 이 영화로 인해 받게 될 감동과 신선한 충격이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하니 챙겨가지 못하신 분들은 어서 어서 챙겨 가시길. 이 정도로 말을 했는데도 챙겨가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 손해다.


추신 1--영화를 보면서 기쁨의 목소리 연기가 에이미 폴러라서 더 좋았다. 워낙 그녀의 팬이여서도 그랬고, 그녀의 호들갑스러우면서도 남을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목소리 톤이 기쁨에 그보다 더 잘 어울리긴 힘들겠다 싶어서도 그랬다. 그리고 슬픔 역도 어찌나 싱크로율이 똑같은지 누굴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미드 <오피스>의 필리스 스미스라고 한다. 어째 목소리가 친숙하다 했더니만, 역시나 아는 목소리여서 그랬는가 보다.


추신2--영화를 보면서 주저없이 별 다섯개를 준 영화는 <시민 케인> 이후로 처음이다. 과연 올해 이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영화가 나올지 의문이다. 그런데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에 애니를 줄 수도 있나요? 갑자기 그게 궁금하네...애니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에는 틀림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내년도 아카데미 상의 향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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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더 길트 트립
앤 플레쳐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Barbra Streisand)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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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CUT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치고 자신이 개발한 친환경 세제를 팔기 위해 3년간 동분서주하고 있는 앤디는 서서히 그의 인내력이 바닥나려 합니다. 아무리 프리젠테이션을 해도 반응을 보이는 회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실은 그의 가장 막강한 적이 설득력 제로인 그의 허접한 프리젠테이션이구만, 공부만 하고 살아온 범생이 앤디에겐 그것을 알길이 없습니다. 그저 왜 자신의 놀라운 발명품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실망스러울 따름이죠. 혹시나 대형 마트에 납품해 볼까 해서 미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해야 하는 앤디는 그 전에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앤디 하나만을 애지중지 키워온 엄마 조이스는 다 큰 자식을 아직도 귀염둥이 어린이처럼 대합니다. 사회의 냉대와 엄마의 온탕같은 사랑 사이에서 어느것에도 마음을 편하지 않은 앤디는 엄마에게 이젠 연애도 해보고 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이에 조이스는 사실은 자신의 첫사랑은--평생의 사랑--은 따로 있었으며 앤디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는 그가 자신에게 청혼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을 하죠. 그리고 아직도 그 첫사랑이 그립다고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름이 앤디인 이유가 그 남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앤디는 얌전하기만 했던 엄마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것과 그런 일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왔다는 점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구글을 통해 그 남자의 이름을 검색해보죠. 그리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앤디는 엄마의 첫사랑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엄마에게 함께 여행을 하자고 설득합니다. 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다면서요. 조이스는 요즘 엄마랑 여행을 나서는 자식이 어디 있으냐면서 앤디의 제안에 반신반의합니다. 하지만 과연 자식이 여행을 가자고 했을때 싫다고 할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조이스는 신이 나서 여행 가방을 꾸리는데도, 과연 이 여행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둘이 서로를 끔찍해 하지 않은 채로 여행이 끝이 날 수 있을까요?


좀 뻔해 보이는 설정이라 보기가 망서려졌는데, 역시나 배우들의 이름값 정도는 하는 영화였다. 오랜만에 보는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는 반갑기 그지 없었고, 아들이라고 보기엔 좀 나이가 한참 들어 보여서 미스 캐스팅이 아닐까 싶었던 세스 로건도 튀지 않은 연기를 잘 했다 싶다. 성년이 되어 떨여져 살게 된 두 모자가 여행을 함께 하면서 그간 몰랐던 사정들을 알게 된다는 것. 로드 영화로써 그럭저럭 괜찮았지 않았는가 한다. 무엇보다 특히 마지막이 감동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따스해지지 않은 관객을 없을 듯...앞의 장면들이 그럭저럭 안전선에 머무는 정도였다면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싶었다. 그게 뭔지 궁금하시면 영화를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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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모토키 마사히로 외, 타키타 요지로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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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다이고는 갑작스런 악단의 해체로 백수가 된다. 자신의 재능으로는 더이상의 음악은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막막한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새로운 직업을 찾던 중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고액의 연봉을 준다는 광고를 발견하게 된다.나이 무관, 신입 환영, 일하는 시간 널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다 여행사라는 말에 그는 기대를 안고 면접을 보러 간다. 사장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합격을 외치고, 그가 가지고 간 이력서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는다. 공채 1기라면서 마구 마구 띄워주는 사장과 직원, 다이고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불안해진다. 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사장은 그에게 돈을 쥐어 주면서 괜찮을 거라고 그를 다독이는데, 과연 그는 이 직장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직장이길래 날고 긴다는 사람도 구직하기가 어렵다는 지금, 이렇게 덥썩 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일까? 궁금해할 사이도 없이 그는 첫번째 일에 나서게 되는데...

납관이라는 생소한 일본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던 영화다. 납관이란 시신을 관에 모시기 이전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인을 마지막으로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며 인사를 하게 해주는 일본 특유의 장례 절차. 처음엔 다이고와 마찬가지로 왜 이런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그 절차의 과정을 지켜보니 이해가 갔다. 인사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다보니, 마지막 배웅을 허술하게 넘길리는 없었던 것이다. 평생 시체나 장례를 본 적 없다고 질색하던 다이고 역시 사장이 정성스럽게 고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유족들이 위로를 받는다는것과, 그것이 망자를 존중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다. 그런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로, 그걸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일본영화인만큼 말도 별로 없고, 사건들도 등장인물들도 별로 없는데, 설득하는 면에서는 군더더기 없다. 이런걸 경제적이라고 해야 하나? 느긋한듯 보이지만 실은 낭비되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주제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절제력은 우리나라 연출가들도 배우면 좋을 듯...감동적인 수작으로, 인생에 대해 생각할 거릴 준다는 점에서 매우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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