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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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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왜 그토록 '플로이'에게 집착했던 것일까? 멀쩡한 청년이 태국의 고급 매춘부에게 현혹되어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서 머물게 된다. 깊숙이 꼭꼭 숨겨뒀던 여행경비까지 야금야금 내어놓으면서 그녀의 곁을 맴돌았지만 '플로이'는 '레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미소 한방이면 섭섭했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진다. 그는 이미 승산이 없는 게임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를 최종 목적지로 여행을 떠난 레오는 경유지였던 태국에서 발이 묶인다. 국수집에서 우연히 플로이와 만나 그녀가 적어 준 주소 쪽지 하나를 달랑 들고 그 길로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 머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새벽의 나나』는 여행자 청년과 고급 매춘부의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레오와 플로이는 그들과 엮은 복잡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기 위한 그저 기본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추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늙은 매춘부 욘, 자신의 쾌락을 위해 매춘을 하는 리싸, 울어도 웃는 얼굴이여서 억울한 까이, 날로 몸이 부풀어가는 우웨, 커튼을 팔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샨, 샨의 부인이자 마약판매업상이 된 억척스런 솜, 매춘부들 사이의 전설로 남은 지아, 등등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은 쉴새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혹은 서로 관계된 그들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런 풍부하고 복잡다단한 등장인물과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새벽의 나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이상한 세계이다. 매춘부들의 일상과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하지만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술만 마시는 우웨는 용변을 보지 않는다. 가끔씩 내뱉는 걸쭉한 침이 우웨의 용변으로 표현된다. 나중에는 그의 몸이 방안에 꽉 찰 정도로 부풀어 올라 방안에 갇힌다. 또한 아이를 낳다 죽은 솜이 유령이 되어 산 사람들과 어울린다. 자신의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아이가 잘못 하면 나타나서 꾸지람을 한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샨은 화분에 묻혀지고 금요일에만 깨어나 다섯 아이들을 돌본다. 이렇듯이『새벽의 나나』는 비현실적인 현상이 당연하다.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독자인 나만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자정이 되면 나나 역은 온갖 매춘부들로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번화한 곳이 된다. 나나 역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정의 나나"는 환상의 세계이다. 하지만 자정이 넘으면 재투성이가 되는 신데렐라처럼 "새벽의 나나"는 그들이 직면한 가혹한 현실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새벽의 나나』는 한 줄기 빛조차 새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게다가 길가다 횡사한 동물의 사체를 본 것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의 나나』를 내동댕이칠 수 없었다. '레오'가 '플로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의 옆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작가는 인간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놓은 유쾌하지 않는 소재를 세밀하게 파헤치며 서술해나간다. 어떻게 하면 처절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끔찍해하는 독자들의 얼굴을 기대하며 남몰래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처절하게 묘사되어서 오히려 눈길이 가고 호기심이 발동하게 만드는 작품, 『새벽의 나나』를 작가는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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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골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천국에서의 골프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의 인생 수업
밥 미첼 지음, 김성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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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기만 하던 골프라는 스포츠가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아마도 박세리 선수가 LPGA 우승을 따내고 우리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골프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대학 필수교양과목으로 골프의 기초를 미약하게나마 조금 배웠었다. 골프는 작고 단단한 공을 긴 쇠막대기로 맞춰 멀리 보내는 운동이다. 직접 7번 아이언을 잡고 스윙을 해보기 전까지 솔직히 골프를 가소롭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통통 굴러가는 공을 보고서야 많은 훈련과 테크닉이 필요로 하는 절대 가소롭지 않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느님과 '맞짱'을 뜨게 된 사나이! 『천국에서의 골프』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먹이 오가는 뒷골목의 육탄전이 아니라 골프를 통한 승패로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 제안을 제시한 이는 바로 절대 전능한 하느님이다. 심장에 문제가 생긴 엘리엇 굿맨은 수술대 위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가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 하느님은 엘리엇이 살아야하는 이유를 끈질기게 묻고 엘리엇은 열심히 답한다. 하느님과 엘리엇의 골프시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하느님이 매우 여러 번 엘리엇의 존재이유를 묻는다고 느꼈었다. 삶의 이유 따위는 상관없이 바로 시합을 시작해도 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부분으로 이야기의 초반을 할애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내가 쓸데없다고 여겼던 부분이 실상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즉 삶의 집착이 없는 사람은 애당초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골프시합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엘리엇을 골프시합의 선수로서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하느님과의 맞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나는 많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을 대신한 대타들을 매 홀마다 내보낸다. 레오나르도, W.C. 필즈, 모세, 존 레논, 프로이트, 에드거 앨런 포, 소크라테스, 잔 다르크, 메릴린 먼로 등등, 총 18명의 유명한 인물이 엘리엇과 시합을 치른다. 주인공은 각 인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경쟁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깨달음을 정작 활용하지 못하는 엘리엇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타인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진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실생활에 적용하지는 못하는 진리이다. 엘리엇은 프로이트와의 대결에서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해서 패한다. 그는 이전의 경기에서 얻은 적지 않은 깨달음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엇은 반성한다. 엘리엇의 이와 같은 행태는 나에게도 자주 일어난다. 엘리엇의 반성이 나의 반성이기도 한 순간이었다.

엘리엇은 시합의 승패와 무관하게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선물받는다. 노력이라는 땀방울이 생명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천국에서의 골프』를 읽는 초반에는 생소한 골프용어를 이해하기위해 뒷부분의 용어설명을 찾아보느라 손이 바빴다. 하지만 이정도의 노력을 들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포기할 수 없는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골프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나도 작가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때로는 테크닉이, 때로는 운이 필요하지만 골프는 오롯이 자신의 집중력으로 인해 승패가 결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은 타인에 의해서 휘둘리지도 결정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되새기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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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비밀 - 어느 위대한 과학자가 남긴 연금술에 관한 위험한 두뇌게임
큐르트 에우스트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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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의 미움을 원 없이 받았던 "뉴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암호 같았던 공식들을 증명해 낸 뉴턴은 나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내는 원망의 표적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대학진학 후, 나는 더 이상 지긋지긋한 뉴턴의 공식들에서 해방되었고 뉴턴과 공식들은 나의 관심 영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우연히 읽게 된 천문학서적에서 나는 이 위대한 학자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되었다. 뉴턴은 꽤나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증명해 낸 이론을 경쟁자에게 빼앗길까봐 일부러 발표를 하지 않고 숨겼다고 한다. 천재가 아닌 인간 뉴턴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에 절대적인 흥미가 생겼다. 이것이 내가 『뉴턴의 비밀』을 선택한 이유이다.

괴팍한 수학과 교수 에벤은 전부인 마이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게다가 갑작스런 마이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에 에벤은 큰 충격을 받는다. 마이의 남편 핀 에릭을 통해 건네받은 유서를 읽고 에벤은 그녀의 죽음 뒤에 '무언가'가 숨어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낸다. 그리고 에벤은 그 '무언가'를 찾으러 파리로 떠난다. 마이의 유서를 필두로 하여 그녀의 행적을 쫓아가는 에벤은 낱말퍼즐을 풀어가는 것처럼 단서들을 하나 둘씩 수집한다. 또한 마이가 앞으로 출판예정인 뉴턴관련 책을 집필하기 위해 '뉴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과 만나게 된다. '뉴턴 프로젝트'는 뉴턴이 남몰래 연구하던 연금술과 그 결과물을 찾는 것이다. 에벤은 마이가 곳곳에 숨겨놓은 암호를 해독하면서 감춰진 진실의 곁으로 한발 한발 다가선다.

『뉴턴의 비밀』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이 작품은 뉴턴의 이야기보다는 마이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주인공 에벤의 추리에 집중된 작품이었다. 책을 읽기 전 추리보다는 뉴턴의 이야기에 기대를 걸었던 나는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 장의 유서를 가지고 출발한 진실찾기 게임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나의 안타까움은 금세 잊혀졌다. 평범치 않은 정신세계를 소유한 에벤은 그만큼 평범치 않은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수에 관해서 천재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숫자를 이용하여 추리하거나 숫자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재미있는 숫자이야기가 등장하니 꼭 체크해두면 좋을 듯싶다.

때로는 진실을 쫓아가는 에벤의 시점으로, 때로는 뉴턴의 비밀 공식을 찾는 마이의 시점으로, 때로는 연금술에 심취한 뉴턴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독자에게 긴장감을 갖게 만들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작품을 견고하게 다져준다. 또한 후반부에 밝혀지는 범인이 누구인지 용의자를 선별하기가 어렵다. 이는 작가가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에게 용의자가 될 여지를 남겨뒀기 때문이다. 『뉴턴의 비밀』은 내용면이나 구성면에서 시종일관 긴장감과 호기심이 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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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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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나도 먹을 만큼 먹은 배가 부른 나이가 됐다. 사회가 정한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완연한 성년이다. 그것도 한참 지난…….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는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여전히 미성년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나와 같으리라.

작년부터 영화, 공연, 출판 등 문화계에 '엄마열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그 열기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화두일 뿐만 아니라 시쳇말로 돈벌이가 되는 주제이다. 그러므로 이 현상은 한동안 꾸준히 이어갈 듯싶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색안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작품도 엄마열풍에 영리하게 편승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희경은 골수 마니아 팬을 확보한 유명작가이다. TV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볼만큼 부지런하지 않기에 나는 그녀의 드라마를 접한 적이 없다. 솔직히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작가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신생작가의 통속적인 작품을 만나는 입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마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암에 걸린 엄마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당연히 눈물 콧물을 한껏 뽑아낼 것이라 예상한 상태로 읽기 시작했다. 또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은 충분히 점쳐볼 수 있었다. 일반화된 내용을 어떤 식으로 재구성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작품 초반, 특히 연수와 영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명성이 과대 포장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연수와 영석은 처녀와 유부남의 흔해빠진 불륜사이였고 그런 연수를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오래된 선배와의 관계는 나로 하여금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기 암에 걸린 사실을 모르는 엄마와 그 사실을 알게 될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갔다. 아무래도 노희경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이끄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읽어냈다. 보통은 며칠에 걸쳐서 나눠 읽는 게 나의 독서습관인데 이 작품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통속적인 내용을 흡인력 있게 만드는 노희경만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엄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부터는 가족들과 독자의 폭풍눈물이 시작된다. 쉼 없이 눈물이 흘러 닦아내느라 책읽기를 중간 중간 멈춰야 했다.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글로 뽑아내는 노희경 작가의 능력은 특별했다. 아들딸과 남편의 회한이 담긴 말들은 어머니를 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마음이었고 꾸짖음이었다. 엄마가 죽는다는 사실보다는 엄마 없이 살아갈 자신이 먼저 걱정된다던 연수의 울부짖음은 평생 희생한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연수의 마음이 내 마음과 많이 닮아있어 내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어머니는 건강하시다. 두렵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나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이별이 아주 아주 늦게 오길 바랄뿐이다. 남들에게는 사탕발린 달콤한 소리도 잘 하면서 정작 가족에게, 어머니에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앞으로는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자주 전해야겠다. 내 어머니를 위해서, 나 스스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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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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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신체 중 어디에 있나요?", 라고 물어온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킬 것이다. 또는 머리(뇌)에 마음이 있다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여 누군가가 발이나 손에 마음이 위치한다고 주장해도 명백한 논리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은 그 존재나 정의 자체를 정확히 규정지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할지라도 인간의 사유세계까지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기계의 탄생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인간과 기계(초고도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와의 차이점은 마음의 유무라고 간단하게 선을 그어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58 제너시스』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미래소설이다. 공화국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낙시맨더는 아담 포드에 대해 4시간에 걸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작가는 시험관과 아낙시맨더의 대화를 통해서 공화국의 탄생, 공화국의 역사와 규칙, 이단아 아담 포드, 기계 아트 등에 대해서 알려준다. 인간과 기계와의 대결구도가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과학에 관련된 다양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며 그것들을 깊이 다룰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과학적 소재도 종종 등장했지만 결국 『2058 제너시스』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이념이 주된 이야기이다. 작가 버나드 베켓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동물․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아낙시맨더와 시험관의 문답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가 채택한 문답법의 서술 형태는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와도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이는 매 장면들이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현되는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아주 생생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보는 아낙시맨더가 시험관 앞에서 쩔쩔 맬 때는 나도 땀이 삐질 흐르는 것 같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쾌재를 부르게 되는, 일종의 나 자신을 아낙시맨더와 동일시하는 체험을 했던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동화되는 관객이 되어보게 만드는 참으로 영리한 서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58 제너시스』를 읽는 내내 버나드 베켓의 효과적인 서술방식에 감탄했고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예전에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영혼의 무게만큼 몸무게가 몇 그램 정도 감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나는 인간이 여타 존재와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버나드 베켓이 시종일관 독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마음(사유, 의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담 포드가 기계 아트와 탈옥을 계획하고 자신의 최후를 아트에게 맡겼던 그 순간, 아담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당연하고도 자신만만한 확신이며 작품을 읽는 동안 우리가 매순간 고민하던 문제의 궁극적 해답에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58 제너시스』의 마지막 반전은 특히 눈여겨봐야할 이 작품의 백미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작품의 마지막 반전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2058 제너시스』가 시류에 편승한 단순한 미래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이 알아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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