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통 사료가 주는 직관적인 자료가 됐든, 아니면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또 사극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와 다큐, 그리고 여기 역사 소설같은 책들을 통해서까지.. 지금시대 우리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이런 매개체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며 상상속에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며 그 인물을 만난다. 그런데, 이중에서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와 감흥은 배가 되는 법이다. 그것은 실제 역사가 주는 팩트와 작가의 상상력인 픽션이 공존하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면에서 이번에 읽은 <정도전>은 제대로 그림이 나왔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그가 누구인가? 바로 고려를 무너뜨려 조선을 건국하고 오백년 도읍지 한양을 건설하며 <조선경국전>을 통해서 조선왕조 오백년 기틀을 마련한 재상.. 문무를 겸비한 사상가이면서 학자이고 실천적인 정치가였던 그는 요순의 이상향을 꿈꾸었고, 백성들이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위민과 민본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였다. 또한 요동 정벌을 통해서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회복해 동북아시아의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야심가..

이렇게 정도전은 여말선초의 격변기를 관통했던 굵직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정도전의 스승인 '이색'이 했다면, 아니면 동문수학한 정도전의 선배 '정몽주'로 했다면, 또 조선건국의 두 부자(父子) 이성계나 이방원으로 했다면 그림은 틀리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중심은 바로 정도전이다. 오로지 '정도전의, 정도전에 의한. 정도전을 위해서' 작가 '이수광'은 그의 일대기를 나고 자라 죽을때까지 그려 무던히도 우리네 심상(心想)을 흔들며 정도전을 눈앞에서 생생히 복원시켰다. 소제목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처럼 또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기치를 내건 정도전 두 권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본다.

먼저, 1권의 포문은 임팩트있게 정도전이 죽은 해 1398년의 일이 나온다. 바로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하륜과의 설전은 물론, 태조 이성계 앞에서 자신이 저술한 <조선경국전>의 요체 '치전총재소장야(治典冢宰所掌也)''나라는  재상이 다스리는 것이다'로 신권(臣權)을 주장하며 여려 대신들을 긴장시킨다. 당연히 이방원의 눈에 가시였고, 왕(군주)을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가로 비춰져 그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그의 어린 시절로 간다. 모계쪽이 천한 출신이라 어릴적부터 놀림을 받은 소년 정도전..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다.

그리고 아버지 정운경의 손에 이끌려 고려말 대학자인 '이색'의 문하에 들게 된다. 이때 수학중인 자는 바로 도전보다 다섯 살 많은 '정몽주', 그리고 다섯 살 아래인 '하륜''이숭인'이 있었다. 즉, 이 네명이 스승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뛰놀던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도전이 열아홉에 장가를 들어 궁핍한 생활은 계속되고, 당시 고려 조정은 공민왕 집권 시절로 처음에 개혁정치를 부르짖던 공민왕도 신돈에게 일임하면서 고려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신돈은 요승답게 전횡을 일삼더니 급기야 대신들에게 죽고, 공민왕마저 애완소년? 자제위(子弟衛)에게 시해를 당하며 정국은 격랑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신돈의 자식인지 공민왕의 자식인지 반야에게서 낳은 우왕이 즉위하며 고려말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진다. 당시 정도전은 정7품의 성균관 박사에 임명돼 성리학을 강론하던 태상박사(太常博士)였다. 즉, 유생들의 보스이자 기둥이었다. 그런데, 그는 당시 권력의 중심이자 권문세가의 대표젹 인물이었던 이인임, 염흥방, 임견미등에 의해서 좌천되고 유배를 가는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가 내걸었던 전제(田制) 토지개혁이 그들 대신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당시 무인들의 거두였던 최영장군과 이성계를 생각하며 그중 이성계를 찾아간다.

이렇게 1권은 정도전의 어린 시절을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서 복원하고, 정도전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고려말의 정권을 디테일하면서 스피드하게 전개시켰다. 바로 공민왕과 우왕 시절의 그 아스트랄한 격랑속을 말이다. 그중 신돈의 이야기는 예전 손창민이 주연한 TV 사극을 통해서도 봤지만 특히 권문세가 '이인임'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각인된 구도였다. 아무튼, 그 시절 정도전은 개혁적인 성향의 성균박 박사로 유생들을 가르치다가 좌천돼 유배를 가는등 고초를 겪었고, 이성계를 찾아가면서 바로 2권이 시작된다.



역사가 그렇듯 왕조를 갈아엎을 혁명을 위해선 동지가 필요한 법이다. 정도전은 당시 1382년 '동분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까 정확히 10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10년동안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순서대로 본다면 먼저 우왕시절 권문세가 이인임등 그 일파 제거에 이성계를 앞세워 모두 숙청해 버린다. 황음무도했던 우왕으로서는 고립무원 상태.. 고려조정의 실권은 최영과 이성계 두 무인이 장악하게 되고, 두 무인의 대결로 압축된다. 결국, 요동 정벌의 모색속에 펼쳐진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1388)을 한 이성계는 최영 일파를 제거하며 명실상부 정권의 핵으로 떠오른다.

우왕의 집권말 정도전은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바로 소작료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전제인 농지 개혁을 위해서 지음을 찾아나서지만 예전의 벗들조차 그의 개혁에 반대에 나선다. 바로 스승 이색, 정몽주, 이숭인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즉, 이들은 기득권 세력으로서 정도전과 갈라서며 주도권 쟁탈전을 벌인다. 정도전파와 이색파 그리고 중간자적인 정몽주파까지 나누어져 그들은 어찌보면 동상이몽을 꿈꾼 지음들이었다. 결국, 정도전은 소싯적 대의멸친(大義滅親)을 가르쳤던 스승 이색을 실각시키고 우왕과 창왕도 폐위돼 유배지에서 죽는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을 앉힌다.

바야흐로 정도전과 이성계의 시절이다. 왕은 그저 허수아비일뿐.. 스승까지 실각시킨 정도전에게 이제 남은건 동문수학했던 마지막 고려의 대유학자 '정몽주'.. 그는 다 알다싶이 정도전과는 달리 끝까지 고려의 불멸의 충신으로 남아 이방원 일파에게 척살당해 선죽교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때는 1392년 4월로 정몽주의 죽음과 동시에 바로 왕조가 바뀌는 순간이다. 바야흐로 마침내 조선왕조 5백 년의 아침이 열리며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보필해 기틀을 마련한다. 고려 오백년 왕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경복궁과 근정전등 궁궐을 짓고,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곽등을 지으며 몇 년은 바쁘게 움직인 정도전이었다.
 
이런 그에게 세자 책봉 문제로 불협화음이 나버린 정도전과 이방원.. 내심 기대했던 세자의 자리가 배다른 어린 동생 '방석'에게 돌아가자 돌아버린 이방원.. 내심 정도전이 도와줄주 알았는데.. 그는 숭유억불 정책을 태조가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방석의 세자 책봉을 인정하고 만다. 또한 중요한 토지 개혁은 물론이요, 주원장의 명나라에 반하는 요동 수복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각 대신들이 군권을 쥐고 있는 '사병혁파'를 주장한 그였기에 이방원에게는 이제는 눈에 가시처럼 늙은 호랑이가 된 정도전.. 결국, 이방원의 책사가 된 하륜은 한때 동문수학하던 선배 정도전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정도전은 이 모든 것을 알아 챈듯 심효생과 함께 남은의 첩 집에서 결연히 죽음을 맞는다. 때는 정확히 제 1차 왕자의 난 1398년 8월 26일의 일이다. 이렇게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그의 개혁은 완성을 못보고 끝내 좌절되고 만다. 그렇다고 미완성이라 볼 수는 없다. 그가 집대성한 <조선경국전>은 태종 이방원이 집권시절 어느 정도 수용하며 신권을 인정했고, 세조때 새롭게 편찬되기 시작해서 성종 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으로 완성되면서 그 뜻을 꽃 피웠다. 즉, 민본정치의 대계와 신권 중심의 정치 철학과 사상은 조선왕조의 근간이 되었고 영원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도전의 삶을 반추해보면 고려말 정권과 백성들이 격랑속에 휘말리던 시절에 태어나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 중심에서 좌천되고 유배를 가더라도 끝까지 야심을 불태우며 도전적인 삶을 일삼왔다. 그래서, 이런 혁명가적 기질때문에 그는 지인보다는 적이 많았던 외로운 천재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 속에 오만함도 있었다는 반증이다. 바로 자신의 위치를 중국의 한나라 장량에 비유하면서 '한 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실질적인 조선 개국의 주역은 자신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기에 고려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성계를 도와 신권을 강조하며 조선왕조의 건립이 가능했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도전적인 삶을 살았던 <정도전>을 읽으면서 직관적인 사료가 줄 수 없는 이런 그의 드라마틱한 삶의 도전과 신념 그리고 원대한 야망은 작가 '이수광'에 의해서 서정감있게 오롯이 전달이 되었고,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2007년 12월 마지막 기자 만찬중에 나온  "정도전 선생이 있다. 나는 그를 수백 년 내 최고의 업적자로 본다." 언급처럼 최고의 업적뒤에 삼봉 정도전은 분명 그 야망과 신념 하나로 조선왕조사의 불멸의 족적을 남긴 인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비록 팩트와 픽션이 가미된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정도전을 다시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정도전의 비장한 영웅적 서사속에 조선 사내의 야망과 신념을 생생하게 만나보시라.

바로 그것이 이 책이 던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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