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회사를 다닐 때는 동년배 여자들과 비교해 월급이 월등히 많았다. 업무상 패션에도 신경을 썼고,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기에 월세가 들지 않는 것을 핑계 삼아 수입 대부분이 의복비로 사라졌다. 확실히 소재가 좋은 옷, 가방, 신발 등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매일을 아름답게 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때는 시간에 쫓기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지만, 회사를 그만둘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피폐한 생활은 싫어.'
지금은 예전 의복비도 안 되는 금액으로 다달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문득 지금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교코 스스로 즐길 거리가 없기 때문에 지유키 씨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이 몹시 궁금한 것이다. (pp.70-1)


무레 요코의 소설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의 후속편이다. (리뷰 http://blog.aladin.co.kr/779636164/7476185) 
대형 광고 회사에서 조기 퇴사한 45세 독신 여성 교코가 집을 나와 월세 3만 엔(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 원)짜리 낡고 허름한 연꽃 빌라에 산 지 삼 년이 지났다. 지진과 원전 사고로 생활은 더욱 불안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와의 불화도 나아지기는커녕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연꽃 빌라에 새로운 이웃이 온다. 이름은 지에코. 할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대형 맨션을 버리고 연꽃 빌라에 사는 지에코의 삶에 교코는 깊은 흥미를 느낀다. 그녀는 왜 이곳에서의 생활을 선택했을까.


"저는 제가 좋아서 무직인 거예요. 일을 찾을 마음은 없으니까, 취직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한테 시간을 할애해 주세요." 
(...) "저기, 향후에 참고로 하고 싶으니 왜 일을 하고 싶지 않으신지 알려 주실 수 없을까요?"
"이미 평생 할 분량의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하기 싫은 일도 불합리한 일도 전부 다 참으면서요. 그만큼 월급이 많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돈을 모아서 그만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마음은 더 이상 없습니다." (p.97)


지에코의 등장도 흥미롭지만, 이번 속편에서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인 부분은 교코가 구청 직원에게 불려간 대목이었다. 일을 하지 않고, 일을 안 하니 세금도 내지 않는 교코를 수상하게 여긴 구청 직원 다나카는 교코를 불러 원한다면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말한다. 교코의 대답은 당연히 'No'. 십여 년 밤낮 없이 일했으면 됐지, 일부러 저금까지 해서 일을 그만둔 지금 새삼 일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야멸차게 거절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 이 시대에 교코의 행동은 자유를 넘어 오만 또는 방종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일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참았다. 그녀처럼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자유가 나에게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교코가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전편에서 일하지 않고 취미도 없이 연꽃 빌라에서 꼬박 1년을 산 교코를 보면서, 대형 광고 회사에 다니던 시절과는 180도 다른 생활에 적응할 시간을 가진 것이리라 짐작했지만, 내심 아직 젊고 건강한데 너무 무료하게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코 또한 그랬던 모양이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난 3년 동안의 생활을 지속하겠다는 결심이 옅어진 걸 보면 말이다. 새로운 이웃이 생기고 새로운 취미를 즐기게 된 그녀의 삶에 이제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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