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애장판 9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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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림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몹시 화가 납니다. 그건 좀 풍경에 실례 아닌가, 거꾸로 된 거 아닌가, 하고요. 하긴 저는 대부분 생각대로 그릴 수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릴 때마다 아아, '진짜'는 굉장하구나~. 역시 또 내 걸로 만들 수 없었어, 하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보이는 충사(蟲師) '긴코'의 방랑을 그린 만화 <충사> 애장판 9권이 출간되었다. <충사> 애장판 9권은 책날개에 적힌 작가 우루시바라 유키의 말부터 근사하다. 인간이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한들 '진짜'인 자연에는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니. <충사>는 내가 그동안 본 만화 중에서도 자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고 생명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이 가득 담겨 있는 작품이기에 <충사>를 그린 작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충격적이면서도 수긍이 갔다.


<충사>의 세계에서 '벌레'란 개미나 잠자리 같은 곤충이 아니라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이유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된 극소수의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미세한 생명체다. 어떤 계기로 벌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된 긴코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자신처럼 벌레를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긴코는 벌레를 부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러 살지 못하고 여러 곳을 방랑한다. 


<충사>는 긴코가 이곳저곳을 방랑하다가 벌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을 만나고, 그를 돕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도중부터 읽어도 괜찮다는 점이 <충사>의 매력 중 하나다(도중부터 보면 처음부터 제대로 읽고 싶어진다는 것도 매력 ㅎㅎ).





<충사> 애장판 9권에는 <붉은 잔상>, <회오리가 몰아치다>, <호중천의 별>, <푸른 물>, <풀을 요 삼아> 등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붉은 잔상>은 땅거미가 내려앉고 동네 아이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녀 아카네는 오늘도 친구들을 앞세워 보내고 혼자서 쓸쓸하게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런 아카네의 등 뒤로 한 소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아카네는 친구가 온 줄 알고 반가워하며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아카네의 눈에는 그림자 곁에 반드시 붙어있어야 할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카네는 몰랐다. 석양이 질 때에만 나타나는 '대재앙시'라는 것이 있고, 그것에 삼켜진 자는 석양이 질 때 본체 없는 그림자의 형상으로만 나타나게 되고, 그 그림자에게 밟히거나 혹은 그 그림자를 밟게 되면 그림자의 본체와 뒤바뀌는 줄은. 


이후 아카네는 마을에서 실종되고, 아카네를 닮은 한 소녀가 검은 숲속에서 걸어 나온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이 소녀는 누구일까. 아카네는 어디서 무얼 할까.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그림자밟기 놀이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라서 더욱 섬뜩했다.





이어지는 <회오리가 몰아친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년은 휘파람을 불어서 '새바람'이라고 불리는 벌레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덕분에 어린 나이인데도 선장에게 실력을 인정받았고, 가족들을 부양할 만큼의 돈을 벌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즐거워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충사 긴코를 만나게 되고, 긴코는 소년에게 낮에는 그 능력을 사용해도 좋지만 밤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 소년은 긴코의 경고를 무시하고 깊은 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고, 이 때문에 소년은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끔찍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처음에는 소년이 긴코의 경고를 무시해서 끔찍한 상황에 몰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년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었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충사>에는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그릇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에 근거한 판타지 만화인데도 진지한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호중천의 별>과 물과 유난히 친한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푸른 물>은 물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마지막에 실린 <풀을 요 삼아>는 긴코의 과거 이야기이므로 <충사> 팬이라면 놓치지 말기를. <충사> 애장판 9권은 <충사> 애장판 완결에 해당하는 10권, 특별편 <해를 좀먹는 그늘>과 함께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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