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단연 요네하라 마리다.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문화, 역사, 언어 등에 관한 이야기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데, 요네하라 마리는 문화면 문화, 역사면 역사, 게다가 러시아어 통역사라서 외국어까지도 잘 한다. 내가 그녀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쉬운 점은 딱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녀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2006년 56세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늦게나마 한권 한권 그녀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너무나도 행복했는데, 이제는 읽은 책은 많은데 안 읽은 책은 얼마 남지 않아 그저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그녀가 만약 지금도 살아있다면, 그래서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집필 활동을 했다면 매일같이 그녀의 새로운 글, 새로운 책 소식을 기다리며 지낼 수 있었을텐데. 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을 조금 가볍게 해준 책이 바로 <대단한 책>이다. 이 책은 그녀가 신문, 잡지 등 매체에 기고한 책에 관한 글 및 서평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그녀가 남긴 글이 하도 많다보니 책의 두께가 상당하다. 무려 600페이지를 넘는다. 20년 동안 하루 평균 7권을 읽었다는 그녀의 엄청난 독서량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그나마 추리고 또 추린 끝에 남은 글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의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나서 마지막에 읽을 것을 권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체코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 이 때 익힌 러시아어 덕분에 도쿄외대 러시아어과에 진학, 졸업 후에는 옐친, 고르바초프 등 러시아의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급 인사들을 전담하는 일본 최고의 러시아어 통역사로 활약했다. 탈냉전 이후에는 칼럼니스트로 변신하여 수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정치, 경제뿐 아니라 문화, 언어, 성 등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녀가 쓴 책들을 보면 그 왕성한 호기심과 끈질긴 연구 태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또한 그녀는 고양이, 강아지 등 반려동물도 많이 키웠다. 이 책에는 그녀가 일생동안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다방면으로 영향을 받았던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삶은 물론 다른 책의 내용을 알고 난 다음에 이 책을 읽으면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그녀가 암 선고를 받은 2003년부터 임종 직전인 2006년 사이에 읽은 책들도 소개가 되어 있다. 목숨을 위협하는 병 앞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끊임 없이 공부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병을 고쳐줄 의사를 찾아 백방으로 다니던 때, 그녀는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실험의 대상 또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의사들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다. 어떤 의사는 그녀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심한 대우를 하기도 했다. 병보다도 사람 때문에 그녀가 더 아프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병을 고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책은 결국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남긴 글과, 그 글을 모아 책을 만든 사람들 덕분에 나는 또 한번 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볼 용기를 얻었다. (그녀가 쓴 책은 이제 거의 다 읽었지만, 그녀가 소개해준 책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책들을 다 읽으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어린시절 그녀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소비에트 학교에서, 그저 제목에 한문이 적혀있다는 이유로 러시아어 소설을 읽게 되고, 그로 인해 우울증에서 벗어나 낯선 땅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아. 이런 걸 보면 역시 책은 결국 사람을 구원한다. 대단한 책. 책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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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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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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