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 (전3권) (반양장) - 전체주의의 기원 + 인간의 조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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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라고 착각한다. 사실 민주주의는 정치 용어, 공산주의는 경제 용어로 분야부터 다르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정치 체제를 뜻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다수의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가 나라의 주인이다. 쉽게 말해 독재다. 독재자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권력 기관을 장악하며 선거를 치르지 않거나 방해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지난 4년 동안 박근혜-최순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권력 기관의 빈자리를 메우고 선거에 부정 개입한 의혹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실 독재 국가, 전체주의 체제 안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전체주의는 무엇으로부터 태어나 어떻게 일국의 정치 체제로 자리 잡을까? 독일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역작 <전체주의의 기원>에 그 답이 있다. 1906년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한나 아렌트는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1년까지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역량 있는 정치사상가로 발돋움하고, 1963년에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대인은 국가에 근원을 둔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과 동일시되었으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까운 가족끼리 모여 지냈던 관계로 피할 수 없이 모든 사회 구조의 파괴를 위해 일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21쪽)


이 책은 크게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반유대주의란 말 그대로 유대인을 반대하는 태도다. 유대인은 예부터 여러 지역에 퍼져 살면서 외교에 개입하거나 금융 거래를 주선하는 일을 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유대인은 다른 민족과 동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자신들만의 종교와 문화, 전통을 배타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다. 돈은 많은데 유대인끼리만 쓰니 비유대인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권력은 없으니 만만하게 보였다. 결국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 반유대주의 정서에 불이 붙었고,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며 반유대주의가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기에 이르렀다. 


제국주의 역시 본질은 돈과 권력이다. 산업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자 자본가는 더 넓은 시장이 있는 해외로 나가고 싶어 했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 역시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팽창 욕구를 부추겼고, 국가가 강해지고 식민지가 늘어날수록 이익이 커진다고 믿었다. 결국 반유대주의라는 정서적 배경과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배경이 만나 유럽 전역에서 전체주의 정부가 탄생했다. 특히 독일은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히틀러라는 괴물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히틀러는 유대인 말살이라는 끔찍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폭민을 국민과 혼동하기 쉽다. 국민 역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민의 지도자들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던 수단인 국민 투표제는 폭민에 의존하는 정치가들의 낡은 개념이다. (242쪽)


저자가 유대인이기 때문인지 유대인의 역사와 문화, 특성에 관한 설명이 상세하다. 유대인이 비유대인 집단에 동화되기 위해 벌인 노력과 그 과정에서 겪는 자아 분열에 대한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2등 국민 취급을 받았던 유대인은 비유대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 유대인의 특성을 버리면서 동시에 지켜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다. 마치 '제2의 성'인 여성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버리는 동시에 지켜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것처럼 말이다(어느 사회나 비주류, 소수자가 처하는 상황은 모습은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유대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유대인 사회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공통의 적'으로 지목되었다. 이름하여 '희생양 이론'이다. 나치는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정당을 표방했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으면 반국가적 인물로 몰았다. 유대인은 존재 자체가 반국가적이었다. 유대인 사회가 워낙 배타적인 데다가 부유하다는 인식까지 있으니 공통의 적으로 삼기에 적절했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따랐다. 동의하지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은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살고 싶은 욕망, 권력에 따르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리라는 공포, 다수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은 불안이다.


유대인은 언제나 희생양이라는 이론은 그 밖의 누구라도 유대인처럼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중략) 이른바 희생양은 이제, 세상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 대신 처벌을 면하고자 하는 무고한 희생자가 아니다. 세상사에 관여하는 여러 집단 중 한 집단의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이 세상의 불의와 잔혹함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87쪽)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부역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나치 부역자들의 내면과 그리 다르지 않다. 부와 권력을 누리고 싶은 욕망, 명령을 거역했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 조직에서 벗어나면 살아갈 방도가 없는 불안이 그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묵인하거나 방조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훨씬 큰 조직이나 단체에 속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심리는 존재한다. 점심 메뉴 고를 때 상사나 동료의 눈치부터 보는 마음에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욕망과 따돌림, 비난에 대한 공포, 실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휴일에 쉬고 싶은데 상사의 아이 돌잔치에 불려가는 마음, 규정에 정해진 휴가를 마음껏 쓰지 못하는 마음에도 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지 못하고 나보다 더 큰 조직이나 단체에 주인 자리를 내줘야 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민주주의는 멀고 전체주의는 가깝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내재된 권위와 독재를 배척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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