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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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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 많은 사물에 둘러쌓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작금의 고도화된 산업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 '사물' 즉 보통 '물건'이라 칭하는 것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네 삶에 어떤 형태로도 함께 하고 있다. 흔히 사물이라 하면은 일반적인 것 또 실용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 필수품이나 헛된 사치품까지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물들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굳이 그 사물에 의미 부여를 안해도 될만큼 차고 넘치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사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들으며 의미 부여를 한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시대 지성인들이라 불리는 세계적 석학들 34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오면서 현재 아니면 과거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만난 사물들을 에세이처럼 풀어쓴 이야기가 바로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이라는 책이다. 책 자체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즉, 내 인생의 중요했던 순간에 만난 사물들을 가볍지만 셈세하게 수필집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 저자 '셰리 터클'은 그것을 각 의미별로 나누어서 보여주고 있다. 간단히 목차들의 소재들을 보면 이렇다.

'디자인과 연주의 사물들'에는 첼로, 자료보관소, 매듭, 별, 키보드가 있고, '애도와 추억의 사물들'에는 불사조 슈퍼히어로, 폴라로이드 SX-70, 남은 사진들, 할머니의 밀대, 다락방의 그림, 여행가방이 있고, '훈련과 욕망의 사물들'에는 발레 슈즈, 혈당측정기, 노란 우비, 수첩, 노트북, 우울증 치료제가 있다. 또 '변화와 이동의 사물들'에는 멜버른 열차, 1964 포드 팰콘, 신디사이저, 토끼인형 머레이, 월드북 백과사전, 실버 브로치가 있고, '역사와 교류의 사물들'에는 라디오, 팔찌, 도끼, 딧 다 조우:타박상 치료제, 진공청소기가 있고, '명상과 새로운 시각에 관련한 사물들'에는 중국수석(壽石), 사과, 미라, 지오이드, 푸코의 진자, 점균이 있다.

이렇게 본 책은 34인의 석학들과 함께한 사물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떤 사물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들이지만 몇몇 사물은 쉽게 접하지 않기에 의외의 사물들도 있다. 예를들면 우울증 치료제나 신디사이저, 도끼, 중국수석, 미라까지.. 예술과 음악에 관련된 사물부터 책이나 기기등 하나같이 모두 의미가 있는 사물들이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꿈과 희망을 담아낸 추억의 사물부터 현재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증명하는 사물들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사물을 통해서 특별한 감정을 이끌어내며 사물 이면의 또 다른 모습까지도 이야기한다. 비록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인생철학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의 고찰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즉, 사물을 읽어내는 힘과 다양한 생각.. 그것은 사물이 자기 창조(self-creation)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 사물을 생각과 감정이 하나로 연결하는 코드이자 소통의 매체로서 본다는 것이다. 역시 지성인답다. 여기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사물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잃으면, 우리 내부에서 그 사람이나 사물을 되찾는 과정을 시작한다. 이는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객체(object)를 상실하면 주체(subject)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에 드리워졌다'로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말은 가히 시적이라며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브리콜라주(bricolage, 긴밀한 재료들을 결합하고 또 결합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한 방법)가 된다면 이 책이야말로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가?'라는 고차원적이고 인문학적 질문으로 화두를 던지며.. 사물을 이전과 다른 시전으로 바라보고, 낯선 것으로 인식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서 일상의 사물이 우리의 외적과 내적인 삶에 일부가 되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저마다 사물을 바라볼때 직관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때로는 연상 작용을 거쳐 사물과 이론을 결합하고 재결합시켜 더 확장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비록 의미없는 사물일지라도 그 존재적 가치와 또 의미있는 사물이라면 자신이 바라보고 느낀 사물에 대한 집착과 애착은 우리네 삶을 더욱더 생동감있게 만드는 도정이 아닐까 싶다. 결국 누구에게나 소중한 물건 즉 사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사물을 통해서 크게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철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사물을 때로는 풍부한 감성과 지성으로 다룬다면 그 사물의 세계는 우리앞에 새롭게 펼쳐져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삶의 고찰인 셈이다.

과연, 당신의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사물들'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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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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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선, 표지의 저 그림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다. 음흉한 썩소를 날리는 저 모습이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처럼 보인다. 바로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기존의 미스터리와 추리물이 아닌 아니 미스터리도 조금 섞으며 사회 풍자에 대한 블랙유머 시리즈로 나온 책 '독소', '흑소', '괴소' 3부작중 <괴소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팬일지라도 잘 안 알려진 책이지만.. 이 시리즈를 접한 이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왜냐? 이 소설들에는 사람들에 대한 검은 속마음같은 치부를 들어내는 비판과 비평등 사회에 대한 풍자가 제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중량감있고 소위 있어보이는 '사회인문서'들이 줄 수 없는 그런 오소독스와 패러독스한 맛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여튼, 읽어보면 아는데 두 달여전 <독소소설>를 읽고서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무덥고 후텁지근한 여름을 이기고자 청량제같은 이 소설을 다시 꺼내들어 읽었다. 역시나 게이고식의 풍자와 위트가 넘친다. 이에 9편으로 무장한 괴이한 이야기속 사람들의 속마음을 한번 들어다보자. 

먼저, <울적전차>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교통생활의 일부분인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인 지하철안.. 그 속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리다툼을 위한 각종 사람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물론, 컽으로가 아니라 속으로 혼자서 중얼거린다. 음흉한 미소의 성추행부터 처자와 아줌마의 자리 쟁탈전과 할머니의 노골적인 자리 양보행위까지.. 어찌보면 우리네 모습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속내가 밖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ㅎ <할머니 골수팬> 어느 뮤지컬배우를 너무 좋아하게 된 노부인, 늙어서 찾게된 생활의 활력소로 인해 그는 이 배우를 쫓아다니느랴 가산을 탕진할 정도다. 그런데, 瀏� 할머니의 팬심을 그 배우는 진정으로 알아주었을까.. 그냥 컽치레가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그로 인해 피폐해 가는데도 말이다.

<고집불통 아버지> 늦둥이 아들을 낳아서 일본 프로야구의 유명한 선수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고군분투기.. 아들이 태어나기전 딸에게 조차 야구를 시키고 훈련시켰던 그 아버지는 늦게 얻은 아들에게 올인한다. 직장도 때려치울 정도로 대성할 야구선수로 키우기 위해서 눈물 겨울정도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어느덧 제법 실력파 투수로 성장한 아들이 프로야구 드래프트를 앞두고 큰 사고를 치고만다. 야구는 혼자하는 게임이 아니기에 말이다. ㅎ <역전동창회> 보통의 동창회하면 해당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주최를 해서 모이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해당 학생들이 아닌 학교 졸업생을 배출한 담임 교사들이 동창회를 가지며 수 년을 이어져 왔다. 그러던중 이번에는 우리들이 제자를 한번 초대해 보자며 졸업한 학생들을 그 자리에 끌어들이는데..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그들이 바로 그 동창회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초 너구리이론> 어린시절 시골에서 얼핏 보았지만 잘 몰랐던 동물 너구리때문에 일생을 바친 연구자가 있다. 그는 너구리를 초자연현상에 대입시켜 '너구리이론'을 집대성한다. 그러면서 UFO도 너구리가 변한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에 UFO 연구자는 어느 TV대담프로에서 너구리이론을 주장하는 그와 설전을 펼친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과학과 초자연현상의 간극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있다. 설마 너구리가 혹시..ㅎ <무인도의 스모중계> 일본의 스모열기는 대단하다. 여기 배가 난타당해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껏 모든 스모경기를 꿰차고 있는 스모중계의 달인을 통해서 그가 속사포처럼 경기를 읊어대는 그맛에 그들은 무료함을 달랜다. 그러면서 결승전 내기를 거는데.. 과연 그 달인은 어떻게 승부를 말했을까..ㅎ

<하얀 들판마을 VS 검은 언덕마을> 사회적 병리현상중 바로 '님비현상(Nimby)'에 대한 이야기다. 즉, 우리 지역에 해로운 것은 둘 수없다는 지역 이기주의.. 여기 사람들이 그렇다. 어느 날 하얀 들판 마을앞에 시체가 버려진다. 이에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새벽에 몰래 검은 언덕마을에다 시체를 버리고 온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시체가 다시 하얀 마을로 왔다. 그래서 다시 검은 마을에 갖다 버린다. 이렇게 무한반복을 하는 두 마을.. 그러다 친해질라..ㅎ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 이제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어느 할아버지가 기록을 아니 일기를 쓴다. 그리고 한 의사가 그에게 의료과학의 힘으로 젊음을 되찾게 해준다. 다소 짧게나마 두 달여를 할아버지는 그렇게 젊음을 만끽한다.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그는 초연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내 무덤에 향을 피워줄까.. 라고

<동물가족> 어떻게 보면 9편의 이야기중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괴기한 이야기다. 여섯 식구가 모여사는 가족이 있는데 좀 심상치않다. 각자 개성이 강해 서로를 견제하는등 자식과 부모간의 신뢰는 깨진지 오래다. 그것을 막내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할머니는 늙은여우, 아버지는 너구리로, 어머니는 스피츠로, 형은 하이에나로, 누나는 고양이로 보이는 것이다. 즉,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가 해당 동물의 습성을 대변하듯 가족들이 그렇게 보이고 행동한다. 부모는 잔소리꾼에 각자 애인을 사귀며 이혼위기에 처했고, 형은 음흉한 대학생에 누나도 정신나간 여자처럼 말이다. 이에 지친 막내는 자신의 모습조차 파충류처럼 보이기 시작하며 급기야 자신을 홀대한 가족한테 응징을 한다.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ㅎ

이렇게 9편의 이야기들 통해서 사람들의 속마음에 깔린 기이하고도 은밀한 속내를 들여다 보았다. 특히 이번 이야기들은 '저자후기'에서 게이고도 말했듯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들이 많이 내포된 것들이 많다. <울적전차>는 실제 샐러리맨 시절의 겪었던 지옥철 이야기고, <할머니 골수팬>은 자신의 부모님이 그런 쇼를 보러 다녔고, 아버지가 귀금속 세공을 하던중 이상한 손님을 통해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또 <고집불통 아버지>는 소년시절 재밌게 본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에서 따왔고, <역전동창회>는 자신이 싫어하는 직업중 '교사'에 대한 소회담으로서 소상히 적혀있다.

<초 너구리이론>은 이과계 출신답게 초자연현상같은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과학 아사히』에 실린 기사에서 작품의 힌트를 얻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초자연현상을 믿지는 않지만, 받아들인 준비는 얼마든지 있다고 언급한다. <무인도의 스모중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길에서 야구중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난 이야기고, <하얀 들판마을 VS 검은 언덕마을>은 부동산의 최고 가치인 집에 대한 생각과 집값 상승의 기대심리를 꼬집은 이야기다.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 실제 자신의 할머니가 97세에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현장에서 생각난 이야기였고, 마지막 <동물가족>은 자신은 하늘의 모험을 좋아하는 새인간형이라면서 어패류도 좋아하고, 특히 이 단편은 지금까지 쓴 단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말한다.

이렇게 기존의 독소소설과는 다른 괴소소설에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와 경험담이 어우러져 표출된 사회 풍자와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본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형식과 내용면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유머로 점철된 이야기가 아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이 이야기들은 블랙 유머시리즈 3부작중 마지막 작품이라 한다. 하지만 순서가 무슨 중요하겠는가.. 독소가 됐든 흑소가 됐든 괴소가 됐든.. 게이고만의 블랙 유머는 분명 우리네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혜안과 사회풍자로 점철된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남은 시리즈중 하나인 '흑소'를 꺼내든다. 과연, 검은 웃음에는 어떤 풍자가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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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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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통 사료가 주는 직관적인 자료가 됐든, 아니면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또 사극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와 다큐, 그리고 여기 역사 소설같은 책들을 통해서까지.. 지금시대 우리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이런 매개체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며 상상속에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며 그 인물을 만난다. 그런데, 이중에서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와 감흥은 배가 되는 법이다. 그것은 실제 역사가 주는 팩트와 작가의 상상력인 픽션이 공존하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면에서 이번에 읽은 <정도전>은 제대로 그림이 나왔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그가 누구인가? 바로 고려를 무너뜨려 조선을 건국하고 오백년 도읍지 한양을 건설하며 <조선경국전>을 통해서 조선왕조 오백년 기틀을 마련한 재상.. 문무를 겸비한 사상가이면서 학자이고 실천적인 정치가였던 그는 요순의 이상향을 꿈꾸었고, 백성들이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위민과 민본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였다. 또한 요동 정벌을 통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회복해 동북아시아의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야심가..

이렇게 정도전은 여말선초의 격변기를 관통했던 굵직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정도전의 스승인 '이색'이 했다면, 아니면 동문수학한 정도전의 선배 '정몽주'로 했다면, 또 조선건국의 두 부자(父子) 이성계나 이방원으로 했다면 그림은 틀리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중심은 바로 정도전이다. 오로지 '정도전의, 정도전에 의한. 정도전을 위해서' 작가 '이수광'은 그의 일대기를 나고 자라 죽을때까지 그려 무던히도 우리네 심상(心想)을 흔들며 정도전을 눈앞에서 생생히 복원시켰다. 소제목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처럼 또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기치를 내건 정도전 두 권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본다.

먼저, 1권의 포문은 임팩트있게 정도전이 죽은 해 1398년의 일이 나온다. 바로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하륜과의 설전은 물론, 태조 이성계 앞에서 자신이 저술한 <조선경국전>의 요체 '치전총재소장야(治典冢宰所掌也)''나라는  재상이 다스리는 것이다'로 신권(臣權)을 주장하며 여려 대신들을 긴장시킨다. 당연히 이방원의 눈에 가시였고, 왕(군주)을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가로 비춰져 그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그의 어린 시절로 간다. 모계쪽이 천한 출신이라 어릴적부터 놀림을 받은 소년 정도전..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다.

그리고 아버지 정운경의 손에 이끌려 고려말 대학자인 '이색'의 문하에 들게 된다. 이때 수학중인 자는 바로 도전보다 다섯 살 많은 '정몽주', 그리고 다섯 살 아래인 '하륜''이숭인'이 있었다. 즉, 이 네명이 스승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뛰놀던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도전이 열아홉에 장가를 들어 궁핍한 생활은 계속되고, 당시 고려 조정은 공민왕 집권 시절로 처음에 개혁정치를 부르짖던 공민왕도 신돈에게 일임하면서 고려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신돈은 요승답게 전횡을 일삼더니 급기야 대신들에게 죽고, 공민왕마저 애완소년? 자제위(子弟衛)에게 시해를 당하며 정국은 격랑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신돈의 자식인지 공민왕의 자식인지 반야에게서 낳은 우왕이 즉위하며 고려말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당시 정도전은 정7품의 성균관 박사에 임명돼 성리학을 강론하던 태상박사(太常博士)였다. 즉, 유생들의 보스이자 기둥이었다. 그런데, 그는 당시 권력의 중심이자 권문세가의 대표젹 인물이었던 이인임, 염흥방, 임견미등에 의해서 좌천되고 유배를 가는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가 내걸었던 전제(田制) 토지개혁이 그들 대신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당시 무인들의 거두였던 최영장군과 이성계를 생각하며 그중 이성계를 찾아간다.

이렇게 1권은 정도전의 어린 시절을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서 복원하고, 정도전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고려말의 정권을 디테일하면서 스피드하게 전개시켰다. 바로 공민왕과 우왕 시절의 그 아스트랄한 격랑속을 말이다. 그중 신돈의 이야기는 예전 손창민이 주연한 TV 사극을 통해서도 봤지만 특히 권문세가 '이인임'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각인된 구도였다. 아무튼, 그 시절 정도전은 개혁적인 성향의 성균박 박사로 유생들을 가르치다가 좌천돼 유배를 가는등 고초를 겪었고, 이성계를 찾아가면서 바로 2권이 시작된다.



역사가 그렇듯 왕조를 갈아엎을 혁명을 위해선 동지가 필요한 법이다. 정도전은 당시 1382년 '동분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까 정확히 10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10년동안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순서대로 본다면 먼저 우왕시절 권문세가 이인임등 그 일파 제거에 이성계를 앞세워 모두 숙청해 버린다. 황음무도했던 우왕으로서는 고립무원 상태.. 고려조정의 실권은 최영과 이성계 두 무인이 장악하게 되고, 두 무인의 대결로 압축된다. 결국, 요동 정벌의 모색속에 펼쳐진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1388)을 한 이성계는 최영 일파를 제거하며 명실상부 정권의 핵으로 떠오른다.

우왕의 집권말 정도전은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바로 소작료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전제인 농지 개혁을 위해서 지음을 찾아나서지만 예전의 벗들조차 그의 개혁에 반대에 나선다. 바로 스승 이색, 정몽주, 이숭인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즉, 이들은 기득권 세력으로서 정도전과 갈라서며 주도권 쟁탈전을 벌인다. 정도전파와 이색파 그리고 중간자적인 정몽주파까지 나누어져 그들은 어찌보면 동상이몽을 꿈꾼 지음들이었다. 결국, 정도전은 소싯적 대의멸친(大義滅親)을 가르쳤던 스승 이색을 실각시키고 우왕과 창왕도 폐위돼 유배지에서 죽는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을 앉힌다.

바야흐로 정도전과 이성계의 시절이다. 왕은 그저 허수아비일뿐.. 스승까지 실각시킨 정도전에게 이제 남은건 동문수학했던 마지막 고려의 대유학자 '정몽주'.. 그는 다 알다싶이 정도전과는 달리 끝까지 고려의 불멸의 충신으로 남아 이방원 일파에게 척살당해 선죽교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때는 1392년 4월로 정몽주의 죽음과 동시에 바로 왕조가 바뀌는 순간이다. 바야흐로 마침내 조선왕조 5백 년의 아침이 열리며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보필해 기틀을 마련한다. 고려 오백년 왕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경복궁과 근정전등 궁궐을 짓고,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곽등을 지으며 몇 년은 바쁘게 움직인 정도전이었다.
 
이런 그에게 세자 책봉 문제로 불협화음이 나버린 정도전과 이방원.. 내심 기대했던 세자의 자리가 배다른 어린 동생 '방석'에게 돌아가자 돌아버린 이방원.. 내심 정도전이 도와줄주 알았는데.. 그는 숭유억불 정책을 태조가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방석의 세자 책봉을 인정하고 만다. 또한 중요한 토지 개혁은 물론이요, 주원장의 명나라에 반하는 요동 수복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각 대신들이 군권을 쥐고 있는 '사병혁파'를 주장한 그였기에 이방원에게는 이제는 눈에 가시처럼 늙은 호랑이가 된 정도전.. 결국, 이방원의 책사가 된 하륜은 한때 동문수학하던 선배 정도전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정도전은 이 모든 것을 알아 챈듯 심효생과 함께 남은의 첩 집에서 결연히 죽음을 맞는다. 때는 정확히 제 1차 왕자의 난 1398년 8월 26일의 일이다. 이렇게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그의 개혁은 완성을 못보고 끝내 좌절되고 만다. 그렇다고 미완성이라 볼 수는 없다. 그가 집대성한 <조선경국전>은 태종 이방원이 집권시절 어느 정도 수용하며 신권을 인정했고, 세조때 새롭게 편찬되기 시작해서 성종 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으로 완성되면서 그 뜻을 꽃 피웠다. 즉, 민본정치의 대계와 신권 중심의 정치 철학과 사상은 조선왕조의 근간이 되었고 영원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도전의 삶을 반추해보면 고려말 정권과 백성들이 격랑속에 휘말리던 시절에 태어나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 중심에서 좌천되고 유배를 가더라도 끝까지 야심을 불태우며 도전적인 삶을 일삼왔다. 그래서, 이런 혁명가적 기질때문에 그는 지인보다는 적이 많았던 외로운 천재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 속에 오만함도 있었다는 반증이다. 바로 자신의 위치를 중국의 한나라 장량에 비유하면서 '한 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실질적인 조선 개국의 주역은 자신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기에 고려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성계를 도와 신권을 강조하며 조선왕조의 건립이 가능했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도전적인 삶을 살았던 <정도전>을 읽으면서 직관적인 사료가 줄 수 없는 이런 그의 드라마틱한 삶의 도전과 신념 그리고 원대한 야망은 작가 '이수광'에 의해서 서정감있게 오롯이 전달이 되었고,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2007년 12월 마지막 기자 만찬중에 나온  "정도전 선생이 있다. 나는 그를 수백 년 내 최고의 업적자로 본다." 언급처럼 최고의 업적뒤에 삼봉 정도전은 분명 그 야망과 신념 하나로 조선왕조사의 불멸의 족적을 남긴 인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비록 팩트와 픽션이 가미된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정도전을 다시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정도전의 비장한 영웅적 서사속에 조선 사내의 야망과 신념을 생생하게 만나보시라.

바로 그것이 이 책이 던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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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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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네 심상(心想)의 한 자리를 차지해오며 인간의 사후세계를 지배해온 설화적이고 전설적인 존재 귀신들.. 그 귀신들이 주는 야담(野談)은 먼 조상때부터 전승되고, 회자되고, 살이 붙어 새롭게 태어나는등 무던히도 우리네 공포적 상상의 자극제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중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은 여러 귀신들중에서 가장 임팩트하고 어필을 많이 한 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찌보면 한국 귀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처녀귀신'이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한(恨)으로 가득찬 단순한 공포의 대상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심지어 유희적 호러 존재로까지 희화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 처녀귀신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이면에 숨은 전통적 관습에 대한 모순과 비판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책 '처녀귀신'이 그렇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책은 문학동네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2010년판 '키워드 한국문화'시리즈중 여섯 번째 이야기로 우리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출간된 문고판 형태의 책이다. 그래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이 책 <처녀귀신>.. 제목이 주는 단조함과 임팩트한 느낌에 부제는 바로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이다.

그렇다. 바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아 생전에는 사회적, 가정의 약자로서 빛을 보지 못한 그들이 한(恨)을 품고 원귀가 되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떠돌며 산 사람들을 끊임없이 공포에 떨게한 그들..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은 정작 소통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을 풀어줄 대상을 찾아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 부문에 중점에 두어 이야기를 풀고 있고, 각 장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4-5편의 야담집 『기문총화』등에서 나온 귀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 숨은 한을 해석해 주고 있다. 특히 이런 야담집들이 사대부 남자들의 여가적 독서용으로 향유되어 왔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귀신이 여자만이 있지는 않을터.. 남자 귀신은 죽은 뒤에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권위를 행사하며 저승에서도 벼슬을 하는등 조상신으로 가려지는 반면, 여자 귀신은 한을 품은 원귀로만 등장해 현실의 여성들이 풀어내지 못한 한과 응어리를 귀신이 되어서도 간직한 채 살았으며,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은 오직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원귀가 성립돼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여자들의 한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는 반증인 셈이다.

즉, 죽어서도 존경받는 남자 귀신은 현실을 통제하는 파수꾼이자 해결자로 남는 반면에.. 여자 귀신은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생사의 경계에서 선 '난민'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그녀들은 죽어서도 원혼의 중점에서 섰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귀신이 되는 야담집 사례를 보면은 '자살'을 통해서 귀신이 되는 예가 많다. 남자들에게 버림받아서, 사랑받지 못해서, 또 모함과 질투때문에.. 바로 자살한 여자들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이것은 어찌보면 강요된 사회적 희생으로 그녀들을 단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단죄가 전통 사회의 문화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네 자화상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죽어서도 아니 죽어야만 비로서 자신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던 그녀들.. 이것이 바로 원혼의 저주와 복수극으로 이어졌으니 바로 여자의 한(恨)이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견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恨)이란 성취를 향한 개인적 욕망의 범주를 넘어선 극한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가 위협받을 때, 탐욕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 제한받을때 사람들은 한을 품게 되고, 그런 점에서 한을 살피지 않는 행위는 인간됨의 최소 요건마저 저버리는 패륜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한을 품은 귀신이야말로 귀신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 저자는 이렇게 귀결시킨다.

   
  귀신 이야기는 음파가 잡히지 않는 어두운 내면에 달아 놓은 문학적 확성기와 같다. 살아서는 할 수 없었던 말이 문학적 상상력의 힘으로 태어난 귀신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이야기 속에서라도 사회의 모순을 뼈아프게 들추는 진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바로 이 '불편함'이 귀신 이야기가 형성되는 공포의 요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형성된 공포는 당대 사회의 건강성을 반영하는 지표가 된다. 그것이 화들짝 놀라는 단발성 공포의 형식일지라도, 전율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사회의 그늘을 들추는 불편한 진실과 목도하게 된다.  
   

즉, 아직까지도 우리의 심상을 건들고 있는 귀신 이야기는 사회적 문화적 관습에 의해서 치부되어 왔고, 건강한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이 현실적 장벽 속에서 그들의 은폐된 목소리 '귀곡성'은 바로 마이너리티의 문화로 자리매김 해왔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분명 귀신 이야기를 한(恨)이라는 정서가 갖는 숨은 이면의 인문학적 고찰로 풀어낸 한 편의 리포트라 볼 수 있는데.. 하지만 책 자체가 200여 페이지가 안돼 얇다보니 좀더 심도있게 '귀신'이야기를 통한 지금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통찰과 비판이 조금은 부족한 텍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 문화에 귀 기울이며 전설속 공포적 존재로서 처녀귀신 뿐만이 아니라 귀신들의 이야기를 한(恨)이라는 정서가 갖고 있는 요체를 알고 귀신이라는 상징물을 통해서 현실과 인간에 관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귀신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 또 오락적 유희로서 희화만 하지 말고, 왜 귀신이 되었고, 귀신의 한(恨)을 다각적으로 접근하며 이제는 귀신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전통문화속 인간사를 되짚어보는 도정이자 사유 코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도 심상속에 존재하는 귀신의 해원(解冤)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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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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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작가라 감히 말하며 지칭하는 ’황석영’ 작가의 신작이 2008년 <개밥바라기별> 이후 2년 만에 나왔다. 제목은 <강남몽>이다. 몽(夢)에서 알다싶이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금도 사람살이가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바로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과 현실이 교차돼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부자중심 ’강남’.. 그 강남의 역사 아니 ’강남의 형성사’(形成史)를 통해서 그는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투영시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사실감 있게 전달하며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그 욕망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가 담아낸 이야기의 시작은 어떻게 되고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바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 참사에서 비롯된다. 즉, 이 대참사를 통해서 각 인물들을 교차 편집시켜 그 이야기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즉, 총 5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마지막 그곳으로 모이면서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간 군상의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니..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는 말 그대로 백화점이 무너진 참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참사 전 여기 여주인공 ’박선녀’의 동선을 좇으며 소위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들의 일상을 그린다. 남편 덕에 세상의 시름살이는 잃은채 쇼핑이나 하면서 탱자탱자하며 지내는 아줌마들.. 여기 박선녀도 그중 하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다. 평범한 국밥집 딸이었던 그녀는 여상 재학중 우연찮게 모델 생활을 거쳐 화류계에 발을 들이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그리고, 룸싸롱을 경영하고 부동산 투기를 맛보고 주먹계의 비호속에 나이트클럽까지 운영한다. 하지만 결국 룸카페로 전향하면서 대성백화점 김회장 ’김진’을 만나 후처가 된다. 바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이 상승되며 그녀의 상류층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간다. 왜냐?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쇼핑중 그곳에 깔리게 된다.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각 장중 100여 페이지가 넘는 장편의 이야기로 바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일종의 현대사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바로 김회장 ’김진’.. 그는 일제시대 1910년대에 태어나 열살때 만주로 이사오고 10대 후반 일본 헌벙대의 밀정으로 일하다 관동군에 편입돼 만주의 항일군 대토벌작전에 참여하고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청 산하 특무기관인 CIC의 요원이 된다. 이때부터 김진은 해방 공간에서 좌익을 탄압하고,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진압, 박정희 좌익혐의 조사와 구명활동 등 굵직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미군정과의 선을 이용해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현대사의 뒷무대에서 영리한 처신을 거듭하며 살아남는 관록을 자랑한다.

이렇듯 여기 김진은 바로 친일, 친미의 안보이는 대표주자로 그의 삶은 위태로움속에 안이함을 유지하며 준위로 예편한다. 그리고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직후 건설업을 시작한 그는 권력과 돈의 행방을 가늠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군에게 불하받은 서초동 땅에 아파트와 백화점을 지어올리면서 순탄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백화점이 1995년 6월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지켜보게 된다. 이렇듯, 여기 이야기는 실제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았다. 그 속에는 실제 역사적 실제 인물들인 김구, 이승만, 박헌영, 여운형, 박정희, 그리고 김창수 특무대장역의 김창룡과 80년대 사채시장의 큰손 이희철(이철희)의 과거사와 그의 부인 장영숙(장영자), 실제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역의 김진까지.. 이렇게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는 말 그대로 본격적인 땅 이야기.. 바로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6.25를 거치면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개발되지 않은 ’서울’이라는 땅덩어리.. 그 땅이 어떻게 개발되고, 누구에 의해 조작되고 만져지는지 여기 주인공이자 박선녀와 잠깐 알고 지냈던 ’심남수’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제 3한강교 건설을 앞두고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남수는 지인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당시 청와대가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은밀히 지시한 정·관계가 연루된 투기현장은 물론이요, 소위 각종 부동산 투기기법을 보는듯 용어들이 ’타짜’처럼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말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정보를 듣고 주변을 정리한 뒤 한국을 떠난다. 박선녀와 이별을 예고한채.. 그리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한때 같이 사업한 지인으로부터 백화점이 무너진 소식을 듣게 된다.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은 제목에서 알다싶이 무슨 드라마 제목같다. 맞다. 실제 MBC에서 인기리에 방여되었던 한국형 느와르적 작품이었던 줄여서 ’개늑시’다. 바로 여기 이야기도 바로 느와르적인 액션을 담고 있으니 바로 조직폭력배 소위 조폭이야기다. 그런데, 그냥 조폭스런? 내용이 아닌 바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주름잡았던 실존 조폭 인물 ’조양은과 김태촌’의 내력담을 소상히 담고 있다.

여기서 조양은역은 홍양태로 김태촌역은 강은촌으로 나와 그들의 조폭사를 제대로 그리고 있다. 긴 말이 필요없다. 범죄조직 대중소설로 큰 인기를 끈 ’이원호’ 작가의 글을 보듯 치열한 조폭세계의 그림이 사시미가 내 복부를 찌르듯 펼쳐진다. 하지만 이 둘은 80년대 전두환 정권시절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이용당하며 긴 수형생활에 처해진다. 그리고 95년에 풀려난 홍양태는 제주도 어느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다가 TV 뉴스에서 백화점 붕괴현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부하에게 전화한다.  돈 좀 달라고.. 하지만 전화는 아무 말 없이 끊겼다. 

5장 <여기 사람 있어요>는 백화점 붕괴 현장에 깔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참사 현장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실제 십칠일을 버티고 살아난 삼풍백화점 지하의 아동복 점원 여기서는 ’임정아’로 나오는데 바로 젊은 그녀를 통해서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소위 공순이, 공돌이로 지내온 가족사를 좇고 있다. 바로 도시 빈민가의 이야기로 60년대말 도시 이주민들이 대거 형성돼 광주대단지(성남) 사업 소식을 듣고 무작정 천막생활을 시작했다가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을 한가운데에서 겪은 사연이 소상히 펼쳐친다.

그리고 당시 서울시의 부당한 처사와 대우까지.. 그러다 강남 건설 붐이 일 무렵부터는 임정아의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적어도 그녀의 가족은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의 반복처럼 출근하는 날 백화점은 붕괴되었고 그녀도 그 속에 깔리고 말았다. 무려 십 칠일동안.. 물론,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여기 이야기의 서막을 연 박선녀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렇게 각 이야기는 강남을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자 실제 ’삼풍백화점’(이야기속 대성백화점)의 참사 현장으로 각 장의 마무리에서 모두 모이게 된다. 실제 깔려있듯 그 현장을 보듯 또 참사의 이야기를 듣듯 말이다. 바로 삼풍백화점을 통해서 강남이 만들어온 일그러지고 갈라진 욕망을 투영시키며 각 인간 군상이 맞물려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어떻게 달려왔고 또 어떤 오점을 남기었는지 소상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현대사적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까지..

작가 황석영만의 선 굵은 서사와 역동적인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강남몽>은 분명 수작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작가 스스로도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 욕망과 좌절을 이쯤에서 다 같이 되돌아보자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어요.” 작가는 “근대화를 이룬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여공과 월급쟁이 회사원들”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 부대들이 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작가의 의도처럼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한국사회의 자본적 현대사를 관통하며 바로미터로서 자리매김한 ’강남’.. 그 강남을 빼놓고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강남을 통해서 거대한 거품처럼 들끓는 우리 시대의 벌거벗은 헛된 욕망들을 소상히 담아내며 무던히도 우리네 심상의 지형을 흔들었던 작품 <강남몽>.. 읽는 내내 수 편의 미니시리를 보듯 전개되는 흡인력과 쓰라린 아픈 현대사가 다큐처럼 냉정하게 포착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소설로만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찌보면 몇 권의 대하소설로 나와도 무방한 이 가열찬 강남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지금도 진행되는 이야기이기에 단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 더욱 더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다가왔으니 그것이 바로 황석영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번 망설일 필요없다. 작가의 인터뷰처럼 지금 시대 넥타이 부대들 특히 30-40대 분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를 관류한 ’강남’ 의 욕망을 좇으며 우리의 씁쓸한 치부를 마음껏 만끽하고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구상해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 바로 <강남몽>이 던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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