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전설 1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강동욱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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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데뷔 이래 수많은 작품을 선보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SF 만화가로 자리매김한 호시노 유키노부의 초기 단편을 모은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요녀 전설>. '월몽', '로렐라이의 노래', '메두사의 머리', '히다카가와', '카르밀라의 영원한 잠', '만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보르자 가의 독약' 등 모두 여덟 편의 만화가 실려 있다. 


호시노 유키노부의 만화를 처음 보는 나로서는 첫 만화 '월몽'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아폴로 11호 이후 스무 번째로 달에 착륙한 인류. 인류를 대표해 달에 간 우주비행사 세 명 중에는 '닥터 사카키'라는 일본인 남성이 있다. 달 표면을 천천히 유영하던 그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일본 벽지의 어느 숲 속 풍경으로 장면은 급전환한다. 숲 속을 걷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월간지 기자 둘. 이들은 팔백 년 넘게 산 비구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숲 속에 있는 암자에 찾아왔다. 과연 이들은 팔백비구니를 만날 수 있을까? 팔백비구니는 달 위를 걷고 있는 우주비행사와 무슨 관계일까? 


이어지는 '로렐라이의 노래'는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로렐라이 전설을, '메두사의 머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 전설을 배경으로 한다. '월몽'이 일본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구야 공주 전설과 SF를 결합했다면, '로렐라이의 노래'와 '메두사의 머리'는 서양의 유명한 전설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해 색다른 재미와 공포를 준다. '히다카가와'는 일본의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를, '카르밀라의 영원한 잠'은 흡혈귀 전설을, '만가'는 설녀 전설을,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2차 대전 당시 유럽을 휘저었던 여성 스파이 마타 하리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도 무섭고 그림도 무섭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탐구하고 작품으로 승화한 작가의 에너지가 가장 '무섭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보르자 가문에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책 마지막에 실린 '보르자 가의 독약'이라는 만화가 인상적이었다. 체사레 보르자의 여동생이자 보르자 가의 보물이라고 불렸던 루크레치아가 주인공으로 나올 줄이야. 게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그 예술가'가 등장할 줄이야. 일본에 이토록 넓고 깊은 세계관을 가진 만화가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호시노 유키노부의 초기작 이후 작품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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