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이루장구 하(下)편을 끝내며 

도올은 파주 자운산 기슭의 율곡 봉분을 사진에 담는다. 

율곡은 사서(四書)를 모두 언해한 당대의 최고 천재이자 성인이었다.



 [ 출처 : daumcdn.net]



자경문


율곡이 어머니를 여읜 채 상심하여 19세에 불교를 연구해 보려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20세 되던 해 봄에 강릉의 외조모가 계신 곳으로 돌아 나와, 자기 수양의 조문을 삼고자 지은 글, 11조항으로 되어 있다.



제11조


用功不緩不急 死而後已 (용공불완불급 사이후이)

    - 공부에 힘쓰되 늦추지도 말고 보채지도 말라,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것이 공부니라.


若求速其效 則此亦利心 (약구속기효 칙차역이심)

    - 공부의 효과가 빨리 나기를 구한다면 그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라.

 

若不如此 戮辱遺體 便非人子 (약불여차 육욕유체 변비인자)

    - 만일 이같이 아니하면 어버이에게 물려받은 몸뚱이를 욕되게 함이니, 

      그것은 곧 사람의 아들 된 도리가 아니니라.  





p -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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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금에 [맹자]를 완독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과연 그들이 [맹자]를 읽었는가? 물어 봤을 때 도올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구의 의미에 관해 정확한 번역을 했을지라도 번역은 대응이 아니라 상응이고, 그 상응은 오늘의 살아 숨쉬는 독자들의 삶의 의미체계와의 상응이다.

도올은 고전번역에 있어 누구보다도 문법적 구조의 치열한 직역의 바탕위에서 맹자를 우리 실존의 지평 위에 등장시키기 위해 텍스트의 한계를 초극하려고 노력하였다. 지나친 의역이나 가필이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번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일 뿐 원문은 손상시키지 않았다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시중의 소설보다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하였다고 ˝서˝에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도올 선생의 [논어],[노자],[중용]을 읽으면서 솔직히 어떤 소설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어떤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류의 문장들보다 감동적이었고 묵직했다.
아이러니한게 21세기 신간책들에서 보이는 문장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깊은 마음 속을 두드렸다.

고전문학에서 ˝고전˝의 향기를 느꼈고,
서양철학에서 ˝고전˝의 치열한 문법을 배웠으며,
동양철학에서 드디어 ˝고전˝의 속살을 만졌다.

2차원에 존재하는 종이안의 활자가 홀로그램으로 3차원으로 튀어 나와 실제 살아가는 내 삶의 모든 곳곳에 묻어 함께 한다는 느낌은 실로 감격스럽다.

독서와 지성과 인성은 별개라지만,
반드시 그렇게 자책할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공자가 가장 중요시한 ˝호학˝은
모든 면에서 ˝배움의 자세˝를 말하니까.
또한, 자사가 중요시한 ˝신독˝의 자세, 노자가 중요시한 ˝물˝의 철학은 우리의 지성과 인성은 ˝완성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목적달성의 지표가 아니라 이루기 위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니.





˝철학은 반드시 현실적 문제를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의 해결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때에는 그 현실을 제기한 시대적 패러다임이 바뀌면 꼭 폐기되어 버리고 만다. 철학은 영원한 인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영원히 비판자적인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 -110쪽


조기가 맹자 내편 7편, 외편 4편에서 외편 4편을 잘라내고, 내편 7편을 각각 상,하로 나누어 14편으로 편찬한 [맹자장구]가 현존하는 주석서 중 유일한 것이며 신주로서 주희의 [맹자집주]를 든다.

이 [맹자]에서 맹자가 어떻게 인간의 영원한 문제에 대해 접근했는지, 위나라의 양혜왕이 맹자에게 나라의 이로움에 대해 묻는 그 유명한 양혜왕 상편의 원문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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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백인가도장(白刃可蹈章]에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能하기 어렵다." 란 말이 나온다. 예전에 읽었던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 서문에 작가는 "중용은 칼날위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2가지 문장은 서로 연결되지만 하나는 중용의 실천이 어렵다는 뜻이고, 하나는 그 실천에 있어 칼날위에 있는 것처럼 세심하고 면밀하게 판단하고 행하여야 한다는 뜻일게다.

 

중용은 그만큼 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당처럼 인간은 그 위험한 작두를 타는 행위에 비유를 했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에서 나온 "중용은 칼날위에 서는 것"은 중용을 실천하는 방법은 꾸준히 양극단을 엄밀히 사유하여 실천적 수양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지향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그저 좋은게 좋다가 아니라는 것을 질타하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사안에서든,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으니,

"중용"은 무지였다. 우리 사회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중용이 양비론쯤 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책에서는 중용을 제대로 공부하라고 일갈한다.

 

 

 

 

우리가 생활속에서 그렇게 많이 입에 담는 <중용>이라는 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올 선생의 이 책이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몰입감있게 흥미를 주고 감탄을 자아내게 할 것이며, 그저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유교적 구태답습의 논리로서 책속에 안주하는 활자가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살아나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며 행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간 읽어온 서양철학과의 비교도 흥미롭고,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서양철학의 논점이 동양철학과 대비되는 부분이 뚜렷히 보이니 동양철학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경전의 글귀는 이지적으로 분석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면서 깨닫는 것이다.
만 구절의 로고스적 구성보다는, 가슴에 새겨니 한 구절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힘으로 생동쳐야 하는 것이다. - 150쪽

화이불류(和而不流)
화이불류는 본시 공자가 음악평론가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화음과 같은 상황에 잘 적응하는 언어를 여기에 사용한 것이다. 각 악기의 음은 서로 절제속에 조화되어야 한다. 혼자 튀어나서 흐르면 안된다. "흐른다"는 표현은 음이 튀쳐나거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용기있는 사람들은 흐르는 경향이 있다. 용기도 반드시 화和를 전제로 해야만 진정한 용기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자는 용기를 중용의 맥락 속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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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6-06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용을 빙자한 양비론! 정말 공감합니다! 즐건 주말되십시요!

북프리쿠키 2020-06-07 22:49   좋아요 0 | URL
네~막시무스님
저도 읽으면서 공감도 되고 제 자신도 돌아보곤 했네예~공감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6-0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하나에 꽂히면 한동안 열심히 파헤치시는 쿠키님의 그 열정 되게 부럽슴다.
저도 좀 그럴 필요가 있는데 전 그저 마음만...ㅠ

북프리쿠키 2020-06-07 22:51   좋아요 1 | URL
아~텔라님 ~ 열심히 보긴 했습니다만..열정으로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동양고전사상이 참 재미있네예~!!
 

제6장순기대지장 舜其大知章】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순임금은 크게 지혜로우신 분이실진저 !
순임금께서는 무엇이든지 물기를 좋아하셨고 비근한 말들을 살피기를 좋아하셨다. 사람들의 추한 면은 덮어주시고 좋은 면을 잘드러내주시었다. 어느 상황이든지 그 양극단을 모두 고려하시어그 중中을 백성에게 적용하시었다. 이것이 바로 그 분께서 순舜이 되신 까닭이로다!"
- P131

플라톤의 철인"은 그자체가 너무도 신화적이다. 가족이나 사유재산이나 예술적 정취가 모두부정되는 그런 기하학적 이데아의 철인은 진정한 철인의 자격이 없다.
중원의 성인은 소박한 보통사람들이며, 일상의 오륜의 관계 속에서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특징은 철인인 동시에 정치적 리더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덕성과 권력을 한 몸에 지닌 인물들이었다 - P131

"호문"이라 해서 자신의판단을 흐리지는 않는다.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타인의 삶을 "물음"을 통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덕성이 지도자의 가장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어린이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다.
면 서슴치 말고 물어라!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의 개명한 북학파 사상가연암 박지원朴源, 1737-1805의 말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무도 물을 줄을 모른다. "물음"이 없고 자기주장만 있다. 그 "주장" 이라는 것도 너무도 저열한 인식의 소산이 대부분이다. 물어라! 물어라!
묻기를 좋아하라! 얼마나 지당한 공자의 말씀인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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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예술이나, 인품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논리, 그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으로 매우 경제적인 스타일을 형성하는 심미적 감성이다.
도올학당 수다승철 TV 프로그램 김수미 편에서
맛과 멋은 서로 상통하고 절제없이는 절대로 생겨날 수 없다고 강연한다.
옷의 아름다움도 결국 절제의 미학이다.
맛과 멋은 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제4장 (지미장知味①】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道가 왜 행하여지고 있지 않은지, 나는 알고 있도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도度를 넘어서서 치달려 가려고만 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마음이 천한 데로 쏠려 미치지 못한다. 도道가 왜 이 세상을 밝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있도다. 현명한 자들은 분수를 넘어가기를 잘하고 불초不肖한 자들은 아예 못미치고 만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시고 먹지 않는자는 없다. 그러나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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