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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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과학 상상 그리기 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 생활의 무엇이 달라질지 상상해서 그리는 대회였는데, 대회가 열릴 때마다 나는 화상 전화와 무빙워크를 그렸다. 그때만 해도 휴대폰은커녕 무선 전화기도 보급되지 않았고 무빙워크라는 용어조차 없었기에 혼자 상상하곤 스스로 대견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화상 전화를 하고 출퇴근할 때마다 지하철역에서 무빙워크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디지털 단식을 고려하고 운동량이 부족해 여행지에서까지 트레킹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하루빨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 일상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주길 기대했고 그것을 이뤘지만, 막상 기대가 이뤄지자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은 이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이게도 아날로그의 반격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레코드 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레코드판을 찾는 문화가 부활하고 있고, 몰스킨 등 고급 다이어리가 인기를 끌고, <시리얼>, <킨 포크> 등 아날로그 느낌 물씬 나는 잡지가 연일 화제를 모으는 것이 그 예다. 


저자는 오프라인 매장, 일, 학교, 실리콘 밸리의 현재와 미래도 진단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쇼핑이 일반화되면서 일종의 쇼룸(show-room)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지만, 온라인 쇼핑 시장이 거대해진 지금도 존재하며 팝업 스토어 등 다양한 변신이 진행되는 중이다. 오프라인 서점만 해도 온라인 서점에 밀려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독립출판서점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중고서점, 북카페 등 다양한 형태의 서점이 등장하고 있다. 


"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혁신의 본질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다." 저자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어디까지나 디지털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인간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여러 가지 흐름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뭔가를 읽고 쓰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을 비롯한 출판물 시장은 영속하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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