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발언 - 너와 나를 격분시키는 말 그리고 수행성의 정치학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유민석 옮김 / 알렙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혐오 발언 이전에 언어에 관한 책인데 이 책의 언어부터 너무 어렵다. 몇 번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머리를 자책하며 읽다가 옮긴이 해제를 보니 주디스 버틀러가 '최악의 저자 상'을 수상했을 만큼 원래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이 높다고. 그렇다 한들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요, 본서를 비교적 쉽게 요약한 옮긴이 해제 역시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평을 한 줄도 남기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해한 범위 내에서 적어보겠다. 


저자는 오스틴의 언어 행위 이론을 인용하며 언어에는 '발언 내 행위'와 '발언 효과 행위'가 있다고 전제한다. 발언 내 행위는 발언 자체가 곧 행위인 반면, 발언 효과 행위는 발언과 행위가 별개라서 발언의 효과가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본다. 그렇다면 '혐오 발언'은 어떨까?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상처를 받거나 모욕을 느낀다면 언어는 그 자체가 행위이고 어떠한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혐오 발언을 발언 내 행위로만 볼 수는 없다. 혐오 발언을 듣고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어에 힘을 부여하는 존재를 가해자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고 더욱 넓게 볼 수 있다. 저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욕하기 위해 사용한 혐오 발언이 어느 시점부터는 피해자 집단을 대변하거나 결속시키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한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니거(nigger)', '니그로(nigro)'라는 표현이 흑인들 사이에서는 결속감을 높이는 단어로 사용되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퀴어(queer)'라는 표현이 이제는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혐오 발언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흑인 아닌 인종이 '니거', '니그로'라는 말을 쓰면 여전히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가 화자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개념이라면, 중요한 것은 언어 이전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설사 화자에게는 아무런 악의가 없다 해도 누군가에는 어떤 발언이 상처가 될 수 있고 혐오 발언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매사에 있어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야 하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혐오 발언이 넘친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일까. 어떻게 보든 마음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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