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여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함이다.
그 대상이 이성이든, 직장 인간관계든, 대중이든간에 말이다.
과장하여 말하면, 우린 한 평생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상대방을 설득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난 그런 분야와 무관한 직종이나 삶을 살기 때문에 전혀 관계없다‘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나 속을 들여다보면 유,무형, 직,간접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인간의 삶이다.

유혹의 힘은 외모, 즉 객관적인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심리 게임을 펼쳐나가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타고난 외모가 떨어진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이 책 1부에서는 유혹자의 9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상대방을 유혹하는 24가지 전술에 대해 거론한다.

사실, ~의 기술, ~하는 방법, ~가 되는 법...류의 제목과 그 엇비슷한 내용을 담는 책들에 알러지가 있는 편이라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이야 뭐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다.






˝유혹자가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랑이나 로맨스를 대단히 성스럽고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이다. 우리는 사랑이나 로맨스가 마치 운명처럼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참으로 낭만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게으른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누군가를 유혹하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과 로맨스를 우연에 맡기는 것은 재난을 가져오는 지름길이자, 우리가 그런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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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이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그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솟아오르던 그 분노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 내가 영위하고 있던 삶에 대한 나의 모든 역겨운 감정이 그 말로 형상화되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다 자신을 그리도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그가 스스럼없이 물으며 큰 머리통을 흔들었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언어,예술,사랑,순수성,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우리는 베를린 박물관을 나오는 길이었다. 거기에서 친구는 가장 좋아하던 그림, 청동 투구 차림에 움푹 들어간 뺨, 비극적이지만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렘브란트의 <전사>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온 길이었다.(...) ˝내가 내 평생에 사내다운 행동을 한다면 그건 저 그림 덕분일거야˝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언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빚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풍 - 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 - 에 휩쓸린 한 조각 구름이다.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표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표어가 막연할수록 선지자는 더 위대한 것이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뿐.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 밖에요.


˝두목,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는데, 부디 화는 내지 마시오. 당신 책을 몽땅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은 바보가 아니고, 당신은 착한 사람이니까...뭔가 썩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나이 먹어 가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여간 창피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별 짓을 다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길 잃은 영혼이며, 우리의 삶이 하찮은 쾌락과 고통과 헛소리로 소진되어 가는 중임을 깨닫는다. 그러면 부끄러워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법이다.


˝거룩하신 원장, 내가 한가지 청을 드립지요. 날 그 수도원 문지기로 취직시켜 주시오. 밀수도 좀 해먹고 이따금 그 성스러운 경내에다 괴상한 물건도 좀 들여놓게. 여자, 만돌린, 라키 술통, 애저구이. 그래야 당신네들이 허튼수작이나 부리며 인생을 우습게 살아 버리지 않을 게 아닙니까?˝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봐요 두목. 악마를 이길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두목! 이 세상에서 악마의 발명품이 얼마나 근사한지, 혹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예쁜 여자, 봄, 애저구이, 술...이런 건 모두 악마의 발명품이라고요. 하느님은 수도승, 금식, 카밀러 차, 못생긴 여자 같은 걸 만들었고요...니기미!


˝그래요. 당신은 그 잘난 머리로 이해라는 걸 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그래, 팔과 가슴이 뭘 합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자도 그걸 알고 있으리라. 여자에게 사내란 얼마나 가련하고, 허풍선이고, 불합리하고, 무력한 동물일 것인가!˝


˝인간이란 참 묘한 기계지요!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홍당무 같은 걸 채워 주면 그게 한숨이니 웃음이니 꿈이 되어 나오거든요. 무슨 공장 같지 않소. 우리 대가리 속에 무슨 영화관 같은 게 들어있는 게 분명해요.˝


˝한줌의 흙이로구나˝ 조르바는 생각했다.
˝배가 고팠던, 웃기도 했던, 한 줌의 흙. 인간의 눈물을 흘리던 진흙 한 덩어리. 지금은...우리를 이 땅에 데려나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뱃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건 걱정 마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의 최종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거죠. 가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밟아 다져진 길들을, 알 수 없는 것들의 무서운 침범을 막으려 요새처럼 방비한 그 테두리 안에서, 자잘한 확신들이 지네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적이 딱 하나 있다. 모두가 죽을 듯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그 적의 이름은 <거대한 확신>이다. 지금, 이 거대한 확신이 내 존재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내 영혼을 덮치려 한 것이다.


생전에 그가 마련해 놓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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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끼와 고열로 1일 반차를 내고 코로나19 의심 증세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과 고통으로 짓눌리고, 주말도 여전히 감기몸살 기운으로 무기력하게 보냈다.

혹시나 만에 하나 양성으로 판정되면 직장과 가족에게 끼칠 민폐는 이만저만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대구의 한복판에 있었구나˝를 절실하게 실감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러다 또 열나고 감기몸살에 걸리면? 햐..생각만 해도 불안해진다.
코로나에 감염되고 안되고를 떠나 감기에 걸리는 것도 개인의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비난 아닌 비난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요즘...참 심사가 복잡해진다.

이렇게 딱 3일하고도 반일동안 끙끙거리며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예전에 몇번 시도하다가 초반에 실패를 몇번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완독할 수 있었다. 방에 처박혀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책보고 음악 듣는 거 밖에. 컨디션이 엉망이라 썩 기분좋은 상태로 감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리스인조르바>는 이렇게 내 인생에서 코로나19의 특별한 경험과 함께 했다.
특히, 육체와 정신에서 합일점을 찾아가려고 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명문장들이 요 몇일간의 근육통과 함께 훗날 강렬하게 남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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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할머니 자신이나 자신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다정한 분이셨다. 이런 점이 할머니의 눈길 속에 미소로 어우러졌고,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과는 달리 자신에 대해서만 냉소적이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눈길로 열렬히 애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이 눈으로 키스하셨다. - 31쪽


비겁함에 있어서는 이미 어른이었던 나는, 고통과 불의에 처했을 때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면 하는 식으로,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터뜨리기 위해 지붕 밑 공부방 옆에 있는 아이리스 꽃 향기를 풍기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바깥 벽돌 틈 사이로 나온 야생 까막까치밥 나무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꽃핀 가지를 내뻗고 있어 향기로운 방이었다. 보다 특이하고도 속된 용도로 쓰이는 이 방은 낮에는 루생빌르팽 성탑까지도 내다보여 오랫동안 내 유일한 은신처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곳만이 독서, 눈물, 쾌락같이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을 요구하는 내 탐닉이 시작될 때마다 내가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32쪽

* 주) 이 곳은 화장실로, 어린 마르셀이 자위 행위를 통해 처음 성에 눈뜨는 곳이다.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관념들이 그 사람의 두 뺨을 완벽하게 부풀리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콧날을 정확하게 그려 내고, 목소리 울림에 마치 일종의 투명한 봉투처럼 다양한 음색을 부여하여, 우리가 그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 관념들인 것이다. -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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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 출생

아드리앵 프루스트(부) : 파리 의과대학 교수
잔 베유(모) : 부유한 유대인 증권업자 딸

1909년(38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
- 여러 출판사 거절 후 자비로 출간

1919년(48세)
-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콩쿠르상 수상

1920년(49세)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

1922년(51세)
- 기관지염 악화, 폐렴으로 사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사후 5년만에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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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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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실제로 스님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는 광덕사에서 내 멋대로 머리를 깎고, 스님옷을 입고 스님생활을 시작했어요.- 18~20쪽



막연하지만 그 의미가 통달케 되면서 펼쳐지는 광막한 사유의 세계, 전 우주가 나의 의식권 내에서 기발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나는 정말 무지막지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 의미가 짚어지는 순간, 나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나의 정신세계에 던져진 미증유의파문이었습니다.(...)
저의 반야심경에 대한 최초의 느낌은 50년간 저를 지배한 학문적 탐구보다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것이었지요.- 20~21쪽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한,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 아니 심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태산 같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의 대오였지요. 제도화 된 종교의 규범은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라는 것! 껍데기는 가라!
나는 그 체험을 통하여 목사의 옷도 벗었고 승려의 옷도 벗었습니다. 그리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27쪽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 68쪽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짓고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또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83쪽



그리고는 다음에 경허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본방 강주스팀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듯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나무는 삐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96쪽



선이나 삼매니 요가니 하는 말들이 뭐 대단히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신집중‘ 정도의 아주 비근한 인도말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죠. -116쪽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자각의 종교이지 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기의 구제만에 전심하여 타인의 구제를 등한시하는 소승의 종교가 아닙니다. 철저히 구도의 과정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177쪽



대승불교는 일체 재가자와 출가자의 구분이 없는, 양자가 일관되는 체제와 경지에서 출발한 새로운 종교운동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비구승가를 특별한 권위체로 인정하는 모든 체제는 사실 소승이지 대승이 아닙니다. 비구는 빌어먹기만 할 뿐,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비구는 돈, 권력, 절깐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177쪽



반야심경의 전체 주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설법의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202쪽



존경스러운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1927~2001:동경대학에서 화엄학을 전공하고 동경대학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뭐 별것이겄냐, 바로 너 자신이다! 네가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으면 이 경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야심경의 소리는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 205쪽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도 뭘 모르는 자들이 그렇게 ‘안다고‘ 떠들어대는 데 있습니다.
반야는 앎을 버림으로써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얻음, 즉 ˝득˝이라 하는 것도 인간이 반야를 통해 뭘 자꾸만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반야를 통해서는 ˝얻는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지는 것도 없고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요. <논어>에도 공자말씀에 이런 말이 있어요 ; ˝사람이 늙어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뭘 자꾸만 얻어야 한다고 욕심내는 것이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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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되어 반야심경을 몸으로 체득, 오독송을 7글자로 남기고 (˝나는 좆도 아니다˝), 사도 바울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로마서경해를 편찬하고, 이 두 종교의 근원과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철학에 매진해온 도올.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며 지혜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이념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반야의 부정‘을 평생 실천해온 그의 단단함과 유연함이 존경스럽다.

<반야심경>하면 일반인뿐만 아니라 타종교를 믿는 신앙인도 모르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경전이지만 260글자에 온 우주가 담겨있을 줄은 몰랐다.
한 글자 한글자 어원과 뜻에 쉽게 다가서고 수많은 문학과 철학에서 다룬 인간의 삶과 죽음의 덧없음을 되돌아볼 수 있게끔 도올은 역시 영리하게 반야심경을 풀어냈다.



*****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국민 모두에게 방영된 내용을 가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에게 고소당하여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고 살아온 도올 선생이 겪었을 그 번거로운 프로세스에 한없는 모멸감과 배신감, 그리고 울분의 심사에 대해 팬으로써 분노하고 허탈감을 느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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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1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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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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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힘있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은 여전히 정희진스럽다.
다만 이 책이 신간이라 ‘작가가 읽은 책과 최근의 이슈를 버무렸지 않았나‘ 기대하고 구입했는데, 이전 글모음이었고, 세월호에 대한 단상을 주로 담고 있어서 더 최근의(물론 세월호는 진행형이다) 주제를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정희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문장들, 예를 들자면 동성애 주제를 다루며 ˝실제로 ‘짐승도 안 하는 짓‘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다(57쪽)˝ 라던지, ˝남자들의 진짜 문제는 가르칠 것이 없다는 사실 아닐까(124쪽)˝라는 문장들은 너무 안타깝다.
그녀가 그렇게도 경계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대부분의 남자들을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리는 글에 투사하는 것이 과연 그녀가 지향하는 사유인가?
정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 점이 또 통쾌한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요즘은 남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중용의 칼날위에서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이래나 저래나 어렵고 어렵고. 또 위태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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