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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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색시마냥 얌전한 소설은 읽기에는 거부감이 없어 좋을지 몰라도 무언가 뇌리에 남는게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얌전을 떨지않고 있는 그대로 생으로 언어적 유희를 펼쳐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실소를 자아내는 소설들이 있다. 여기 역사소설 <미실>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별아氏의 신작 <가미가제 독고다이>가 그런 케이스다. 편견일지 몰라도 아니 여자분이 이렇게 입이 걸한 표현들로 초장부터 눈길을 끌다니.. 분명 김별아 작가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여기 소설 속 주인공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택했듯이 말이다. ㅎ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가미가제 독고다이> 사실 모르는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표준어도 아닐 것이다. 알다시피 '가미가제'는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의 마지막 결사항전으로 적 함대를 향해 내리꽂은 이른바 '자살폭격기'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독고다이'식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은 우리 조선인이다. 그런데, 여기 주인공 청년인 '모던뽀이'가 심상치 않은 놈이다. 어찌보면 일제시대 삼천만이 볼모로 잡힌 비극적 상황속에서 그는 대단히 희극적이다. 아니 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 여튼, 그 모던뽀이 가족사는 지극히 친일파에 '콩가루 집안'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고 있으니 그 이야기속으로 잠깐 빠져보자. 

먼저, 이 소설은 각 장마다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물론 그 에피소드는 이어져있다. 화자는 바로 '모던뽀이' 하윤식.. 하씨 집안의 막내로 1920년대에 태어난 뺀질이다. 그 모던뽀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먼저 첫장 '올미꽃'에서는 자신의 조부 쇠날이 할아버지와 올미 할머니의 러브스토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당차다. 아니 질퍽함은 물론 강도가 좀 세다. 특히 이 집안의 내력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한 것처럼 올미 할머니는 대찬 여자였다. 반대로 쇠날이 할아버지는 백정집안의 아우라를 잇지 못하고 피 한방울에도 숨죽이는 그런 남자였다. 그렇다. 여기 하씨 집안은 대대로 내려온 백정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하씨 족보도 돈주고 샀다는 사실, 당시는 그게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여튼, 쇠날이와 올미가 낳은 모던뽀이 아버지 '하계운' 그가 바로 제대로 된 친일파였다. 한일합방이 되던 시절 그에게 민족이나 애국은 지나가는 개나 주는 그런 거였다. 오로지 돈이면 다 되는 세상, 10대 후반에 상경에 일본인 하수인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하며 자수성가해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호락호락하지 않을 신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지만 녹녹치 않다. 둘은 동상이몽 스타일이였다. 그래도 자식 둘을 키우며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주인공 하윤식의 형 경식.. 어렸을때부터 윤식에게 있어 다섯 살이 많은 형 경식은 선망의 대상이자 일종의 종교였다. 그런 형이 배다른 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잠깐 흔들렸지만 그래도 그는 형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런 형이 커서는 '주의자'로 빠져 항일 사상과 이념에 물들어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그를 면회온 형의 애인 현옥..
 
장차 형수될 사람일지도 모를 그 여자를 보고서 우리의 '모던 뽀이'는 뽕간다. 처음에는 어떻게 좀 해볼려는 음험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와 함께 형을 면회하면서 그녀의 사상과 이념을 알게 되면서 더욱더 빠져들었다. 아니 더욱더 어지러워했다. 여기 모던뽀이 청년은 아버지를 닮아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고차원적 사상과 이념은 밥말아 먹은지 오래라서 그런쪽에는 일자무식 관심도 없는 청년이었다. 오로지 술과 여자로 점철된 10대 후반의 미워할 수 없는 빤질한 난봉꾼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뜨거운 사랑이 찾아아왔으니 그게 바로 형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소설 중반에 '만남, 그 여자, 형, 첫 키스'장까지 100여 페이지 넘게 모던뽀이의 참지못할 사랑앓이가 펼쳐진다. 이 역시 질퍽한 연애담이다.

그런 가운데 윤식의 형은 감옥에서 나온다. 바로 전향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참다못해 수완을 부려 아들을 빼내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리고, 전향과 동시에 당시 급변하게 돌고있던 대일본제국이 참전중인 전시에 참전하라는 통지.. 청천벽력같은 일이지만 돈만을 쫓아 살아온 친일파 아버지로 인한 인과응보인 셈이다. 하지만 반전 아닌 반전이 있다. 그 참전을 형이 아닌 동생 모던뽀이 하윤식 아니 일본이름의 '가와모토 진'이 나서게 된다. 누가 떠밀어서? 아니다. 바로 스스로 형대신 자원한 것이다. 왜? 바로 자신의 첫사랑 형의 애인 '현옥'을 위해서 말이다. 이 무슨 사랑의 세레나데인지 모를 일이지만, 눈물 겨우면서도 모던뽀이의 작태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단순무식한 스타일인지라..ㅎ

여튼, 모던뽀이 하윤식 아니 '가와모토 진'은 일본의 육군항공부대로 들어가 일반 조종사 훈련을 받는다. 바로 제목 <가미가제 독고다이> 가 나오는 순간이다. 이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서 앞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인 파라노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끝의 두장 '사육제'와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 에서 백여 페이지에 가깝게 일본군대의 이야기가 아주 리얼하면서도 재미나게 펼쳐진다.더군다나 남자들의 전유물인 군대 이야기를 여자 작가가 이렇게 또 질퍽하게 그리다니 참 기묘한 맛이 느껴진다. 여튼, 모던뽀이는 점차 가미가제 자살특공대로 키워진다는 사실에 놀라고 처음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아니 애국이나 민족의 개념도 없이 막산 내가 왜 남의 나라의 총알받이로 죽어야 하는지 마지막 후회막급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출격을 앞둔 그날.. 그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결말이라 언급을 피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마지막 이야기처럼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조선인 청년 10여명이 희생된 '가미가제 특공대'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 아니 시대소설이다. 작가가 이 소설은 '역사'가 아닌 '시대'를 쓰기 위한 첫 시도라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바로 시대.. 우리 근대사에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다룬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일제시대하면 비극과 암울이 점철된 시대에 항일과 독립을 외쳤던 어떤 비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견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별아 작가는 여기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왜 일제시대 이야기는 꼭 비극적이고 암울해야만 하는가.. 좀더 밝게 아니 밝지 못해도 이런 비극적 식민지 상황에서도 가장 희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보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에서 출발한게 이 소설의 얼개다.

그래서, 이 시대소설은 지극히 희극적이다. 초장부터 대놓고 질퍽하게 언어적 유희를 펼친다. 어디서 처음 들어보는 듯한 방언인지 아니면 순수한 우리말인지 모를 듯한 언어들이 전면을 휘감는다. 예를들면 지청구, 쏠라닥질, 마구발방, 서름하다, 엉두덜거리다, 스멀스멀, 주억거리다, 무람없이, 가뭇없이, 퉁바리, 울가망까지.. 읽는내내 부족한 내 어휘수준에서 모르는 단어들은 이렇게 메모를 해둘 정도였다. ㅎ 여튼, 이 소설은 일반 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런 낯선 표현은 물론 질퍽하면서도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매 에피소드마다 재미를 선사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 '모던뽀이'의 성정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를 팔아먹은 졸부의 아들로 태어나 형을 존경했지만 그의 아우라속에 삐닥선을 타며 아버지를 미워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지내는등 냉소와 번민으로 몸부림치는 '모던뽀이'의 삶.. 그것은 일제시대가 주는 비극적 상황속에서 마지못해 시대의 흐름에 온몸을 내던져야 했던 청년과 신분 세탁을 필두로 한 친일파 '콩가루 집안'의 가족사가 교차편집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이 아닌 희극처럼 아니 어떻게 보면 희극이 아닌 비극처럼.. 서로 맞물리듯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우리네 심상을 자극시킨다. 바로 일제시대의 비극적 아픔이 주는 묵직함대신 그렇다고 가벼움이 아닌 주인공 '모던뽀이'처럼 모던하면서도 질퍽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 

그래서 그 파노라마 속으로 '모던뽀이'를 만나보길 추천하며..
여기 똘끼로 충만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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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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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 짦은 두 단어 '심홍(深紅)'과 표지에 한 소녀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장편소설.. 사실 잘 모르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서평단 지원에 두 번이나 미끄러지면서 오기로? 사서 읽게 된 책 <심홍>.. 작가는 젊은 나이 44에 자살한 '노자와 히사시'의 유작이라고 한다. 그는 SBS 동명의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로 알려졌는데.. 특히 이 <심홍>은 2001년에 발표돼 2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탄 작품이다. 이후에도 각종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들은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 구성과 인간의 심층을 파고드는 치밀한 묘사, 허를 찌르는 반전이 돋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 여기 9년 전에 쓴 이 작품 <심홍>이 그런 류에 속한다. 심홍? 한자어 深紅을 풀어쓰면 '깊은 붉음', 아니면 '붉은 깊음' 이렇게 직역이 되는데.. 그런데, 이 소설의 내막을 알거나 다 읽게 되면 이 소설의 제목이 바로 느껴진다. 심홍은 바로 피의 소용돌이, 즉 깊은 심연에 깔린 피가 부르는 복수와 분노 그리고 처절한 울분과 슬픔이 교차되는 애환과 애상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런 제목이 아닐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표지에 있는 저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소녀의 참혹하고도 슬픈 이야기속으로 잠시 빠져보자.

여기 10대 초반의 한 소녀 '아키바 가나코(이하 가나코)'가 있다. 아직 세상의 떼가 온전히 묻기 전 그 어린 소녀에게 충격적인 참극이 벌어지고 만다. 자신을 뺀 온가족 넷이 참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자신은 6학년 수학여행차 그 참극의 현장에 없었기에 살 수 있었다.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수학여행 첫날 밤 선생님이 조용히 부른다. 집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얼른 가보자고 한다. 수학여행지에서 집이 있는 도쿄까지는 4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 그 거리를 선생님과 택시를 타고 가며 가나코는 별의 별 생각을 한다. 교통사고일까 아니면 더 큰일일지도.. 그런데, 두려움때문에 선생님에게 묻지 않는다. 그리고 도착해서 하얀 천으로 뒤덮힌 네 구의 사체를 확인한다. 얼굴은 참혹하게 함몰돼 보지 못하고 발가락을 만지며 잔잔하게 오열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렇게 어린 소녀 '가나코'를 뺀 '아키바' 일가족 네 명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 가나코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네 다섯 살의 어린 남동생 둘까지 잔혹하게 살해된 전대미문의 참극.. 이 사건으로 일본 열도는 술렁인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굴까? 그것은 바로 가나코의 아버지 '아키바'와 관련된 사업문제로 빚어진 사건이었다. 바로 아키바 장인의 사업실패로 이어진 대출금 상환의 빚을 거래처에서 좋게 봐왔던 '쓰즈키 노리오'을 꼬득여 연대보증을 서게하고, 결국 그 빚을 쓰즈키가 떠앉게 되자 사랑했던 아내의 사망으로 받은 보험금 수 억원으로 갚게된다. 그런데도 안면을 돌리며 자신을 무시한 아키바의 처신에 분노를 느껴 그 가족의 집을 부스러 들어갔다가 네 사람까지 쇠메로 내리쳐 죽이고 안면까지 함몰시켜 처참하게 죽인 것이다. 과연, 그 행위는 정당했을까.. 여기 소설에서는 자세하게 쓰즈키 노리오의 '상신서'가 나와있다. 자신의 처지와 죄에 대한 설명과 사죄의 글인데..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참혹하게 살해된 일가족을 나두고 남겨진 '가나코'.. 어느 덧 세월이 8년이나 훌쩍 지나 20살의 대학생이 된 가나코.. 이때부터 가나코의 일상을 쫒는다. 여느 대학생들 일상이 그러하듯..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고, 남친이든 여친이든 애정전선을 꾸리며 가나코는 나름의 대학생활을 영위한다. 그런데,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혼자 있을때면 8년 전의 사건이 생생히 떠올라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르뽀기자를 찾아가 살인범 쓰즈키가 쓴 상신서를 훑어보게 되면서 또 최근 사형확정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피해자의 딸이듯, 가해자의 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동갑내기 가해자의 딸 '쓰즈키 미호'(이하 미호)를 찾아 나선다. 왜 찾아 나서는 것일까.. 복수를 하려고, 아니면 사죄를 받기 위해서일까..

여튼, 미호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그녀는 가나코와 달리 어린 나이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든 여자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친과 위장해서 처음에 그 곳을 접근하고, 이후 혼자서 찾아가 미호와 말을 튼다. 그리고 그때부터 둘은 친해진다. 물론 가나코는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끝까지 말이다. 즉, 이때부터 가나코가 미호를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들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물론 그런 내막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자신은 피해자의 딸이고, 가해자의 딸 미호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미호의 원죄와 속죄 사이에서 그 아픔을 달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살아남아서.. 미안해.."라고 외쳤든 그 수 년의 외침때문에 말이다.



결국 미호와 친해진 가나코, 하지만 미호는 폭력적인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아기까지 유산되는등 살인자의 딸로 살았던 미호의 원죄속에 일그러진 복수가 고개를 든다. 그래서 이런 폭력으로 피폐해진 자신을 위로해준 가나코와 모의해 그 남자를 죽이려 한다. 과연, 그녀들은 그 남자를 죽일 수 있었을까.. 이야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이자 결말이라 언급을 피한다. 결국 다 읽고 나서 간단한 소회는 참혹한 범죄뒤 남겨진 피해자와 가해자를 병립시켜 디테일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미스터리다. 

그래서 간단히 본다면 참혹하게 죽은 일가족에 남겨진 어느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성장소설의 느낌도 많이 드는데.. 특히 전반부는 사건 자체를 파헤치고 묘사하는데 중점을 둔 반면에 중반 이후부터는 사건 이후의 삶을 그려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참혹한 범죄로 인한 삶과 마음의 상처를 확인해 나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삶이라는 것도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통용되는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가나코였다. 12살 어린 소녀에서 8년이 지나 대학생이 됐지만 그 사건이 발생된 시점부터 현재 순간까지 끊임없이 매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그려낸다.

사건 직후 네 시간에 걸쳐왔던 고통의 시간과 이후 정신 치료를 받던 시절, 몇 년이 지난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현재 대학생이 되서 가해자의 딸 미호를 만나 친해지고 미호를 대하며 괴로워하는 심정과 마지막 미호의 남편을 죽이려는 사건의 모의까지.. 하지만 그 사건의 모의 순간에도 이른바 '네 시간'의 트라우마에 갇혀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그 심상에 마냥 허우적 댄 것이다. 과연, 그녀가 가해자의 딸 '미호'를 통해서 얻으려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찌보면 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딸이라 대척점에서 그 둘은 마치 마주한 거울처럼 닮았다는 점이다.

가나코는 가족들이 겪었을 공포와 고통이 지워지지 않고 매 순간 상상돼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가해의 딸 미호는 아버지의 살인죄로 인해 고통과 체념 속에서 포기하듯 살아가는.. 그래서 그 둘은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지 모를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 '가해자는 법률의 심판을, 피해자는 사회의 심판을 받는 셈이지'라는 이야기처럼 결국 두 사람 다 같은 고통으로 이어진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죄 값에 대한 법률의 해석과 인권 해석의 충돌로 이어져 사회 문제로까지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묘사는 '인생의 죄의식'이라는 또 다른 운명의 트라우마를 겪으며 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네 운명의 쇠사슬을 얽히듯 섥히듯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가나코'가 겪은 그 극한의 슬픈 트라우마를 통해서 말이다. 즉, 참혹한 범죄로 인해 피해자로 남겨진 사람과 가해자로 남겨진 사람.. 결국에 이 둘을 믹싱시켜 소녀들의 일상을 쫓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갈등과 성장을 통해서 범죄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다시 재생을 꾀하려는 두 소녀의 이야기 <심홍>..

하지만 남겨진 상처는 계속 깊기에 그 내면의 심상에 자리잡은 '직시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심리'는 모를 일이다. 여기 주인공 '가나코'처럼 말이다. 그것은 가족들이 흘린 피의 소용돌이, 그 심홍 속에서 갇힌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전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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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기억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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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추억은 우리네 심상에 자리잡은 기억의 잔상들이 쌓인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추억이 사라진다면.. 아니 기억의 잔상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잊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기억의 죽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의 정신적인 사망신고인 셈이자 인지사고의 붕괴로 이어져 육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 기억이 점차 잊혀져가는 일종의 희귀병인 '알츠하이머'병을 앓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으니 자체 평(評)한 일본 인생소설의 대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적 걸작 <내일의 기억>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읽게된 소설이다. 첫 시도는 <그 날의 드라이브>라는 인생소설로 어느 40대의 가장이 은행직에서 강퇴당해 택시 운전대를 잡으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유쾌한 인생 이야기, 두 번째로는 <벽장 속의 치요>라는 펑키호러 단편집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호러를 접목시킨 사회풍자가 담긴 인생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로 읽게된 <내일의 기억>..

우선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직 광고계에서 일한 경력으로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역시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적 걸작이라는 느낌이다. 어떤 재미와 반전을 꾀하는 일본의 추리소설들처럼 스릴러적 미스터리가 아닌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로 우리네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그래서 자칫 뻔한 이야기에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 이야기는 그런 진부함 속에도 무언가 심상을 건드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에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어느 광고대행사의 영업부장 '사에키'.. 그는 20여년 넘게 해온 직장생활에서 유능하진 않아도 모나지 않게 그럭저럭 직장 후배들에게 인정받으며 지내온 상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광고 시안문제로 회의를 하는데 인물 섭외를 위한 배우의 이름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이런 증세는 심각해지고 급기야 직장 후배나 동료의 이름까지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 또 거래처를 방문하러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또, 이런 광고 영업중에 잡아놓은 약속등을 잊어먹기도 하며 그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러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로 생각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생활도 무언가 다시 살펴봐야 하는등 결벽증에 시달리고, 급기야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여러 진단끝에 '약년성 알츠하이머'의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같은 소리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이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부인 '에미코' 또한 남편의 병명에 망연자실해 한다. 이 '알츠하이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사실이 결국에 언어나 사고에 이어 몸의 기능마저 앗아가버리고, 급기야 몸이 살아가는 방법과 삶 자체를 잊어가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야할까.. 난 이대로 기억을 잃어가며 죽는 것일까.. 두려움이 앞서지만 분노와 한탄이 교차한다. 그래서 사에키는 그때부터 자신만의 기록 비망록을 쓰며 일상의 나날들을 적어간다. 그리고, 점차 어려워진 회사생활을 견디기 위해서 메모지를 활용해 매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를 한다. 그 메모만 해도 한 움큼이다. 그러다 또 길거리를 헤매다 메모를 쏟는등.. 그는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이 처절함을 달래볼 심산인지 그는 소싯적에 배웠던 도예공방을 다시 찾아가 도예를 배운다. 그 차분한 그릇을 만드는 환경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음이다. 또 얼마 안 남은 20대의 무남독녀 '리에'의 결혼식 선물로 그는 부부찻잔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세는 점차 악화돼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고 또 그런 병세를 알아차린 회사측에서 그를 한직으로 몇 달간 좌천시키고 만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마지막 직장 생활을 버텨내고 딸의 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친다. 물론, 결혼식 중간에 사위를 몰라보는 사고를 치긴 했지만서도..

이제 가정으로 돌아온 사에키와 부인 에미코 단 둘이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였기에 막막할 뿐이다. 급기야 스스로 정신병 보호시설을 찾아가 입원 절차를 받고, 소싯적에 친구와 함께 도예를 가르쳐 주었던 노스승을 찾아가 인생을 반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며 기억의 저편으로 쓸쓸히 걸어갔다. 그 누군가는 누구였을까?

이렇게 이 소설은 내용에서 알다싶이 우리네 인생 이야기다. 특히 40-50대 중년 가장들의 삶.. 치열하게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던 어느 한 가장이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어느 날 기억을 잃어가며 일상의 나날들까지 점차 사라져가 급기야 기억의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애환이 담긴 인생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병에 대한 동요, 분노, 수용의 과정을 제 삼자의 시선이 아닌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비망록과 메모를 기록하는 일상과 연계하여 전개해 나간 이야기였다. 그래서 자칫 투병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투병기 이전의 마음의 기록으로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아내에 대한 사랑과 연민, 결혼을 앞둔 딸을 생각하는 마음, 직장 생활의 고충과 애환, 그리고 마음의 의지처자 안식처로 삼아온 도예, 기타 다양한 인간상까지.. 이 모든 것을 전면에 걸쳐 생생하게 또 울림있게 고루 묘사했다는 점에서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의 끈대신 절망이 찾아들때마다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그래서 그런 기막힌 현실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갈망하고, 마침내 도예를 통한 마음의 구원을 얻었을때 이 남자는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도 모를 남겨진 그 극한의 애상감까지..

바로 제목 '내일의 기억'이 암시하듯 내일이 되면 오늘은 또 어떤 나날로 기억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기억이 점차 사라져가 함께 해온 나날들까지 사람들 마음속에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여기 주인공은 마지막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자신이 기록한 삶의 심상을 누군가는 기억하기에 말이다. 여기 그 문구로 대신하며 음미해 본다.

   
  기억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확인하는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소중한 약속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이 사라져도 나의 지난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잃은 기억은 나와 같은 나날을 보낸 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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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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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惡意)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 ’나쁘게 받아들이는 뜻’, ’어떤 사정(事情)을 알고 있는 일’등으로 명징되어 있다. 그렇다. 풀어서 연결해보면 ’타인의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여 해치려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풀어쓰지 않더라도.. ’악의’라는 문구는 우리네 일반 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이것을 추리소설로 풀어내면 어떻게 될까.. 즉,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밝은 이면이 아닌 어두운 이면의 악(惡)의 기운을 끄집어내 쓴 이야기라면 누구나 혹할 수 있는 그런 소재꺼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 그런 소재꺼리를 가지고 일본 추리소설계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가 완성도 높은 또 하나의 장편을 만들었으니 바로 <악의>다.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어느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이하 히다카)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그의 젊은 아내 ’리에’와 친우이며 아동문학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이하 노노구치). 누가 이 유명 작가를 살해했는가로 서막을 연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맡은 사람은 ’가가 교이치로’형사(이하 가가)다. 그런데 시시할지 모르지만 범인은 곧바로 밝혀진다. 바로 어린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노노구치가 친구 히다카를 살해한 범인이었다. 몇몇 인물이 의심되었지만 가가는 노노구치를 지목했고 그것은 적중했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면서 알게된 여러 사실중 놀라운 것은 그가 바로 히다카의 ’고스터라이터’(대필작가)였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약점이 잡혀 그의 작품을 대필해주면서 그는 많은 고통에 시달렸고 또 히다카의 전처와 불륜에 빠지자 작당해서 그를 죽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뺏아간 친구에게 악의를 품고 죽였던 것일까.. 그런데 그것만으로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내재된 악의를 설명하기에 무언가 너무 정직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더 흥미진진해진다. 또한 이 소설은 특이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두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 바로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노노구치의 시선으로 그가 사건을 기록한 수기의 형식과 가가형사의 사건 기록일지 이렇게 둘의 수기와 사건 기록을 번갈아 보여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종류의 글을 만들어냈고 읽는 이로 하여금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역시 게이고답다. 물론 사건을 푸는 열쇠로서도 작용하지만 그 수기와 기록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들어있다. 즉, 성공을 거둔 작가와 그를 대필한 작가의 고뇌속 직업적인 욕구등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세계가 흥미롭다. 또한 읽는내내 범인은 이미 밝혀졌지만 그는 왜 살인을 했는가? 즉, 살인의 동기 ’Why?’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물론, 나중에는 고스터라이터로 밝혀졌기에 어느정도 살인동기가 부합돼 보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무언가를 제시한게 이 소설에는 있다.

그것은 두 친구였던 ’히다카’와 ’노노구치’의 과거 학창시절 특히 중학교 시절에 겪었던 이른바 ’왕따’사건에 연루돼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또는 가해자로 있게된 그들의 과거사가 바로 이 사건 해결의 키포인트였다. 그것은 또 다른 반전을 위한 서막이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게 만들었다. 바로 악의적 기운으로 친구를 살해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살인동기와 범인은 이미 밝혀진 상태에서 그 범행 동기와 그 방법을 추적해나가는 추리적 요소가 마지막까지 게임을 하듯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게 했다. 물론, 범인에 변함이 없었지만서도..

이렇게 이 소설은 제목처럼 ’악의(惡意)’라는 소재로 쓴 추리소설이다. 인간의 악한 기운이 어떻게 발현이 돼 사람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그 이면과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준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 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히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네 주위에는 이런 본성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거 있지 않는가.. 사람관계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그 사람이 싫어지는 케이스 말이다. 종국에는 두 친구의 사례를 보면서 인간의 이유없는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이유없는 악의의 이유를 찾아내려는 것이 이 추리소설의 플롯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아무튼, 오랜만에 가볍지 않은 묵직함이 배어있는 추리소설을 만난 것 같다. 어떤 화려한 추리적 기법보다는 물론 트릭이 사용이 됐지만서도 읽는 내내 살인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며 끝까지 그 동기뿐이었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낸 <악의>.. 결국에 이유없는 살인이 없듯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내재된 악의에는 분명 이유가 존재하고, 그것은 표면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또 다른 악의적 본성을 자극하는 인간의 내재된 습성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을 부정하기에 인간은 한없이 약하기도 또 무섭기도 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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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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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유머 소설시리즈중 마지막인 아니 어느것이 먼저라 할 수 없지만 두 달여전 '독소소설'을 접하고 며칠전 '괴소소설'까지 마치고 바로 손에 든 '흑소소설'이 나에게는 마지막 시리즈로서 읽게됐다. 역시나 읽고나니 이것은 또 무슨 맛이라고 해야할까.. '괴소'하고는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흑소소설>.. <괴소소설>이 '사람들의 은밀한 속마음'을 들여다본 사회 풍자적 이야기로 가득했다면.. 이 '흑소'는 한자어대로 '검은 웃음'답게 블랙 유머가 전면에 깔려있다.

그냥 일반적인 유머가 아닌 무언가 짭조름한 쓴웃음.. '풋'하게 만들면서 우리네 검은 흑심을 건드는 그런 오소독스한 맛이 느껴지는 작이다. 역시 게이고답다. 시리즈마다 이렇게 틀리게 유머를 그려낸다는게 놀라울뿐... 읽는이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갖가지 군상들의 집합체를 모아놓은 이 '흑소소설'의 단편들을 소개해 본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많다. 무려 13편이나 된다. 독소도 12편으로 많았지만, 특히 흑소는 안의 몇몇 에피가 겹치면서 이어지는 내용들이 있다. 바로 문단(文壇)과 관련된 내용이 그렇다.

먼저, <최종심사> 오랜 작가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문학상을 받아본적이 없는 어느 노작가.. 그에게 문학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이면서 그는 내색은 못한 채 학수고대를 하는데 과연 받을 수 있을까.. <거대유방 증후군> 어느 순간부터 둥그란 형체를 뛴 모든것이 여자 가슴인 유방처럼 보이기 시작한 남자.. 급기야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여자만 봐도 거대유방이 떠올라 힘들어하는데 하지만 약의 부작용인지 환각작용까지 겹치는데 과연 그는 여친 가슴공략?에 성공했을까.. <임포그라> 바로 '비아그라'의 반대되는 개념의 임포텐츠(성적 불능상태)를 유발시키는 이른바 '임포그라'가 개발되면서 남자들의 성욕을 가라앉게 하는데 하지만 가짜 임포그라까지 판치면서 주인공 남자는 애인앞에서 풀이 죽고 마는데..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ㅎ

<시력 100.0> 시력이 1.0도 아니고 100배나 높은 어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보는 시야는 바로 초현미경의 세계로 공기내 미세 먼지까지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 생활의 불편?을 느낀다. 시력이 너무 좋아도 탈이다. <사랑가득 스프레이> 매번 연애시 '친구로 그냥 지내자'라는 퇴짜를 맞는 어느 한 남자가 연애고민 상담을 하면서 MHC라는 '연애유전자'가 가득한 스프레이를 가지고 연애공략에 나선다. 즉, 그걸 뿌려야만 여자가 넘어온단거.. 하지만 '사랑가득'이 있다면 '사랑끝'도 있는 법이다. ㅎ <불꽃놀이> 어느 출판사로부터 그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어느 젊은 작가.. 너무 기쁜나머지 온갖 잔치를 다하지만 정작 출판계는 그의 실력을 마뜩치 않는다. 바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과거의 사람> 그 신인 작가 이후에 또 다른 실력파 신인작가의 수상으로 그는 점점 더 잊혀져간다. 이런 분위기를 모른 채 말이다. ㅎ

<신데렐라 백야행> 계모와 두 언니들의 핍박을 받으며 착한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비가 된 신데렐라로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 신데렐라는 그렇게 착하지만 않다. 왕자비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가면을 쓴채 노력한 야심가?였다. 역시 행운은 때론 노력하는 자에게 따르는 법이다. <스토커 입문> 제대로 웃긴 이야기다. 읽는 내내 계속 뿜었다. ㅋㅋ 여친과 헤어진 어느 찌질남이 있다. 그런데, 여친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지 나를 스토킹 해달라 주문한다. 혹시 변태? 이에 찌질남은 여친의 요구대로 혼나면서도 어리숙한 스토커질을 하는데.. 아주 욱긴다.ㅋ <임계가족> '임계점'라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최대 한계치에 도다를때 쓰는 표현으로 알고 있다. 여기 네살짜리 어린 딸을 둔 아빠가 있다. 그런데 그 어린딸이 모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 빠져 해당 장난감을 사달라 마구 조른다. 이에 마뜩치 않은 아빠는 급기야 그것을 사고 마는데.. 그런데, 그 애니메이션사는 다른 목표설정을 한다. 그 가족이 임계점이었던 것이다. ㅎ

<웃지 않는 남자> 전도유망한 아니 실력도 지지리 없는 두 젊은 코미디언 배우가 있다. 어느 지방 공연차 장성급 호텔에 1박 2일 투숙하게 된다. 촌스럽게 눈이 돌아간 그들은 다음날 공연을 앞두고 시연을 위해서 도어맨을 웃기려고 하는데.. 그런데 그가 쉽지 웃지 않는다. 그런 철가면도 없다. 과연 그 철가면을 마지막에 웃길 수 있을까.. <기적의 사진 한 장> 그저 평범하게 아니 조금은 못생긴 여대생이 있다. 그런데, MT를 가서 호숫가에 찍은 사진이 너무나도 자신과는 판이하게 예쁘게 나온 것이다. 이에 아버지와 오빠가 놀라는데.. 그런데, 그 모습이 진짜 그녀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다른 잔영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심사위원> 앞에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과 연계된 내용이다. 이제는 노작가로서 마지막 상을 탄 그가 심사위원이 돼 다른 심사위원들과 수상작을 뽑아야 할 상황이 됐다. 해당 출판사는 그들이 뽑은 작품은 인정하지만 뒤돌아서서 그들의 안목을 깐다. 이것이 바로 출판계의 현실인가..ㅎ

이렇게 총 13편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읽어보면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지금 사는 모습 그대로다. 특히 출판계와 작가의 '밀당'(밀고당기기)을 엿볼 수 있는 네편은 문단의 문학상 수상과 관련된 각자 내면의 모색을 자세히 알 수 있고, <거대유방 망상증후군>과 <임포그라>, <사랑가득 스프레이>는 싱글족들 특히 남자들의 성(性)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때로는 비틀면서 제대로 풍자하고 있다. 그래서 읽어보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많이 공감가는 내용들로 이것이 바로 '검은 욕망'이 아니겠는가..ㅎ

그외 고전 명작동화 '신데렐라'를 뒤집은 이야기와 스토커는 아무나 못한다는 <스토커 입문>, 또 임계치가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되는지 보여준 <임계 가족>, 남을 웃기는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블랙 유머로 푼 <웃지 않는 남자> 그리고 무언가 서늘한 기분을 전달한 <기적의 사진 한 장>까지.. 이번 '흑소'의 내용도 '괴소'처럼 만만치 않은 재미와 풍자를 선사했다. 그것은 '흑소'가 주는 검은 웃음 즉, 블랙 유머로서 사회적 이야기들을 제대로 꼬집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읽는 내내 '풋!풋!'하게 만드는 쓴웃음이라는 코드에 사람들의 감춰진 검은 욕망과 바램들.. 그것이 성(性)이 됐든 연애가 됐든 아니면 개인의 영달이 됐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자 우리네 숨은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흑소소설은 더욱더 와 닿는게 아닌가 싶다. 여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유머 시리즈 세편을 번역한 역자 '이선희'氏의 게이고 평가로 나의 블랙 유머 소설 시리즈 세 편의 리뷰를 마칠까 한다. 

   
  "그의 단편은 재미있다. 그것도 보통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 나게 재미있다. 원래 웃음과 눈물은 하나의 쌍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요즘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신이시여, 제발 히가시노 게이고 선생님께서 단편을 쓰고 싶도록 만들어 주세요! 그것도 소재는 반드시 웃음이어야 합니다.!"라고.. 하지만 정작 게이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블랙 유머 소설을 쓰지 않겠다. 짧지만 장편을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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