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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수학천재들 이야기
스캇 패터슨 지음, 구본혁 옮김 / 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논픽션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한 책이다. 꽤 두껍지만, 논픽션이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되어있을테니 쉽게 읽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어려웠다. 금융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읽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주식 투자 한 번 해본 적 없는 위험회피 성향의 인간인 나한테는 어려웠다.
아니, 그보다도 ........무서웠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 때는 2006년 3월 8일, 월스트리트 포커의 밤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낮에는 우수한 트레이더이자 빈틈없는 증권브로커들이지만, 밤이 되면 도박에 열광하는 호주머니가 넉넉한 '꾼'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이 비밀스런 행사는 명석한 두뇌와 배짱으로 월가의 새로운 거물들로 부상하고 있는 선택된 인재들의 모임이었다. 금융계의 상류사회는 너무도 은밀해서, 이 방에 있지 않은 외부인들은 아마 그들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대 뒤에서 일상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은 세계 금융시스템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자금 흐름을 좌우했다. (pp.11-2)
이 책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활약한, 명석한 두뇌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해온 수학천재들이 여러명 등장한다. '퀀트'는 바로 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이들 모두 명문대 출신에 거대 금융사에 소속되어 있거나 일찍이 자기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이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바로 도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금융이나 도박이나 일정한 판돈을 누가 많이 가져가냐를 두고 벌어지는 두뇌 싸움이다. 그러니 금융계의 수학천재들이 도박에 관심이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박은 판이 벌어진 곳에서 끝나지만, 금융은 가계와 기업, 국가 재정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천재들이 금융 거래를 마치 도박처럼 여긴다면 이들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같은 경제에 속한 이들은 어떻게 될까? 판돈을 전부 따겠다는 욕심은 가진 돈을 모두 잃는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사회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예가 바로 2008년 미국발(發) 금융 위기다. 아무리 천재들이 뛰어난 두뇌와 방대한 통계 자료에 기반하여 완벽에 가까운 투자 공식을 만든다 해도, 시장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로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심 탈레브는 이를 '블랙 스완'이라고 불렀다. (이 책에도 나심 탈레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즉, 백조는 모두 흴 것이라는 '관념'은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를 발견한 것만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공식은 단 한 번의 오류나 예상치 못한 변수만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
천재들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돈을 잃었다면, 이 천재들은 과연 돈을 벌었을까? 흔히 투자를 하면 투자자는 돈을 잃고 투자를 돕는 중개인만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 역시 금융가로서 엄청난 부를 얻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투자 실패나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안좋은 모습으로 업계를 떠났다.
돈을 맡긴 사람도, 돈을 관리한 사람도 졌다면, 대체 누가 이 '게임'에서 이긴 것일까? 윈윈도, 제로섬도 아닌, 승자가 없는 이 게임을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게다가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
읽는내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이해하기 어렵고 무서웠다.