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 내 마음을 위한 응급처치
가이 윈치 지음, 임지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읽은 <딸에게 필요한 일곱명의 심리학 친구>라는 책에서 '감정 축소'라는 심리학 용어를 배웠다. 감정 축소란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괜찮다, 다 잘 될 거라는 식으로 위로하기 급급하며 회피하는 것을 일컫는다. 감정 축소는 주로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기 쉬운 태도 중 하나로, 예를 들어 부모가 시험을 망쳐서 슬퍼하는 아이를 향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난 아이한테 "어떻게 모든 친구가 널 좋아하겠어" 같은 말을 하면 아이의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축소하거나 반박해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가이 윈치가 쓴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을 읽고 제일 먼저 떠올린 말이 감정 축소다. 나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처럼 되뇌는 '아프지 않다', '괜찮다'는 말이 정말 아프지 않아서, 괜찮아서 나온 말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아플 때, 괜찮지 않을 때 그런 말이 떠오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거부, 고독, 상실과 외상, 죄책감, 반추 사고, 실패, 낮은 자존감 등에서 비롯된 사례들도 겉보기엔 멀쩡하고 정상적인 듯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쉬이 낫지 않을 것 같은 것들, 그런데도 스스로 아프지 않다, 괜찮다고 위로하며 넘겨 왔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쩌다 자신의 아픔을 간과하고 괜찮지 않은 상황을 무시해온 것일까.



모든 가정에서 신체적 상처나 질병에 대비해 반창고, 연고, 진통제 따위를 약장 가득 갖추어놓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심리적 상처에 대비하는 약장은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체적 상처만큼이나 빈번하게 심리적 상처를 겪는다. (중략) 만일 우리가 그런 상처를 입었을 때 즉시 정서적 응급처치를 하면 상처가 계속해서 우리의 정신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영향을 주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되는 마음의 질병 가운데 상당수는 처음 발단이 되는 상처에 적절한 정서적 응급처치만 하면 예방할 수 있다. (pp.8-9)



모든 가정이 신체적 상처의 응급 처치를 위한 비상약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정서적 상처에도 응급 처치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간단한 처방으로 마음의 건강을 잃을 뻔한 환자를 구한 사례를 풍부하게 보여준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좋은 조건으로 승진시켜준다는 약속만 믿고 갖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버티다가 끝내 상사에게 배신당한 기업 변호사 린다의 사례다. 린다는 배신을 당한 후 직장을 옮기고 1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의 상사로부터 받은 상처와 모욕을 잊지 못해 저자를 찾았다. 저자는 린다에게 이런 처방을 내린다.



그녀가 상사의 얼굴을 묘사한 방식("제가 회의에서 발표를 할 때마다 그 사람이 저에게 눈을 희번덕거리던 모습......" 등)은 분명히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일인칭적으로, 자기 안에 갇힌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략) 나는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을 바꾸어볼 것을 린다에게 제안했고 두 주 뒤 다시 만날 때까지 아주 신중하게 그 방법을 실행해보라고 주문했다. 다음 상담 시간에 린다는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선생님, 효과가 있었어요!" 그녀는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큰 소리로 말했다. 저번 상담 시간 후 일주일 동안 린다는 과거의 상사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자신으로부터 떨어진 관점에서 기억 속 장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가 바뀌었어요. 그걸 깨닫는 데 며칠 걸렸는데...... 일단 예전보다 저는 과거 상사 생각을 훨씬 덜 떠올리게 됐어요." 더 기쁜 일은 린다가 전 상사 생각을 할 때에도 예전보다 마음의 동요가 훨씬 덜해진 것이다. (pp.236-7)



나도 린다처럼 무의식적으로 싫은 사람을 반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싫은 기억 속 싫은 사람을 떠올리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때로는 화도 나는데, 이제는 그럴 때마다 관점을 달리해봐야겠다. 일인칭 관점이 아니라 삼인칭 관점으로, 면대 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점을 멀리해서 보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싫은 추억도 지금보다는 덜 싫어질까. 이밖에 안좋은 일을 소리 내어 말하거나 글을 써보는 것도 상처를 달래거나 분노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도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니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