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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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작가라 감히 말하며 지칭하는 ’황석영’ 작가의 신작이 2008년 <개밥바라기별> 이후 2년 만에 나왔다. 제목은 <강남몽>이다. 몽(夢)에서 알다싶이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금도 사람살이가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바로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과 현실이 교차돼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부자중심 ’강남’.. 그 강남의 역사 아니 ’강남의 형성사’(形成史)를 통해서 그는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투영시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사실감 있게 전달하며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그 욕망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가 담아낸 이야기의 시작은 어떻게 되고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바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 참사에서 비롯된다. 즉, 이 대참사를 통해서 각 인물들을 교차 편집시켜 그 이야기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즉, 총 5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마지막 그곳으로 모이면서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간 군상의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니..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는 말 그대로 백화점이 무너진 참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참사 전 여기 여주인공 ’박선녀’의 동선을 좇으며 소위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들의 일상을 그린다. 남편 덕에 세상의 시름살이는 잃은채 쇼핑이나 하면서 탱자탱자하며 지내는 아줌마들.. 여기 박선녀도 그중 하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다. 평범한 국밥집 딸이었던 그녀는 여상 재학중 우연찮게 모델 생활을 거쳐 화류계에 발을 들이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그리고, 룸싸롱을 경영하고 부동산 투기를 맛보고 주먹계의 비호속에 나이트클럽까지 운영한다. 하지만 결국 룸카페로 전향하면서 대성백화점 김회장 ’김진’을 만나 후처가 된다. 바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이 상승되며 그녀의 상류층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간다. 왜냐?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쇼핑중 그곳에 깔리게 된다.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각 장중 100여 페이지가 넘는 장편의 이야기로 바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일종의 현대사 가이드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바로 김회장 ’김진’.. 그는 일제시대 1910년대에 태어나 열살때 만주로 이사오고 10대 후반 일본 헌벙대의 밀정으로 일하다 관동군에 편입돼 만주의 항일군 대토벌작전에 참여하고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로 돌아와 미군정청 산하 특무기관인 CIC의 요원이 된다. 이때부터 김진은 해방 공간에서 좌익을 탄압하고,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진압, 박정희 좌익혐의 조사와 구명활동 등 굵직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미군정과의 선을 이용해 한국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현대사의 뒷무대에서 영리한 처신을 거듭하며 살아남는 관록을 자랑한다.

이렇듯 여기 김진은 바로 친일, 친미의 안보이는 대표주자로 그의 삶은 위태로움속에 안이함을 유지하며 준위로 예편한다. 그리고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직후 건설업을 시작한 그는 권력과 돈의 행방을 가늠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군에게 불하받은 서초동 땅에 아파트와 백화점을 지어올리면서 순탄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백화점이 1995년 6월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지켜보게 된다. 이렇듯, 여기 이야기는 실제 우리의 근현대사를 담았다. 그 속에는 실제 역사적 실제 인물들인 김구, 이승만, 박헌영, 여운형, 박정희, 그리고 김창수 특무대장역의 김창룡과 80년대 사채시장의 큰손 이희철(이철희)의 과거사와 그의 부인 장영숙(장영자), 실제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역의 김진까지.. 이렇게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는 말 그대로 본격적인 땅 이야기.. 바로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6.25를 거치면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개발되지 않은 ’서울’이라는 땅덩어리.. 그 땅이 어떻게 개발되고, 누구에 의해 조작되고 만져지는지 여기 주인공이자 박선녀와 잠깐 알고 지냈던 ’심남수’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제 3한강교 건설을 앞두고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남수는 지인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당시 청와대가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은밀히 지시한 정·관계가 연루된 투기현장은 물론이요, 소위 각종 부동산 투기기법을 보는듯 용어들이 ’타짜’처럼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말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정보를 듣고 주변을 정리한 뒤 한국을 떠난다. 박선녀와 이별을 예고한채.. 그리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한때 같이 사업한 지인으로부터 백화점이 무너진 소식을 듣게 된다.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은 제목에서 알다싶이 무슨 드라마 제목같다. 맞다. 실제 MBC에서 인기리에 방여되었던 한국형 느와르적 작품이었던 줄여서 ’개늑시’다. 바로 여기 이야기도 바로 느와르적인 액션을 담고 있으니 바로 조직폭력배 소위 조폭이야기다. 그런데, 그냥 조폭스런? 내용이 아닌 바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주름잡았던 실존 조폭 인물 ’조양은과 김태촌’의 내력담을 소상히 담고 있다.

여기서 조양은역은 홍양태로 김태촌역은 강은촌으로 나와 그들의 조폭사를 제대로 그리고 있다. 긴 말이 필요없다. 범죄조직 대중소설로 큰 인기를 끈 ’이원호’ 작가의 글을 보듯 치열한 조폭세계의 그림이 사시미가 내 복부를 찌르듯 펼쳐진다. 하지만 이 둘은 80년대 전두환 정권시절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이용당하며 긴 수형생활에 처해진다. 그리고 95년에 풀려난 홍양태는 제주도 어느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다가 TV 뉴스에서 백화점 붕괴현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부하에게 전화한다.  돈 좀 달라고.. 하지만 전화는 아무 말 없이 끊겼다. 

5장 <여기 사람 있어요>는 백화점 붕괴 현장에 깔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참사 현장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실제 십칠일을 버티고 살아난 삼풍백화점 지하의 아동복 점원 여기서는 ’임정아’로 나오는데 바로 젊은 그녀를 통해서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소위 공순이, 공돌이로 지내온 가족사를 좇고 있다. 바로 도시 빈민가의 이야기로 60년대말 도시 이주민들이 대거 형성돼 광주대단지(성남) 사업 소식을 듣고 무작정 천막생활을 시작했다가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을 한가운데에서 겪은 사연이 소상히 펼쳐친다.

그리고 당시 서울시의 부당한 처사와 대우까지.. 그러다 강남 건설 붐이 일 무렵부터는 임정아의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적어도 그녀의 가족은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의 반복처럼 출근하는 날 백화점은 붕괴되었고 그녀도 그 속에 깔리고 말았다. 무려 십 칠일동안.. 물론,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여기 이야기의 서막을 연 박선녀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렇게 각 이야기는 강남을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자 실제 ’삼풍백화점’(이야기속 대성백화점)의 참사 현장으로 각 장의 마무리에서 모두 모이게 된다. 실제 깔려있듯 그 현장을 보듯 또 참사의 이야기를 듣듯 말이다. 바로 삼풍백화점을 통해서 강남이 만들어온 일그러지고 갈라진 욕망을 투영시키며 각 인간 군상이 맞물려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어떻게 달려왔고 또 어떤 오점을 남기었는지 소상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현대사적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까지..

작가 황석영만의 선 굵은 서사와 역동적인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강남몽>은 분명 수작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작가 스스로도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 욕망과 좌절을 이쯤에서 다 같이 되돌아보자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어요.” 작가는 “근대화를 이룬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여공과 월급쟁이 회사원들”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 부대들이 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작가의 의도처럼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한국사회의 자본적 현대사를 관통하며 바로미터로서 자리매김한 ’강남’.. 그 강남을 빼놓고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강남을 통해서 거대한 거품처럼 들끓는 우리 시대의 벌거벗은 헛된 욕망들을 소상히 담아내며 무던히도 우리네 심상의 지형을 흔들었던 작품 <강남몽>.. 읽는 내내 수 편의 미니시리를 보듯 전개되는 흡인력과 쓰라린 아픈 현대사가 다큐처럼 냉정하게 포착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소설로만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찌보면 몇 권의 대하소설로 나와도 무방한 이 가열찬 강남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지금도 진행되는 이야기이기에 단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 더욱 더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다가왔으니 그것이 바로 황석영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번 망설일 필요없다. 작가의 인터뷰처럼 지금 시대 넥타이 부대들 특히 30-40대 분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를 관류한 ’강남’ 의 욕망을 좇으며 우리의 씁쓸한 치부를 마음껏 만끽하고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구상해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 바로 <강남몽>이 던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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