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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 - 열입곱 살 미치루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가타카와 요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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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큰 결심이나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길고 먼 거리를 향해 한 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 직접 이 100km걷기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30, 40, 50, 60, 72, 86,... 각 체크포인트마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꽤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마디로 걷기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들이 꽤 실감난다. 이 100km걷기라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얘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는 될 것이다.

 

 여고생인 미치루는 부모님이 어린시절 이혼하여 엄마와 남동생 사토시와 지낸다. 엄마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입원한 이후 마치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듯이 변하고, 사토시는 위기에 처한 집안 사정은 나몰라라 철없이 지낸다. 막막한 때에 엄마의 동생인 외삼촌이 난데없이 100km 걷기 대회에 미치루를 참가하도록 신청해놓았다. 운동에 소질도 없고 끈기도 없다며 남동생이 놀리는 바람에 미치루는 어쩐지 욱하는 마음으로 걷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 '그래, 내가 100킬로미터를 완보하고 나면 어쩌면 엄마도 달라질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을 받듯 이야기하며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겼다. '내가 10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이렇게 고통스럽게 밤을 세워 걷는 것으로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만 있다면......' "

 

 미치루의 걷기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저 나도 한다면 한다는 것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걸으면서, 힘듦을 느끼면서 걷는 의미도 달라졌다. 내가 뭔가 어려움을 이겨내면 내 주위 환경도 달라질지 몰라, 이런 일들도 좀 변하게 될지 몰라 하는 바람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변한다면 내 주위 환경도, 풀기 어려운 일도 나로 인해 달라지게 된다. 내가 도전한 일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한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뭔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문득 왠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나카타 할아버지는 대회 중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전까지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던 생판 남인 사람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생활 환경도 전혀 다른 할아버지와 이곳까지 서로 의지해 가며 함께 걸어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나와 접점이 없던 남과 만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런 만남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만남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과 세상은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나라에서, 옆 동네에서, 이웃집에서 누군가 아파하고 고통받는다면 그 고통이 곧 나에게도 전해질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즐거웠던 추억부터 괴로웠던 기억까지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대로 죽는 것도 아닌데, 그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꾸 비장한 마음이 드는 거지?"

 

 한참을 걷기만 한다면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바로 수없이 많은 생각일 것이다. 주인공 미치루도 그랬다. 안그래도 복잡한 가정사로 머리속이 어지러운데 힘에 부칠 때마다 안좋은 기억들, 묻어두었던 추억들이 이리저리 번져나간다. 막기에도, 떨쳐내기에도 어려운 생각들 틈에서 혼자 100km를 걷는다는 상황까지 겹쳐 자기 자신을 쓸쓸하게 여기는 미치루의 모습이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 '나는 나를 믿어'라는 말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감이 나에게는 없었다. 엄마는 늘 그것을 신조로 살아왔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래, 지금이 바로 그때다!"

 

 주인공 미치루가 30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한번도 아니고 삶의 자잘한 순간들마다 고루해지는 자신을 환기시킬 계기가 크고 작게 있어야 한다. 이 100km걷기도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체험이 될 것이고, 이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독자들도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달라지고 싶었지만 달라질 계기를 잡지 못했을 때, 달라질 타이밍을 알 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다른 책은 미국청년이 쓴 것으로 미국의 50개 주를 돌며 50가지의 직업체험을 해 낸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도 현실이 주는 시련에 괴로워하던 때에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도전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미치루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도전을 이뤄낸 점이 비슷하다.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청소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감화를 일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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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힐링캠프 - 언제라도 놀러오세요!
김정윤 외 지음, 안치용 / 위즈덤경향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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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힐링캠프라고 해서 TV프로그램에 나온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책 소개를 찬찬히 읽어보니 오히려 읽는 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딱 얼굴이 떠오를만한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정치인, 연예인, 예술가 등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멘토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 있다. 학생기자들이 책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했다고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질문들에서 그런 느낌이 좀 느껴졌다. 다소 가볍다 싶지만 재미도 있는 젊은 느낌이 나는 책이다.

 

 받자마자 책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온통 내가 끼워놓은 책갈피로 책이 울긋불긋해졌다. 그만큼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전기 형식보다는 읽기 훨씬 수월했다.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가 아니라 좀 더 자신을 낮춘 자세로 인터뷰에 임한 스무명의 인터뷰이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게 그들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김연아와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일로 구설수에 오른 김미화씨나 전에 직접 섬진강 가에서 찾아뵈었던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못지 않게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르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 "물건을 든 손을 그대 손이 아니다." 물건을 내려놓고 빈손이 됐을 때, 그때서야 남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있잖아요. 지나친 욕심으로 손에 무언가를 가득 움켜쥐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 겨를이 없어지게 되죠. 힘든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구요." 

 

 "리영희 선생님께선 글이란 자기의 피를 가지고 쓰는 건데 몇 백 원짜리 볼펜 가지고는 못 쓴다고 하셨어요. 글은 마치 내 피를 넣듯이 잉크를 넣어서 써야지 소모품인 볼펜으로는 쓸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글은 피로 쓴다. 학자란, 지식인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운 거죠."

 

 인터뷰를 한 멘토 스무명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들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 이들의 말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저 세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나를 이루는 것, 나와 남을 연결해주는 것,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것에 대한 말들이다.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 독서하는 사람에게 있어 책은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 그렇게 이루어진 나는 나를 위한 물질에 연연하기보다, 물질을 쥔 손을 폈을 때 잡을 수 있는 타자와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알릴 때는 나의 일부를 담아서 진정으로 치열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저 세가지 메시지만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가운데 '삶의 원칙'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원칙'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원칙'으로요." - 안철수

 

 요즘 뜨거운 감자로 올라있는 인물이다. 다른 내용들도 매우 뜻깊었지만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남에게 인색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그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늘 조심하고 있다고 해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역시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인색하기 위해 삶의 원칙을 두 부류로 나누어 놓는 면모를 보인다. 나를 절제하고 남을 포용하는 일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주입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까요? 내면에서 끓어 나온 생각이나 열정이 없어요. 뭐랄까...... 헛헛하달까요? 이건 지적인 헛헛함일 수도 있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 것일 수도 있어요. 문제는 이런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구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대신 소비나 소유에 몰두해 상실감을 채우는 것 같아요." - 홍세화

 

 예리한 분석에 허를 찔렸다. 맞다. 헛헛하다. 2-30대는 일종의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허무주의에 물들었다. 꿈은 큰데 자신이 너무 작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입에 풀칠하기 위한 목적을 띈 일이거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하고 자립심없이 자라온 탓에 나약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높이는데 있어 돈을 벌고, 쓰는 일 외에 어떤 것을 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나를 세상에 알리는데에 있어 가진 물질을 자랑하는 것 밖에 다른 것을 모른다. 이런 결핍이 너무나 만연해 오히려 의식하고 있기 어려운데 이렇게 보니 한 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한 부분이었다. 

 

 "또 많은 경우에 '나만 조금 불편하면 되겠지'하고 돌아가는데, 나중에 보면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편했던 경우도 많죠. 어떨 때는 문제제기를 하고, 좌충우돌 시끄럽게 해서 내가 깨져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덜 불편한 건데 말이에요. 순간 생각할 때는 '내가 더 고생하면 되겠지'싶어서 한 일인데, 나중에 보면 차라리 내가 문제라고 말을 했어야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편했을 일이 자꾸 벌어져요." - 최재천

 

 굉장히 공감이 됐다. 불편을 뻔히 느끼면서 남의 이목을 끌거나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것을 감수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바꾸거나, 개선할 점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은 작은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말이었다. 오히려 저렇게 나서서 '깨져주는'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왜 참지 않고 일을 만들려고 하나, 관습에 사로잡힌 시선을 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더욱 더 부끄럽다.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학생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실험을 한 상황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서기를 꺼려하거나, 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해 모르는 척 지나쳐버렸다. 힘이 세거나,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만이 그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 사람을 불러모은 것이다. 그냥 지나쳐가려던 여러 사람이 멈춰서서 개입하자 상황은 해결되었다. 이처럼 한사람이 나서서 큰소리내고 이목을 끄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는 사회야 말로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신을 가장 절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그 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신을 완전히 타자로 둠으로써 자꾸 뭘 받고 얻어내고 뜯어내고 싶어 한다는 얘기입니다. 진정 신을 섬긴다는 것은 신과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인데, 거기에 어떻게 '우리 아이 무슨 대학 가게 해주세요' 혹은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성립되겠어요? 우리의 신관은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 김규항

 

 뜻을 같이 한다. 사람이 곧 신이라는 말은 사람을 신처럼 모시라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이 신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을 용서받기 위함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다. 용서는 죄를 저지른 상대와 자기 자신에게서 구해야하고, 원하는 것은 스스로 이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 내가 이룬 것에 대한 감사도 마찬가지로 오로지 신만의 몫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쓴 모든 이에게로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 전에 위 내시경 검사를 했어요.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교수님, 왜 그러세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왜 그렇게 박정희 욕을 하냐는 거예요. 마취를 하면 잠재의식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제가 "박정희! XXX!" 이러면서 계속 욕을 했다는 거예요." - 손호철

 

 다른 것은 아니고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자기 마음 속에 숨겨둔 비밀을 갖고 있는 여자가 병을 얻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마취 상태로 비밀을 이야기 할까봐 수술을 포기한다. 주위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목숨을 건지기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떻냐고 하자, 말하지 못해 이렇게 괴로운 마음이라면 분명 자신도 모르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수술을 하지 않고 죽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내 무의식이 저렇듯 표출된다니,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운 일화였다.

 

"초심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리고 또 나도 변하고, 삶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죠.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까요. 초심을 버려야 합니다. 늘 나를 바꾸고 혁신해야 합니다. 나를 혁명해야지요. 그래야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초심이 시원한 물줄기로 흐릅니다. 눈물 같은 물줄기지요. 그 청춘의 푸른 눈물 같은 물줄기가 사랑입니다. 결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게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불멸의 초심입니다."

 

 김용택 시인 인터뷰의 일부이다. 표현이 아름다워서 따로 적어보았다.

 

 "없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돌아갑니까. 부질없는 질문이고, 어리석은 질문이고, 짜증나는 질문입니다. 지금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게 우선입니다." - 김용택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는 다소 딱딱한 느낌도 드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태의연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답변이었다. 이 질문도 그렇지만 첫사랑에 대한 질문이나, '돈'의 의미를 묻는다거나,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들은 소모적이었던 면이 많았다.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첫사랑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변을 고수했고, 돈과 관련해서는 비슷한 취지의 답이 일관되었으며,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겸손으로 응수하였다. 어느 정도 비슷한 틀을 갖고 질문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응답이 계속됨에 따라 책의 내용이 약간은 단조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인터뷰이에 따라 좀 더 개성있는 질문을 더 마련했다면 인터뷰 내용도 살고, 읽는 이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명의 멘토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 다르면서 전부 다 같다.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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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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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크고 분명하게 자리잡는 책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작가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제목으로 책을 알아보고 선택하는 일이 보통이라지만 아무래도 이 작가 스티븐 킹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스티븐 킹은 그 이름만으로도 믿고 보는 작가 중 하나다. 비록 책보다 영화를 더 먼저 본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에서 시작된 재미와 감동은 그의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제목 역시 괜찮으나 독자에게는 그보다 그의 이름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다가온다.

 

 다양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14편 정도인데 분량은 중단편정도 되어 보이는 것도 서너개 있고 열장 정도로 보이는 짧은 단편도 몇 편 있다. 제목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해가 저물고 밤이 어스름하게 찾아오는 시간, 사물이 점점 짙은 빛을 띄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공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때 즈음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많다. 약간 환상적이거나, 섬뜩하고, 밝은 낮동안에는 숨어있던 악의가 어둠의 틈새를 타 슬쩍 비어져 나오는 듯한 이야기다.

 

 "헨리에게 뻥을 치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이미가 죽어도 그건 그대로였다. 또 하나 낳지, 뭐. 그의 옆에 앉아 그런 얘기도 했다. 헨리를 무릎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있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그의 얼굴을 타고 내렸다. 그 말은 그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건 좋지만 에밀리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침대에서 창백하게 질려 있는 아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은 절대 아니다."

 

 인상깊었던 단편 중 첫번째, '진저브레드 걸'의 한 대목이다. 부부인 헨리와 에이미의 아이가 죽었다. 그들은 아이를 잃은 상처로 괴로워한다. 어찌보면 에이미는 무심한 태도로 이 상황을 넘기는 것 같지만 헨리보다 더 큰 상처를 갖고 있다.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우려는 희망을 갖게 된 헨리, 하지만 전혀 희망을 보지 못하는 에이미의 상처를 극복하는 다른 태도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진저브레드 걸이 인상깊었던 것은 두사람의 상처 극복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서는 아니다.

 

 진저브레드를 두고 장식이 기교적이고 야한, 다소 천박한 예술작품를 지칭하는 말. 생강이 든 과자가 허울만 좋고 실속이 없음을 비유한다는 뜻이 있는데, 내용과 어떤 부분을 연상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난데없이 처하게 된 고립되고, 위협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필사의 저항이 정말 잘 묘사되어 있어 스티븐 킹만의 '유혹적인 글쓰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으로 꼽는다.

 

 "아니, 무서운 얘기 싫어. 그녀가 싱크대 옆에 서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동시에 듣고 싶기도 하다. 누구나 섬뜩한 얘기를 원한다. 다들 미쳤으니까, 게다가 꿈을 발설하면 정말로 실현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얘기하신 적이 있다. 말하자면 악모을 얘기해 스스로 길몽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빨을 베개 밑에 숨기면 대신 선물이 나타난다는 미신처럼 말이다."

 

 단편 '하비의 꿈' 중 한 부분이다. 우리가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심리가 약간은 발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서운 것은 싫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해서 그만보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눈으로 끝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그의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그의 입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는 것이 마치 독자를 향해 혹시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이 이렇지 않는지 묻고 있는 것 같아 인상깊다.

 

 "모하메트 아타(9.11때 여객기를 납치했던 테러범-옮긴이)와 그의 자살특공대가 뉴욕 시에게는(보험 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무척 악당이었을지 몰라도, 오후 내내 전화와 무의미한 싸움을 벌여 보니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대박 손님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2002년 여름, 전문 정신과 의사의 소파에 눕고 싶다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했다." 

 

 다른 단편들도 있지만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911 테러의 뒷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없던 테러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미국인에게 상처를 남긴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단편 '그들이 남긴 것들'은 911 당시 우연한 행운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이라는 고통과 상실감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쓸쓸한 여운을 주는 결말로 마무리한다. 또다른 단편 '<뉴욕타임스>특별 구독 이벤트'는 좀 더 로맨틱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라 개인적으로 그 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벙어리', '아주 비좁은 곳', '지옥에서 온 고양이'와 같은 단편들이 흥미로웠다. 특히 지옥에서 온 고양이같은 경우는 에드거 앨런 포우를 떠올리게 하면서 작년 이맘때 즈음해서 개봉했던 한국영화 고양이도 생각나게 만드는 문제적 단편이다. 다른 단편들도 그렇지만 일상에서 너무나 평범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고양이를 무서운 대상으로 여겨지게 만들다니. 벙어리는 근거없는 괴담, 소문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인데 그 나름의 독특한 재미가 있었다. 스티븐 킹의 이름을 믿고 한 번 읽어봄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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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라 - 유능한 창조자는 모방하고 위대한 창조자는 훔친다
이도준 지음 / 황소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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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훔치라고 영어로도 한글로도 써있고 그 밑에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가?'를 부제로 달고 있다. 자문자답이다. 이 책의 첫 인상은 어쩌면 이렇게나 공격적인가 하는 것이다. 훔쳐라, 빼앗아라, 행동하라, 죄책감이나 범죄의식을 갖지마라 하는 말이 표지 한 페이지 넘기기가 무섭게 쏟아진다. 더불어 해군보다는 해적이 되라는 문구가 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자연 떠오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까 방어에 급급하기 보다는 남의 것을 어떻게 내게로 가져올 것인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느껴진다.

 

 책은 표지부터 그런 압박감을 전해주고 있다. 찰나의 기회를 위해 곧장 몸을 내던져야 할 것만 같은 긴박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목표를 위해서는 '훔치라!'고 연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참 공격적이고 위험하게 느껴진다. 무엇을 훔치란 말인가? 훔치다는 동사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단 말일까? 그럼 이 책이 위험한 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 일전에 빌린 돈 갚지 말라는 내용의 책을 썼다 경찰 출동에 수갑 찬 저자도 있지 않은가! -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이 책은 위대한 인물들의 생활과 일화 등을 통해 꿈을 만드는 방법, 질문력, 정리정돈, 자신감, 유머, 근검절약, 설득력, 창조력, 부지런함, 자기확신, 심플한 인생법 등 무형의 자산을 훔치라는 것이다."

 

하고 이내 도입부의 대상을 무형의 것으로 옮겨놓았다.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책의 첫인상에서 말랑말랑하고 안정적인 자기 계발서의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안도와 함께 아쉬움도 느껴진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부마다 4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안에서도 3부분으로 나뉘어 각 장의 내용을 담은 2부분, 우리가 훔쳐야 할 인생법을 가진 사람들의 일화를 담은 1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다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완급 조절이 되어 있는 셈이다. 다소 패턴화되어 있는 것이 흠이지만 구성적으로는 체계적으로 조율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인물의 일화로는 생소한 일반인부터 유재석,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람도 있고, 나폴레옹, 처칠, 샤넬같은 사람들도 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패션이나 디자인 위주의 상품일 경우도 이런 이미 전략이 요긴하게 쓰인다. 그 제품의 특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사용하면 내가 어떻게 바뀌는가,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특성이나 현상을 꼬집어 쉽게 이야기 해온다. 이미지와 관련되서는 커피를 예로 들어 모배우가 커피 브랜드의 선전을 꾸준히 해오는 얘기라던가 하는 쉬운 일화를 말한다. 스타벅스같은 대형 체인이 '여유를 즐기는 자신'이라는 고객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공간을 꾸미고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는 제공되는 이미지를 향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라는 조언으로 쓰고 있지만.

 

" "어지러운 방은 당신의 인생이 어지럽다는 걸 말해준다. 너저분한 책상은 당신의 업무 성과가 너저분함을 말해준다. 부자의 책상 위엔 서류더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인생과 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면 그 사람의 책상이나 방을 보면 된다." -마스다 마츠히로 <부자가 되려면 책상을 치워라!> "

 

 이처럼 일상적인 조언도 있다.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최근들어서.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살을 빼고 외모를 다듬는 것으로 한정되어선 안된다. 눈에 보이는 관리는 외모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을 다듬는 것까지 해당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확실히 우리는 어떤 일의 능률을 위해 주변부터 정리하려는 행동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지 않은가, 예를들면 시험 기간에 책상정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정된 공간은 효율뿐 아니라 마음가짐까지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질문은 의외로 유혹적이다. 질문을 받고 거절할 사람은 많지 않다. 바삐 길을 가던 사람도 누군가가 몇 시인지 물어보면 금방 자기 시계나 핸드폰을 쳐다보며 시각을 알려준다. 우리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온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 우리가 얼마나 질문과 도움이란 것에 의무화된 사명을 갖고 있냐면, 길을 걷다가 도를 아냐는 질문에 걸음을 멈칫하는 일까지도 왕왕 생기지 않는가. 질문이라는 것은 답을 구하는 쪽의 입장이 낮을지 몰라도 답하는 쪽보다 훨씬 능동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각 외의 부분을 지적해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일본 시인 이바라키 노리코는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 해놓고

점점 까다로워져가는 걸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것 어느 쪽일까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나는 걸 가족 탓이라고 하지 마라

무엇이든 서툴렀던 것은 나

초심이 사라져 가는 걸 생활 탓이라고 하지 마라

애당초 의지가 허약했을 뿐

안된 일을 모두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간신히 빛나는 존엄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어리석은 사람들아"
 

 이 시는 평소의 생활을 경계하기에 알맞은 내용인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좋은 구절이나 일화를 예로 들어 내용이 서술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나름 유용한 면이 많은 책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보다 오자가 많다는 것이다. 2012년 4월에 있었던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보니 지금 5월에 초판이 출간되어 꽤 바삐 진행이 되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오자는 1번의 검토로 수정 가능한 것들이었을텐데 그 부분이 미흡했던 것이 아쉽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오자가 없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책을 다 읽었으니 하는 말인데 역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독서가 아니라 실천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느끼는 가장 큰 딜레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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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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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수 작가의 소설은 '푸른사다리'를 읽어본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전에 써두었던 기록을 참고해서 다시 볼 요량이다. 쨌든 이름이 익숙한 작가로 '개 같은 날은 없다'라는 제목과 함께 작가의 이름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제목만으로는 어쩐지 날이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패러디 한 것 같기도 하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제목만으로는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책의 마지막 장을 샅샅이 다 읽어내고서야 깨달았다. 남은 글자는 없는지 더 읽을 것이 없는지 아쉬워서 책에 쓰여진 까만 글씨를 모조리 훑고서야 눈을 뗐다. 읽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 가벼운 문장들이 동동 떠다니는 것 같은 소설이 얼마나 무거운 감동을 주는지. 멋부린 말도 없고, 특별할 것 같지만 특별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에서 너무나 많이 끌어 사용해 오히려 흔해진 것들을 소재로 한 이 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이번 시험은 배짱으로 보겠다고 떠들어대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멋쩍어하며 괜히 반 아이들 눈치를 봐야 했다."

 

 특히 좋은점 중에 하나는 청소년 도서들이 흔히 아이들의 말을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사용하다 오히려 글의 흐름을 더 어색하게 만들곤 하는 우를 범하기가 쉬운데 이 책은 그런 어색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생생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과장된 말이나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극적인 인물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는 말의 반이 넘게 욕이거나 신조어, 줄임말들이 난무하는 것이 아이들의 실제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소설 속으로 옮겨왔을때는 오히려 생생함이 줄어들어거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게 만드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적어 오히려 더 진심같고, 인물에 가까워질 수 있는 도움을 준다. 

 

 두 사람의 주요 인물이 큰 단락을 서로 나누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그 하나는 남강민. 중학생 남자아이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형, 세 식구가 같이 산다. 형은 아버지에게 약하고, 나는 형에게 약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약해서 매번 큰소리가 날 때마다 서로 부딪히게 된다. 다른 하나는 최미나. 20대 초반의 과체중 여성으로 부모님, 군대 간 오빠를 두고 외삼촌 집에서 얹혀 생활한다. 서로 얽힐 공통분모 없어 보이는 그 둘은 강민이 키우던 개 찡코를 통해 연결된다. 계속되는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한 강민은 찡코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되고 찡코의 죽음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미나는 그 뒤로 환상같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에게는 남에게 채 다 표출하지 못한, 자신조차 어쩌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이 덮어두었던 상처를 다시 끄집어 내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 갈가리 찢겨 회생하기 어려워보이던 가정이 그 안에 강렬한 회귀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모습, 노력하여 변해가는 흐름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빠에게도 뭔가 아픔이 있을 거예요. 지금도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서로가 상처를 덮어 놓고 사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지요. 어쨌든 미나 씨, 고마워요. 그 아픔을 잘 견뎌 주어서. 그리고 힘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덜어주는 일은 대신해서 무언가를 해주거나 큰 위로의 말이나 표현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작은 일이다. 상처를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결국은 상처를 하나씩 갖고 있다. 그 상처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치료하지 않은 채 살아가면 사람은 점점 딱딱해지고 굳어져서 외로워지게 되는 것 같다.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괴로움, 가족끼리 주고 받는 상처가 점점 큰 딱지로 굳어가는 심각함, 학교에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소외감, 치유되지 않은 상처, 잃어버린 기억, 동물의 마음을 읽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심리치료사, 정신과 상담, 집단 폭행, 친구를 속이고 기만하는 아이들, 탈선 등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 TV에서 볼 수 있는 호기심 거리들을 한데 잘 어우러 재미있으면서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비룡소에서 나온 청소년 도서를 몇 번 접한 적 있었는데, 수줍을 정도로 생생하고 친근한 글을 읽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 상처와 아픔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들로 왜 이렇게나 가득한지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알 수 없는 요즘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한 통로로 생각하며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상처받은 이에게..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져 버려진 것 같을지라도, 사실은 사람 사이가, 세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줄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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